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 고지(佐藤幸治, 1937년 6월 9일 ~ )는 일본의 헌법학자로, 교토대학 명예교수이다. 1990년에 교토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학위논문은 「현대국가와 사법권」이다. 니가타 현 니가타 시 출신으로, 지도교수는 오오이시 요시오(大石義雄)다.

니가타 현립 니가타 고등학교를 거쳐 교토대학 법학부에 입학. 1961년에 졸업한 후에 스이토모 은행(住友銀行)에 입사한다. 1년후에 퇴사한 후 다시 학문의 길을 선택해 교토대학 조수, 조교수를 거쳐 1975년부터 교토대학 교수를 지냈다. 2001년에 긴키대학(近畿大学) 법학부 교수를 거쳐 2004년부터 긴키 대학 법과대학원 교수로 있다. 교토대학에 이름이 같은 교수가 있으나, 심리학자다.

사토가 지은 책 『헌법』(憲法)은 사법시험의 바이블적인 존재였다. 사토는 사법시험위원을 지냈고, 헌법소송에 대한 명확한 기술과 내용적으로 이전의 교토대학계열의 책에 비해 도쿄대학과의 차이가 적어 기존의 기본서에서 갈아타기 쉬웠던 점이 원인으로 나타난다. 이와나미쇼텐에서 아시베 노부요시가 지은 헌법이 나오면서 사법시험의 바이블적 존재에서는 벗어났지만, 이후에도 외교관시험(외무공무원채용 1종시험. 2002년에 폐지)의 바이블로 여겨졌다.

사토 학설의 특징은 이하에 기술한 겻처럼 결론에 있어서 아시베로 대표되는 통설적 견해와 크게 다르지는 않으나, 그 결론으로 가는 이론적 구성이 독자적이라고 하는 점에 있다.

사토는 통설이 역사를 헌법이론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기피하고, 지성만이 절대적이라고 하면서[각주:1] 실제로 살아있는 인간의 의식과 현실의 일상생활을 기초로 하는 개인주의적·현상학적·실존주의적인 입장에 서서[각주:2] 후술하는 도덕원리에 의하여 처음으로 인권의 근거의 기초를 확고히 할 수 있다고 하여 전체적으로 관념론적·법실증주의적 이론을 전개한다. 이로 인하여 내용이 마치 관념론적인 양상을 나타내면서 사토의 이론에 대하여 난해하다는 지적을 받은 원인이 특유한 체계적 구성 또는 표현방법의 영향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각주:3].

인권에 대하여는 인격적 자율의 존재로서 자기를 주장하여 그러한 존재로 계속하는 동시에 불가결한 도덕적 권리라고 하여 통설적 견해인 인격적 이익설을 취하고 있으나[각주:4], 그 근거에 관하여는 독자적인 견해를 주장하여 Alan Gewirth의 변증법적으로 필연적인 접근에 의거하여 도덕적인 권리인 인권을 정치적·법적 질서가 보호하는 것이 유형적 정합성이라고 하는 최고의 도덕적 원리에 의하여 정당화된다고 한다[각주:5]. 그러한 사상은 초실체법적 성질을 가지고 자연권론과는 비슷하지만 다른 자연권사상이라고 한다[각주:6].

일본국헌법의 성립 및 정통성에 대하여는 미야자와 도시요시의 8월 혁명설도, 사사키 소이치가 주장하는 강압에 의한 제정론도 법을 넘어선 실력이 전제가 되는 것으로 모두 부정하고 있다[각주:7]. 사토에 따르면 이러한 실력을 이론으로 가져와 헌법을 법의 세계에서 추방하고, 정치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은 허용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각주:8].

국민주권에 대하여는 아시베가 헌법을 제정하고 지탱하는 권위가 국민에게 있다고 하는 「정당화의 계기」와 국민이 대표자를 통하여 권력을 행사한다고 하는 「권력적 계기」라고 하는 두 가지의 측면이 있으며, 국회의원의 소환제도는 헌법상 금지되어 있으나, 「권력적 계기」에 의하여 통치제도의 민주화의 요청을 포함한다고 하는 것을 결론에 있어서는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사토는 권력이라는 개념을 기피하고, 「정당성의 계기」를 「정당성의 원리」로, 「권력적 계기」를 「실정헌법상의 구성원리」(통치제도의 민주화, 공개토론의 장의 확보의 요청)라고 해석하고 있다.[각주:9] 「실정헌법상의 구성원리」의 근거는 앞의 Alan Gewirth가 인권을 정치적·법적 질서가 보호하는 것이 정당화되어 (현재의 행위주체만이 아니라) 장래의 행위주체의 존엄과 이성적 자율을 위하여는 각 행위주체가 시민적 자유를 갖는 것이 요구되는 것과 평행하고 있다고 한다[각주:10].

