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17 02:37, 김천어 근서

1981년 국회 국사청문회의 진상 (上) : 교과서시정청원공청회의 배경
1981년 국회 국사청문회의 진상 (中) : 교과서시정청원공청회와 주변 인물


 실증의 주구로서 자료를 찾느라 한달이 걸리었다. 내가 장황하게 내용을 설명하고 있었으니 결국에 글이 끝이 날 기미를 보이지 않아 내용을 결국 대폭 생략하고 중심적인 내용만 훑어보기로 하겠다.

 이른바 민족사학측이 주장하는 내용 일곱 가지 가운데 가장 중요한 단군의 부정이 사실인가. 입수한 1974년도 『인문계 고등 학교 국사』(문교부 지음, 펴냄 / 한국교과서주식회사 되박아펴냄)와 1979년에 발행된 『고등 학교 국사』(국편 1종도서연구개발위원회 편찬)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전자는 누가 지었는지 잘 안나오지만, 후자의 경우는 연구진에 최영희 위원장을 위시하여 고병익, 김원룡, 백낙준, 신석호, 이광린, 이기백, 이병도, 전해종, 최완기, 한우근 교수를 비롯하여 그 외에도 수십인이 있고, 집필진에는 고대 및 고려편을 김철준 교수가 담당하였다고 나온다. 물론 김철준 교수에 대하여는 이전의 글에서 언급한 바 있다. 두 책 모두 내용이 대동소이하니 같은 사람이지 싶다. 여하간 그 10쪽에서는


 하느님의 아들인 환웅과 곰의 변신인 여인 사이에서 출생한 단군 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는 단군 신화를 가지기에 이르렀다.

 단군은 제사장이라는 뜻이며, 왕검은 정치적 군장을 뜻하는 것이므로, 단군 왕검은 곧 제정 일치 시대의 족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단군 신화에 나타난 토테미즘이라든지, 바람신이니, 구름신이니, 비신이니 하는 것은 이미 신석기 시대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나, 청동기 시대에 들어오면서는 이러한 여러 신들을 통솔하는 하느님(천신) 사상이 성립된 것이었다.

 천신의 아들이 내려와 건국하였다고 하는 단군 신화는 우리 나라 최초의 건국 신화로서, 당시 고조선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세계관의 구실을 하였으며, 뒤에 민족 문화 전통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왔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고조선은 주(周)와도 교섭을 가지면서 점차 동방 사회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 (1974년판: 우리 나라에서 ~ 고조선은 주나라와도 교섭을 가졌으며, 중국 춘추 시대에는 남만주와 한반도에 걸친 영역을 차지하여 동방 사회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



 이처럼 단군을 부정한 바는 없었다. 영토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나 중심지에 대하여는 언급하고 있지 않으며, 지도 또한 없어서 딱히 한반도 내에 한정하고 있지는 않으며 분명 만주를 차지하였다고 언급(1974년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뒤에 [고조선의 변천] 파트에서는 "처음에 산뚱 반도와 북중국 방면에 있던 동이족들은, 전국시대에 중국에서 각 지방의 소국가들을 통합하는 파동이 일어나자, 만주와 한반도로 이동해왔다."고 하여 분명 위치까지 소개하고 있다.

 백제의 요서경락, 즉 이른바 민족사학측이 반영해달라고 주장하던 "백제가 3~7세기 동안 북경에서 상해에 이르는 중국의 동안(東岸)을 통치하였음."이라는 주장이나 "고구려, 신라 특히 백제 사람들이 일본문화를 건설하였음."이라는 주장은 정말로 당시의 교과서에는 없었는가.


