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라의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2000
〈川の流れのように〉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中島みゆき)가 1989년에 발표한 곡으로, 최후의 곡이 되었다.

사실 이 곡은 밝은 분위기의 새 싱글에 덤으로 들어갈 예정으로 만들어 졌으나, 미소라 본인이 이제까지의 여정을 돌아본다는 의미에서 타이틀로 할 것을 주장하면서 타이틀 곡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1989년 1월 7일에 한 시대를 이끌어왔던 쇼와 천황(昭和天皇:히로히토)이 붕어하면서, 1월 8일부터는 새 천황의 연호인 헤이세이(平成)가 사용되게 되었는데 11일에 발매된 이 곡은 결국 헤이세이 원년에 발매된 것이 되었다. 쇼와 시대를 이끌었던 가수 미소라 히바리 또한 이 곡을 발매한 뒤 몇몇 활동을 하다가 그 해 6월 24일에 향년 52세(사인은 간질성 폐렴으로 인한 호흡부전)로 사거하면서 최후의 곡이 된 사실은, 태평양 전쟁 직후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미소라가 헤이세이가 시작된 직후에 죽었다는 그 사실 또한 그를 전후 쇼와의 여왕이라고 불리게 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川の流れのように (흐르는 강물처럼)
知らず知らず 歩いてきた
모르는 사이에 걸어온

細く長い この道
좁고도 긴 이 길

振り返れば 遥か遠く
돌아보면 아득히 먼

故郷が見える
고향이 보여

でこぼこ道や曲がりくねった道
울퉁불퉁한 길과 구불구불한 길

地図さえないそれもまた人生
지도조차 없는 그것도 또한 인생

ああ 川の流れのように
아아 흐르는 강물처럼

ゆるやかに いくつも時代は過ぎて
몇 번이고 시대는 부드럽게 흐르고

ああ 川の流れのように
아아 흐르는 강물처럼

とめどなく空が黄昏に染まるだけ
하늘은 끝없이 황혼으로 물들뿐
生きることは旅すること
살아간다는 것은 여행하는 것

終わりのないこの道
끝이 없는 이 길

愛する人そばに連れて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夢探しながら
꿈을 찾으며

雨に降られてぬかるんだ道でも
비가 내려 젖어버린 길이라도

いつかはまた晴れる日が来るから
언젠가는 또 맑은 날이 오니까

ああ 川の流れのように
아아 흐르는 강물처럼

おだやかにこの身をまかせていたい
이 몸을 편안히 기대고 싶어

ああ 川の流れのように
아아 흐르는 강물처럼

移り行く季節 雪どけを待ちながら
변해가는 계절 눈녹기를 기다리면서


김연자의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이 곡은 콜롬비아 레코드에서 발매된 이후, 잡다한 버전까지 합쳐 150만 장 이상이 판매되었다고 전한다. 그 이외에 다른 가수들이 부른 것까지 모두 합하면 다양한 판본이 존재하는데, 2000년에 히사이시 조(久石譲)가 어레인지한(목소리는 89년도 판을 이용)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2000이 발매되기도 했다.

우측 영상은
미소라와 비슷한 목소리를 가졌다는 소문이 있었던 김연자의 영상으로, 김연자 또한 1994년 NHK 홍백가합전에서 이 곡을 부르기도 했다. 1999년 NHK 홍백가합전에서는 텐도 요시미가 이 곡을 부르기도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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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alih.kr BlogIcon salih
    2009.10.12 05:56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어디서 많이 본 가사다, 라고 했더니..
    멜론에서 다운받은 이자연 버전이 있네요.

  2. BlogIcon 가는봄오는봄
    2010.01.08 19:52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린 미소라히바리 그녀의 뒤를 이어 김연자씨의 행운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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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卒業写真〉는 지금은 마쓰토야 유미가 된 아라이 유미(荒井由実)가 1975년에 발매한 세 번째 앨범 《COBALT HOUR》(コバルト・アワー)에 수록된 곡이자, 이후에 많은 가수들이 새로 부른 곡이다. 역시 유밍(ユーミン:마쓰토야 유미의 애칭)을 대표하는 곡 가운데 하나이면서, 또한 명곡으로 불린다.

졸업 시즌의 대표곡 가운데 하나지만, 사실 이 곡의 배경의 졸업하고 난 뒤의 추억이다. 근래에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지만, 졸업앨범에 자주 쓰이는 가죽 표지를 펼쳐보면서 예전의 일을 회상하기도 하고, 그 사람을 찾아보기도 한다. 곡 가운데 이야기하는 듯이 흔들리는 버드나무는 당시 유밍의 소속사였던 알파 스튜디오로 가는 길에 있던 나무가 모티브라고 전한다(-_-..).


卒業写真 (졸업사진)
悲しいことがあると開く皮の表紙
슬픈 일이 있으면 펼치는 가죽 표지

卒業写真のあの人はやさしい目をしてる
졸업사진의 그 사람은 다정한 눈을 하지요

町でみかけたとき何も言えなかった
거리에서 봤을 때, 아무말도 할 수 없었어요

卒業写真の面影がそのままだったから
졸업사진의 모습 그대로였기에

人ごみに流されて変わってゆく私を
사람들에게 휩쓸려 변해가는 나를

あなたはときどき遠くでしかって
당신은 가끔씩 멀리서 나무랐죠
話しかけるようにゆれる柳の下を
이야기하는 듯이 흔들리는 버드나무 아래를

通った道さえ今はもう電車からみるだけ
지나던 길조차도 이제는 전차에서 바라볼 뿐

あの頃の生き方をあなたは忘れないで
그 시절의 살아가는 법을 당신은 잊지 말아요

あなたは私の靑春そのもの
그대는 내 청춘, 그 자체

人ごみに流されて変わってゆく私を
사람들에게 휩쓸려 변해가는 나를

あなたはときどき遠くでしかって
당신은 가끔씩 멀리서 나무랐죠



이 곡은 이후에도 특히 인기를 끌었는데, 1988년에 이시다 히카리(石田ひかり)가 커버한 이후로 마르시아(マルシア), 스즈키 토오루(鈴木トオル), 이토 유카리(伊東ゆかり), 고토 마키(後藤真希), 가라사와 미호(唐沢美帆), 하마사키 아유미(浜崎あゆみ), 도쿠나가 히데아키(徳永英明), 이키모노가카리(いきものがかり), 마쓰야마 치하루(松山千春)까지 유명 가수들이 다시 불렀는데, 이 외에도 그냥 이 곡을 한 번쯤은 불러본 가수가 여럿 되는 정도로 사랑받는 곡이다.

원래 이 곡은 유밍이 하이 파이 세트(ハイ・ファイ・セット)에게 제공했던 곡인데, 다시 유밍이 부르면서 함께 알려진 곡이다. 하마사키 아유미는 이 곡을 수록하면서 자신의 앨범에 처음으로 리메이크 곡을 수록하게 되었는데, 중학교때 좋아하던 유밍의 노래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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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ひこうき雲〉는 지금은 마쓰토야 유미가 된 아라이 유미(荒井由実)가 1973년에 발매한 첫 번째 앨범의 제목이자, 그리고 그 해에 발매한 싱글에 수록된 곡명이다. 아라이 유미의 이 음반은 일본 음악사에 찬연한 이름을 남긴, 말없이 알려진 명반중의 명반으로, 이 한장에 일본 음악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요절한 옛 친구를 모티브로 한 곡이라고 전하는 비행기구름은, 누구라도 빠른 죽음에 비관하게 되지만, 주인공은 "그래도 행복하다"(けれど しあわせ)고 한다. 하늘을 동경하고, 말 그대로 비행기구름처럼 하늘로 사라져 간 사람에 대한 이해와 느낌이 그대로 담겨있다. 나중에 아라이 유미와 결혼하게 되는 남편 마쓰토야 마사타카(松任谷正隆)는 이 곡의 쓰인 코드의 의외성에 놀라 결혼하기로 결정했다고 농담삼아 이야기한다.

이 곡은 이후에도 유키무라 이즈미(雪村いづみ), 하세가와 기요시(長谷川きよし), 시바타 준(柴田淳), 오다 가즈마사(小田和正), 마쓰우라 아야(松浦亜弥), 사와 도모에(沢知恵) 등 많은 가수들이 다시 부르기도 했다.