국회가 「최고기관」이라고 하는 것의 의의에 대하여는 단순히 정치적 미칭으로 해석하여서는 안되며, 법적인 의미가 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비판하며 통괄기관설을 취하여 권한불명의 권능은 국회에 소속한다고 추정된다고 한다[각주:11]. 그러나 정치적 미칭설도 국회가 「전 국민의 대표」라고 하는 것에서 권한불명의 권능은 국회에 소속한다고 추정된다고 하므로 양설의 결론은 크게 다르지 않다.

행정권의 의의에 대하여는 행정공제설(行政控除說)을 행정권의 내용·특질이 불명확한 것이라고 비판하면서도, 다나카 지로(田中二郎)에 의한 적극적 정의에도 난점이 있다고 하며, 행정공제설의 소극적 정의를 전제로 하면서도 법원리기관으로서 사후적·수동적인 성격을 가진 재판소와도, 회기제를 취하는 국회와도 다른 국가의 종합적인 정책에서 배려하는 기관이라는 점에 특질이 있다고 한다[각주:12]. 또한 의원내각제의 본질에 대하여는 아시베가 영국의 역사를 이유로 책임본질을 지적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당시의 영국에 있어서 양대 정당제와 엄격한 당의(黨議) 구속이 배경으로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의원내각제가 권력분립의 일환인 이상 균형본질설이 타당하다고 한다[각주:13].

재판소에 대하여는 의회나 내각과 같은 능동적·적극적인 활동이 기대되는 「정치부문」과는 달리, 법에 의한 통치의 실현이 기대되는 수동적인 「법원리기관」이라고 한다. 위헌심사제에 대하여는 판례나 통설은 사법권의 개념은 역사적인 것으로서 이론적으로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명문의 규정으로 「사건성」을 요건으로 하는 미국의 헌법에 근거한 사법권의 개념을 일본국헌법이 계수(繼受)하였다는 것을 이유로, 일본국헌법 76조 1항이 정하는 「사법권」이라고 하는 것은 사건성을 요건으로 하며, 구체적인 분쟁을 전제로 하지 않고 법령의 합헌성을 판단하는 재판권을 행사하는 추상적 심사제는 법개정에 의하여 채용할 수 없다고 하지만, 사토는 판례나 통설이 이야기하는 결론에는 찬성하면서도, 이러한 역사에 따른 설명은 불충분하다고 비판하며 「사법권」의 개념은 구체적인 사건을 전제로 당사자에 의하여 소송이 제기된 것을 계기로 공평한 재판소가 당사자의 주장 및 입증에 근거하여 법을 적용하여 결정하는 법원리적인 과정을 가지는 점에 본질이 있고, 사건성의 요건은 재판소가 법원리기관이라고 하는 것에서 도출되는 이론적인 요청이라고 한다.[각주:14]


사토와 법과대학원(로스쿨) 제도의 도입

사토는 헌법이라고 하는 학문의 성질상 다양한 비판을 받으면서도 연구자 또는 인간으로서 공격받는 것을 각오하고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지만[각주:15], 그 가운데에서도 많은 비판을 감수하면서 다카하시 히로시(高橋宏志)와 함께 법조양성과정에 「법과대학원」(일본판 로스쿨) 제도 도입을 추진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법과대학원 제도 도입의 근본에 사법시험 수험생의 「예비교[각주:16] 통과」라는 비판을 두고 그 선봉에 서면서 “(예비교가) 실제로 어떠한 실정에 있는가 하는 것은 저는 상세하지는 않으나 저와 관계된 학생이나 여러 가지 것을 통하여 어떠한 교육이 되는가 하는 것은 어느 정도는 저 개인으로서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또한 사토는 당시 회장을 맡고 있던 사법제도개혁심의회의 답신에 있어서 대학과 수험예비교(법과대학원을 말한다.)의 더블스쿨화가 법조(法曹)의 자질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고 하였으나, 이 답신에 대하여 국회법무위원회에 있던 민주당의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가 질문을 했다. 이 질문에 대하여 사토는 1번의 시험으로 결론을 짓는 시험만능주의에는 한계가 있으며, 프로세스를 중시하는 교육을 하여야 한다고 답변했으나 에다노는 “사토 선생님과 같은 분이 질문에 정직하게 바로 답해주시지 않으므로 곤란한 것입니다.”라고 한 뒤 대학의 수업보다 예비교의 수업쪽이 수험기술뿐만 아니라 법학의 기본을 이해시키는 점에서 질이 좋다는 것부터 더블스쿨화가 나타난 「현실과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비교의 실태를 파악하지도 않고, 단순히 관념적으로 「있어야 할 이야기」에 근거하여 대학관계자만으로 법조양성제도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기 때문에 답신은 절차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이상한 것이 아닌가하고 반론하였다.[각주:17]


