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24 17:17, 김천어 근서

아시베 노부요시(芦部信喜, 1923년 9월 17일 ~ 1999년 6월 12일)은 일본 나가노 현 고마가네(駒ヶ根) 시 출신의 헌법학자이다. 1990년에 일본학사원 회원이 되었고, 1993년에 문화공로자가 되었다. 1986년부터 1992년까지 일본공법학회 이사장으로 있었으며, 전국헌법연구회 대표와 국제인권법학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대표적인 저작 『헌법』(憲法, 이와나미쇼텐)은 스테디셀러이기도 하다.


생애

구제 이나중학교(伊那中学校, 현 나가노현 이나기타 고등학교(長野県伊那北高等学校))와 구제 마쓰모토고등학교(松本高等学校, 지금의 신슈대학 문리학부이다.)를 거쳐 1943년 10월에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구 일본군 이등병과 소위 등을 거쳐 1946년에 복학, 1949년에 졸업했다. 1962년에 「헌법제정권력의 연구」(憲法制定権力の研究)로 법학박사(도쿄대) 학위를 취득했다.

1949년 도쿄대학 법학부 조수(미야자와 도시요시(宮沢俊義) 아래에서 헌법을 전공), 1952년 동 대학 조교수를 거쳐 하버드 대학 로스쿨로 유학을 다녀온 뒤인 1963년에 도쿄대학 법학부 교수가 되었다. 1980년에 법학부장을 거쳐 1984년에 정년퇴임하여 명예교수가 되었으며, 1984년에 가쿠슈인대학(学習院大学) 교수와 1994년에 방송대학 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아사히신문사 지면심의회 회장으로 있었으며, 규슈대학, 나고야대학, 교토대학, 홋카이도대학의 대학원 등에서도 교편을 잡았다. 법제심의회 위원, 종교법인심의회 회장, 전파감리심의회 회장 등도 역임했다.

나카소네(中曽根) 정권에서 야스쿠니 간담회의 멤버였으며, 당시에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합헌이라고 하여 야스쿠니 간담회의 다수의견에 대하여 소수의견을 표명했다.

1999년에 도쿄대학병원에서 간부전으로 별세했다. 향년 75세.

아시베는 전전(戰前)의 통설적 견해이자 스승인 미야자와의 학설을 계승한 뒤, 미국의 헌법학과 판례를 선구적으로 도입하여 전후(戰後)의 헌법학계에서의 학설논의를 리드하고, 그 발전에 기여하였다.


아시베의 헌법학론[각주:1]

아시베는 헌법학은 「대단히 범위가 넓은 학문」으로, 행정법이나 형법 등의 인접과목이나 역사학·정치학·경제학·사회학 등의 인접과학과 관계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헌법학 자체도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① 헌법의 일반이론의 고찰이나 헌법의 정형적 비교를 시험하는 일반헌법학·비교헌법학(이른바 국법학)
 ② 개별국가의 헌법이나 헌법상의 특수한 제도를 대상으로 하는 개별헌법학·특수헌법학

그리고 개별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헌법학에서도 그 방법으로서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있다.

 ⓐ 가치판단을 포함한 실천적 작용인 헌법해석학
 ⓑ 헌법동태(실태)의 분석을 행하는 헌법사회학
 ⓒ 헌법이나 그 사상·이론을 역사적으로 탐구하는 헌법사학(학설사, 이론사, 사상사 등을 포함)
 ⓓ 입법정책을 대상으로 하는 헌법정책학

그리고 위의 ⓐ부터 ⓓ까지의 방법도 별도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헌법해석학)와 ⓑ·ⓒ·ⓓ와의 관계는 과학(인식)과 해석(실천)의 관계의 문제라고 한다. 아시베는 「법의 과학과 해석은 독립한 가치를 가지고 서로 다른 것에 종속하는 것은 아니다. 상호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미야자와의 이론을 따른 것이다.

객관적 인식의 작용인 「법의 과학」과 주관적 의욕의 작용인 「법의 해석」의 문제는 이른바 미야자와설(宮沢說)이라고도 불리는데, 미야자와 도시요시(宮沢俊義)는 「법의 해석을 행하는 것은 그 전제로서 현행법을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으나, 그를 인식하기 위하여는 과거의 실정법이나 외국의 실정법을 알 필요가 있으므로 현행법학·법사학·비교법학 등의 법의 과학이 당연히 요청되어, 해석자(실천인)는 법의과학의 추구를 게을리 하지 않고, 다른 한편으로 법은 모두 종국적으로는 구체적·개별적으로 실현되는(적용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법의 과학자는 반드시 법의 해석 또한 연구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하였다.

