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2.02 01:57, 김천어 근서

농담대학교 농담학 박사 학위 논문

농담이란 무엇인가
- 쓸데없는 농담을 중심으로 -

김천어
2008. 2.


제1장 농담가와 농담(弄談)

농담[각주:1]이란 무엇인가. 필자는 이 질문 자체를 무의미하거나 소용없다고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 각각 『농담 근대사』의 1차 및 2차 간행과 관계되는 구절을 빌려서 이야기의 주제로 삼으려고 한다.

19세기가 후세에게 전해주려고 하는 농담을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유용한 방식으로 건넬 수 있게 기록해 두기에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이다. … 우리들은 적절한 분업에 의하여 이를 수행할 것이며, 최근의 문서나 국제적인 연구에 의하여 도출된 가장 원숙한 농담들을 모든 사람에게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우리 세대에 완전한 농담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들은 재래의 안습적인 농담을 청산할 수 있고, 또한 한 지점에서 또 다른 지점으로 가는 길에서 우리가 도달한 지점을 보여줄 수도 있다. 오늘날 우리들은 어떠한 농담도 건넬 수 있고, 따라서 어떤 사실에 대하여도 농담을 시도할 수 있다.


권위 있는 농담인들이 이처럼 서로 격렬하게 대립하는 농담에 대해서는 연구해야할 가치가 크다. 나는 내 자신이 1990년대에 유행한 농담은 모두 넌센스적인 것들이라고 단정할 만큼 충분히 현대적이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나는 또한 2000년대에 등장한 농담은 모두 의미있다고 생각할 만큼 앞서있지도 않다. 이미 짐작했겠지만 사실 그와 같은 농담은 농담의 본질이란 문제보다도 더 포괄적인 문제로 우리를 인도한다. 농담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우리들의 대답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 자신이 처해있는 시대적 위치를 반영하며, 따라서 그 대답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보다 포괄적인 문제에 대한 우리들의 답의 일부가 된다.

흔히 나는 농담했다고 한다. 물론 그것은 진실이 아니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농담을 던진 사람이 이를 설명할 때에만 농담은 말한다. 그리고 농담에 발언권을 줄 것인가를 결정하고, 어떤 내용을 어떻게 농담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농담가이다. 김국진의 농담이 1990년대에 유행한 것이라고 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그 농담이 그 시대에만 유행하고 이후에는 사장되어버린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김국진 이전이나 이후의 수백만의 농담이 건네진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데 반해, 김국진이 작은 농담을 하나 던진 것이 유행한 것이 되는 것은 농담가들이 그 나름의 이유로 그것을 농담사적인 사건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실없는 농담이든 실있는 농담이든 생각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는 개뿔도 아니다. 모 교수는 농담을 ‘실재에 대한 인식 태도의 선택적 체계’라고 말한 적이 있다. 좀 더 쉬운 말로 표현할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괘씸하다. 그러나 농담은 바로 그런 것이다. 농담가는 반드시 (농담을) 던져야 한다. 농담가의 발언으로부터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존재하지만 발언되지 않은 농담 사실이라는 해괴한 이야기를 믿는 것은 미친짓이다 ― 다행히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1990년대의 농담 숭배는 문서 숭배로 완성되고 정당화되었다. 민주화의 열풍을 타고 등장한 이른바 정치 꽁트는 전대갈과 물태우라는 두 전직 대통령 뿐만 아니라 YS이라는 현직 대통령, 그리고 삼김의 다른 두 축이었던 JP와 DJ마저도 희화화시켰다. 경건한 농담가는 머리를 숙이고 문서에 다가서서 떨리는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문서에 있는 것은 대체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문서들 ― 이를테면 이순자 여사가 영화 『士官과 紳士』를 “土官과 神土”라고 읽었다는 둥의 이야기 ― 은 농담가가 농담을 던질 때 우리에게 과연 무엇을 말해주는가. 어떠한 농담도 농담의 창작자가 생각했던 것 이상을 말해주지 않는다. 이렇게 말해도 좋을지 모르나 농담가의 문서 이용은 곧 농담의 처리 과정이다.

