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03 18:06, 느림 근서

  오후 2시. 여느 두통과 다름 없는 찡한 느낌이 머리 한 켠에 자리잡았다. 귀 언저리가 먹먹해질 즈음 외부업체와 미팅을 했고, 온 몸이 찰랑거리고 하늘이 팽팽 돌 즈음에는 (가라)예산을 3안 작성해서 다른 파트에 전달, 미팅내용 정리 후 내부회의를 마치니 사무실 자리가 하나둘 비기 시작했다. 퇴근을 해야겠다 싶어 자리를 정리하고 나오는데 고작 건물 입구 계단 두 칸에 가슴이 요동쳤다.
  아, 오늘은 넘쳤구나.
  호흡을 가다듬고 온 몸에 기합을 준 뒤 걸음을 뗐다. 찰랑거리는 마음을 누르고 가까스로 지하철역을 지나 상왕십리에서 147번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안도의 한숨을 크게 쉬니 속에서부터 쥐어짜지는 고통이 큰 숨만큼 나왔다. 헛 둘 헛 둘. 호흡마다 딸려오는 이것을 좀 버텨보려 손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첫 직장은 모 기업 전략지원그룹 디자이너였다. 사내클라우드에 경쟁사의 제안서가 떡하니 올려져 있던 돈 많고 빽 많은 회사. 랩의 막내였던 탓에 7시 출근 22시 퇴근은 일상이었고, 나 빼곤 전부 부장급 이상인 조직구조 탓에 주는 대로 커피 한 잔씩 하다가는 일과가 불가능한 곳이었다. 그곳에서의 업무는 참으로 단순했는데, 그저 그림이 들어가거나 사진이 들어가거나 그림을 넣고싶거나 사진을 넣고싶은 상사들의 로망을 채워주는 것. 물론 본업무는 제안서 작성 및 그래픽작업, 유관사업 전시작업 등등이었으나 '여자, 어린, 막내'의 힘은 위대했다. 이 업무에도 나름의 고충은 있었는데, 뭐 퇴근 좀 못 하는 정도를 언급하려는 건 아니고, 그냥 직급을 내 건 우선작업요청에 몸 둘 바를 모르겠었다는 정도. 나중에는 너도 나도 먼저라는 시어머니들의 요청을 감당할 수 없어 번호표 제도를 도입하긴 했었다. 그 외 특이사항은 식당메뉴중 라면이 제일 맛있었던 것과 사무실 안의 사무실 안의 사무실에 갇혀있었던 것, 회사 탈출을 방지하려 했는지 있을 건 다 있었다는 것, 담배 한 대 피려고 밥을 1분만에 마시고 편도 20분을 걷는 부장님들이 다수 계셨다는 것 정도가 되겠다. 부득이하게 두 번째 직장을 얻게 되고는, 직속 부장인 크리에이티브 마스터님의 가르침을 받아 한 달쯤 프리라이더로 생활하다 선임들의 인사를 받으며 인연을 마무리했다. 이곳에서 손모 양은 '커피 한 잔 할까?'의 깊은 뜻을 깨우치게 되었다고 한다.
  두 번째 직장은 하필 친척의 디자인기획회사였다. 아버지의 딸자랑과 거절 못 하는 고질병이 시너지로 작용해 전 직장을 다니며 틈틈이 무급노가다를 했던 것이 다시 악작용한 탓에 자존감과 노비문서를 저당잡혔던 곳. 그만두고싶다가 3일째에 튀어나왔고, 3개월째에 정말 그만뒀다. 그만둔 이유는 '(니)가족같아서 못 해먹겠다.' 였지만 표면상으로는 '다른 길을 찾아보려 합니다.' 였다. 이곳의 사장은 공무원을 18년 하다가 무당의 조언을 받아 덜컥 디자인회사를 차렸는데, 감각도 제로, 실력도 제로, 논리도 제로로 수렴했지만 갑에게 아부만은 잘 하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매일같이 기계적으로 '시안'을 찍어낼 수밖에 없었고, 한 달쯤 지나니 3일만에 200p 이상의 책 교열을 보고 내지 및 커버까지 찍어내는 경지에 이르렀다. 실제로는 디자인회사라기보단 이미지뱅크 털어 편집하는 회사에 가깝지만 우리나라 90%의 시각ㆍ편집디자인쪽 회사가 이런 실정이니 더이상은 생략하겠다. 무튼 뭐같긴 했어도 전 직장에서의 내공 덕택에 업무가 뒤질만큼 힘들었던 것은 아니었고, 결국 정말 힘든 건 사람 문제였다. 세상 잘나신 그분은 너무 잘나서 공사구분이 안 되는지, 직원들 다 있는 자리에서 인격모독부터 부모님 뒷담화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한시도 쉴 새 없이 쏟아내곤 했다. 당하는 사람은 하루가 다르게 피폐해지고 정신을 온전히 가누지 못하게 되고 셀프디스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는데, 너는 내가 키워야 하니 안 그래도 본인이 반토막낸 연봉에서 600을 깎겠다는 망언에 용기가 생겨 그만두겠다는 말을 할 수가 있었다. 이곳에서의 3개월은 이후 3년 이상 취업만 생각하면 몸서리칠 정도의 데미지를 남겼는데, 아직도 그때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질 못했는지 아닌 밤중에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때가 있다.