아시베도 「일응 학문의 방법론으로서 헌법해석과 헌법과학이라는 두가지 방법이 있지만, 헌법해석은 항상 헌법과학을 항상 헌법과학을 무시하여 행하여 질 수는 없으며, 헌법과학도 과학이라는 틀에서 독립하지 않고 반드시 인간의 사회에 구체화되어 그 의미가 발휘되는 것이므로, 구체적 사실을 바르게 인식하여 그에 맞추어 이른바 그를 규범의 테두리에 있다는 틀에서 해석이라는 것을 행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며, 「그러한 의미에서 헌법해석학이라는 것은 결코 헌법과학과는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없다. 헌법해석학이 헌법사회학·헌법사학·헌법정책학과 밀접히 관계하고 있다고 앞에서 이야기한 바는 그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또한 「이 경우에 양자는 결코 각자 개별적으로 독립한 문제가 아니라 밀접히 관계가 있다고 한 것에 주의하기 바란다. 그리고 교과서 등을 읽어가는 경우에 어디까지가 객관적인 사실이란 것인지를 알고, 교과서에서 판례의 해설이 어느정도의 해석을 하고 있는지를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바는 해석이 과학인가와 같이 「이것이 유일절대의 바른 객관적인 규범의 의미」라고 이야기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아시베의 학설

먼저 헌법이 역사의 소산이라고 하는 전제에서 시민혁명을 거쳐 발전해 온 근대헌법은 무엇보다도 “자유의 기초법”이라는 점에 특질이 있고, “개인의 존중원리”와 그에 기초한 체계를 근본규범으로 하는 가치질서라고 한다. 그러한 입장에서 헌법은 국법질서에 있어서 가장 강한 형식적 효력을 가지는 “최고법규”이며,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제한규범”이기도 하지만[각주:2], 근대헌법을 지탱하는 고전적인 입헌주의의 사상은 현대에 있어서는 사회국가·복지국가의 사상과 양립하여 민주주의와도 밀접하게 결합하는 등 변용하고 있다고 한다.[각주:3] 그리고 일본국헌법의 제정과정에는 역사상 다양한 정치적 요인이 개입하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나, 결국에는 국민 스스로 헌법제정권력을 발동하여 제정한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는 미야자와의 “8월 혁명설”을 지지하여[각주:4], 그 결과 앞의 특질을 모두 갖춘 일본국헌법이 제정되었다고 본다.

다음으로 인권도 헌법과 같이 역사의 소산이라고 하는 전제에서 앞에서 이야기한 일본국헌법의 제정과정이나 인권선언의 역사에 비추어보면 일본국헌법은 메이지헌법 하의 외형적 인권선언과 달리 자유권뿐만 아니라 사회권도 함께 “인간의 존엄성의 원리”에 바탕하여 고유성·불가침성·보편성을 가진 자연권으로서 보장하고 있다고 한다[각주:5]. 인권을 “공공의 복지”에 반하지 않는 한에서 보장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하여는 자유국가적 공공의 복지와 사회국가적 공공의 복지의 두 가지 측면이 있다는 “내재적 제약설”을 취하여, 미야자와설을 기본적으로 계승하면서도 미야자와가 그 내용은 많은 부분 판례가 축적되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고 하던 것에 대하여는 구체적인 권리의 제약범위를 확정할 수 없다고 비판한 뒤, 기본적 인권의 제약범위를 결정하는 “위헌심사기준”으로 미국에서 카로리누 판결에서 제창된 경제적 자유에 비하여 정신적 자유의 우위성을 인정하는 “이중의 기준설”을 채용할 것을 주장하였다[각주:6]. 그리고 이중의 기준론의 근거로 대표민주제라는 통치시스템을 취하는 제도 하에서는 정신적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면 민주정의 과정에 있어서 의회에서 시정할 수 있다는 것을 중시하고, 통치기구와 인권을 이론적으로 가교하는 길을 열어 구체적인 소송에서 인권보장의 목적을 생각하는 “헌법소송론”을 전개하였다.

또한 “국회는 전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에 의하여 조직된다”고 하는 것의 의미에 대하여 미야자와는 ‘대표’라는 것은 법적인 의미가 아니라 국회의 의사가 국민의 의사라고 간주된다고 하는 “정치학적 대표”를 의미한다고 하였으나, 아시베는 미야자와설을 기본적으로는 계승하면서도 그것이 국회와 국민의 의사가 일치하지 않는 현실을 덮으려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가지고, 보다 민의를 반영하도록 하는 선거제도를 개정하는 운동을 방해하여 왔다고 비판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경제적 발전과 함께 사회구조가 복잡화하고, 국민의 가치관이 다원화되고 있는 역사에 비추어 보면, ‘대표’라는 것은 국회와 국민의 의사가 사실상 일치하거나 적어도 유사하여야 한다는 헌법상의 요청이 있다고 하는 “사회학적 대표”를 의미한다고 하고, 국민의 의사를 공평하고도 충실하게 국회에 반영하는 선거제도를 제정하는 것이 헌법상의 요청이라고 한다[각주:7].