이 두 사람이 잘 어울리는 곡이지만, 또 특히 잘어울리는 사람이 오다니 미사코이다. 일반적인 지명도는 높지 않지만, 그를 사랑하는 팬층은 견고하다. 2003년에 발매한 음반에서 그는 이 비행기구름을 노래했는데, 마쓰토야와는 다른 느낌으로 노래를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 최후 갱신일 가사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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買物ブギー (카이모노 부기)


今日は朝から私のお家は
오늘아침부터 우리집은

てんやわんやの大騒ぎ
부산시럽구로 난장판

盆と正月一緒に来たよな
추석하고 설이 같이 온 거 같이

てんてこ舞いの忙しさ
정신없구로 바빠부러

何が何だかさっぱりわからず
거시기가 거시긴지 하나도 모르것고

どれがどれやらさっぱりわからず
뭣이 뭔지 하나도 모르겄고

何もきかずにとんでは来たけど
거시기도 못듣고서 급하게는 왔는디

何を買うやら何処で買うやら
뭣을 사야는지 어데서 사야는지

それがゴッチャになりまして
고거이 엉망이 되가지고서

わてほんまによう云わんわ
내 참말로 별 수 없지

わてほんまによう云わんわ
내 참말로 별 수 없지


たまの日曜サンデーと云うのに
이따마다[각주:1] 일요일 썬데이라 카든데

何が因果と云うものか
무신 이유로 카는긴지

こんなに沢山買物頼まれ
요로코롬 엄치[각주:2] 장보라 시키갖고

ひとのめいわく考えず
남 엉성시러븐[각주:3] 거는 생각도 안하고

あるもの無いもの手当り次第に
있는거 없는거 꼴리는대로

ひとの気持ちも知らないで
남으 속도 모리민서

わてほんまによう云わんわ
내 참말로 별 수 없지

わてほんまによう云わんわ
내 참말로 별 수 없지


何はともあれ買物はじめに
뭣이 어떻든간에 장보기 시작해가

魚屋さんへととびこんだ
생선가게로 쪼치[각주:4] 들어강께

鯛に平目にかつおに
도미에 광어에 가다랭이에

まぐろにブリにサバ
마구로[각주:5]에 방어에 고등어

魚は取立とび切り上等買いなはれ
생선은 갓 잡은 죽이는 상등품 사이소 으메

オッサン買うのと違います
아재 살라는건 아인디요

刺身にしたならおいしかろうと思うだけ
사시미[각주:6] 뜨면은 맛있겠다 싶어갖고

わてほんまによう云わんわ
내 참말로 별 수 없지

わてほんまによう云わんわ
내 참말로 별 수 없지


鳥貝赤貝たこにいか
새조개 새꼬막 문어에 오징어

海老に穴子にキスにシャコ
새우에 아나고에 보리멜치[각주:7]에 쏙새우[각주:8]

ワサビをきかせてお寿司にしたなら
와사비를 묻히갖고 스시[각주:9]로 해먹으면

なんぼかおいしかろ
얼매나 맛있것노

なんぼかおいしかろ
얼매나 맛있것노

お客さん あんたは一体何買いまんねん
손님요 거[각주:10]는 도이체 뭐 살라카는교

そうそう私の買物は
으미 으미 내가 살라는거는

魚は魚でも
생선은 생선인디

オッサン鮭の缶詰おまへんか
아재 연어 통조림 없는교

わてほんまによう云わんわ アホカイナ
내 참말로 별 수 없지 축구[각주:11]아이가


丁度隣は八百屋さん
바로 옆에는 야채가게

人参大根にごぼうに蓮根
인삼 무시[각주:12]에 우엉에 연근
 
ポパイのお好きなほうれん草
뽀빠이가 좋아하는 시금치

トマトにキャベツに白菜に
도마도[각주:13]에 양배추에 배추에

胡瓜に白瓜ぼけなす南瓜に
오이에 김치참외 시든 가지 호박에

東京ネギネギブギウギ
도쿄 파 파 부기우기

ボタンとリボンとポンカンと
단추랑 리본이랑 뽕깡[각주:14]이랑

マッチにサイダーにタバコに仁丹
성냥에 사이다 담배에 은단

ヤヤコシヤヤコシヤヤコシヤヤコシ
엉성시러 엉성시러 엉성시러 엉성시러

アアヤヤコシ
아따 엉성시러

チョットオッサン今日は
보소[각주:15] 아재 잘있는교

チョットオッサンこれなんぼ
보소 아재 이거 얼맨교

オッサンいますかこれなんぼ
아재 있는교 이거 얼맨교

オッサンオッサンこれなんぼ
아재 아재 이거 얼맨교

オッサンなんぼでなんぼがオッサン
아재 얼맨교 얼매요 아재

オッサンオッサンオッサンオッサン
아재 아재 아재 아재

オッサンオッサンオッサンオッサン
아재 아재 아재 아재

オッサンオッサンオッサンオッサン
아재 아재 아재 아재

わしゃ(ツンボで)聞こえまへん
내래 (귀머거리라) 안들린당께

わてほんまによう云わんわ
내 참말로 별 수 없지

わてほんまによう云わんわ
내 참말로 별 수 없지


そんなら向かいのおばあさん
그라믄 건너가 할마씨요

わて忙しゅうてかないまへんので
내 정신이 없어가 그라는데

ちょっとこれだけおくんなはれ
쪼깨 요거 쫌 봐주소

書付渡せばおばあさん
서류 좀 보내주요 할마씨요

これまたメクラで読めません
이 또한 장님이라 못읽는디요


手さぐり半分何しまひょ
더듬더듬 대충 뭣인교

わてほんまによう云わんわ
내 참말로 별 수 없지

わてほんまによう云わんわ
내 참말로 별 수 없지

ああしんど
아따 디다




 전후(戰後) 쇼와(昭和) 중엽을 풍미한 「부기의 여왕」, 가사기 시즈코(笠置シヅ子)의 노래다. 가사기 시즈코는 1947년 「도쿄 부기우기」(東京ブギウギ)가 히트한 이후, 1948년에는 「사쿠라 부기우기」(さくらブギウギ, 2월), 「헤이헤이 부기」(ヘイヘイ・ブギ, 4월), 「하카타 부기우기」(博多ブギウギ, 5월), 「홋카이 부기우기」(北海ブギウギ, 9월), 「오사카 부기우기」(大阪ブギウギ, 9월), 「정글 부기」(ジャングル・ブギ, 11월), 「부기우기 시대」(ブギウギ時代, 11월)를 연이어 출시한다. 1949년에는 「홈런 부기」(ホームラン・ブギ, 7월), 「잽 잽 부기우기」(ジャブ・ジャブ・ブギウギ, 8월), 「나고야 부기」(名古屋ブギー, 11월), 「부기우기 무스메」(ブギウギ娘)를 출시하였으며 1950년에는 「카이모노 부기」(買物ブギー, 7월), 1951년에는 「알로하 부기」(アロハ・ブギ, 2월), 「오시마 부기」(大島ブギ, 9월), 「구로다 부기」(黒田ブギ, 10월), 1952년에는 「칠복신 부기」(七福神ブギ, 4월)까지 내면서 부기만 우려먹다가 몰락하게 되었다.

 그래도 일단은 부기 리듬을 타고 전후 일본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러한 모습은 1950년대를 전후하여 한국에서 나타난 미국을 선망하는 노래들과도 유사하다. 여하간 당시 유행하던 가수들이 가창력으로 승부하던 가수였다면, 가사기는 화려한 액션과 간사이(関西) 특유의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해 당시로서는 최신 경향과 무대 매너를 자랑했다. 나중에 미소라 히바리가 등장할 때까지 가사기는 슈퍼 스타로 군림했지만, 나중에 미소라 히바리가 가사기의 흉내를 내면서 등장한 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역사 뒤로 사라졌다.

 「카이모노 부기」(買物ブギー)[각주:16]는 1950년에 발매된 곡인데 무라사메 마사오(村雨まさを)가 가사를 짓고, 핫토리 료이치(服部良一)가 곡을 지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동일 인물이다. 원래 가미가타라쿠고(上方落語)[각주:17]의 나이몽카이(無い物買い)를 바탕으로 선데이 마이니치(サンデー毎日)가 주최하는 일극 쇼(日劇ショー)를 위해 만들어졌으나, 이후 일반 대중에게도 인기를 끌었다.

 일반적으로 돌아다니고, 또 리메이크 되는 곡에는 뒷부분이 잘려 있는데 이른바 「부적당한 부분」이라고 삭제된 부분이다. 장애인이 웃음의 소재가 된다는 이유에서인데, 이 노래의 모티브가 된 고전 라쿠고부터가 차별이라는 소재의 보고(寶庫)라 지금은 공연이 어렵다고 들었다고 카더라. 안타깝다던 사람은 이는 요새같은 천박한 표현이 아니라, 차별이지만 동기가 불순하지는 않다고 한다. 일단 50년이 넘은 명곡이기도 하니까, 중간에 자르는게 좋은지는 고민해 볼 문제.

