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02 11:52, 느림 근서


  요즘 조기대선으로 동네가 시끄럽다. 특히 연신내역 6번출구 앞 문재인후보 선거운동단원들은 사람 지나갈 길 막지 말고 좀 가에서 좀 유세하시길. 출퇴근 시간에 바빠 죽겠는데 길을 길답게 좀 씁시다. 바로 옆 불광역은 박원순시장 텃밭이 앞에 있어서 그런지 조용하고 경관도 트여있고 참 좋더마는. 사담은 여기서 치우고, 요즘 분위기에 맞게 과거의 선거철 풍경을 좀 써보고자 한다. 이승만대통령까지 가면 너무 먼 것 같고, 반인반신의 딸께서 얼마전까지 나라님이셨으니 5대부터 9대까지 다 해드신 그분 시기부터 정치광고나 사진을 토대로 정리하기로 한다. 

  사실 그 전에는 별다른 정치광고랄 것도 없는 것이, 정부수립 당시에는 대통령과 부통령이 간선제라 정치광고 자체가 필요치 않았고, 2대때부터는 신문에 정치광고를 싣긴 했는데 수준이 문장을 나열하는 정도라 문맹률이 높은 당시 한국 상황에서는 그저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이니라 했을 것이다. 60년대까지도 작대기 수로 정당과 후보자를 표시했을 정도이니 신문광고가 씨알이 먹힐 리 없었다. 사실 이때문에 많은 사람과 탈것을 동원해 외쳐대는 장외유세가 발달했는지도 모른다. 무튼 그 시대에는 대부분의 정치광고가 원시적이었으나, 56년 선거에서 민주당이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현재와 다를 바 없는 슬로건을 처음 내걸었다. 물론 다른 당이 가만히 있을리리 없다. 이승만의 자유당은 '갈아봐야 별수없다'는 슬로건으로 맞받아쳤다(예나 지금이나). 이것이 최근까지 이어지는 슬로건 기타 등등이 딸린 선거유세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사진1> 5.16 당일 남대문경찰서앞에 붙은 공고문 


  본격적으로 선거철 풍경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잠시 1961년 얘기를 꺼내보자. 5월 16일 새벽, 일단의 무장병력이 한강을 건너 서울 시내로 진입하였고, 중앙청, 육군본부, 중앙방송국 등을 점령한 후 라디오 방송을 통해 '혁명'을 알렸다. 故박정희 전 대통령을 실질적 지도자로 하는 5·16 군사정변이 일어난 것이다. 위 사진은 당시 남대문경찰서 앞에 붙은 공고문이며 '우리들은 군사혁명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치안을 유지하고 있으니 시민들은 각기 직장에 가시여 생업에 종사하시기 바람니다. 1961년 5월 16일 서울남대문경찰서장'이라고 쓰여있다. 반인반신의 파라다이스가 머지않았다. 



<사진 2>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행한 제3공화국 대통령선거 홍보 포스터

  

  1962년 12월 17일, 국가재건최고회의가 국민투표로 헌법을 개정하여 권력 구조를 대통령제로, 선거 제도를 제1공화국의 직접선거제로 되돌려 놓았다. 1963년 1월 16일에는 선거관리위원회법이 제정·공포되었고 1963년 1월 2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창설되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 선거의 원활한 시행을 위해 포스터를 발간하였는데, 상단의 이미지가 그것이다. 이햐, 진짜 포스터 감성 죽인다. '투표는 애국민의 의무, 기권은 국민의 수치', '나라운명 달린표다 사심없이 바로찍자' 등의 슬로건이 적혀있다. 저것들이 국민학교에서 뭔 시기마다 표어를 써오라며 그리고 칠하게 만든 고달픈 숙제의 시초가 된 듯 하다. 



<사진3> 박정희 후보의 신문광고, <사진4> 윤보선 후보의 신문광고


  5대 대선인 1963년, 무려 54년 전 선거광고. 이 시기가 후보 기호를 작대기로 표시하던 그 시기다. 때문에 포스터에 후보 번호만큼 작대기가 그려져 있다. 1963년 당시에는 추첨을 통해 후보자들의 순서를 정했다. 박정희 후보는 자신의 얼굴과 기호를 강조하고 옆에 황소 그림을 실음으로써 자신을 '황소같은 일꾼'에 빗대 글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황소 컨셉은 주구장창 우려먹기 때문에 훗날 박정희 후보가 속했던 '민주공화당' 로고에도 황소가 등장하게 된다. 반면 윤보선 후보는 중앙의 얼굴을 제외하고는 세로쓰기한 문장들로 빽빽하게 채운 모습이다. 뭘 보려고 해도 안 보이니 내용은 패스하기로 한다.


<사진5> 1963년 9월 28일 박정희 후보 유세장면, <사진6> 1963년 10월 5일 윤보선 후보 유세장면


  선거에서 유세가 빠질 수 없다. 요즘이야 사운드 빵빵하고 굉장히 요란하고 한데, 당시에는 그저 빼곡히 찬 사람들 앞에서 소리치는 게 다였을 것이다. 위 사진은 당시 대통령 후보들의 유세장면이다. 사람들이 겁나 많이 모여있는 것이 얼마전까지 사람들로 가득차있던 광화문을 연상케 한다. 유세장면은 선거광고와는 다르게 별다른 특이점을 찾을 수 없다. 



