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황백묘서명필문(弔黃白猫書名筆文::노란색키티싸인펜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
천어

유세차(維歲次)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천어는 두어자 글로써 필자에게 고(告)하노니, 인간의 손 가운데 종요로운 것이 펜이로되, 세상 사람이 귀히 아니 여기는 것은 도처(到處)에 흔한 바이로다. 이 펜은 한낱 작은 물건(物件)이나, 이렇듯이 슬퍼함은 나의 정회(情懷)가 남과 다름이라. 오호 통재(嗚呼痛哉)라, 아깝고 불쌍하다. 너를 얻어 손 가운데 지닌지 우금(于今) 칠 년이라. 어이 인정(人情)이 그렇지 아니하리요. 슬프다. 눈물을 짐깐 거두고 심신(心身)을 겨우 진정(鎭定)하여, 너의 행장(行狀)과 나의 회포(懷抱)를 총총히 적어 영결(永訣)하노라.

연전(年前)에 우리 필통께옵서 펜을 무르와, 싸인펜 여러 쌈을 주시거늘, 그림도 그리고 지도도 그리어 그 중에 너를 택(擇)하여 손에 익히고 익히어 지금까지 해포 되었더니, 슬프다, 연분(緣分)이 비상(非常)하여, 너희를 무수(無數)히 잃고 수명이 다하였으되, 오직 너 하나를 연구(年久)히 보전(保全)하니, 비록 무심(無心)한 물건(物件)이나 어찌 사랑스럽고 미혹(迷惑)지 아니하리오. 아깝고 불쌍하며, 또한 섭섭하도다.

나의 신세(身世) 박명(薄命)하여 슬하(膝下)에 한 자녀(子女) 없고, 인명(人命)이 흉완(凶頑)하여 일찍 죽지 못하고, 가산(家産)이 빈궁(貧窮)하여 필선(筆線)에 마음을 붙여, 널로 하여 생애(生涯)를 도움이 적지 아니하더니, 오늘날 너를 영결(永訣)하니, 오호 통재(嗚呼痛哉)라, 이는 귀신(鬼神)이 시기(猜忌)하고 하늘이 미워하심이로다.

아깝다 싸인펜이여, 어여쁘다 싸인펜이여, 너는 미묘(微妙)한 품질(品質)과 특별(特別)한 재치(才致)를 가졌으니, 물중(物中)의 명물(名物)이요, 필중(筆中)의 쟁쟁(錚錚)이라. 민첩(敏捷)하고 날래기는 필통의 읏뜸이요, 굳세고 곧기는 만고(萬古)의 충절(忠節)이라. 붓같은 부리는 글쓰는 듯하고, 겉의 키티는 귀여운지라. A4용지와 교과서에 노란색 글씨와 밑줄을 그을 제, 그 민첩하고 신기(神奇)함은 귀신(鬼神)이 돕는 듯하니, 어찌 인력(人力)이 미칠 바리요.

오호 통재(嗚呼痛哉)라, 자식(子息)이 귀(貴)하나 손에서 놓일 때도 있고, 비복(婢僕)이 순(順)하나 명(命)을 거스릴 때 있나니, 너의 미묘(微妙)한 재질(才質)이 나의 전후(前後)에 수응(酬應)함을 생각하면, 자식에게 지나고 비복(婢僕)에게 지나는지라. 싸인펜으로 표시 하고, 너로 밑줄을 놓아 곁고름에 채였으니, 학인의 노리개라. 밥 먹을 적 만져 보고 잠잘 적 만져 보아, 널로 더불어 벗이 되어, 여름 낮에 주렴(珠簾)이며, 겨울 밤에 등잔(燈盞)을 상대(相對)하여, 밑줄그으며, 색칠하며, 굴리며, 치며, 낙서할 때에, 바이블에 표시 할 적에, 수미(首尾)가 상응(相應)하고, 솔솔이 붙여 내매 조화(造化)가 무궁(無窮)하다.이생에 백년 동거(百年同居)하렸더니, 오호 애재(嗚呼哀哉)라, 싸인펜이여.

어제, 희미한 교실 불빛 아래서 포트리스 사회 밑줄을 긋다가, 무심중간(無心中間)에 수명이 다하니 깜짝 놀라와라. 아야 아야 싸인펜이여, 수명이 다했구나. 정신(精神)이 아득하고 혼백(魂魄)이 산란(散亂)하여, 마음을 빻아 내는 듯, 두골(頭骨)을 깨쳐 내는 듯, 이윽토록 정신이 없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만져 보고 이어 본들 속절 없고 하릴 없다. 유의태와 허준을 쌍으로 뭉쳐 가져다 주어도 장생불사(長生不死) 못하였네. 한 팔을 베어 낸 듯, 한 다리를 베어 낸 듯, 아깝다 싸인펜이여, 필통 섶을 만져 보니, 연두색만 나를 보네. 오호 통재(嗚呼痛哉)라, 내 삼가지 못한 탓이로다.

무죄(無罪)한 너를 마치니, 노짱이 정몽쥰에게 버림받은 꼴이라, 누를 한(恨)하며 누를 원(怨)하리요. 능란(能爛)한 성품(性品)과 공교(工巧)한 재질을 나의 힘으로 어찌 다시 바라리요. 절묘(絶妙)한 의형(儀形)은 눈 속에 삼삼하고, 특별한 품재(稟才)는 심회(心懷)가 삭막(索莫)하다. 네 비록 물건(物件)이나 무심(無心)하지 아니하면, 후세(後世)에 다시 만나 평생 동거지정(平生同居之情)을 다시 이어, 백녁 고락(百年苦樂)과 일시 생사(一時生死)를 한 가지로 하기를 바라노라.

오호 애재(嗚呼哀哉)라, 싸인펜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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