 하여간 근만에 미친듯한 번역이지만, 이만큼 정확한 번역도 없으리라 자부해 마지 아니한다....
  1. 이따금의 방언. [본문으로]
  2. 엄청, 잔뜩의 방언. [본문으로]
  3. 귀찮은의 방언. [본문으로]
  4. 쫓아의 방언. [본문으로]
  5. 참치를 의미. [본문으로]
  6. 표준어는 회. [본문으로]
  7. 보리멸의 방언. [본문으로]
  8. 갯가재의 방언. [본문으로]
  9. 표준어는 초밥. [본문으로]
  10. 너, 당신(그) 등을 가리키는 방언. [본문으로]
  11. 바보를 가리키는 방언. [본문으로]
  12. 무의 방언. [본문으로]
  13. 표준어는 토마토. [본문으로]
  14. 중국 화남(華南)·타이완산의 귤의 일종. [본문으로]
  15. 보아라의 방언. [본문으로]
  16. 카이모노의 의미는 장보기, 쇼핑 등이며 곡에서는 장보기가 적절하겠다. 그러나 어감이 이상해서 카이모노 부기로 표시함. [본문으로]
  17. 오사카를 중심으로 공연되는 라쿠고<SPAN style="COLOR: #8e8e8e">(만담)</SPAN>.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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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오리리
    2013.01.13 13:59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정말 감사합니다ㅠㅠ
    번역하신 가사 담아가요~ㅠㅠㅠㅠ

  2. 일어에 우리말을 물들였네
    2013.01.24 05:40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번역 이쁘네-
    댓글도 왜이리 예뻐

    둘다 남아가 예쁘게했네

    좋다.
    밍숭맹숭한 일문보다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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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키모노가카리(いきものがかり)는 일본의 3인조 음악 그룹이다.

1999년 2월에 아마추어 밴드로 결성되었는데, 이키모노가카리라는 이름은 멤버 중 야마시타 호타카(山下穂尊)와 미즈노 요시키(水野良樹)가 소학교 시절에 생물반(生き物係)이었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처음에는 미즈노와 야마시타 두 사람이 활동하다가, 1999년 12월에 당시 거리 공연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여성 보컬을 가진 유니트를 만드는 것을 계획하면서 요시오카가 가입하게 되었다. 결성 이후에 에비나 시(海老名市), 아쓰기 시(厚木市) 등의 가나가와 현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2000년에는 미즈노와 야마시타의 수험때문에 활동을 중지했다가, 2002년 3월에 다시 활동을 재개한다. 그러나 음악대학으로 진학한 요시오카가 대학에서의 엄격한 연습으로 노래하지 않기로 좌절하면서 사실상의 재개라고는 볼 수 없었다. 그러나 2003년에 다시 활동을 시작하면서 어쿠스틱 중심이던 음악의 반경을 좀 더 넓히고, 4월에는 오다큐 오다와라 선의 혼아쓰기 역에서 라이브를 재개하게 되었다.

2003년 8월 25일에는 앨범 《정말 죄송하게도 퍼스트 앨범을 만들었습니다…》(誠に僭越ながらファーストアルバムを拵えました…)로 인디즈 데뷔를 한 것으로 시작으로, 2006년 3월 15일에는 싱글 〈SAKURA〉를 통해 메이저 데뷔를 달성했다. 이 곡은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텔레비전 중계 스폰서였던 NTT 동일본의 텔레비전 광고에 사용되면서 데뷔곡으로 잘 알려지게 되었다.

요시오카 기요에(吉岡聖恵, 1984년 2월 29일 생)는 가나가와 현 아쓰기 시에서 태어났다. 여성으로 키는 165cm. 가나가와 현립 에비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쇼와 음악대학 단기대학부 음악과 뮤지컬 코스를 졸업한 뒤에 보컬과 일부 곡의 작사를 맡고 있다. 오빠가 미즈노와 야마시타의 고등학교 동창으로, 고등학교 때 두 사람이 역 앞에서 하던 거리 공연에 뛰어들어 참여한 것이 가입(?) 계기가 되었다.

미즈노 요시키(水野良樹, 1982년 12월 17일 생)는 가나가와 현 에비나 시에서 태어났다. 가나가와 현립 아쓰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히토쓰바시 대학의 사회학부를 졸업했다. 리더로, 기타와 보컬, 작사와 작곡을 맡고 있다.

야마시타 호타카(山下穂尊, 1982년 8월 27일 생)는 가나가와 현 에비나 시에서 태어나 미즈노와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호세이 대학(法政大學) 사회학부를 졸업했다. 기타와 하모니카, 작사와 작곡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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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KIMEKI☆DooBeeDoo〉는 WaT의 여섯 번째 싱글 꿈의 도중(夢の途中)에 실린 곡인데, 이 e2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텔레비전 광고에서 등장하는 가공의 아이돌이다. 물론 WaT의 두 사람이 맡은 역할....

이 e2라는 것이 일본의 위성방송 플랫폼 사업자인 스카이퍼펙트 커뮤니케이션즈의 채널 e2 by 스카파-!(e2 by スカパー)에서 따온 것인데, 'e2'는 easy entry와 easy entertainment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WaT는 2007년 10월부터 이 이미지캐릭터를 맡고 있어서 저런 경악스런 영상이 나오게 되었다.


TOKIMEKI☆DooBeeDoo
毎朝駅前の喫茶店 君はぼんやりと外を眺めて
매일 아침 역 앞의 찻집 넌 멍하니 밖을 쳐다봐

なんだか気になるよ片思い
어쩐지 신경쓰이는 짝사랑

前髪気にしてるのは誰のため
앞머리에 신경쓰는건 누구 때문일까

声をかける勇気さえ 消えちゃうくらいドキドキ
말을 걸 용기마저 사라져 버릴 정도로 두근두근

視線が合う瞬間 時が止まるほど
시선이 만난 순간 시간이 멈출 정도로

好きさ
좋아해

これが恋なのかな?
이것이 사랑일까나?

TOKIMEKI☆DooBeeDooBeeDoo

君を思う度に張り裂けそうだよ
너를 생각할 때마다 터질 것 같아

僕のこの気持ちに気付いて
나의 이 마음을 알아차려

DooBeeDooBeeDoo

熱いハートの震えはもう止まらないよ
뜨거운 하트의 고동은 이제 멈출 수 없어

I love you

僕の大好きなウサギちゃん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사기쨩
「実はお話したい事があるんです」
「실은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는데」

「僕ずっと君の事がす..す..すっ..」
「나 계속 널 조.. 조.. 좋.. 」


好きさ
좋아해

なぜに切ないのかな
어째서 안타까운 걸까

TOKIMEKI☆DooBeeDooBeeDoo

君を思う度に張り裂けそうだよ
너를 생각할 때마다 터질 것 같아

僕のこの気持ちはどしようもないよ
내 이 기분은 어쩔 수 없어

DooBeeDooBeeDoo

君のハートを奪うまで諦めないよ
너의 하트를 잡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아

I love you

僕の大好きなウサギちゃん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사기쨩


처음 들었을 때부터 이 곡은 보통 곡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우타방에서 피로한 모습을 보니 정말로 이 곡은 물건이란 생각이 절로 들어버렸다. 이건 뭐야 하는 표정부터 웃겨 죽는 모습까지... 나도 그랬다.

하여간 요새 포스팅이 뜸하였는데 이런 괴한 곡을 소개할 수 있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상단의 영상은 e2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등장한 최초이자 최후의 우타방-_-이니 잘 감상하는 것이 몸에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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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かばん〉은 aiko가 2004년에 발표한 곡으로, 열다섯 번째 싱글 앨범인 동명의 싱글에 수록되었다.

일전에 aiko를 유밍(마쓰토야 유미의 애칭)에 이은 연애의 교조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그 표현을 수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 2000년대를 기점으로 특히 여성 가수가 부르는 노래에서 2인칭 대명사가 당신(あなた)에서 너(君:きみ)로 변화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특히 2000년대 중반에는 후자의 비율이 월등히 높음), aiko는 이 곡에서 전자의 대명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인 일이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조선에서도 누가 지적했던거 같은데 하도 오래되어서 기억은 안난다.


