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18 07:35, 김천어 근서

일본 민주당 세력도
 민주당은 정책이나 출신 정당(민주당 이전), 지지 기반 등에 따라 형성된 여러 당내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민당의 당내 집단(파벌)의 경우 ‘○○ 파’라고 불리지만, 민주당의 당내 집단은 보통 ‘○○ 그룹’이라고 불린다. 그 가운데 구 사회당 계열 의원은 구 총평(総評·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의 색깔이 강하고, 구 민사당 계열 의원은 구 동맹(同盟·전일본노동총동맹)의 색깔이 강하다. 그리고 구 자유당 계열 의원은 오자와 이치로小沢一郎의 영향이 강한데, 앞의 세 계열과 함께 간 나오토菅直人 그룹까지 4개 그룹은 비교적 결속력이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자민당의 경우와 달리, 민주당의 당내 집단은 결속력을 통해 당의 요직을 노리는 활동, 혹은 집단의 리더가 소속한 멤버를 뒷받침하는 등의 양상이 거의 없다. 이로 인해 많은 그룹이 상명하복식의 의견 통일이 어렵고, 당 대표 선거에서도 여론에 따라 정책이나 인물을 개인이 파악하고 투표하는 의원이 많다. “어느 파의 생각이 시류에 따르고 있는지에 의하여 지지를 정하는, 중간파가 대다수”라는 견해도 있다. 단 제45회 중의원 총선거(2009)에서는 오자와 계열 의원들이 다수 당선되었고(오자와 칠드런), 민주당이 여당이 되고난 후에는 파벌의 양상도 조금씩 변화한다는 가능성도 지적되고 있다.

 이른바 ‘고바토 체제’(小鳩体制: 하토야마는 총리로 정부를 주도하고, 오자와는 간사장으로 당과 국회 운영을 주도하는 체제. 두 사람의 머릿글자를 땀.)라고 불리던 하토야마 정권 초기에는, 당의 실권을 장악한 오자와 이치로와 협조하는 오자와 그룹, 하토야마鳩山 그룹, 요코미치横路 그룹, 가와바타川端 그룹, 하타羽田 그룹이 주류였고, 오자와와 거리를 두던 마에하라前原 그룹, 노다野田 그룹이 비주류, 양측과 미묘하게 떨어져 있던 간그룹이 중간파였다고 한다. 그러나 민주당 내의 집단은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결속력이 약하고, 무소속이나 복수 소속 의원도 상당수 존재하기 때문에, 집단 단위로 주류·비주류를 구분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오자와 그룹
 구 자유당 그룹·일신회一新会·일신구락부一新俱楽部·오자와 이치로 정치숙政治塾 출신 등 - 오자와 이치로小沢一郎

 초기에는 구 자유당 계열 의원뿐이었으나, 민주당과의 합병 후 ‘당내 당’은 피하자는 취지에서 별도의 모임은 크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2004년, 당시 초선·재선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오자와 중심의 학습회인 ‘일신회’가 발족함과 함께 이후 서서히 모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낙선자나 후보자를 대상으로 하는 ‘일신구락부’가 2005년 가을에 출범·합류하고, 2001년부터 지속된 ‘오자와 이치로 정치숙’ 출신자 등이 합류해 서서히 세력을 확대하였다. 제21회 참의원 통상선거(2007)에서 대거 당선된 초선의원이 합류하면서 당내 최대의 집단으로 성장하였다.

 그 외에도 2007년 참의원 선거와 2009년 중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초선 의원은 대부분 오자와의 영향력 아래에 있어, 언론에서 흔히 ‘오자와 칠드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단순히 오자와 개인과의 관계로 엮인 일정한 영역을 편의상 오자와 그룹이라고 부르는 것일 뿐, 구 자유당 계열 이외에는 와타나베 히데오渡辺秀央나 오에 야스히로大江康弘 등이 오자와와 대립하면서 탈당하기도 하는 등, 실제로 정책적인 결속이나 통일적 조직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또한 일신회의 경우 다른 집단에 참여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정책적으로는 우파·신자유주의적인 성향이 있었지만, 오자와의 정책 변화와 구성원의 확대 등으로 인해 그러한 경향이 옅어지고 있다. 오자와처럼 정책보다 선거 또는 정국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 정책을 중시하는 마에하라 그룹이나 노다 그룹과 대립하는 일도 많다.


