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6.10 14:56, 김천어 근서

1947년 10월 11일, 도쿄지방재판소 판사 야마구치 요시타다(山口良忠)가 처와 어린 두 자식을 남기고 굶어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재판관, 검찰관 일반을 고발하는 유서가 발견된 것이 한층 충격을 더했다. 배급되는 대용식이나 항상 늦게 배급되는 식량에만 의존해서는 ‘아사’하고 만다는 사실을, 야마구치는 자신의 목숨으로 실증했다.

야마구치 아사 사건의 진정한 원인은, 쌀과 같은 식량이 절대적으로 모자라는 상황 속에서 비록 돈이 있어도 사서는 안된다고 금지하는 법률에 있다. 그러면 ‘살아있는 국민 전부가 법률을 어기고 암거래 물자를 입수했다는 게 되지 않느냐’라는 논리가 성립되어 충격은 사회 전체로 퍼졌다.

여기에 ‘죽음’을 예감한 야마구치의 일기가 있다.

"식량관리법은 악법이다. 그러나 법률인 이상 국민은 절대로 이에 복종해야 한다. 나는 아무리 괴로워도 암거래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 따라서 이를 범한 자는 단호히 처단해야 한다. 나는 평소 소크라테스가 악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법률에 따라 깨끗이 형에 복종한 정신에 탄복했었다. 오늘날 법치국가 국민에게는 특히 그 정신이 필요하다. 나는 소크라테스가 아니나 식량관리법 하에서 기꺼이 아사할 생각이다. 암거래와 유연히 싸우다 죽겠다. 매일의 내 생활은 정말 죽음에의 행진이다. 판검사 중에 몰래 암거래를 하면서도 시치미를 뗀 채 법정에 나오는 자가 있는데, 나만은 이처럼 결백한 죽음의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병고를 완전히 잊고 후련해진다.”

야마구치의 아사는 심각한 의미를 지녔다. 이 사건의 근저에는 ‘죽음’이냐 아니면 ‘법률위반’이냐 하는 어쩔 수 없는 이율배반이 존재한다. 아무리 정의를 입에 담더라도 무대 뒤에서 암거래 쌀을 탐욕스럽게 먹는 모습을 상상하면 그 고상한 정의는 붕괴된다. 그리고 가장 타격을 받은 것은 ‘국민의 신뢰’ ‘정의’ ‘양심’ 따위의 말을 진심으로 쓰고 있는 재판관들이다.

악법은 법이냐는 논의를 떠나, 이러한 심각한 문제를 두고 어떠한 고민을 할 것인가. 과연 지금 법정에 선 판사와 검사, 변호사, 그리고 우리의 강단에 선 교육자들은 정의에 대해 논할 자격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신고
  1. Favicon of http://suisero.tistory.com BlogIcon 스이세로
    2007.06.10 22:08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아 이거 예전에 신문에서 읽은 적 있는데. 당시에 상당히 감명깊었었지요=ㅅ=

  2. Favicon of http://lunaetta.tistory.com BlogIcon Lunaetta
    2007.06.10 23:06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ㅁ;

  3. Favicon of http://caprice.xo.st BlogIcon ArgeC
    2007.06.11 07:04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뜬금없이 와서 한마디 남기지만..
    나같으면 암거래 쌀 먹으면서 법을 고치자 하겠습;;

    1. Re: Favicon of http://www.7t7l.pe.kr BlogIcon 김천어
      2007.06.11 18:06 신고 삭제 주소

      악법은 법이냐는 논의를 떠나, [..]

  4. Hun99
    2007.06.17 22:14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악법도 법인가의 명제에 대해 순진하게 받아들인 판사에게서 어리석음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이 하나의 신념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다는 데에서 비장함이 느껴지기도 하는군요.

    하지만, 야마구치 판사는 하나만 알고 둘은 잊은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도 당시의 법률을 어기고 자신의 철학을 설파했는 걸요. 법률을 어기지 말라는 기득권자들의 이야기에 그는 자신은 정의의 소리를 전파한다면서 아테네에서 철학을 가르쳤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법복종은 마지막 사형의 순간에서 드러날 뿐 소크라테스는 실정법 위반자로 고소당한 것을 잊은 것 같아 안타까움이 큽니다.

    야마구치의 죽음에 대해 우리는 신념을 위해 죽어간, 인간을 넘어선 인간임에 놀라움에 장중함마저 느껴지지만, 조악한 법실증주의의 함정에 빠져 인간을 위한 법, 생명을 위한 법이 진정한 법임을 깨닫지 못한 한 판사의 죽음에 아쉬움이 더해가는군요. 법실증주의가 팽배했던 제2차 세계대전 일본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도 같습니다.

    법 그 자체는 하나의 형식에 불과하므로 법은 법이기 때문에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향해 있기에 지키는 것입니다.

    물론 그의 신념과 죽음이 일본 사법부의 위기를 구해내고 사법권의 독립을 가져오게 된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하겠지요. 우리나라도 감동을 주는 사법부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댓글을 남깁시다 부기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