かばん (가방)

そのまんまのあなたの 立ってる姿とか 声とかしぐさに 鼻の奥がツーンとなる
당신이 그대로 서있는 모습이나 목소리나 동작에 코끝이 찡해져

同じ所を何度も何度も回って歩いて落ち着かなくて この気持ちは とまらない
같은 곳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돌아도 정리되지 않은 이 기분은 멈추지 않아

大きな鞄にもこの胸にも収まらないんじゃない?
커다란 가방에도 이 가슴에도 정리되지 않잖아

恥ずかしい程考えている あなたのこと
부끄러운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 당신에 대한 일

あの日から ずっとあなたの事が好きだったんだよ
그 날부터 계속 당신을 좋아했었어

知らなくたっていいけれど 本当は知って欲しいけど
알지 못해도 괜찮지만 사실은 알아주기를 원하지만

「もう放して、許して」闇の静けさに 潰れそうな狭間で 優しい両手が見えた
“이제 헤어져, 용서해줘” 어둠속의 고요함에 무너질 것 같은 틈으로 상냥한 두 손이 보였어

あたし あなたと知り合うまで 何をして生きてきたんだろうか? 忘れてしまいそうな程
나 당신과 만나기까지 무엇을 하며 살아왔던 걸까 잊어버릴듯한 정도로

大好きな場所も 涼しい匂いも 揺らめく星屑も 紐解くように少しずつ 一緒に知りたい
너무 좋아하는 장소도 시원한 향기도 흔들리는 별빛도 끈을 풀듯이 조금씩 함께 알고 싶어

ひたすらにあなたの方を向いてる この目は永遠と 心の中で思ってる 口に出して言えないけど
한결같이 당신을 향하는 이 눈은 영원을 속으로 생각하고 있어 입 밖으로 낼 순 없지만


특히 aiko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당신(あなた)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면, 역시 이것도 누군가 지적한 것처럼 10년동안 당신에 사로잡힌 불쌍한 여자라는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뭐 어떠한가. aiko가 인기를 끌고 있는 니유나, 언제나(라기보다는 대부분의) BL이 같은 스토리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나 어떻게보면 비슷할지도 모르겠다는 것이 지론이고. 나는 그러한 양 측을 모두 좋아한다는 것도 지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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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月の雨〉는 오오타 히로미(太田裕美)가 1977년, 제목처럼 9월에 발표한 곡이다.

잠깐 오오타에 대해 살펴보자면 1974년에 낙숫물(雨だれ)로 데뷔한 이래, 당시 가수로는 독특한 하이톤의 가련한 목소리나 외모가 귀여웠던 점 때문에 아이돌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원래는 캰디즈(キャンディーズ:1970년대 일본의 여성 아이돌 3인조)의 일원으로 데뷔하려고 했지만, 어쩌다보니 다른 사람과 뒤바뀌는 바람에 얼추 혼자서 데뷔하게 되었다.

당시에 대두한 이른바 뉴뮤직(new music)의 이미지와 아이돌의 이미지의 중간쯤이라는 독특한 위치에 있었는데, 당시의 아이돌 가수에게는 없던 깨끗한 이미지에다가 뉴뮤직에서 흔히 나타나던 어둡고 고고하던 이미지도 없어 대학생 등에게서 절대적인 인기를 자랑하며 이른바 "학원제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처음으로 얻게된 가수라고 전한다.


九月の雨 (구월의 비)

車のワイパー透かして見てた
차의 와이퍼 너머로 보이는

都会にうず巻くイルミネーション
도회의 일렁이는 환상

くちびる噛みしめタクシーの中で
입술을 깨물고 택시를 타고서

あなたの住所をポツリと告げた
당신의 주소를 불쑥 내뱉었죠

September rain rain

九月の雨は冷たくて
구월의 비는 차가운데

September rain rain

想い出にさえ沁みている
추억까지 얼어붙고 있어요

愛はこんなに辛いものなら
사랑이 이렇게도 괴로운 것이라면

私ひとりで生きてゆけない
나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어요

September rain

九月の雨は冷たくて
구월의 비는 차가운데
季節に褪せない心があれば
세월에 사라지지 않는 마음이 있다면

人ってどんなに倖福かしら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ライトに浮かんで流れる傘に
불빛에 떠 흘러가는 우산에

あの日の二人が見える気もした
그 날의 두 사람을 본 기분이었죠

September rain rain

九月の雨は優しくて
구월의 비는 상냥한데

September rain rain

涙も洗い流すのね
눈물도 함께 흘러내리죠

愛が昨日を消して行くなら
사랑이 어제를 지워버릴 수 있다면

私明日に歩いてくだけ
나는 내일로 걸어갈 뿐이겠죠

September rain

九月の雨は冷たくて
구월의 비는 차가운데

九月の雨は優しくて
구월의 비는 상냥한데



이전에 히트했던 무명손수건(木綿のハンカチーフ) 이후에 오리콘 차트 7위를 차지한 구월의 비는, 이후 오리콘 10위권에 든 오타의 마지막 곡이 되었다(현재는 그렇지만, 나중에 또 있을지는 장담못함).

오오타 히로미는 나이를 먹어서도 목소리가 크게 변하지 않은 점으로도 유명한데, 그녀는 사실 1955년생으로 당시에는 20대였지만 지금은 벌써 50대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와 비교할 때 훌륭한 목소리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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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と君のあいだに〉나카지마 미유키(中島みゆき)가 1994년에 발표한 곡으로, 니혼테레비의 드라마 「집없는 아이」(家なき子)의 주제곡으로 쓰였다.

해당 드라마가 최고 시청률 37% 이상을 기록하는 등 인기를 끌면서 후속작 2가 제작되기도 했고, 이후에 극장판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다만 2에서는 나카지마 미유키의 나그네의 노래(旅人のうた)가 주제가로 쓰인 점이 다른 면이다.

드라마는 우측 영상의 처음에 등장하는 아다치 유미(安達祐実)가 아이자와 스즈(相沢すず) 역을 맡아 불우한 환경에서도 가난에 지지않는 모습을 그렸고, 결정적인 대사로 "동정할거면 돈을 줘!"(同情するなら金をくれ!)라는 대사는 유행어 대상에 뽑힐 정도로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空と君のあいだに (하늘과 너 사이에)

君が涙のときには僕はポプラの枝になる
네가 울 때에 나는 포플러 가지가 될거야

孤独な人につけこむようなことは言えなくて
고독한 사람이 되기를 기다리는 그런 말은 할 수 없지

君を泣かせたあいつの正体を僕は知ってた
널 울린 그 녀석의 정체를 나는 알고 있었어

ひきとめた僕を君は振りはらった遠い夜
말리는 나를 네가 뿌리쳤던 먼 밤

ここにいるよ 愛はまだ
여기에 있어 사랑은 아직

ここにいるよ いつまでも
여기에 있어 언제까지나

空と君とのあいだには今日も冷たい雨が降る
하늘과 너 사이에는 오늘도 차가운 비가 내리지

君が笑ってくれるなら僕は悪にでもなる
네가 웃어준다면 나는 악이라도 될 거야

空と君とのあいだには今日も冷たい雨が降る
하늘과 너 사이에는 오늘도 차가운 비가 오지

君が笑ってくれるなら僕は悪にでもなる
네가 웃어준다면 나는 악이라도 될 거야


위의 영상은 역시 집없는 아이의 엔딩 부분으로, 아다치 유미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PV 영상은 혹자가 평하기를 "강아지 택배"라고 한 적이 있는데, 전체적인 모습이 실로 강아지 택배이다.....
 
역시 가사는 윗 영상에 맞춘 1절만 실었으며, 전체 가사는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생략한다. pv의 배경은 역시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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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銀の龍の背に乘って〉나카지마 미유키(中島みゆき)가 2003년에 발표한 곡으로, 후지TV계 드라마 「Dr. 고토 진료소」(Dr.コトー診療所)의 주제곡으로 쓰였다.

이 곡은 나카지마가 직접 가사를 썼는데, 해당 드라마는 한국에도 익히 알려졌고(만화로 더욱 유명하다) 한국의 메디TV(-_-)에서 방영하면서 소개하기도 했다. 2003년도 이후에 2006년에는 다시 시즌 2(?)가 방영되면서 이 곡이 여전히 주제가로 쓰였는데, 한국에도 그 덕에 그나마 알려진 곡 가운데 하나이다.
 
특기할만한 점은 드라마 대장금이 지난 2004년에 타이완에 수출되었을 때 잘 알려진 오나라 대신에 이 은룡의 등에 올라가 주제가로 쓰였다는 사실인데, 한국의 한 스포츠기자는 이 곡을 두고 청춘물이나 멜로물의 분위기가 난다고 평한바 있다(아마도 음악을 듣지도 못하고 기사를 썼을테지-_-).