정권 공약을 실현하는 모임政権公約を実現する会
 하토야마 그룹·구 신당 사키가케新党さきがけ 우파 -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2002년에 출범한 ‘하토야마 정권을 실현하는 모임’鳩山政権を実現する会이 시초. 하토야마를 중심으로 보수계열 의원들이 결집해 형성되었다. 그러나 당시 대표였던 하토야마가 곧 사임했기 때문에, 2003년에 ‘민주당 정권을 실현하는 동지의 모임’民主党政権を実現する同志の会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정권교체를 실현하는 모임’政権交代を実現する会이 되었다. 실제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자, 2009년 9월에 ‘정권 공약을 실현하는 모임’으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매주 목요일, 하토야마의 개인 사무소에 모인다. 식비 등은 모두 각자 부담하는 등 투명한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민주당 발족 후 구 신진당新進党 출신이나 같은 보수계열이던 정권전략연구회 소속 의원 등이 합류하고, 민사협회民社協会의 지원 등을 통해 당내의 최대 세력으로 성장했었다. 그러나 2005년 중의원 선거에서 가이에다 반리海江田万里 등 하토야마의 측근이 대거 낙선한 일과 함께 2007년의 참의원 선거에서 오자와 그룹이나 신 정국간담회新政局懇談会로 합류한 초선 의원이 많았으므로, 지금은 수적으로 오자와 그룹에 뒤처지고 있다.

 처음부터 ‘가는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는’다는 자유로운 분위기와 인원이 많았던 영향으로 결속력이 강하다고는 할 수 없고, 그저 가장 큰 그룹이라 들어온 의원도 있다는 견해가 있다. 이 때문에 정책적 결속력도 약해, 이른바 ‘살롱 하토야마’サロン鳩山라고도 불린다. 또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처럼 잠시 있다가 다른 그룹으로 옮기는 이탈자도 많다.

 민사협회와 관계가 깊어, 구 자유당 계열 이외의 의원이 대부분 참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룹 우애’グループ友愛, ‘하토야마·가와바타 그룹’이라고도 불린다.

 하토야마는 2009년 5월 16일에 발행한 자신의 e-메일 뉴스레터에서 “‘정권 교체를 실현하는 모임’은 파벌이 아니다. 그 증거로 정권교체가 실현되면, 이 ‘정권 교체를 실현하는 모임’은 해산한다.”고 언급했지만, 이후 이 모임은 ‘정권 공약을 실현하는 모임’이 되었다. 2009년 12월에는 정치단체에 해당하면서도 신고하지 않은채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 제출 의무나 기부금 제한 등을 피하고 있던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당시 그룹 운영비는 연 1천만 엔 이상으로, 대부분 하토야마가 부담하고 있었다.) 하토야마는 파벌이 아니라 순수한 학습회로서, 정치단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2010년 1월에 활동을 재개하고, 총무성에 정치단체로 신고.


국가형태 연구회国のかたち研究会
 간 그룹 - 간 나오토菅直人, 에다 사쓰키江田五月

 구 사회민주연합에서 동료였던 간 나오토와 에다 사쓰키를 후견인으로 삼아, 2000년에 발족했다. 매주 목요일에 간의 집에서 모임을 가졌지만, 간이 운영에 거의 관여하지 않아 에다가 실질적인 운영자가 되었다.

 민주당 내에서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구 사회당, 구 민주개혁연합 계열이나 시민운동가 출신이 많다는 특징도 있으나, 간이 민주당 대표일 때 당선된 의원이나 간의 기반인 도쿄, 에다의 기반인 오카야마岡山 출신 의원도 많아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그룹이라는 측면도 있다.

