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02 11:57, 느림 근서

 칙칙한 흑백사진에 신문기사만 들여다보고 있자니 영 눈이 칙칙하고 안 좋은 것이 재미없는 것을 들여다 보아서 그런가 싶어 쉽게 다가갈 수 있고 보다보면 재밌을 수도 있는 한국의 생활 전반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이번 주제는 '물과 관련된 무언가들'이다. 여기에는 엄마 아빠의 추억도 있을 것이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추억도 있을 것이다. 뭐 아무것도 없을 수 있으니 잡설은 집어치우고 일단 물과 관련된 생활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사진 1> 1960년대의 용산


  1960년대 용산의 풍경인데 지금은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충격적인 모습이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급속도로 발전하고 건물을 쌓아 올렸는지 알 수 있다. 사진을 보면 아낙네들이 도랑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 당시 남한의 상수도 보급률이 22%, 1963년 서울시 상수도 보급률이 56%정도였으니 수도고 나발이고 동네 개울가에 앉아서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아랫동네 사람들은 또 그 물을 마시고 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물론 공공수도(共同水道)라는 것이 있어서 빨래터와 식수를 구별해서 사용하긴 했으나, 생활 습성 전반상 그것은 무용지물이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사진2> 1960년대 제주도 공공수도 앞 풍경

 

  이것이 그 공공수도라는 것인데, 이게 또 무슨 공원 급수기처럼 콸콸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많이 배치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마다 양동이나 빠게스를 들고 이렇게 수도 앞에 나와 줄을 서기 일수였던 것이다. 사진을 보면 광주리나 항아리 등을 줄세워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중앙에 벗은 몸으로 모자는 쓴 꼬마아이가 있는데, 저 분이 이제 우리 아버지 어머니 뻘쯤 되었을 것. 선거포스터가 줄줄이 붙어있는 것을 보면 사진은 1967년 쯤에 찍힌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사진3> 1972년 달동네에서 들른 물차에서 물을 받는 사람들


  하지만 달동네에는 공공수도가 없으니 물을 구하려면 저어 밑에 있는 공공수도까지 내려가서 줄을 서든가, 이렇게 물차가 오는 것을 기다려 양동이를 들고 너나할 것 없이 물을 배급받는 수밖에 없었다. 물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는 쪽수가 중요했기에 어린아이들이 대거 동원되었다. 집에서 놀고있는 노동력이 아이들뿐인데 어쩌겠는가. 뭐 그렇다고 쪽수로 밀어붙이면 다 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 물차의 물은 무료인 것도, 무제한 공급이었던 것도 아니었다는 것.



<사진4> 대구광역시 물장수 1960년대


  그렇기에 이런 직업도 있을 수 있었다. '물장수'라는 직업인데 급수부(汲水夫)라고도 불렸다. 물장수는 거대한 드럼통 비스무리한 것에 물을 그득 담아 수레로 끌고다니면서 물을 팔고 다녔다. 물론 저 물이 정화된 물은 아니고, 그냥 어디 강이나 호수같은 곳에서 물을 길어 가져오는 것이다. 그냥 시냇물 퍼먹으면 되지 않겠나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인데, 그나마 나오는 상수도는 수도집약적이고 지방은 죄다 물을 길어 먹어야 하는데 수질이 나빠 똥물이 흐르는 곳에서 그 물을 그냥 먹을 수는 없으니 이런 직업이 성행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사진5> 1960년대 얼음가게


  물론 그 시대라고 한여름에 뜨뜨미지근한 물만 마시고 한 것은 아니다. 당시에는 '어름가게'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름 그대로 얼음을 잘라서 파는 가게라고 보면 되겠다. 지금이야 냉동실에 얼리거나 편의점에서 돌얼음을 사서 오면 되지만 예전에는 냉동시설이 좋지 않아 집집마다 냉동고를 들일 수 없었기에 얼음은 무조건 사서 먹어야 하는 음식?이었다. 



<사진6> 1960년대 얼음가게에서 얼음을 자르고 있는 사람들


  상단에서 '얼음을 잘라서 판다'라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것. 톱으로 얼음을 리얼 슥삭슥삭 자르고 있다. 물론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아아주 노동집약적이다. 



<사진7> 얼음을 자전거에 싣고있는 얼음장수


  그리고 그 어름을 으찌했냐 하며는, 바로 이륜수동차로 '배달'을 해서 필요한 집에 가져다 주는 것. 이 시기부터 배달을 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가 괜히 배달의 민족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사진8> 1959 4월 4일 냉차, 아이스크림, 거리의 노점상들과 아이들


  물이나 얼음 사진만 보면 아뭐 이렇게 열악하나 싶을 수도 있는데, 그들에게도 유흥이나 간식거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 검정고무신이나 과거를 배경으로 한 책, 만화책 등을 볼 때 나오는 아이스께끼가 그것이다. 이때까지만해도 얼음 비스무리한 것을 먹으려면 엄빠 주머니를 털어 설탕물 얼린 비싼 아이스께끼를 사먹거나 생 얼음을 와그작 씹어먹는 수밖에 없었는데, 1963년 감동적인 일이 일어났다.



<사진9> 하ㅡ드를 팔고있는 삼강아이스크림장수


  그거시 그거시 바로 삼강아이스크림에서 하아드가 나온 것. 삼강하드는 1962년부터 1969년까지 생산된 국내 첫 아이스크림이다. 아이스께끼라는 말대신 하드라고 부르는것도 여기서 유래되었다. 삼강아이스크림은 기존의 아이스케이크(아이스께끼)와는 전혀 다른 공법으로 생산라인을 이용하여 하ㅡ드를 대량제조하였다. 당연한 것어지만 어린이들로부터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사진10>1966년 빙수기계


  60년대 중반에는 서민들이 쓸 수 있는 빙수기계도 나왔다. 이때는 애고 어른이고 신나서 간 얼음을 퍼먹었다고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팥빙수는 일제시대 때 잘게 부순 얼음 위에 단팥을 넣어 먹은 데서 유래한 것인데 1980년대에는 젤리를 추가한 팥빙수가 대중화되었다고 한다. 뭐 우리도 여름만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설빙이니 카페니 이런 곳에 가서 우유얼음이나 쥬스얼음 같은 것을 만 원 돈 넘게 주고 사먹기는 한다. 



<사진11>1970년대 경기 성남 아이스께끼를 먹고있는 아이들, <사진12> 1972 남영동 서울밀감하드


  사진들을 쭈욱 보면 얼음을 이용한 간식들이 대단히 집약적으로 발전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이전의 무언가가 사라진 것은 아니고, 사진을 보면 70년대까지도 아이스께끼 등을 사고팔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에 수많은 아이스크림들이 나왔고 그것이 현재까지 이어져 별반 다름이 없으니 우리가 먹는 얼음이 예전의 얼음이요, 우리가 먹는 아이스크림이 예전의 그것이다. 대표적으로는 1970년에 나온 해태제과의 '부라보콘',  롯데푸드의'아맛나'(1972), 아이푸드의'서주아이스주'(1973), 빙그레의 '투게더'·해태제과의 '누가바'(1974), 롯데푸드의'쮸쮸바'·해태제과의'바밤바'(1976), 롯데제과의 '조안나'(1977), 해태제과의 '쌍쌍바'(1979), 롯데푸드의 '빠삐코'(1981), 롯데푸드의 '돼지바'·'빵빠레'·롯데제과의 '죠스바'(1983), 롯데제과의 '수박바'(1986) 등등등이 있고 계속 나열하다간 끝이 없을 것 같으니 여기서 그만 적는 것으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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