銀の龍の背に乘って (은룡의 등에 올라)
あの蒼ざめた海の彼方で
저 푸른 빛의 바다 저편에

今まさに誰かが傷んでいる
지금 막 누군가가 아파하고 있네

まだ飛べない雛たちみたいに
아직 날 수 없는 어린 새들처럼

僕はこの非力を嘆いている
난 이 무력함을 한탄하고 있네

急げ悲しみ 翼に變われ
어서 슬픔을 날개로 바꾸어

急げ傷跡 羅針盤になれ
어서 상처를 나침반으로 바꾸어

まだ飛べない雛たちみたいに
아직 날 수 없는 어린 새들처럼

僕はこの非力を嘆いている
난 이 무력함을 한탄하고 있네
夢が迎えに來てくれるまで
꿈이 맞으러 올 때까지

震えて待ってるだけだった昨日
떨면서 기다리기만 했던 어제

明日 僕は龍の足元へ
내일 나는 용의 발밑에서

崖を登り呼ぶよ「さあ、行こうぜ」
절벽을 올라 외칠 거야「자, 가자」

銀の龍の背に乘って
은룡의 등에 올라

屆けに行こう 命の砂漠へ
전하러 가자, 생명의 사막으로

銀の龍の背に乘って
은룡의 등에 올라

運んで行こう 雨雲の渦を
옮기러 가자, 비구름의 소용돌이를


은룡의 등에 올라 PV
 

위의 영상은 Dr. 고토 진료소 2006에서 쓰였던 엔딩 부분이다. 그에 비해 아래 영상은 이 곡의 PV인데, 여전히 배경으로 나카지마가 즐겨 사용하는(?) 섬과 의사가 등장한다.

사실 두 영상 모두 좋지만, 가사의 양이나 이런 점을 감안해 윗 영상을 올리고 가사를 그에 맞추었다. 2절까지 모두 포함하는 가사는 고친 가사를 가져왔던 지음아이(누지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흥미스러운 점은 이전의, 그러니까 80년대 이전의 나카지마와 그 이후의 나카지마의 몸짓(?)이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이 이야기는 후술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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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당시 23세의 나카지마 미유키
 
〈時代〉나카지마 미유키(中島みゆき)가 1975년에 발매한 두 번째 싱글 앨범이자 1993년에 발매된 앨범의 제목이고, 또한 곡명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동안 한결같은 사랑을 받아온 나카지마 미유키에 대한 이야기는 일전에 지상의 별과 헤드라이트 테일라이트(누지름)에서 언급한 바 있으니 각설한다. 하여간 이 곡은 1975년에 야마하음악진흥회가 주최한 파퓰러송콘테스트 본선회와 같은 해에 열린 야마하뮤직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 즉 금상을 수상했다.

이후에 좋은 가사와 함께 나카지마의 목소리가 어우러진 좋은 음악으로 평가받으며, 나카지마 미유키의 대표 곡 가운데 머리에 들어간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이다.


時代 (시대)
今はこんなに悲しくて 涙も枯れ果てて もう二度と笑顔には なれそうもないけど
지금은 이렇게 슬프고 눈물도 말라버려서 두 번 다시는 웃을 순 없을 것 같지만


そんな時代もあったねと
그런 시절도 있었지 라며

いつか話せる日が来るわ
언젠가 이야기할 날이 오겠지

あんな時代もあったねと
저런 시절도 있었지 라며

きっと笑って話せるわ
분명 웃으며 이야기 하겠지

だから今日はくよくよしないで
그러니 오늘은 끙끙대지말고

今日の風に吹かれましょう
오늘 바람에 날려 보내요

まわるまわるよ時代は回る
돌아요 돌아요 세월은 돌아요

喜び悲しみくり返し
기쁜 일과 슬픈 일을 반복하면서

今日は別れた恋人たちも
오늘은 헤어진 연인들도

生まれ変わってめぐり逢うよ
다시 태어나서 만날거에요


旅を続ける人々は
여행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いつか故郷に出逢う日を
언젠가 고향에 돌아갈 날을

たとえ今夜は倒れても
아무리 오늘 밤은 넘어져도

きっと信じてドアを出る
분명 믿고 문을 나서죠

たとえ今日は果てしもなく
오늘은 아무리 끝도 없는

冷たい雨が降っていても
차가운 비가 내린다고해도

めぐるめぐるよ時代は巡る
돌아요 돌아요 세월은 돌아요

別れと出逢いをくり返し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면서

今日は倒れた旅人たちも
오늘은 넘어진 나그네들도

生まれ変わって歩きだすよ
다시 태어나서 걷기 시작해요



이후에는 여러 상황에서 쓰이면서, 리메이크한 가수가 여럿 있었다. Time goes around라는 영문 제목을 가지고 있는데, 윗 영상에서 이러한 언급이 있는 것이 야마하 뮤직 페스티벌에서 받은 금상 관련 영상이기 때문이다.

당시의 나카지마는 23세로, 앳되 보임(*-_-*). 하여간 격동의 60년대를 거쳐, 또 다른 격동의 70년대를 살아가고 있던 일본인에게 이 노래는 어떤 의미였을까. 어떤 분께서는 이 노래와 당시 일본 적군파를 비롯해 학생운동을 하던 일본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가에 대해 이야기하신 바 있지만(실제적인 글은 내가 확인을 못하어 언급하지 않는다, 제보를 환영함), 지금 내가 이런 노래를 듣고 그 분께서도 이런 노래를 들으면서 비슷한 감회에 젖는다는 것은 이 노래가 그런 사람들에게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되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참고로 리메이크판이 여럿 있다, 나카지마 만이라도. 비교해보면 좋을 것이다. 또한 가사가 부르는 사람마다 살짝씩 다른데-_- 게시한 본이 가장 원판이라고 할 수 있으니 적당히 섞어 들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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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제57회 홍백가합전
 
〈夫婦善哉〉는 이시카와 사유리(石川さゆり)가 1987년에 발매한 곡이다.

일전에 게재한 아마기고에(누지름)가 큰 인기를 끌고, 한을 담은 살벌한 분위기를 자아냈던데 비해 이 메오토젠자이의 경우는 사이가 좋은 부부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제목이기도 한 메오토젠자이(夫婦善哉)는 오사카의 호젠지(法善寺) 옆에 위치한 단팥죽 가게의 이름이다. 단팥죽 가게의 상호지만, 사실은 메뉴가 유명해지면서 원래 오후쿠(お福)였던 가게의 이름이 바뀐 것으로, 젠자이는 단팥죽의 일종이다. 단팥죽 1인분을 시키면 두 그릇을 내오는데, 소문에 의하면(아직 내가 검증을 해보지 않아서-_-) 돈이 없는 부부가 한 그릇만 시켰는데 두 그릇이 나왔다는 예의 그 이야기로, 이러한 부부의 이야기를 담아 부부를 위한 단팥죽, 즉 메오토젠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나 뭐래나. 어디서 들은 바에 의하면 그릇이 매우 작다고 한다. 조선 단팥죽 개념과는 미묘하게 다른듯.


夫婦善哉 (메오토젠자이)

浮草ぐらしと あなたが笑う
부평초 생활이라고 당신이 웃지요

肩に舞うよな 路地しぐれ
어깨에 떨어지는 골목길의 가을비

何もなくても こころは錦
아무 것도 없어도 마음은 비단

ついてゆきます 夫婦善哉
따라서 갑니다 메오토젠자이

あなたの背中が 道しるべ
당신의 등이 길잡이

ないないづくしも 才覺ひとつ
없는 것이 많아도 재치 하나로

辛抱がまんの 花が咲く
참고 지내면 꽃이 피지요

旅は道づれ 夫婦は情け
여행은 길동무 부부는 정

なにがあっても 夫婦善哉
무슨 일이 있더라도 메오토젠자이

笑顔千兩で 生きてゆく
미소 천냥으로 살아가지요




동영상을 더 찾아보았지만, 도저히 이시카와 사유리가 불러서 듣기좋은 노래지만 아무래도 아마기고에나 쓰가루 해협 겨울 풍경이 너무 유명한 나머지 묻힌 노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긴, 아마기고에는 홍백전에 거의 4년마다 나왔고, 쓰가루 해협 겨울 풍경은 6년마다 나왔으니 말 다했다. 참고로 메오토젠자이는 87년도에 한번 나오고, 2006년에 두 번째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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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上の星/ヘッドライト・テールライト〉나카지마 미유키(中島みゆき)가 2000년에 발매한 37번째 싱글 앨범이자 각각 곡명이다.

오랜 시간동안 한결같은 사랑을 받는 가수는 흔하지 않지만, 나카지마 미유키는 1975년에 데뷔한 이래로 30년 이상 계속 사랑받는 가수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이런 사랑이 엔카와 같은 특정 장르가 아니라, 그가 포크를 비롯한 여러가지 장르를 시도하고, 또한 작사와 작곡으로도 잘 알려진 싱어송라이터라는 점으로 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1975년에 〈아자미양의 라라바이〉(アザミ嬢のララバイ)로 데뷔한 이래, 1970년대에 〈와카레우타〉(わかれうた), 1980년대에는 〈악녀〉(悪女)로, 1990년대에는 〈하늘과 너 사이에는〉(空と君のあいだに)과 〈떠돌이의 노래〉(旅人のうた)로, 그리고 2000년대에는 이 싱글로 1위를 차지하면서 4개 년대에 걸쳐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한 유일무이한 가수가 되었다.