 소속 의원이 겹치는 신 정국간담회(구 사회당·총평 계열)나 리버럴의 모임(リベラルの会: 당내 신진 호헌파 그룹)과 정책적으로 보조를 맞추는 경우가 많다.

 2010년에 간이 대표(총리)가 되었지만, 하토야마 시절의 당내 인물이 대거 유임되면서 몇몇이 입각하는 것에 머물렀다.


신 정국간담회新政局懇談会
 요코미치 그룹·구 사회당 그룹 - 고시이시 아즈마輿石東, 요코미치 다카히로横路孝弘

 1998년, 민주당(구)에 민정당이나 신당 우애 등의 보수 정당이 합류해 지금의 민주당이 발족하였다. 당시 당의 우경화에 위기감을 품었던 요코미치를 중심으로 시작한 정책집단 ‘정국단담회’政局懇談会가 전신이다.

 2002년에 오하시 교센大橋巨泉이나 우부카타 유키오生方幸夫 등 비노조·자유주의 사상을 가진 의원도 합류해, 요코미치를 회장으로 삼아 다시 출발했다. 국가형태 연구회(간 그룹)나 리버럴의 모임과 보조를 맞추는 경우가 많고, 오자와 그룹과도 국제연합 대기군待機軍 구상 등에서 합의에 이르는 등 안보정책 등에서 공동으로 연구에 참여하는 등 다른 그룹과 협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마에하라 그룹이나 하토야마 그룹, 하타 그룹, 민사협회 등 보수계열과는 대립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민주당에서 보수파와 달리 언론 노출도 적고, 소속 의원의 스캔들도 연달아 터졌으며, 2005년의 제44회 중의원 총선거에서는 소속 의원들이 대거 낙선하는 등 존재감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2007년 제21회 참의원 통상선거에서 다수의 노조 계열 후보가 당선되고, 소속 의원이 대거 당 요직에 취임하는 등으로 다시 재기했다. 정권 교체 이후에는 회장이던 요코미치가 중의원 의장이 되었고, 다수의 의원이 입각하는 등 주류파로 성장했다. 그러나 하토야마 내각 당시 농림수산대신이던 아카마쓰 히로타카赤松広隆가 구제역 문제 등으로 간 내각 출범 당시 사퇴했으며, 또한 2010년 참의원 선거에서는 주요 중진이 은퇴하는 한편 다수의 소속의원이 낙선하는 등 다시 비주류로 전락했다.


민사협회民社協会
 가와바타 그룹·구 민사당계 - 가와바타 다쓰오川端達夫, 다나카 게이슈田中慶秋

 1980년대까지 사회당은 총평, 민사당은 동맹이 지지하고 있었다. 1989년, 총평과 동맹이 합병하여 연합(連合: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日本労働組合総連合会)이 되었지만, 구 동맹계 노조는 민사당을 계속 지지하고 있었다. 1994년 12월에 민사당이 해산하고 신진당 결성에 참여하자, 당시 민사당 소속 국회의원 및 지방의원이 결성한 것이 민사협회였다. 1997년 12월, 신진당이 해산하자 신당우애나 자유당으로 갈라졌다가 민주당으로 합류했지만, 이때까지도 구 동맹계 노조의 지원은 그대로였다. 구성원 대부분이 구 동맹계 노조의 조직 후보였으며, 노조원 출신도 많다. 구 동맹계 노조에는 대표적으로 자동차총련(自動車総連: 전일본자동자산업노동조합총연합회全日本自動車産業労働組合総連合会)이나 전력총련(電力総連: 전국전력관련산업노동조합총연합全国電力関連産業労働組合総連合), UI젠센동맹(UIゼンセン同盟: 전국섬유화학식품유통서비스일반노동조합동맹全国繊維化学食品流通サービス一般労働組合同盟) 등이 있다. 이들 노조를 기반으로 전국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고, 노조 지원으로 당선된 지방의회 의원이 지방조직 간부를 맡는 경우도 많다.