지난 시간동안 농담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일련의 진지하지 않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별 영양가는 없으니 생략한다. 다만 이탈리아의 농담학자 B. 그렇지(Groce)는 독일의 농담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받은 이른바 “농담철학”을 제창하였다. 그렇지는 모든 농담은 ‘우스갯소리’라고 선언했는데, 이 말은 별 의미가 없다. 따라서 생략한다.[각주:2]

하여간 농담을 할 때에는 언제나 농담가의 머릿속에서 오가는 농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무 농담도 하지 못하는 경우 너는 바보거나 아니면 너무 진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농담은 생선가게에 널린 문어와 같은 것은 결코 아니다. 농담은 광대하고 때로는 접근할 수 없는 대양(大洋)을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와 같다. 따라서 농담가가 어떤 떡밥을 던져 물고기를 낚을 것인지는, 부분적으로는 우연도 작용하지만, 주로 바다의 어느 지점에서 떡밥을 던지는가 또는 까는가 찬양하는가의 여부에 따라 좌우된다 ― 이 두 요소는 물론 그가 낚으려는 누리꾼들의 종류에 따라 결정되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주로 까는 떡밥이 성공한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농담가는 자신이 던지려는 농담, 즉 떡밥을 받아먹는 사람들의 마음과 그들의 정신세계의 배후에서 작용하는 사상을 상상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내가 ‘상상적으로 이해’한다고 한 것은 즉, 던져서 이해할 수 있는 떡밥을 던지라는 이야기이다. 이해할 수 없는 떡밥을 던지는 경우에, 그 대상들은 분명 떡밥에 입만 대어보고는 떡밥만 더럽히고 도주한다 ― 불로거(不路居:blog)에서는 주로 댓글만 던져놓고 어떠한 연결수단을 남기지 않는 해괴한 물고기가 많다.

더불어 농담가는 오직 현재의 눈을 통해서만 과거를 볼 수 있고 과거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세한 사항은 생략한다.

지난 10년 동안 공중파 상에서 일어난 농담 세력의 변화는 김국진에 대한 농담가들의 태도를 뒤집어 놓았다. 이어 전산망(電算網:internet)의 등장은 김구라와 같은 인물들에 대한 농담가들의 태도를 바꾸어 놓았다. 모 교수는 농담가는 “진담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좀 애매한 권고이다. 따라서 생략한다.

지금까지 농담관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살펴보는 척을 했지만, 이제는 그것을 깔 차례이다. 왜냐하면 농담 서술에서 까는 행위의 논리적인 귀결점은, 결국 객관적 농담은 전적으로 배제되고 농담이란 농담가가 던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까기만 하다보면 좋은 소리를 못 듣게 되고, 김구라와 같이 안티세력이 증가하게 된다. 결국 부르다(Brouda)의 논평처럼 농담은 “어떤 것이든 싫어하는 단어를 끄집어 내는 어린아이의 글맞추기 장난감”같은 것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농담은 적당히 던지는 것이 몸에 좇타.

농담가는 농담의 잠정적 선택과 그 농담이 만들어낸 이야기로부터 출발한다 ― 그 농담이 자신이 생각한 것이든 타인이 생각한 것을 그냥 전달하는 것이든 말이다. 농담을 진행함에 따라 해석 및 농담의 선택과 정리는 양자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미묘하고 반쯤은 무의식적인 변화를 겪는다. 또한 농담가는 농담의 일부분이되, 농담가는 농담의 바깥부분이므로 이 상호작용에는 농담과 사실사이의 상호작용도 포함된다. 농담가와 농담은 서로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이다. 농담하지 못하는 농담가는 뿌리가 없으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고자이다. 던질 농담가 없는 농담은 죽은 것이고 무의미한 것이다. 그러므로 농담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필자의 첫 번째 대답은, 농담은 농담가와 농담 사이의 지속적이 상호작용 과정, 즉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농담이라는 것이다.


제2장 농담, 과학, 그리고 도덕

나는 아주 어렸을 때, 고래고기가 맛있어서 감명받았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포경(捕鯨)이 금지되는 바람에 고래고기를 맛보기가 힘들다. 마찬가지로 농담학이 과학이 아닌 것이 분명한 것과 나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이런 말장난은 재미가 없다.

농담학은 과학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과학이라는 개념과 농담학이라는 개념간의 차이는 어떠한 바탕을 가지고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농담학의 기저에는 농담(弄談)이 깔려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농담은 사실이 아닌 것을 전제로 깔고 있다. 그러한 바탕에서 자연과학의 법칙(法則)이란 개념이 농담학에 수용되기는 어렵다 ― 다만 웃긴 농담만이 농담에 해당한다는 학설이 있지만, 안웃긴 농담이 더욱 많은 현대사회에서 과연 웃겨야 농담인가 하는 명제에 대해서는 깊은 연구를 필요로 한다.