특히 이 싱글은 발매 당시에는 전혀 화제가 되지 않았지만, 수록된 두 곡이 주제가로 쓰인 NHK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프로젝트X~도전자들~》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함께 인기가 올라가기 시작했고, 발매된지 130주가 지난 2003년 1월에는 싱글 차트 1위에 오르게 되었다. 차트 진입 이후 1위 획득까지 가장 긴 시간이 걸린 또 다른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TV 촬영을 잘 하지 않는 나카지마 미유키가 처음으로 NHK 홍백가합전에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되었는데, 나카지마는 2002년의 제53회 홍백가합전에서 도야마현의 구로베가와(黒部川) 구로베 댐 제4발전소 생중계로 지상의 별을 노래했다. 심지어 이때 처음으로  “움직이는 나카지마 미유키”를 본 사람도 많아 해당 홍백전 최고의 시청률인 52.8%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러한 배경으로 주요 팬 층인 중장년의 샐러리맨뿐만 아니라, 그 이상 또는 이하의 연령대에도 화제를 부르기 시작해 이후 연속 174주간 오리콘 싱글차트 100위에 드는 경이적인 기록을 수립하게 되었다.


地上の星 (지상의 별)

風の中のすばる 砂の中の銀河
바람 속의 묘성 모래 속의 은하

みんな何処へ行った 見送られることもなく
모두 어디에 갔나 바래다 줄 수도 없었지

草原のペガサス 街角のヴィーなす
초원의 페가수스 거리의 비너스

みんな何処へ行った 見守られることもなく
모두 어디에 갔나 지켜볼 수도 없었지

地上にある星を 誰も覚えていない
땅 위에 있는 별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아 

人は空ばかり見てる
사람은 하늘만 보고 있지

つばめよ高い空から教えてよ 地上の星を
제비여 하늘에서 가르쳐다오 지상의 별을

つばめよ地上の星は 今何処にあるのだろう
제비여 지상의 별은 지금 어디에 있니

崖の上のジュピター 水底のシリウス
절벽 위의 쥬피터 물 속의 시리우스

みんな何処へ行った 見守られることもなく
모두 어디에 갔나 지켜볼 수도 없었지

地上にある星を 誰も覚えていない
땅 위에 있는 별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아 

人は空ばかり見てる
사람은 하늘만 보고 있지

つばめよ高い空から教えてよ 地上の星を
제비여 높은 하늘에서 가르쳐다오 지상의 별을

つばめよ地上の星は 今何処にあるのだろう
제비여 지상의 별은 지금 어디에 있니

名立たるものを追って 輝くものを追って
이름난 것을 쫓아 빛나는 것을 쫓아

人は氷ばかりつかむ
사람은 얼음만 붙잡지

風の中のすばる 砂の中の銀河
바람 속의 묘성 모래 속의 은하

みんな何処へ行った 見送られることもなく
모두 어디에 갔나 바래다 줄 수도 없었지

つばめよ高い空から教えてよ 地上の星を
제비여 높은 하늘에서 가르쳐다오 지상의 별을

つばめよ地上の星は 今何処にあるのだろう
제비여 지상의 별은 지금 어디에 있니



이후 활동은 거의 보이지 않다가, 2005년 12월 28일에 《프로젝트X~도전자들~》의 최종회에 출연해 스튜디오에서 엔딩 테마인 〈헤드라이트 테일라이트〉를 열창해 카리스마적 존재를 다시 어필했다. 그 영향으로 해당 싱글은 2006년 1월 16일에 다시 오리콘 싱글차트 100위 안으로 복귀해, 통산 오리콘 싱글차트 100위에 든 기록을 183주로 늘렸다.

위의 가사는 NHK 홍백전의 가사이지만, 사실은 중간에서 나카지마는 가사를 다르게 부른 부분을 그대로 감안해 적은 것이다. 나카지마는 콘서트에서도 라이브 버전이란 표현으로 자신이 다르게 부르는 가사를 표현하는데, 후일의 콘서트에서는 자신을  “홍백전에서 가사를 틀린 나카지마 미유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수록된 두 곡 모두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보통 사람, 즉 땅 위의 별들이 세상을 움직이게 한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러한 덕분인지 이 곡에 관심을 가지던 사람들 가운데 샐러리맨이 많았다는 사실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최근에는 애니메이션 라키☆스타(らき☆すた)나 노다메 칸타빌레(のだめカンタービレ)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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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제24회 NHK 홍백가합전
 

〈さそり座の女〉는 미카와 켄이치(美川憲一)가 1972년에 발매한 곡이다.

1973년 홍백가합전 영상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미카와 켄이치도 1965년도에 데뷔 당시(?)를 즈음해서는 그렇게까지 오카마스러운 캐릭터는 아니었고, 그냥 중성적인 이미지의 캐릭터였다. 다만 노래는 〈여자와 장미〉(女とバラ)라거나 〈여자의 아침〉(おんなの朝)과 같은 여자가 주인공인 노래를 부를 뿐이었다. 물론 이 〈전갈자리의 여자〉 또한 여자가 주인공인 노래다.

1974년까지 7년 연속으로 홍백가합전에 출연하고 있던 미카와는, 1975년에 알 수 없는 이유(-_-?)로 뽑히지 않았는데, 이 때를 기점으로 암흑의 시간대로 돌입하면서 방송에서 볼 수 없게 된다. 이 시기에는 결국 지방영업(-_-)을 중심으로 활동하게 되는데, 1985년에는 대마 흡입 혐의로 체포되면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는다. 이 후에는 더더욱 텔레비전 화면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예명 또한 ‘美川憲一’에서 ‘美川けん一’로 바꾸게 된다(소리는 같음).


さそり座の女 (전갈자리의 여자)

いいえ私は さそり座の女
아녜요 나는 전갈자리의 여자

お気のすむまで 笑うがいいわ
기분이 맑을 때 까지 웃는걸 좋아하죠

あなたはあそびの つもりでも
당신은 장난 칠 생각이라도

地獄の果まで ついて行く
지옥의 끝까지 따라갈께요

思いこんだら
마음 먹으면

いのちいのち いのちがけよ
생명 생명 생명을 걸지요

そうよ私は さそり座の女
그래요 나는 전갈자리의 여자

さそりの星は 一途な星よ
전갈의 별은 한결같은 별이죠

いいえ私は さそり座の女
아녜요 난 전갈자리의 여자

お気の毒さま 笑うがいいわ
불쌍한 사람 웃어도 좋아요

女の心を知らないで
여자의 마음을 몰라주고

だまして汚して 傷つけた
속이고 더럽히고 상처 입혔던

ばかな男は
바보같은 남자는

あなたあなた あなたなのよ
당신 당신 당신인걸요

そうよ私は さそり座の女
그래요 나는 전갈자리의 여자

さそりの毒は あとで効くのよ
전갈의 독은 나중에 드러나죠




2007년 제58회 NHK 홍백가합전
 
1980년대 후반에 모노마네(ものまね) 붐과 함께 모노마네로 유명한 코미디언 고롯케(コロッケ)가 미카와의 흉내를 낸 것이 크게 인기를 끌었고, 이와 함께 미카와 본인도 오카마와 비슷한 어조로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기적적으로 부활하게 되면서 예명 또한 원래대로 되돌렸다.

이후에도 히트곡은 없지만, 주부 프로그램이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면서 새로운 지위를 확보하고 그의 독설이나 토크를 듣기 위해 주부들이 모이면서 사람을 끌 수 있는 연예인이 되었다. 고롯케와는 친한 사이를 유지하면서, 콘서트 개막에 출연시키기도 하는 등의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한편 모노마네 프로그램에 모노마네의 대상 본인이 출연한 것은 미카와가 처음이었다.

1992년부터는 홍백가합전에서 고바야시 사치코(小林幸子)와의 의상대결로도 잘 알려졌다. 위의 2006년 홍백전의 영상 또한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화려한 의상으로 잘 알려졌는데, 보라빛 파도가 치는 것 같은 드레스(-_-?)가 인상적이다. 였으나 유투브가 영상을 자르는 바람에, 2007년 홍백전의 영상으로 대체하였다. 유투브가 아니라 네이버, 파라파라 버전으로 2006년에 비해 상쾌하고 밝은 느낌을 주지만 섬뜩한 느낌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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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ellif.tistory.com BlogIcon Ellif
    2010.07.04 02:42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프린세스 텐코를 찾다보니 꽤 괜찮은 영상이 있어서 올립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vX2xoYgYSFA

    1. Re: Favicon of http://www.7t7l.pe.kr BlogIcon 천어
      2010.07.08 03:25 신고 삭제 주소

      이런데도 취미가 있으셨구만요.....