 한편, 4세기 중엽 진이 약화되었을 때, 백제는 부여족이 살고 있던 랴오시 지역을 점령하였다. 이 당시 백제는 기마 민족 세력이 일찍부터 진출하여 식민지 세력을 세워 놓은 일본 지역, 그리고 랴오시 지방, 산뚱 반도 등지를 본국과 연결할 수 있는 고대 상업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1974년판 교과서 19쪽)

 한편, 4세기 중엽 진이 약화되었을 때, 백제는 부여족이 살고 있던 요서 지역을 점령하였다. 그리하여, 백제는 기마 민족 세력이 일찍부터 진출하여 각 지방에 식민지 국가를 세워 놓았던 일본 지역, 그리고 요서 지방, 산뚱 반도 등지와 본국과를 연결하는 고대 상업 세력을 가지게 되었다. (1979년판 교과서 22쪽)


 분명 언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은 교과서에 보충설명을 붙인 방통고등학교 교재에서는 "근거는 중국측 문헌인 송서, 양서 등의 백제전에 "백제는 본래 고구려와 함께 모두 요동의 동쪽 천여 리 지점에 있었는데, 후에 고구려가 요동을 점령하자 백제는 요서를 점거하였다." 라고 기록한 데 있다."고 근거까지 달아주고 있다. 문화적인 부분에 대한 언급은 다음과 같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일찍부터 일본에 건너가 각처에서 식민지를 개척하였을 뿐 아니라, 그 뒤에도 고구려계, 백제계, 신라계 사람들이 가지고 간 새로운 문화가 그 곳 토착 사회를 자극하여 일본의 고대 국가를 성립시키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백제 문화의 영향이 가장 컸는데, (중략) 한편, 고구려도 일본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74년판 교과서 36쪽)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일찍부터 일본에 건너가 각처에서 그들을 교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고구려계, 백제계, 신라계 사람들이 가지고 간 새로운 문화가 그 곳 토착 사회를 자극하여 일본의 고대 국가를 성립시켰다. 그 중에서도 백제 문화의 영향이 가장 컸다. (중략) 한편, 고구려도 일본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79년판 교과서 44쪽)


 여기서 언급하는 교과서 인용에는 띄어쓰기 한 획 일 점도 고친 바 없는 원문 그대로이다. 서울대학 사범대를 뒤져보면 다 튀어나오는 교재이니 찾아보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 외의 주장인 신라의 처음 영토는 동부 만주라느니 하는 부분은 언급치 아니하겠다.

 여하간 잡론을 한참 하다가 드디어 안 박사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전략) 여기서 말씀드리기는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현재 우리의 역사가들은 대개 일본의 식민사관 이러한 허위의 식민사관을 배웠던 까닭에 오늘날 우리의 국정국사교과서를 완전히 일제 식민사관의 복사판을 만들어 두었읍니다. / 우리의 역사를 올바로 찾기 위하여선 우리는 우리의 옛이제(古今)의 책들은 물론이려니와 중국의 옛이제의 책들을 널리 또 깊이 연구하지 아니하면 아니됩니다.


 이러면서 동이(東夷) 글자에 대한 설명을 비롯하여 너무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니 위원장이 한 말씀을 올렸다.


 안호상박사님! 이 국사청원은 오늘로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공청회 기회가 있고 또 그때 진술할 기회가 또 있읍니다. 오늫 안박사님이 제일 먼저 나오신 것은 청원을 신청하신 분이기 때문에 국사교과서 내용의 시정될 그 부분을 중심으로 해서 어떻게 잘못되었다는 그 점만 오늘은 중점적으로 해주시고 그 뒤에 더 넓고 깊은 문제는 또 기회에 공술할 기회가 있을 것같습니다. 시간 제한도 있고 다음 공술할 분도 있고 해서 그 전문적인 분야는 다음 기회로 미루어 주시기 바랍니다. 교과서 중심으로 또 청원낸 중심으로 말씀을 해 주세요.


 그리하자 안 박사가 다시 공술을 시작한다.