주요 저서로 『헌법』(세이린쇼인, 1981년), 『헌법소송과 사법권』(憲法訴訟と司法権, 닛폰효론샤(日本評論社), 1984년), 『현대국가와 사법권』(現代国家と司法権, 유히카쿠, 1988년), 『요설 코멘타르 일본국헌법』(要説コメンタール 日本国憲法, 산세이도(三省堂), 1991년), 『현대국가와 종교단체』(現代国家と宗教団体, 이와나미쇼텐, 1992년), 『국가와 인권』(国家と人間, 방송대학교육진흥회, 1997년), 『일본국헌법과 「법의 지배」』(日本国憲法と「法の支配」, 유히카쿠, 2002년), 『헌법과 그 “이야기”성』(憲法とその“物語”性, 유히카쿠, 2003년), 『현대국가와 인권』(現代国家と人権, 유히카쿠, 2008년) 등이 있으며, 문하생으로 마쓰이 시게노리(松井茂記, 오사카대학 대학원 고등사법연구과 교수), 이치카와 마사토(市川正人, 리쓰메이칸대학 법과대학원 법무연구과 교수) 등이 있다.
  1. 사토 고지, 『헌법』<FONT color=#8e8e8e>(憲法, 초판)</FONT>, 세이린쇼인<FONT color=#8e8e8e>(青林書院)</FONT>, 1981년, 머리말 2쪽. [본문으로]
  2. 전게서, 머리말 2쪽. [본문으로]
  3. 전게서, 머리말 1쪽. [본문으로]
  4. 전게서, 360쪽. [본문으로]
  5. 별책 쥬리스트<FONT color=#8e8e8e>(ジュリスト)</FONT> 『헌법과 헌법원리』<FONT color=#8e8e8e>(憲法と憲法原理)</FONT> 수록 「인권의 관념」<FONT color=#8e8e8e>(人権の観念)</FONT>, 유히카쿠<FONT color=#8e8e8e>(有斐閣)</FONT>, 145~157쪽. [본문으로]
  6. 사토 고지, 『헌법』<FONT color=#8e8e8e>(憲法, 초판)</FONT>, 세이린쇼인<FONT color=#8e8e8e>(青林書院)</FONT>, 1981년, 37~39쪽 및 358쪽. [본문으로]
  7. 전게서, 71 ~ 74쪽. [본문으로]
  8. 전게서, 90쪽 및 91쪽. [본문으로]
  9. 전게서, 94 ~ 96쪽. [본문으로]
  10. 별책 쥬리스트<FONT color=#8e8e8e>(ジュリスト)</FONT> 『헌법과 헌법원리』<FONT color=#8e8e8e>(憲法と憲法原理)</FONT> 수록 「인권의 관념」<FONT color=#8e8e8e>(人権の観念)</FONT>, 유히카쿠<FONT color=#8e8e8e>(有斐閣)</FONT>, 145 ~ 157쪽. [본문으로]
  11. 사토 고지, 『헌법』<FONT color=#8e8e8e>(憲法, 초판)</FONT>, 세이린쇼인<FONT color=#8e8e8e>(青林書院)</FONT>, 1981년, 129쪽. [본문으로]
  12. 전게서, 191쪽. [본문으로]
  13. 전게서, 189쪽. [본문으로]
  14. 전게서, 265~273쪽. [본문으로]
  15. 사토 고지·다나카 시게아키<FONT color=#8e8e8e>(田中成明)</FONT> 공저, 『현대법의 초점』<FONT color=#8e8e8e>(現代法の焦点)</FONT>, 유히카쿠 리브레, 1987년, 14쪽. [본문으로]
  16. 일본 법과대학원 제도 도입에서도 한국의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와 같이 법과대학원이 변호사시험 준비를 위한 통과기관으로 전락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본문으로]
  17. 2001년<FONT color=#8e8e8e>(헤이세이 13년)</FONT> 6월 20일의 <A href="http://www.shugiin.go.jp/itdb_kaigiroku.nsf/html/kaigiroku/000415120010620020.htm" target=_blank>제151회 국회 법무위원회에서의 답변</A>.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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