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에서 가장 논쟁이 되어왔던 몇가지 문제를 선정할 때 앞에 들어가는 것이 이 전후좌우 논쟁이다.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유학자인 노계 김황 선생은 그 문집인 "노계집(老鷄集)"에서 "천명을 받은 나라는 옛부터 좌묘우사(左廟右社 : 동측에 태묘를, 서측에 사직을 둔다.)의 원칙을 지켜왔다. 사람이 움직이는 데에도 이 원칙이 가장 중요한 것이니, 재야의 서당 훈장들이 강독중에 몸을 좌우로 흔드는 것도 이에 연유한 것이다."고 밝히고 있다.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이 문제는 공론화되면서 좌인(左人)의 영수이던 우엉 송시연은 임금에게 올리는 상소에서 "어찌 좌우로 경박하게 몸을 흔드는 것이 하늘의 원리를 따른 것이겠습니까. 무릇 살피건대 도성을 세울때도 앞에 안산을 두고, 뒤에 주산을 두는것이 원칙이니 곧 전후로 몸을 흔드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입니다."는 내용을 주장했고, 곧 우인(右人)의 곰산 윤선돌(어느 책에서는 윤선석이라고도 한다.)"아아, 하늘이 떨리고 정신이 황망하여 고개를 들지 못하겠습니다. 어찌 감히 노계선생이 밝히신 하늘의 원리를 두고 제멋대로 원리를 주장하니 이는 천리를 거스르는 것입니다. 송 우엉이 정신이 있다면 어찌 이 같은 사문난적과 같은 일을 벌이겠습니까."라며 우엉의 처벌을 주장했다.

 이런 전후좌우논쟁, 혹은 방향논쟁은 조선후기 성리학의 학맥을 두고 한 학파의 운명을 놓고 싸운 절대적인 종통(宗統)싸움이었다. 논쟁이 격화되면서 곰산보다 연장자이던 우엉이 곰산을 두고 "곰같은 자가 어른도 몰라본다"며 말한것을 계기로 이 논쟁은 학파논쟁에서 희대의 코미디논쟁으로 변질되었다. 이에 노한 임금이 이 두사람을 어전으로 불러 회초리를 든것을 계기로 이 논쟁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일제시대에 접어들면서 조선 역사의 정체성을 주장하던 식민사학에서 방향논쟁을 두고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이라고 평한것을 계기로 이 방향논쟁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대표적인 국어학자인 양주통은 "방향논쟁은 조선후기의 정체성이 아니라 좌우, 즉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결정하는 사상논쟁"이라고 주장하면서 방향논쟁은 조선후기가 근대사회로 접어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싹을 틔우고 있다는 학설도 등장했다.

 전후좌우논쟁은 해방이후 좌우논쟁이 금기사항이 되면서 표면위로 올라오지 못했으나, 근래에 들어서 "바이킹이 전후로 흔들리는 것은 좌우보다 전후로 흔드는것이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라는 전미유원지관리인동맹(전관맹)의 발표이후로 다시 활발한 연구와 논쟁이 벌어질련지 안벌어질련지. 이상 믿거나 말거나 있지도않을이야기.

 -제목은 있지도않은이야기가 모티브.(Copyright © by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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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천어 트랙백 0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