 그러면 교과서중심으로 말씀드리겠읍니다. 1974년에 국정국사교과서를 낼 적에 단군의 역사와 연대표를 빼어 버렸읍니다. 그 때부터 우리는 이 국사교과서가 망국적이요 민족반역적이라고 떠들었더니 작년판과 금년판에는 서기 앞 2333년전에 단군 한배검이 고조선 임금이 되었다 해 놓고 교과서 글에는 오로지 단군신화만 기록했지 단군역사는 한 마디 말도 없읍니다. (중략)

 일제교육의 중독자와 공산주의의 광신자와 외래종교의 맹신자와 또 단군역사의 문외한을 빼고는 국 한문으로 단군역사를 쓴 큰 학자들이 많은데 그들의 이름을 대강 들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김교헌 어윤적 장도무 박은식 신채호 최남선 정인보 정렬모 안재홍 문일평 권덕규 박형표 최동 문정창 정명악 등입니다. (중략)

 1974년과 1977년의 국사교과서에선 고조선이 평양 대동강가에서 일어났으며 또 고조선의 문화중심지가 대동강가라 하였읍니다. (중. 국사 2, 9면:고. 국사 9면) (후략)


 여하간 이런 발언이 죽 이어지고 다시 한배검 단군 운운하다가 다음으로 당시 국편 최영희 위원장이 진술한다.


 지금 바로 전에 말씀해 주신 안박사님은 제가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또 가까운 사이고 어떤 회에 예컨대 무궁화회같은 데에서 제가 강연을 할 때에는 같이 들어 주시고 하는 분이었읍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제가 이렇게 서게 된 것은 저 개인으로는 몹시 서글프게 생각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이 모임이 또 이 공청회를 통해서 우리의 역사와 또 교과서가 올바르게 발전해 나가는 한 계기가 된다면 민족과 우리의 역사학을 위하여 참 좋은 일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읍니다. (중략)

 돌이켜 우리나라에 있어서 해방이후에 우리나라 국사학계를 간단히 저 나름대로 정리해 봤읍니다. 해방후 우리 국사학계가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새로운 발견이 많이 됐읍니다. 여기에는 고고학뿐만 아니라 고대사에서 최근세에 이르기까지 이제까지 우리가 몰랐던 많은 사료가 발견됐읍니다. 여기에는 일본제국주의자들에 의해서 감춰졌고 발표못한 것도 많지만 우리 스스로 새로운 것을 많이 찾아냈읍니다. (중략)

 이제까지 우리 국사학자들은 솔직이 말씀드려서 가난속에서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연구를 계속해 왔읍니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이러한 학자들이 식민사관의 앞잡이 내지 주류라고 규탄될 때는 저 스스로 부덕한 것을 느끼고 몹시 서글프기 한이 없읍니다. 지금 청원내용안에 “조선사”라는 것이 지금 나와 있읍니다. 그런게 이것이 그 “조선사”가 일제들에 의해서 식민사관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관념적인 조선사 같기도 하나 여러 가지 책을 읽어보면 그런 것이 아니라 일본의 조선총독부가 만들어낸 “조선사”로 알고 있읍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조선사” 특히 고대사 부분을 이 책을 인용해서 연구하는 학자는 한사람도 없다고 봅니다. 우리는 이미 원전 즉 중국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의 새로운 원전을 자꾸 끄집어내고 새롭게 해석해 나가고 있읍니다. (중략) 이미 중국의 원전에서 잘못된 것 예컨대 일본서기나 일본의 고사기에서 잘못된 것을 우리는 시정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우리 학문하는 사람들은 자기 스승의 학설을 뒤집고 또 시정해 나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가르친 이세의 역사학도들은 또 그렇게 저희들의 학설을 시정해 나가게 될 것이고 또 그렇게 돼야만 새로운 학문이 이루어질 줄로 압니다.

 여기에 청원서에 제3에 구체적인 지금 안선생님 말씀하신 대로 국사상의 사실과 현행 국사교과서에 잘못된 내용이라는 것이 있읍니다. 한데 여기에 페이지수가 잘못되어 있읍니다. 이 교과서에 페이지수가 왜 잘못되어 있느냐하면 이것은 현행 교과서가 아닙니다. (후략)



 여하간 이런 후에 드디어 이른바 민족사학계에서 서울대 박시인 교수가 나온다.