<사진7> 1963년 10월 4일 제5대 대통령 선거 포스터를 보고 있는 시민들


  어린이고 학생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포스터를 유심히 읽고 있다. 당시 유권자들의 투표 행태는 남여북야(南與北野)의 지역 대결 구도를 나타냈는데, 서울·경기·강원지역에서는 윤보선을, 영남과 호남에서는 박정희를 압도적 표차로 지지했었고 충청과 부산에서는 두 후보에 대한 지지세가 비슷했다.



<그림8> 1963년 10월 13일자 동아일보 호외


  옛날 정치판도 씹고 뜯고 맛보는 것은 현재와 별반 다를 게 없다. 1963년 10월13일 윤보선 후보가 '박정희가 과거에 남로당에 가입해 무기징역을 받았다'고 폭로한것이 호외에 실렸다. 익숙한 느낌이 드는 건 그냥 기분탓인가. 무튼 박정희가 남로당(남조선노동당)의 비밀당원으로서 군사책임자라는 혐의로 1948년 11월 11일 체포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사진9> 1963년 10월 16일, 각 신문사에서 집계한 대선 개표상황을 지켜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전쟁이 막을 내렸다. 이러나 저러나 투표는 했고, 개표도 한다. 지금이야 시대가 좋아 기계와 사람을 전부 동원하지만, 작대기 긋던 옛날에 그런 게 어딨겠나. 전부 수기로 이렇게 체크하고 점검하고 했었다. TV도 보급화되지 않았을 시절인지라 요즘같이 재밌는 개표방송 또한 없었다. 이런 시대에 개표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싶으면 집 밖으로 나서야지 어쩌겠는가. 고작 몇십 년 만에 세상이 참 많이도 변했다. 

  이 선거로 박정희 후보는 5대 대통령에 당선되게 된다. 그리고 아패로도 개속 주구장창 몇 번을 해 드신다. 이 선거는 최초로 지역구도가 뚜렷하게 드러난 선거였다. 단 지금의 영·호남 구도가 아닌 남·북구도였다는 점이 특이점이다. 서울·경기·강원·충남·충북에서는 윤보선 후보가 승리, 부산·전남·전북·경남·경북·제주에서는 박정희 후보가 승리하였다. 




 

<사진10> 1967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행한 대통령 선거 홍보 포스터, <사진11> 1967년 경상남도선거관리위원회의 6대 대통령선거 홍보 벽보


  1967년에는 6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위의 그림은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행한 대통령 선거 포스터와 경상남도 선거관리위원회가 발행한 대통령 선거 홍보 벽보. 선관위는 중앙에서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대통령 선거 홍보와 투표 장려활동을 지속하였다.



<사진12> 1967년 6대 대통령 선거 후보 명단


  제6대 대선에서는 선거 한 달 전 후보 등록을 마감, 7명의 후보가 접수를 완료하였다. 이때도 역시 후보 번호는 추첨으로 결정되었기에 정당은 후보 번호와 무관하다. 우측부터 기호l번 정의당 이세진, 기호ll번 한독당 전진환, 기호lll번 신민당 윤보선, 기호llll번 대중당 서민호, 기호lllll번 민중당 김준연, 기호llllll번 민주당 박정희, 기호lllllll번 통한당 오재영 순. 



<그림13>  1967년 6대 대통령 선거 포스터(전원)


<그림14> 1967년 6대 대통령선거 포스터 박정희, 윤보선


  6대 대통령 선거는 박정희 후보와 윤보선 후보의 2파전이었다. 박정희 후보는 포스터에서 기존 선거광고의 형식을 과감히 탈피한 방식을 선보였다. 추상적인 개념이나 구호 대신 '여러분의 명랑한 생활과 보다 편리한 살림을 위해 공화당은 황소처럼 힘차게 일하겠습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자신을 황소에 빗대며 국민을 위해 일하는 일꾼으로 표현하는 전략을 지속하였다. 이때문에 당시 박정희 후보가 속했던 '민주공화당' 로고에도 황소가 그려져 있다. 포스터 역시 약력도 없이 깔끔한 것이 현재의 선거 포스터와 흡사하다. 양측에 작은 글씨로 '우리들과 그리고 귀여운 아들딸들이 좀 더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여러분과 함께 땀 흘려 일하겠습니다.'라고 적혀있을 뿐이다. 반면 윤보선 후보의 포스터는 약력과 신민당의 7개 공약이 빼곡히 적혀있다. 한자를 못 읽는 사람들을 위해 '빈익빈'이라고 친절히 적어주는 센스. 근대화는 왜 안 적었는지 모르겠다. 기호 l번 이세진 후보를 제외하고는 다른 후보의 포스터도 윤보선 후보와 별반 차이가 없다. '파벌정치 몰아내고 병든황소 갈아치자!'라고 적힌 기호lllll번 김준연후보의 구호가 '박그네 주거랑 얍얍!' 했던 정의당과 겹쳐보인다. 우리 국민은 굉장히 꾸준해서 19대 대선도 사실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게 함정.



