2017.11.14 12:22, 느림 근서

2016.12.01 19:26


 즐거운 데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불량냉면이 끌린다는 여자친구의 성화에 남자친구는 청량리로 향합니다. 


 청량리 도착. 비는 오고, 주차할 곳은 없고, 여자친구라는 생물은 옆에서 징징대고. 방금 전까지 뜨거운 걸 먹이겠다던 그분은 어딜 갔는지, 곧 죽어도 매운 냉면을 드셔야겠답니다. 착한 남자친구는 오늘도 착한 채로 여자친구를 위해 운전하느라 고생이 많습니다.


 매운냉면으로 유명한 청량리 할머니냉면을 방문했으나 하필 문이 닫혀있어서 그 자리에 앉아 일단 담배를 한 대. 한숨을 한 번 쉰 뒤, 어차피 조미료 냉면인 거 그 주변의 가게들도 맛은 비슷할 거란 가정 하에 인터넷으로 검색. 바로 건너편인 춘천냉면이 당첨됐습니다. 새로운 집을 방문하는 김에 전격 맛 비교를 해 봅시다.


외관입니다. 청량리할머니냉면 건너편에 위치해 할머니냉면을 아는 사람은 이 가게도 바로 찾을 수 있습니다.


설레는 맘을 품고 입장. 들어가자마자 매운냉면 두 그릇을 주문합니다. 넌 왜 매운맛을 주문하니. 


 메뉴판입니다. 일단 가격은 같습니다. 여긴 할머니냉면과 다르게 냉면과 매운냉면이 분리돼있습니다.

 물은 셀프입니다, 육수(조미료수)도 역시 셀프. 청량리할머니냉면 육수가 고기육수인줄 아는 분들 많은 것 같은데, 당신은 지금 아지노모도 외 합성감미료의 맛을 느끼고 계신 겁니다. 고기도 안 쓰는 집에서 어떻게 육수가 나오나 상식적인 선에서 잠시만 생각해보시면 답이 나옵니다. 가끔 갈비탕같니 제대로 된 육수니 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혀 고장난겁니다. 아니면 합성조미료에 너무 길들여진 혀라는 사실.


 육수를 가장한 무언가를 희석해 마시다보니 냉면이 나왔습니다. 일단 외관은 할머니냉면과 굉장히 흡사합니다. 물냉면 비빔냉면이 구분되지 않고, 소스가 얹어져서 나오면서 냉육수가 나오는 것까지 같습니다.

 열심히 비벼서 맛을 봅니다. 청량리 할머니냉면은 먼저 비빔으로 즐겨야 제맛입니다. 맛을 보니 청량리 할머니냉면과 다를 게 별로 없습니다. 소스가 굉장히 비슷합니다. 처음 방문하는 거라 때마다 다른 건진 모르겠지만, 오늘은 할머니냉면보다 생강이 조금 더 가미된 맛. 주문시 뿌리는 설탕량은 이집이나 그집이나 좀 랜덤할 것 같고. 오늘은 설탕을 좀 더 치신건지, 할머니냉면보다 조금 달았습니다. 보통맛은 주문을 안 해봐서 모르겠습니다. 


 대충 비비고 소스 있는 부분만 먹었더니 면만 남아버려서 주인아주머니께 양해를 구했습니다. 소스를 다시 추가해 비빈 모습. 할머니냉면처럼 종지에 한 스푼정도 덜어주시는 게 아니라, 소스통을 통째로 주셨습니다. 와 감사합니다. 그 덕에 그냥 소스 한 통을 거의 다 투하. 할머니냉면에서는 두세 번 달라고 하기 미안해 소스가 모자라면 그냥 냉육수에 식초, 겨자 탄 맛으로 먹곤 합니다. 무를 좋아해 벌써 흔적도 별로 안 남았지만 차마 소스를 한 통을 다 조져놓고 무까지 달라고 하긴 죄송스러워 그냥 얌전히 먹었습니다. 


 면이 얼마 안 남았으니 육수를 조금 부어줍니다. 할머니냉면이나 여기나 육수를 부으면 일반 분식집 냉면이 돼버립니다. 이왕 불량한 맛을 즐기는 김에 식초랑 겨자도 팍팍 쳐서 몇 젓가락 먹어줍니다.

 

 차가운 국물이 마시고싶어 육수를 더 부어줬습니다. 매운맛 시킨 남자친구는 앞에서 땀을 비오듯 흘리는 중입니다. 그러길래 왜 매운맛을..


 잘먹었습니다. 원래 완숙 계란 노른자는 잘 안먹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역시 흰자만 먹었는데, 저놈한테 된통 당했습니다. 맛있게 잘 먹고 국물을 마시는데, 갑자기 기도에서 이물감이. 숨질 뻔 했습니다.


 비교하려고 사진을 찾아보니 왜 먹다가 찍은 사진밖에 없는지. 춘천냉면쪽 육수가 훨씬 진해보이는 건, 제가 소스를 미치도록 많이 넣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청량리냉면엔 필터효과가 적용돼있습니다. 윗 사진이 냉육수에 겨자, 식초 탄 맛으로 먹는다는 그것. 거듭 말하지만, 할머니냉면은 처음부터 물냉면이랍시고 냉육수 부어서 먹기 시작하면 별로 맛 없습니다. 꼭 소스를 즐기시길.


 결론. 앞집이나 뒷집이나 맛은 거기서 거깁니다. 유명세의 차이일 뿐 둘다 불량스러운 맛이긴 매한가지. 같이 간 남자친구도 그렇다고 합니다. 여긴 맵지 않은 맛도 주문할 수 있으니, 매운거 못 먹는 사람은 괜히 할머니냉면 가서 고생하지 말고, 춘천냉면을 선택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이젠 불량냉면 먹고싶을 때 그냥 사람 없는 곳 아무데나 들어가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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