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4 18:23, 느림 근서

2016.12.20 05:51


요즘 걸신이 들렸는지 하루종일 배고프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것 같다. 구글드라이브 동기화도 된 김에 폴더를 뒤지는데 김밥이 눈에 띈다. 남자친구가 싸주는 김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데, 아쉽게도 그 사진은 없고 내가 충동적으로 싼 김밥이나 도시락 등의 사진만 남아있다. 


 집에 있는 재료를 대충 말아서 내용물이 중구난방이다. 시금치고 김치고 다 알겠는데, 무슨 팽이버섯까지 혀를 쭉 빼고 있는 게 정말 아무거나 막 집어넣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기억을 더듬으니 팽이버섯 외에도 닭가슴살이나 소세지, 유부 같은 것도 넣었던 것 같다. 원래 냉장고 사정에 따라 내용물도 바뀌고 맛도 바뀌는 묘미가 있어야 집에서 싸먹는 김밥이라고 할 수있지 않을까. 그래도 김밥에서 제일 중요한 건 밥이다. 밥을 고슬하게 지어 참기름, 소금으로 밑간을 해야 김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요즘엔 이 기본적인 것도 안 지키는 김밥집이 많아 밖에서 사먹는 김밥 중 맛있는 김밥을 찾기 힘들다. 박리다매 때문이라는 핑계도 댈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음식을 내는 식당이라면 적어도 기본은 지켜야 하지 않나. 자기 입에 들어갈 것도 아니고 그냥 판매를 위해 만드는 기계적인 음식이라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이렇게 보니 그래도 들어갈 건 다 들어간 것 같다. 기본인 계란, 단무지, 우엉, 시금치, 햄에서 다른 종류의 햄이나 소세지, 김치, 유부, 닭가슴살, 팽이버섯, 어묵 등을 김밥 컨셉에 따라 가감한 것 같다. 남자친구를 싸주겠다고 썰어서 포장까지 했는데, 그분은 당시에 김밥 존재 자체를 잊으셔서 나중에 다 볶아먹었다는 후문이 있다. 어차피 싸줘도 먹지도 않잖아 라는 구박을 몇 번 했더니 요즘엔 도시락 싸달라는 말이 뜸하다.


 어느 날에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양갱을 싸준 적도 있다. 뭔가 간식거리를 해주고 싶긴 한데 중국산 앙금은 안 내키고, 마침 집에 팥도 있길래 중노동 시작. 삶고 찌고 갈고 으깨고 너무 피곤하더라. 빨리 굳힌다고 냉장실에 넣었더니 하얗게 물이 서렸다. 영 마음에 안 들어 계속 궁시렁 거렸지만 어찌저찌 건네주긴 했다. 


 이것은 노동의 흔적. 꼼수 안 부리고 제 방식대로 했더니 1킬로 만드는 데 몇 시간을 꼬박 걸렸다. 다음부턴 앙금 사서 해 줄거라고 했지만, 아마 또 한다면 수고스러움을 피하지 않을 것 같다. 요즘 나오는 양갱 너무 달기만 해서 영 맘에 안 든다.


샌드위치도 종종 쌌던 것 같은데 남아있는 사진이 없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포장이 항상 시원찮다. 이놈의 랩은 왜 샌드위치에 안 감기고 내 몸이나 식탁에 척 달라붙는지. 이런 것도 제대로 못 하는 걸 보니 미대는 헛나왔나 보다. 진짜 더럽게 먹기 싫게 보이지만 나름 반미라고 싼 거다. 향채를 즐기지 않는 남자친구 덕에 베트남 고추와 고수는 내가 먹을 거에만 들어있다. 근데 싸고 보니 못 알아 보겠어서 거의 복불복 수준.


 그래도 칸이 좀 있으면 보기 한결 낫다. 재료는 집에 있는 걸 대애충 아무거나 튀기고 볶고 지지고 해서 마구마구 끼얹는 편. 원래 도시락은 있는 재료로 해야 묘미 아닌가. 도시락통은 남자친구가 도시락을 싸달라며 제공한 거다. 내게 저렇게 설거지하기 귀찮은 통이 있을리 만무하다.


 남자친구는 도시락을 싸주면 이렇게 인증사진을 보낸다. 잘 먹겠습니다 혹은 잘 먹었습니다. 그래 이런 맛이 있어야 뭘 싸도 할 맛이 나지. 근데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기도 너무 귀찮고 요리를 하기도 귀찮다. 애정이 식은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아침이 피곤하다고 해야 하나. 나도 남자친구를 닮아가나 보다.


요즘엔 편의점 도시락도 꽤 잘 나온다. 구성이 좋은지는 솔직히 모르겠으나, 싼 값에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인 것 같다. 심지어 요즘 편의점 도시락은 맛 없는 식당보다 맛이 낫다. 맛 없는 식당은 좀 각성했으면 좋겠다. 이런 인스턴트에도 밀리면 식당을 왜 하나. 맛 없는 식당이고 편의점 식당이고 오래 먹으면 몸에 탈이 날 것 같은 건 매한가지니, 귀찮을 때 적당히 먹어주는 게 좋겠다. 사실 달고 짜고의 향연이긴 하지만, 가끔 불량식품도 먹어 줘야 면역이 생기지 않겠나. 그런 의미로 불량한 음식 나름 좋아하는 편이다. 요즘은 그냥 도시락 안 싸고 편의점 도시락 사 먹으라고 쥐여주고 싶은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정말 기분 탓이라고 생각해야겠다. 어째 심성이 점점 못돼지는 것 같다. 


남자친구가 김밥 싸준다고 만든 계란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났다. 남자친구가 만든 김밥 먹고 싶다. 졸라봐야겠다. 나도 날 좀 풀리고 기분 좀 내키면 도시락을 싸 주겠다. 딜 하자.


신고
댓글을 남깁시다 부기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