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11 00:20, 김천어 근서


 이 기나긴 로작이 드디어 대단원을 맞게 되었다. 마지막을 동서울 터미널로 마무리하는 것은 내가 절대 쓰다가 동서울 터미널의 존재를 잊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여하간 서울의 역사의 절반은 매립의 역사歷史요, 한강 개발의 역사役事이니 그 강변에 위치한 동서울 터미널을 마지막의 모습으로 살피어 본다, 뭐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겠습니다.


 여하간 앞서 동마장 터미널에서 구구절절 살펴본 바와 같이 서울의 도시 발달 속에서 터미널이란 것은 도심으로부터 축출해야 하는 민폐시설이었고, 다른 터미널이 모두 외곽으로 쫓겨난 데에 비하여 동마장 터미널은 1990년 전후까지 이전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에 이르러 결국 터미널이 구의동으로 이전하였으나, 이미 구의동은 매립지는 커녕 잠실이 부도심으로 발달하기에 이르렀으니 실기한 측면이 있다고 할 것이다. 여하간 지금의 교통정체 등도 이에서 비롯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여 본다.


1978년 1월 27일자 동아일보1980년 3월 22일자 동아일보1981년 4월 3일자 동아일보


 위와 같은 계획은 옛날옛적부터 나왔던 계획이다. 그러나 이전이 쉽지 않은 것은 터미널을 떠서 옮기려면 땅을 사야하고, 그러자면 또 여하간 사정이 많았던 모양이다. 결국 나중에 천호동에는 시외버스 사업소가 들어서게 되었으니, 이 사업소 또한 구의동 터미널이 개장하면 옮기리라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1986년 1월 27일자 동아일보


 구의동 터미널의 계획이 확정된 것은 결국에 1986년도에 이르러서였으니, 이미 지하철 2호선이 개통하여 강변역이 앞에 들어서 있는 데다가 이 지역의 땅값은 지하철 개통과 터미널 이전이라는 호재를 맞아 급등한 상태였다. 결국 착공이 계속 지연되었는데, 이를 두고 1986년도에 동서울 터미널을 착공했다고 하는 기록이 있는데 아마 이러한 사정을 살피지 못한 오류로 본다.


1987년 8월 18일자 매일경제신문


 그러던 차에 또 하나의 호재가 생겼으니 바로 중부고속도로의 개통이다. 중부고속도로가 개통됨에 따라 고속도로를 타는 고속버스가 생기게 되었는데, 이 터미널을 반포동 터미널로 하자니 중부고속도로에서 다소 먼 것이 흠이었다. 고속도로를 타고 올라와서 강변도로를 타고 구의동에 떨어진다면 하는 생각에서 더해진 것이 중부고속도로 고속버스 터미널을 구의동에 둔다는 생각이었고, 이 계획은 시외버스 터미널이 내려오기도 전에 가건물을 지어 고속도로 개통에 맞추어 영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1987년 11월 6일자 동아일보


 이렇게 되었으니 구의동 시외버스 터미널이라는 이름은 너무 협소하기도 하고, 아래쪽에는 서울고속버스터미날을 붙였으니 구의동 터미널도 이름을 고심하다가 동서울 종합터미널이라는 이름이 된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결국 시외버스 터미널, 즉 통합터미널은 1988년에야 착공에 들어가게 되었다.


1988년 5월 25일자 매일경제신문1988년 10월 11일자 동아일보


 그러나 1989년도에도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완공은 늦어지다가 드디어 9월에 완공, 개장하게 되었다. 이것 또한 1990년도에 완공하였다는 기록이 많은데, 이것은 어떠한 이유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1989년 3월 28일자 경향신문

1989년 7월 21일자 한겨레신문

1989년 8월 26일자 동아일보


 아래는 동서울 터미널의 완공 전후의 모습이다. 1988년도 사진에서 우측 하단에 검은 건물이 바로 고속버스 가건물이었으니, 완공된 후에 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88년도 항공사진1990년도 항공사진


 기나긴 로작 뻐쓰와 더불어가 마침표를 찍게 되였다. 차기작은 렬차와 더불어를 할지 고민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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