  3년이 넘는 공백은 프리랜서 생활이었다. 산업디자인과에서 환경과 제품을 전공하고 그래픽디자이너로 취직해 시각ㆍ편집디자이너를 거치니 영 경력이 개똥같아서,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그 당시에는 취직이 오르지 못할 나무같았다. 뭐 그렇게 어쩌다보니 반백수의 막이 올랐고 첫 작업은 지금도 끈질기게 악연으로 이어진 모 교수의 제품디자인 작업이었다. 툭하면 공장 잘 돌아간다는 소리를 하며 제자라는 이유로 모든 본인 일을 무급으로 떠넘기던 이 교수는 훗날 나를 주변에 달고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된다. 무튼 당시에 먹고 살기 위해 주로 하던 일은 제품디자인 및 제안서 등등이었고 이후 노가다가 적은 로고쪽으로 넘어갔다가 거의 최근까지는 브랜딩을 밥벌이로 삼고 있었다. 당시 프리랜서생활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모든 것에 장단점이 있듯이 프리랜서 또한 그렇다. 간단하게 언급하자면 장점은 시간조절이 나름 자유롭다는 것, 단점은 모든 책임 소재가 본인에게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똥 쌀 시간이 자유로운 대신 본인이 싼 똥은 본인이 닦아야 한다는 것.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똥은 본인이 닦기 전 이미 수습할 수 없는 상태로 퍼져 있다. 때문에 프리랜서는 그냥 똥을 안 싸는 게 맞다. 그리고 개인에 박한 사회구조인데다가 업종도 과포화상태라 돈도 잘 안 벌린다. 세상 모든 프리랜서분들 힘내세요.(중략)

  지금은 모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정부지원사업관리직을 맡고있는데 이곳에서도 모 교수와의 악연이 이어지고 있다. 이곳에서 제일 처음 내가 한 일은 내부고발. 두 번째는 사업계획서 등의 본 업무. 세 번째는 또 내부고발이다. 학교에 임용되고 하루 이틀 삼일이 지나도록 모 교수의 폭언, 욕설과 모욕, 뒷담화, 인격모독이 계속됐다. 그리고 이걸 견디느니 그냥 쓰레기 좀 되고 그만두겠다는 마음이 날 단장실 앞으로 이끌었다. 단장님 앞에서 '모 교수는 입이 조신없고 자신의 업무는 모두 남이 부담하고 있으며 이전 작업물도 다 남이 한 것이고 공금 횡령을 시도하려 하고 블라블라'를 떠들며 이게 계속되면 그냥 그만두고 법적 절차를 밟겠다고 했더니, 단장님께서는 한 달쯤 회의때마다 성희롱, 인격모독, 폭언 등을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후에도 나아지지 않아 또 한 번의 내부고발을 감행했는데, 팀장님께서 고발내용을 교수한테 다이렉트로 꽂으며 몇 마디 했다고 한다. 덕분에 내부고발이 걍 고발이 됐고 아직도 욕설무첨가 인격모독 및 보복성 일감 몰아주기로 업무과다에 시달리고 있다. 파트에는 교수 외 1인이 더 있는데 교수가 데려온 사랑스러운 멍청이다. 특징은 멍청하고, 특기는 멍청미 뽐내기인 건지 허세는 그득 찼는데 실속은 교수와 엇비슷하다. 하는 짓 보면 지능도 비슷한 것 같다. 한글도 제대로 못 쓰는 인간들 데리고 무얼하나 싶어 하나둘 남의 똥 치우다 보니 어느새 본업무 및 똥치우기 및 남의 일 걍 해주는 사람이 되어있다. 그냥 눈감고 넘어가지 못하는 내 탓이랴 하다가도, 교수 외 1인이 둘이 사귀는 모냥새로 붙어다니며 타바코나 빠끔대고 페이스북, 쇼핑몰이나 들여다 보는 걸 보면 빡이 친다. 아 그냥 차라리 이것들이 전부 내 일이였으면 군말없이 했을 것을 괜히 화만 넘칠 정도로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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