 규모는 구 사회당·사민당계 중심의 신 정국간담회에 버금가는 정도. 소속 의원이 낙선하거나 고령화하는 등 세력은 침체되는 경향에 있었지만, 정권 교체 이후에는 가와바타를 비롯해 여럿이 입각했고, 간 내각에서도 전원이 유임했다. 민주당 내에서는 하토야마 그룹이나 오자와 그룹 등 보수 계열과 관계가 깊다.


료운카이凌雲会
 능운회, 마에하라 그룹 -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센고쿠 요시토仙谷由人

 1999년에 신당 사키가케의 구성원이 결성한 고호카이(高朋会·고붕회)와, 정권전략연구회(구 민정당 출신의 하타 그룹)에 참가하고 있던 젊은 의원들이, 2002년 민주당 대표 선거에서 젊은 후보를 세우기 위해 결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선거에서 마에하라와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와 조정 끝에 노다를 대표 후보로 지원했다. 노다는 낙선했지만, 젊은 의원들의 그룹으로서 존재감을 크게 나타냈고, 이후 ‘료운카이’로 정식 출범했다. 일본신당日本新党이나 신당 사키가케 출신을 중심으로, 초선 의원을 받아들이며 성장하였다.

 2004년 대표 선거에서는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를 무투표로 당선시켰고, 2005년 대표 선거에서는 마에하라가 간 나오토를 2표 차이로 꺾고 당선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마에하라가 대표 시절에 중국 위협론을 언급하고, 티베트 독립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에다노의 영향 등으로 언론에서 외교적으로는 강경파라고 언급되기도 하지만, 국내적으로는 외국인 참정권 도입, 부부 별성제 추진 등 중도좌파적 성향을 가진 의원도 많다. 경제정책적으로는 규제 완화 혹은 자유화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자가 많다. 마에하라의 기반인 교토 출신 의원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정치적으로는 가세이카이(花斉会·화제회:노다 그룹)와 동일하게, 여당과 정책으로 승부하는 ‘대안 노선’을 지향하고 있다. 반면에 정국이나 선거에는 적극적이지 않거나 경험도 얕아, “헛점이 많다.”[ワキが甘い]는 비판도 있다. 마에하라 대표 시절에 당내 운영, 특히 이른바 호리에堀江 메일 문제에서 이 약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오자와 대표 시절에는 ‘반주류파’라고도 불렸지만, 에다노는 “비주류파이지, 반주류파가 아니다.”라고 인터뷰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2002년 대표 선거에서는 노다를 지원했지만, 료운카이 결성의 계기가 되었던 노다는 별도로 ‘지사의 모임’志士の会, 그리고 그 후신인 가세이카이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양 집단은 거의 견해가 일치하고 있어, 정책적으로 보조를 맞추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두 그룹을 묶어서 ‘마에하라·노다 그룹’ 또는 ‘마에하라·에다노·노다 그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토야마 대표가 사임하자, 간 나오토 지지를 표명했다. 간 정권 탄생의 주역으로 가세이카이와 함께 순식간에 주류가 되었고, 에다노가 간사장, 센고쿠가 내각관방장관이 되었다. 그러나 참의원 선거 패배 이후 오자와계 그룹을 중심으로 비판받는 그룹이기도 하다.


가세이카이花斉会
 화제회, 노다 그룹 -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나가시마 아키히사長島昭久

 민주당내 집단 가운데 가장 자민당스러운(?) 집단이다. 원래는 마쓰시타 정경숙松下政経塾 출신 국회의원이 55년 체제의 붕괴에 따라 보수계 신당을 구상하여, 1993년에 결성한 ‘마쓰시타 정경숙 입지회立志会’가 원류였다. 그러나 일본신당, 신생당, 신당 사키가케, 신진당, 민주당(구) 등 보수 계열 신당이 잇달아 창당되고, 소선거구제와 함께 출신자들이 자민당, 신진당, 민주당(구)으로 나뉘면서 근본적으로 유지가 어려워졌었다.