 (전략) 일제치하에 저들이 조작한 조선사라는 것을 전공한 분들이 국사학교수가 그 조선사를 편찬할 때에 가담했던 분들이 국사편찬위원장도 되고 그 분들이 쓴 국사교과서를 검인정교과서로서 문교부가 인정해서 사용해 왔읍니다. 그러한 결과 국민들은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을 불행하게 생각하고 일본을 숭상하고 미국사람을 좋아하고 북한에서는 소련을 좋아하는 경향이 나타났읍니다.

 그러므로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작고하신 박대통령께서는 여러번 교육대회에 나가셔서 국적있는 교육을 해달라고 역설하였읍니다.

 그러나 국사교과서가 일제식민사관을 그대로 담고 있으므로 효과가 없기 때문에 드디어 68년 12월 5일에 국민교육헌장을 반포했읍니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상부상조 협동해서 새 역사를 이룩하자고 하지만 협동하지 않는 기풍과 반정부적인 언동이 계속돼 왔읍니다.(중략)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왜 교과서에다가 싣습니까? 우리 조상은 곰을 여자로 변하게 하고 그와 혼인했다고 하였으니 국민학교 교실이 얼마나 떠들겠읍니까? 웃음판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실어서는 아니됩니다. 이 이야기는 단군은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의 아들 천자라는 뜻입니다.(중략)

 태조성은 이씨요 휘는 旦이고 자는 尹晉, 즉 임금이 앞으로 전진한다는 뜻입니다. 이성계라고 하는 것은 일본사람들이 한 말을 지금도 그대로 입버릇처럼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태조대왕은 旦, 지평선 혹은 동해 지평선에 아침해가 떠올라 오는 때이고 나라이름은 조선국호와 태조의 이름이 딱 맞습니다. sunrise, morning bright에는 사대주의가 없읍니다. 대주의라는 국책은 있을 수 없습니다. (중략) 문제가 있으면 씨족회의에서 결정했다고 한 것은 인민대회나 인민재판을 한 것으로 해석될 가능성을 제공한 것입니다.


 아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이야기나 쓰려니 잼이 없어서 못쓰겠다. 궁금하면 그냥 공청회 회의록을 보아라 다음이다.

1차 회의록 / 2차 회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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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들꽃향기
    2009.09.19 18:48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훌륭한 글 잘 읽고 갑니다.

    특히 일전에 올리신 중편에서는 오히려 소위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이라는 것이 당시 '국풍 81' 등을 중심으로 민족정기를 운운하던 민정당세력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하던...막연한 추측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출처를 밝히고 퍼가려 합니다만, 허가를 먼저 구한 후 시행하려 하오니 양해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1. Re: Favicon of http://www.7t7l.pe.kr BlogIcon 김천어
      2009.09.19 19:41 신고 삭제 주소

      졸문에 호평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다만 어디로 퍼가시는건지 모르겠어서요..;

    2. Re: 들꽃향기
      2009.09.19 20:08 신고 삭제 주소

      네이버 부흥카페라는 역사관련 카페입니다. ^^;

    3. Re: Favicon of http://www.7t7l.pe.kr BlogIcon 김천어
      2009.09.20 14:01 신고 삭제 주소

      출처만 밝혀주시면 괜찮겠습니다만, 전문게재는 삼가주시길 바랍니다.

  2. Favicon of http://hyunru.tistory.com BlogIcon 현루
    2009.09.29 21:00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2차 회의록이 깨져서 내려 받을 수 없습니다 !

    1. Re: Favicon of http://www.7t7l.pe.kr BlogIcon 김천어
      2009.09.29 23:44 신고 삭제 주소

      그거 수정하니까 각주가 깨졌네요, 등신같은 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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