농담에서의 구분에 대한 논쟁도 이런 범주에 속한다. 농담에서의 구분은 사실이 아니라 필요한 가설 혹은 사고의 도구이며, 농담해석에 도움이 되는 한에서만 유효하고, 그 유효성도 해석에 따라 좌우된다. 웃긴 농담의 기준은 어디인가 하는 문제에 견해를 달리하는 농담가들은 특정 농담에 대한 해석에서도 견해를 달리한다. 농담구분 문제는 사실 필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의미없는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닌 것이다. 농담을 지리적 단위로 구분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사실이 아니라 가설이다. 지리적으로 구분한 미리견농담(彌利堅弄談:American joke)을 운위(云爲)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는 타당하고 유효한 가설이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정신줄 놓은 유해한 가설이 될 수도 있다. 대부분의 농담가들은 조지 워커 부시 (George Walker Bush)의 농담을 미리견농담이라고 보지만, 일부 농담가들은 결코 그렇게 보지 않는다 ― 이것은 부시의 농담은 일반 미리견 대중의 농담과 유리되어 있다는 것을 바탕으로 한다. 그릇장사 코렐(corelle)은 이런 농담을 던졌다.

안깨져요.

해괴하다. 유리그릇이 안깨진다면 유리그릇이라고 할 수 있는가. 언급할 가치가 없으므로 생략한다.

하여간 농담은 전적으로 농담인 반면에 과학은 진담이다. 또한 농담은 아무런 교훈도 주지 않는다. 인간은 농담을 하기 때문에, 농담은 필연적으로 주관적이다. 농담은 과학과 달리 종교와 도덕의 문제를 포함한다. 나는 이 문제들을 차례로 검토하고자 한다.

첫째, 농담은 전적으로 농담을 바탕으로 하고, 과학은 진담을 바탕으로 한다. 끝.

둘째, 농담은 아무런 교훈도 주지 않는다. 농담에서 교훈을 얻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정신적으로 이룩한 성취일 뿐이지 농담이 준 성취가 아니다. 물론 그 성취도 농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셋째, 농담은 인간이 하는 것으로 필연적으로 주관적이다. 우리는 사회 일반적으로 농담을 던졌을 때 던진 사람은 미친듯이 웃는데 비해, 듣는 사람은 뭐야 쟤 하는 반응을 나타내는 경우를 경험한다.

넷째, 농담은 과학과 달리 종교와 도덕의 문제를 포함한다. 함부로 종교를 까다가는 해당 종교인들에게 몰매를 맞거나 비난을 받게 된다. 종교적인 내용을 포함하는 농담을 한다는 것은 이러한 사항을 감수한다는 것이며, 또한 비도덕적인 농담은 웃길지는 모르지만 결국 욕을 얻어 먹는 지름길이 된다.

이상 농담과 과학, 그리고 도덕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제3장 농담에 있어서의 인과관계

우유를 냄비에다 끓이면 따뜻하다. 따뜻한 우유를 마시면 잠이 잘 온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필자가 이때까지 따뜻한 우유를 많이 마셔도 잠이 잘 오지 않았으니 이것은 농담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것으로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다. 누가 도대체 왜 이러한 농담을 던진 것일까. 농담이 아니라면 이것은 진담인 것인가. 위대한 농담가는 과연 농담을 진담처럼 던지는 사람인가, 농담을 농담처럼 던지는 사람인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차후에 연구하기로 하겠다.

  1. 여기서 농담(弄談)은 농담과 농담학의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본문으로]
  2. 다만 이 영양가라고는 쥐꼬리만큼도 없는 이야기를 좀 더 상술(詳述)하자면 “모든 농담적 판단의 기저에 놓여있는 실천적 요구는 모든 농담에 ‘우스갯소리’적 성격을 부여한다.”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1. Favicon of http://ex.tistory.com BlogIcon Excretion
    2008.02.03 13:53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자네 어찌 론문에 preface가 빠졌는가...

    1. Re: Favicon of http://www.7t7l.pe.kr BlogIcon 김천어
      2008.02.03 21:36 신고 삭제 주소

      아차, 쓰다보니 그리되었다.

  2. Favicon of http://nunmulro.tistory.com BlogIcon 만나면 어색한 사람
    2008.02.03 19:56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와.. 이런 것도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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