<사진15>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경남 산청의 운동장에서 열린 유세 현장에 모인 지역민들의 모습


  위의 사진을 보면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복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양장과 무명한복, 두루마리가 혼재해 재미있는 풍경을 보여준다. 교과서에서나 보던 갓과 두루마리, 흰 고무신을 신은 노인의 모습은 당시 농촌에서 쉽게 볼 수 있던 차림새. 사람들이 쓰고있는 우산은 대나무와 종이로 만든 지(紙)우산으로 보인다. 지금은 돈을 좀 쥐어드려야 만질 수 있는 고오급품이다.



<사진16>1967년 6대 대통령 선거 개표 속보판

  이때도 어김없이 노동집약적인 개표현장을 보여준다. 현재 개표 시스템도 물론 사람이 일일이 확인하며 개표하기에 개표때만 되면 공무원들이 단체로 밤 늦게까지 고생하지만, 저 때는 기계고 뭐고 없었기에 개표할 때 아주 죽어났을 것이다. 6대 대선은 결과가 비교적 쉽게 예측되는 선거다보니, 투표에 대한 관심이 과거에 비해 많이 떨어졌기에 당시 역대 대선 투표율 중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가장 낮다고 해 봐야 83.6%로 지금과 비교하면 월등히 높은 수치를 기록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결과는 박정희 후보 당선. 이 대선은 지금 대선과 같이 영·호남의 지역구도를 보이는 최초의 선거라고 할 수있다. 이유인 즉 민주공화당 국회의원이었던 이효상의 지역감정 조장 발언들과 중정의 지역감정 여론조성이 크게 작용되었다는 것. 그래 봐야 지역별 득표 차는 55:45 정도로 현재와 비교하면 그렇게 차이가 크지 않지만, 영남 전체에서는 타 지역보다 압도적인 박정희 지지세가 나타난 걸 보면 역시 영남지역은 그의 텃밭이다 싶다. 



<사진17> 1967년 6월 8일. 국회위원 선거에 출마한 김영삼, 김대중, 김두한, 차지철 후보의 선거포스터

 

  이어서 치러진 제7대 국회의원 선거는 대통령과 여당, 고위 공무원들이 선거운동에 앞장선 타락한 선거였다. 정부는 관계 법령을 고쳐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공무원들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특히 故박정희 전 대통령은 지방유세에 나서지 않겠다고 해놓고 각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각종 선심공약을 남발했다. 그 이유는 그분께서 크나큰 밑그림을 그리고 계셨기 때문. 

  故박정희 전 대통령이 깔끔한 포스터를 선보인 이후 선거 포스터들이 제법 깔끔해졌다. 아직도 좀 지저분해 보이는 감이 없지는 않지만, 앞서 보았던 윤보선 후보의 선거 포스터와 비교하면 굉장히 보기 편해진 것을 알 수 있다. 67년 국회위원 선거에는 익숙한 이름들이 대거 등장한다. 근현대사 시간에 졸았어도 이름쯤은 다들 기억할만한 인물들이라고 보면 되겠다. 상단의 김영삼 후보와 김대중 후보의 선거포스터에는 신민당의 총선 구호였던 ‘단일 야당 밀어주어 일당 독재 막아내자.’를 내걸고 있다. 신민당 원내총무였던 김영삼은 부산 서구에서 출마했는데, 공화당 후보를 여유 있게 이기고 4선 국회의원이 으로 당선되었다. 김대중은 전남 목포에서 출마했는데, 공화당이 전 체신부장관 김병삼의 지역구를 옮기면서까지 낙선전략을 펼쳤음에도 당선되었다. 



<사진18> 1971년 황소그림이 그려져있는 기호l번 박정희 후보의 현수막


  70년대부터 87년까지는 정치광고의 암흑기였다. 그분이 강림하사 민생을 두루 살피시니 선거가 대수냐 관권이 짱짱맨이라. 1962년 12월 26일 개정된 제3공화국 헌법에는 대통령의 연임규정이 '1차에 한해서 중임할 수 있다.'로 되어있었다. 그 탓에 2차까지 연임하였던 박정희 대통령은 헌법상 다시 출마할 수 없었다. 허나 그분이 누구신가. 위대하신 반인반신님께서 가라사대 "삼선도 하고싶다."하시니 헌법이 개정되고 삼선의 문이 열렸다 하노라. 그리하여 1969년 삼선개헌이 시동걸렸고, 1인통지 영구 독재가 시작되었다. 선거가 없는데 선거광고가 있을리 만무하다. 사진은 그시절 현수막이다. 여전히 황소는 이름 곁을 떠나지 않는다. 영 안 떠나고 아직도 특정 세력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는 걸 보면 역시 황소가 강하긴 강한가 보다. 반인반신이고 황소신이고 토착신앙이 아주 몹쓸 것이다.



귀찮으니 나중에 이어서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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