그리고 내각에 속하는 ‘행정권’의 의미에 대하여 국가작용의 분화의 역사에서 보면 모든 국가작용으로부터 입법작용과 사법작용을 제하고 남은 작용이라고 하는 ‘행정공제설’이 타당하다고 하고[각주:8], 의원내각제의 본질에 있어서도 그것이 영국 헌정사에 있어서 자연발생적으로 생성한 정치형태라고 하면서 의원내각제를 일본국헌법이 채용한 역사에 비추어보면, 의회와 정부가 일응 분열하여 정부가 의회에 대하여 연대책임을 진다고 하는 점이 그 본질이며, 정부가 의회의 해산권을 가질 수는 없다는 “책임본질설”을 취한다[각주:9]

또한 재판소에 속하는 사법권의 개념 자체는 역사적인 것이며 이론적으로 정할 수는 없다고 하며, 재판소의 판단인 판례(判例)에는 일정한 “법창조기능”이 인정되며, 일정한 정책형성기능도 갖는다고 한다[각주:10]. 아시베에 따르면 고전적인 입헌주의는 현대에서는 민주주의와 모순하지 않도록 변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위헌심사제는 미국 역사상 헌법의 최고규범성을 보장하는 수단으로서 확립된 제도로 인권보장의 수단이며, 또한 인권에는 대표민주제와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도 있으므로, 재판소가 위헌심사권을 행사하는 것은 민주주의원리와는 아무런 모순이 있는 것이 아니며, 현대에서는 재판소가 일정한 공공정책을 형성하는 것이 기대된다고 한다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위헌심사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안될 것도 있다고 한다.[각주:11]


주요 저서

『헌법과 의회정』(憲法と議会政, 도쿄대학출판회, 1971년)
『헌법소송의 이론』(憲法訴訟の理論, 유히카쿠, 1973년)
『현대인권론』(現代人権論, 유히카쿠, 1974년)
『헌법소송의 현대적 전개』(憲法訴訟の現代的展開, 유히카쿠, 1981년)
『헌법제정권력』(憲法制定権力, 도쿄대학출판회, 1983년)
『사법의 방향과 인권』(司法のあり方と人権, 도쿄대학출판회, 1983년)
『헌법의 논점 Ⅰ~Ⅲ』(憲法の焦点Ⅰ~Ⅲ, 유히카쿠리브레, 1984년~1985년)
『국가와 법 Ⅰ』(国家と法Ⅰ, 방송대학교육진흥회, 1985년)
『헌법판례를 읽다』(憲法判例を読む, 이와나미쇼텐, 1987년)
『헌법학 Ⅰ~Ⅲ』(憲法学Ⅰ~Ⅲ, 유히카쿠, 1992~1998년)
『헌법』(憲法, 이와나미쇼텐, 초판 1993년 - 신판 1997년 - 신판보정판 1999년 - 제3판 2002년 - 제4판 2007년)
『인권과 헌법소송』(人権と憲法訴訟, 유히카쿠, 1994년)
『인권과 의회정』(人権と議会政, 유히카쿠, 1996년)
『종교·인권·헌법학』(宗教·人権·憲法学, 유히카쿠, 1999년)
  1. 다카미 가쓰토시<FONT color=#8e8e8e>(高見勝利)</FONT>, 『아시베 헌법학을 읽다 - 통치기구론』<FONT color=#8e8e8e>(芦部憲法学を読む~統治機構論~)</FONT>, 유히카쿠, 2004년. [본문으로]
  2. 아시베 노부요시, 『헌법 [초판]』, 이와나미쇼텐, 1993년, 4~12쪽. [본문으로]
  3. 아시베 노부요시, 전게서, 13~17쪽. [본문으로]
  4. 아시베 노부요시, 전게서, 27~31쪽. [본문으로]
  5. 아시베 노부요시, 전게서, 71~74쪽. [본문으로]
  6. 아시베 노부요시, 『헌법소송의 현대적 전개』, 유히카쿠, 1981년, 68쪽. [본문으로]
  7. 아시베 노부요시, 『헌법 [초판]』, 이와나미쇼텐, 1993년, 218쪽. [본문으로]
  8. 아시베 노부요시, 전게서, 242쪽. [본문으로]
  9. 아시베 노부요시, 전게서, 249쪽. [본문으로]
  10. 아시베 노부요시, 전게서, 255쪽. [본문으로]
  11. 아시베 노부요시, 『헌법의 초점Ⅱ』, 유히카쿠 리브레, 1984년, 10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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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7.31 23:59 삭제 겹댓글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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