    2. Re: Favicon of http://ellif.tistory.com BlogIcon Ellif
      2010.07.08 11:42 신고 삭제 주소

      이런데가 아니라 '마술'이니까 찾아본겁니다 -_-;
      프린세스 텐코는 매지션이고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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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城越え〉는 이시카와 사유리(石川さゆり)가 1986년에 발매한 곡이다.

일전에 게재한 쓰가루 해협 겨울 풍경(누지름)과 함께 이시카와 사유리를 대표하는 곡이기도 하고, 또한 엔카를 모르는 (일본의) 젊은이라도 이 곡만은 안다고 할 정도로 인지도 있는 명곡이기도 하고.

제목이기도 한 아마기고에(天城越え)는 일본 100대 명산의 하나이기도 한 이즈(伊豆)의 아마기산(天城山)의 고개라는 의미인데, 가사에서도 이즈의 여러 명소가 등장한다.

조렌노타키(浄蓮の滝)는 이즈에 위치한 폭포의 이름으로, 조렌지(浄蓮寺)가 있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역시 일본의 100대 폭포의 하나에 들어간다(-_-;) 사요시구레는 가을 밤에 내리는 찬 비를 이르는 말인데, 북서계절풍을 타고 동해의 수분을 먹은 바람이 연안에 다다르면서 비를 뿌리게 된다(...). 간텐바시(寒天橋) 또한 이즈의 지명이다.


天城越え (아마기고에)

隠しきれない 移り香が
감출 수 없는 잔향이

いつしかあなたに 浸みついた
어느샌가 당신에게 배어 들었네

誰かに盗られる くらいなら
누군가에게 빼앗길 지경이라면

あなたを 殺していいですか
당신을 죽여도 괜찮을까요

寝乱れて 隠れ宿
잠을 깨우는 숨은 여관

九十九折り 浄蓮の滝
아흔아홉구비 조렌노타키

舞い上がり 揺れ堕ちる
날아오르다 떨어져내리는

肩のむこうに あなた… 山が燃える
어깨너머로 당신… 타오르는 산

何があっても もういいの
무슨 일이 생기든 이젠 괜찮아

くらくら燃える 火をくぐり
활활 타오르는 불을 뚫고서

あなたと越えたい 天城越え
당신과 넘고 싶어 아마기고에

口を開けば 別れると
입만 열면 헤어진다고

刺さったまんまの 割れ硝子
깨진 유리처럼 꽃혀 버린 채

ふたりで居たって 寒いけど
둘이 함께 있어도 춥기는 하지만

嘘でも抱かれりゃ あたたかい
거짓으로라도 안아주면 따뜻한 것을

わさび沢 隠れ径
와사비자와 숨은 길

小夜時雨 寒天橋
사요시구레 간텐바시

恨んでも 恨んでも
원망해도 원망해도

躯うらはら あなた… 山が燃える
몸은 반대로 당신에게… 타오르는 산

戻れなくても もういいの
돌아갈 수 없어도 이젠 괜찮아

くらくら燃える 地を這って
활활 타오르는 땅을 기어서라도

あなたと越えたい 天城越え
당신과 넘고 싶어 아마기고에




미즈키 나나의 아마기고에
원래대로라면 아마기고에를 비롯해 여러가지를 우리말로 옮겨야겠지만, 원음의 감각을 살리기 위해 그대로 옮겨버렸다. 첫 번째 동영상은 “전 나쁜 여자인가요”라는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데, 이시카와 사유리가 보여주는 그 목소리가 탁월하게 어우러진 음악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두 번째 동영상은 샤미센 등의 일본 악기로 연주하는 동영상을 쓸까 고민했지만, 미즈키 나나(水樹奈々)의 애창곡이 이 곡이라는 소문에 그 동영상을 써버렸다. 이시카와 사유리와는 다른 음색이지만, 그런대로 색다른 느낌을 전해주는 노래이다. 역시 이 동영상은 조선의 덕후를 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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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津軽海峡・冬景色〉는 이시카와 사유리(石川さゆり)가 1977년, 즉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에 발매한 곡이다. 당시 아이돌 가수와 같은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만한 인기를 얻지 못했던 이시카와 사유리는 이 곡으로 1977년의 일본레코드대상 가창상을 비롯해 FNS 가요제 최우수그랑프리를 수상하게 되었고, 같은 해의 NHK 홍백가합전에 처음 출연하는 등 단숨에 스타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곡 중에 등장하는 연락선은 아오모리와 하코다테를 잇는 세이칸(青函) 연락선 핫코다마루(八甲田丸)로, 1988년 3월에 세이칸 터널의 개통과 함께 폐지되어 지금은 아오모리 시에 전시(?)되어 있다. 함께 곡에 등장하는 닷피미사키(竜飛岬)는 쓰가루 반도의 최북단에 위치한 곶으로, 당시에는 교통도 불편하고 사람도 찾지 않던 곳이었지만 노래 덕분에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으며 관광지로 부상했다. 곡에서는 아오모리를 떠난 연락선이 멀리 닷피미사키를 바라보며 하코다테로 향한다.

1995년에는 아오모리 시에 있는 핫코다마루 앞에 노래비가 건립되었고, 1996년에는 닷피미사키에 노래비가 건립되었다.


津軽海峡・冬景色 (쓰가루 해협 겨울 풍경)

上野発の夜行列車 下りた時から
우에노발 야간열차 내렸을 때부터

青森駅は 雪の中
아오모리 역은 눈 내리는 중

北へ帰る人の群れは 誰も無口で
북으로 돌아가는 말 없는 사람들은

海鳴りだけを 聞いている
거센 파도 소리만 듣고 있어요

私もひとり 連絡船に乗り
나도 혼자서 연락선에 올라

凍えそうな鴎見つめ 泣いていました
얼어버릴듯한 갈매기를 보며 울고 있어요

ああ 津軽海峡冬景色
아아 쓰가루 해협 겨울 풍경
ごらんあれが竜飛岬 北のはずれと
이봐요 저게 닷피미사키 북쪽 끝이죠

見知らぬ人が指をさす
모르는 사람이 가르쳐줘요

息でくもる窓のガラス ふいてみたけど
숨결에 흐려진 창문의 유리 닦아보았지만

はるかにかすに 見えるだけ
멀리 희미하게 보일뿐

さよならあなた私は帰ります
잘있어요 당신 나는 돌아가요

風の音が胸をゆする 泣けとばかりに
바람 소리가 가슴을 흔들어 울 수 밖에 없는

ああ 津輕海峽冬景色
아아 쓰가루 해협 겨울 풍경



1977년 당시에 이 곡으로 성장한 이시카와 사유리는 이후 일본을 대표하는 엔카 가수로 나아가게 되는데, 일전에 이야기한 것(누지름)처럼 1983년에 출산때문에 게스트로 출연한 것을 포함하면 2007년의 제58회 홍백가합전까지 31년동안 계속 출연하면서 거의 5년에서 10년마다 한 번쯤은 이 곡을 부르게 될 정도로(2007년까지 총 5회) 이시카와 사유리를 대표하는 곡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1977년에 출연한 당시 19세의 이시카와는 다소 가벼운 음색을 보여주는데에 비해, 30년뒤인 2007년에 출연한 이시카와는 좀 더 깊이있고 한 많은(?) 목소리를 보여준다. 이시카와 사유리가 일본을 대표하는 엔카 가수로 성장하는 데에는 이러한 변화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1986년 일본레코드대상 금상을 수상하게 한 〈天城越え〉의 경우 이러한 목소리의 영향이 가장 크게 반영된 곡이 아닐까. + 동영상이 잘려서 교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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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도 치에(綾戸智絵, 1957년 9월 10일 ~ )는 일본의 여성 재즈싱어로,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키 148센티미터에 몸무게는 48킬로그램이지만, 풍부한 성량과 넘치는 박력을 가진 일본 최고의 재즈 보컬리스트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인과의 결혼과 이혼, 유방암 병력이나 다양한 직업을 거친 풍부한 인생 경험과 강렬하고 유쾌한 캐릭터로 인해 텔레비전의 토크 프로 등에서도 주목받았다. 농담이나 즐거운 이야기로 웃음이 넘치는 토크와 폭넓게 고른 곡을 넣은 자유분방한 스테이지는 재즈 팬뿐만 아니라 콘서트에 자주 가지 않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강한 감동을 주고 있다는 평이 있다. 또한 재즈는 어슴푸레하고 폐쇄적인 재즈클럽의 음악이라는 이미지를 밝고 즐거운 음악의 이미지로 바꾸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헐리우드 영화와 재즈의 팬이었던 부모의 영향으로, 재즈에 자주 노출되었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고교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앤젤레스의 라이브 하우스에서 노래와 연주를 시작했다.

