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30 19:21, 김천어 근서


 이 뻐스라는 것이 조선에 들어온 것은 1910년대의 일이라고 한다. 무론 지금과 같이 기십여 명이 탈 수 있는 대형뻐스라기보다는 몇 안되는 사람을 실어나르는 합승자동차와 같은 것이다. 우리가 흔히 시내뻐스의 시초로 왜정때 운영되었던 부영뻐스를 첫머리로 삼는다. 경성부가 직영으로 뻐스를 굴리다가, 민영화(?)를 하여 경성전기에다 매각하고 말었으니, 곧 경전뻐스-경성전기승합자동차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뻐스라는 것에는 근거리를 가는 시내뻐스와 중장거리를 가는 시외뻐스 또는 고속뻐스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조선의 뻐스사(史)를 살펴보면 실은 시내뻐스와 시외뻐스의 구분이 모호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경인선이라는 철도가 부설되어서 열차가 지나가게 된 것이 1899년의 일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뻐스라는 것을 운행을 할 때에는 물론 시내의 운행도 중요하지만은 서울과 인천을 오고가도록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조선의 뻐스는 기본적으로 시내와 시외를 겸하여 오고가던 것이었다.


남부종합터미널 개통 기사"남부종합터미널 오늘 기공" (1968년 8월 12일자 동아일보)


 여하간 이 조선에 뻐스라는 것이 있으면은 응당 터미널이라는 것이 따라붙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터미널이라는 것이 언제 생겼는지를 이야기하는 글들을 보면은 대개는 1968년에 경인고속도로가 개통이 되었고, 곧 이어 경부고속도로 서울-수원 구간이 개통이 되면서 이제 고속뻐스가 다니고 하다보니 터미널이 생겼다, 이렇게들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당시의 터미널이라는 것은 지금의 서울고속버스터미날이라든지 아니면 동서울종합터미널과 같이 어마어마한 것이 아니라 시내 곳곳에 산개하여 있는 터미널이었던 것은 물론이다. 이 고속뻐스 이외에도 사실은 시외뻐스 터미널 또한 곳곳에 산개를 하여 있었으니, 이러한 터미널들을 모아 '남부종합터미널'이라는 것이 용산에 자리하도록 하였다. 그 위치는 지금의 용산역전 LG유플러스본사 일대인데, 그 용산역후에 이른바 관광버스터미널이라는 것이 있었고 곧 전자상가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세인들이 종종 용산시외버스터미널을 그 터미널전자상가로 착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렇듯 기십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터미널의 위치를 잊어 그 흔적마저 생각치 못하게 되었으므로, 내가 이 뻐스와 더불어 - 서울 터미널 50년사를 쓰고자 한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


 여하간 이 50여 년의 뻐스터미널사의 대강을 보면은 온갖가지 터미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또한 당국은 이를 어디로 몰아넣고자 하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1970년을 전후로 하는 시기다. 당국의 그러한 조치로 탄생한 것이 1960년대 후반에 생겨난 용산터미널(당시 남부종합터미널, 지금의 남부터미널과 구분하고자 이후 용산터미널이라 지칭)과 1973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동마장터미널(당시 동부공동주차장이나 용두동터미널 등 다양한 별칭이 있는 관계로 이후 동마장터미널이라 지칭), 1972년에 개업한 서부터미널(당시 서부시외버스터미널, 현재 서부경찰서) 등이 있다. 이 시기를 1기 터미널 시대라고 지칭하고자 한다.


 2기는 영동지구가 개발되고, 서울이 팽창하면서 인구가 집적되었을 뿐만 아니라 뻐스 또한 급격히 증가하였으므로 터미널이 포화상태가 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동대문터미널의 수용능력을 초과하는 바람에 다시금 당국의 거대한 계획으로 1975년경에 생기게 된 반포동 서울고속버스터미날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어 용산터미널과 동마장터미널 또한 수용능력이 초과하여 다시금 각각 1990년의 남부터미널(양재동)과 1989년의 동서울종합터미널(이하 동서울터미널)으로 이전하게 되었으니, 이 시기는 사실 2.5 내지는 3기에 가까울 것이나 그냥 퉁쳐서 2기로 부르기로 한다.



 그 와중에 애매한 것이 서부터미널과 1985년에 개업한 상봉터미널이다. 익히 알려졌듯이 서부터미널은 일산선(3호선 전철)이 개통되고 나서는 너무나도 한적해지는 바람에 사실상 터미널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고, 지금에는 서울서부경찰서가 되어버린 것이다. 또한 상봉터미널 또한 동마장터미널의 기능을 동서울터미널과 분할한다는 명목으로 동서울터미널보다 먼저 개업하였으나, 동서울터미널이 열린 뒤로는 그 역할이 축소되고 또한 이 경춘선 전철이 개통되는 바람에 터미널 면허를 반납하네 폐지하네 마네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일단은 아직도 영업은 하고 있으므로, 이 두 근거리 시외버스 터미널의 역할이 축소되기 시작한 시기를 3기라고 그냥 부르기로 하자.



 여하간 근만의 이야기로 뻐스와 더불어, 터미널의 이야기를 쓰기로 한 연유에 대해서는 약간의 부연을 하였으나 이 로작(路作)에서 구체적으로 살피고자 하는 것은 바로 1기 터미널의 위치를 비정하는 것이고 2기 터미널의 초기의 모습이다. 전자에 대하여는 앞서 설명을 하였고, 또한 그 위치에 대하여 분분한 이야기가 있는데 이를 정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후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터미널이 이전한 기간보다 앞서 영업을 한 시기가 있으니 이에 대해 정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매듭짓지 않았으므로 개업시기에 대하여 분분한 이론이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가 끝나고나면 차기작으로는 렬차와 더불어를 써볼까도 생각중이다. 이야기의 모든 사진과 지도는 서울특별시 항공사진서비스와 네이버 또는 다음지도를 이용할 것인데, 저작권 또는 수정에 대한 지적이 있다면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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