 1996년에 ‘지사의 모임’志士の会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발했지만, 출신자 자체가 여당과 야당으로 나뉘어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게다가 같은 해에 열린 제41회 중의원 총선거(소선거구·비례대표 병립제가 처음으로 시행)에서 노다 자신이 아쉽게 낙선하면서, 이후에는 제1기 출신인 노다를 중심으로 학습회로 유지되어 왔다.

 2002년에 노다가 민주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면서 다시 ‘지사의 모임’을 결성했고, 2006년에 가세이카이로 개칭·확대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2002년, 2004년, 2005년의 대표 선거에서는 대개 료운카이와 함께 활동했다.

 료운카이도 마찬가지지만, 마쓰시타 정경숙 출신이 많아 ‘마에하라·노다 그룹’을 ‘정경숙 동아리’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 지사의 모임 시절에는 전부 정경숙 출신인 적도 있었고, 이러한 구조는 료운카이에서 조차 폐쇄적이라고 지적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가세이카이 확대의 계기가 되었고, 민주당 내에서 결속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2008년, 민주당 대표 선거에서 노다의 입후보에 찬반이 갈려 일부 의원이 탈퇴하면서 노다 그룹은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이후 노다 그룹은 당내 존재감이 대폭 하락했고, 2009년에 하토야마 내각이 출범하자 당내 그룹에서 유일하게 각료를 배출하지 못하기도 했다.(당시 노다는 재무부대신에 머물렀다.)

 2010년에 간 내각이 수립되자, 노다가 재무대신에 취임하고, 그룹의 사무국장인 렌호蓮舫가 행정쇄신 담당 대신에 취임하는 등 변화가 보이기도 한다.

 정책 입안 능력에는 그룹 스스로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며, 이른바 ‘대안 노선’을 처음으로 주장한 집단이기도 하다. 신보수주의적 경향도 보인다.


정권전략연구회政権戦略研究会
 하타 그룹·구 신진당 우파 - 하타 쓰토무羽田孜, 와타나베 고조渡部恒三, 이시이 하지메石井一

 구 민정당 출신을 중심으로 1998년에 결성되었다. 처음에는 통합 민주당 내에서의 발언력 확보,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영수인 하타를 총리로 옹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2002년의 대표 선거에서 중진들은 오카다를 지지한데 비하여, 소장파의 다수가 노다를 지지하면서 료운카이나 지사의 모임으로 이적해 분열되었다. 이후 하타를 중심으로 구 민정당 계열의 중진 의원이 다수를 차지한다.

 하토야마 그룹과 함께 구 신진당 출신 보수파가 중심이었지만, 하토야마 그룹으로 옮겨간 의원도 많다. 특히 보수신당保守新党이 결성되자 구마가이 히로시熊谷弘 등 중진이 탈당해 타격을 받았다.

 오자와 그룹, 하토야마 그룹, 민사협회와 함께 이른바 ‘보수계 그룹’이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개별적으로 오자와와 함께 하는 이시이, 반 오자와의 선봉이 되는 와타나베가 함께 존재하고, 영수인 하타가 고령(1935년생)인 점 등으로 결속력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리버럴의 모임リベラルの会
 - 히라오카 히데오平岡秀夫, 곤도 쇼이치近藤昭一

 민주당의 젊은 자유주의자 혹은 호헌파 의원이 모여 2004년에 결성하였다. 처음부터 대표를 두지 않고, 20명의 간사에 의한 집단지도체제를 채택. 결성의 기본 이념은 ① 호헌, 전수방위, 집단적 자위권 부인, 국제연합 중심의 집단적 안전보장, 북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이니셔티브, ② 시민에게 열린 정치.

 처음에는 50명 이상이었지만, 독자 후보 옹립에 실패하거나 정책 통일이 명확하지 않아 서서히 숫자가 줄었다. 게다가 2005년의 중의원 선거에서 기반이 약한 젊은 의원들이 우정 개혁을 내세운 자민당에 대거 패배하면서 모임의 존립마저 위태로웠지만, 곤도와 히라오카를 대표 후견인으로 삼아 활동을 재개했다.

 구성원 대부분은 신 정국간담회(요코미치 그룹)나 국가형태연구회(간 그룹)에도 소속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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