1984년에 뉴욕으로 건너갔고, 성가대에 참가해 코네티컷이나 뉴저지 등을 중심으로 활약했다. 이즈음 결혼하였지만 곧 이혼하기도 한다. 이 시기에 경험한 재즈와 뉴욕에서의 가스펠과의 만남이 지금 그의 음악적 신념이 되어있다.

1991년 가을에 장남과 귀국해 고베를 중심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통역이나 관광가이드, 백화점 직원, 재즈보컬이나 교사 등의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도 오사카의 재즈클럽 등에서 노래하면서 재즈 보컬리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1998년 6월, 40세로 데뷔 앨범 《For All We Know》를 발매하면서 실질적인 프로로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한다. 그 후 연간 100회 이상의 콘서트에서 노래하며 매년 2장의 음반을 발표하고 있다. 그의 라이브에 감동한 이들의 소문이 전파되어 티켓의 발매와 동시에 매진이 되는 경우가 속출해 ‘가장 티켓을 사기 힘든 가수’라는 별명이 붙었다.

2001년 3월에는 제51회 예술선장 문부과학대신장려상(대중 예능 부문)을 수상했고, 그해 11월에는 화장품 회사 AVON에서 그 해에 사회에 공헌하여 가장 빛을 발한 여성에게 수여하는 ‘AVON Awards To Women’의 예술상을 수상했다.

2003년에는 홍백가합전(제54회)에 출연하여 〈테네시 왈츠〉(Tennessee Waltz)를 열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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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카와 사유리(石川さゆり, 1958년 1월 30일 ~ )는 일본의 엔카 가수이다. 구마모토 현 구마모토 시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이시카와 기누요(石川絹代)이다.

1973년에 〈かくれんぼ〉로 데뷔했지만, 아이돌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다른 아이돌 스타처럼 크게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1977년에 발표한 〈津軽海峡・冬景色〉와 〈能登半島〉가 크게 히트하면서, 일본을 대표하는 엔카 가수로 성장했다. 2007년까지 NHK 홍백가합전에 30회 출연했다.

1981년에 매니저였던 바바 겐지와 결혼해, 1984년에는 딸을 출산하지만, 1989년 2월에 이혼했다.

1977년의 홍백가합전(제28회)에서 〈津軽海峡・冬景色〉가 인기를 끌어 데뷔 4년만에 처음으로 출연했다. 1983년에는 출산을 위해 출연을 사퇴하고, 특별 게스트로 출연했다. 1984년부터는 다시 출연을 시작해, 2007년의 제58회 홍백가합전까지 24회 연속으로 출연했다. 총 출연 횟수는 30회로, 홍팀의 가수 중에서는 시마쿠라 지요코와 와다 아키코 다음인 3번째이다. 백팀의 이츠키 히로시와 함께, 1985년 이후에는 실력파 가수들이 넘치는 방송 마지막 부분에도 자주 출연했다.


- 연도 (회) 곡명 순서 상대 가수
1977년 (제28회) 津軽海峡・冬景色 19/24 고바야시 아키라
2 1978년 (제29회) 火の国へ 3/24 가류도
3 1979년 (제30회) 命燃やして 19/23 우치야마다 히로시와 쿨 파이브
4 1980년 (제31회) 鴎という名の酒場 17/23 호소카와 다카시 (1)
5 1981년 (제32회) なみだの宿 17/22 노구치 고로
6 1982년 (제33회) 津軽海峡・冬景色 (2) 19/22 무라타 히데오 (1)
7 1984년 (제35회) 東京・めぐり愛 14/20 아시야 간노스케
8 1985년 (제36회) 波止場しぐれ 18/20 무라타 히데오 (2)
9 1986년 (제37회) 天城越え 20/20 모리 신이치 (1)
10 1987년 (제38회) 夫婦善哉 18/20 기타지마 사부로 (1)
11 1988년 (제39회) 滝の白糸 19/21 이츠키 히로시 (1)
12 1989년 (제40회) 風の盆恋唄 20/20 기타지마 사부로 (2)
13 1990년 (제41회) うたかた 28/29 다니무라 신지 (1)
14 1991년 (제42회) 港唄 27/28 기타지마 사부로 (3)
15 1992년 (제43회) ホテル港や 26/28 호소카와 다카시 (2)
16 1993년 (제44회) 津軽海峡・冬景色 (3) 26/26 기타지마 사부로 (4)
17 1994년 (제45회) 飢餓海峡 24/25 기타지마 사부로 (5)
18 1995년 (제46회) 北の女房 23/25 기타지마 사부로 (6)
19 1996년 (제47회) 昭和夢つばめ 23/25 호소카와 다카시 (3)
20 1997년 (제48회) 天城越え (2) 23/25 모리 신이치 (2)
21 1998년 (제49회) 風の盆恋唄 (2) 21/25 호소카와 다카시 (4)
22 1999년 (제50회) 天城越え (3) 25/27 다니무라 신지 (2)
23 2000년 (제51회) 津軽海峡・冬景色 (4) 25/28 호소카와 다카시 (5)
24 2001년 (제52회) 涙つづり 24/27 호리우치 다카오
25 2002년 (제53회) 天城越え (4) 27/27 이츠키 히로시
26 2003년 (제54회) 能登半島 28/30 기타지마 사부로 (7)
27 2004년 (제55회) 一葉恋歌 26/28 히카와 기요시
28 2005년 (제56회) 天城越え (5) 22/29 포르노그라피티
29 2006년 (제57회) 夫婦善哉 (2) 14/27 모리 신이치 (3)
30 2007년 (제58회) 津軽海峡・冬景色 (5) 27/27 이쓰키 히로시 (3)

- 상대 가수의 이름 뒤에 붙은 숫자는 그 가수와 함께 홍백가합전 무대에 선 횟수를 나타낸다.
- 곡명의 뒤에 붙은 숫자는 홍백가합전에서 부른 횟수를 나타낸다.
- 출연순서는 ‘출연순서/총출연자'로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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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툽에 올린 미소라 히바리의 오마쯔리맘보입니다. 올린 즈음부터 지금까지 세계 각지[...]에서 덧글이 끊이지가 않길래 용기를 내어 이 블로그를 통하여 한국에도 소개하고자 합니다.

미소라 히바리는 쇼와 시대의 대표적인 가수로, 일본에서는 우타히메(歌姫 ; 디바)라고도 합니다. 이 곡은 1954년에 발표되었으며, 전후의 일본인들에게 희망과 꿈을 안겨주고 그들을 일으켜 세운 미소라 히바리의 대표적인 곡 중에 한 곡이기도 합니다.

해당 동영상은 "1988년 4월 11일에는 개장한지 얼마 되지않은 도쿄돔에서 열린 눈물의 부활콘서트인 「불사조 콘서트」"1981년 6월 25일 일본 부도칸에서 열린 데뷔 35주년 기념 리사이틀 실황서 공연된 모습이라고 합니다. 속칭 "왜색(倭色)"이 확연히 드러나는 영상이오니 일본에 관련된 일이면 심장이 약해지시는 분이나 왜색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노약자 혹은 네티즌께서는 재생을 삼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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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히바리
    2011.07.22 19:42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이 영상은 1981년 6월 25일 일본 부도칸에서 열린 데뷔 35주년 기념 리사이틀 실황입니다. 정정을 부탁드립니다.

    1. Re: Favicon of http://www.7t7l.pe.kr BlogIcon 천어
      2011.08.04 07:48 신고 삭제 주소

      지적에 감사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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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6월 24일 오전 0시 28분. 미소라 히바리(美空雲雀), 도쿄의 준텐도 대학 병원에서 간질성 폐렴으로 인한 호흡부전으로 별세. 향년 52세. 쇼와(昭和) 시대가 끝났다. 7월 4일, 사후에 일본 여성 최초로 국민 영예상을 수상.

한번 듣기만 하면 모든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었던 미소라. 1970년대 들어 인기가 떨어지고 말년에는 만성간염까지 걸려 사실상 가수로서의 수명이 다하는 듯했다. 그러나 1988년 5만명이 운집한 도쿄돔에서 눈물의 부활 콘서트를 가져 재기에 성공했지만 그것이 가수로서의 마지막 대형무대였다. 그가 남긴 노래만도 1500여곡을 헤아렸고 음반 판매량도 4000만장이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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