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평석이라는 것을 판례에 붙여야 하겠으나, 능력이 미치지 못하므로 부언을 몇자 적어둔다. 쇼와 45년도(1970년)부터 쇼와 48년도(1973년)에 걸친 이 사건과 동일하게, 이 시기는 일본 최고재에 있어서 매우 흥미로운 시대로, 재판장이자 재판관인 이시다 가즈토(石田和外)라는 장관의 시대에는 이른바 사법행정의 반동화로 불리는 최고재 사무총국을 거점으로 하는 사법관료를 중심으로 정치성 있는 사건은 집권당이었던 자유민주당의 성향에 적합하게 판결을 내리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각주: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는 일부 친노동조합적 성향을 갖는 판결이 나타나면서 이른바 최고재가 두 얼굴을 가진 시기라고 평가되기도 했다. 참고로 유일하게 반대의견을 낸 시모다 다케조(下田武三)는 외교관 출신으로, 판결 1년 전의 최고재판소재판관국민심사에서 불신임률 15.71퍼센트를 얻어 역대 최고를 기록한 바 있다. 물론 이 판결과 관계는 전혀 없다.

판결과 전혀 관계없는 소개를 더 하자면 일반의견과 달리 존속살인에 대한 특별규정 자체가 위헌이라는 의견을 낸 다나카 지로(田中二郎)는 2차대전 이전부터 1960년대까지 행정법학자로 활발하게 활동하였으며, 기본적인 법전을 갖지 않는 행정법에 있어서 미노베 다쓰키치 교수가 수립했던 자유주의적 행정법 이론을 계승 및 발전하여 행정법에서의 통칙적 역할을 맡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이 판결에 있어서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고 하면 문언상의 문제도 있겠으나, 한국에 있어서 이러한 판결이 나온 1973년을 돌아볼 때에 무려 3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큰 논의가 없었다는 점이다. 1973년을 즈음하여 일부 학자들이 일본의 판결에 영향을 받아 잠깐 논의하기는 하였으나, 이후의 연구는 거의 산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또한 그 합헌과 위헌을 논하는 점에 있어서도 검토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리고 합헌이라는 견해가 거의 통설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다는 점에 대하여도 아쉬운 점이 많다. 이 점이 해당 판결문의 전문을 번역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이기도 하다.

  1. 이에 대하여는 하세가와 마사야스(長谷川正安), 『일본의 헌법』(제3판), 이와나미 쇼텐, 1994년. 최은봉이 한국어로 소개한 바 있다. 자세한 것은 『일본의 헌법』(최은봉 옮김,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13, 소화출판사).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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