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전부터 한 가지 일에 집중을 잘 하기 힘들고, 또한 오래 있기가 힘들어 이것저것 손을 대다보니 자연스레 학문도 천학(天學)하는 모양이 되었다. 다행히도 여러 가지에 손을 대었다가, 개중 몇몇을 골라 더욱 깊이 파고 있으니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 천학을 면하지나 않을까 기대하고 있는 편이다.

요새는 그래도 천학의 문제가 아니라 무식이 죄는 커녕 도리어 자랑이 되는듯하다. 예전에는 그래도 못 배운 사람, 흔한 말로 무학자(無學者) 가운데에서도 교양있는 사람이 있고 품위가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요새는 개나소나 대학교육, 즉 고등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대학 4년 나와서는 지식인은 커녕 무식인을 면하기 힘들다. 게다가 그런 무식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대놓고 나는 무식하지 않은데 어찌 그러시오 하는 꼴이다.

무애(无涯:양주동) 선생이 이야기하기를 한자어가 많고 벽자(僻字)가 수두룩한 것이 버릇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하였는데, 그렇다고 우리가 한자어 벽자를 모두 내치고 한글만으로 언어 생활을 영위할 수도 없잖은가. 언어 생활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 또 한자어이고, 이것이 곧 우리말인것은 자명할진댄 어찌하여 좀 더 공부를 덜하려는 심산인지, 아니면 영어공부에 바쁜 것인지 무조건 까고 보려는 못된 심보가 자리잡아서는 이제는 근절하기 어려운 악습이 되었다.

이와 같은 악습이 또 조선사람은 매양 무엇을 날로 먹으려고 하니, 그래도 고등교육을 받는 식자(識者)들이 학점을 날로 먹으려는 모습이 가장 보기가 싫은지라 볼 때마다 한소리를 하고 싶으나 내가 성정(性情)이 거칠지 못하고 속이 좁은지라 뱉지를 못하고 있으니 장차 병이 될까 걱정스럽다.

하여간에 어느샌가 무식이 자랑 아닌 자랑이 되어서는, 나는 무식하오 하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광고를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으니 안쓰럽기 그지없다. 무학(無學)은 천학(淺學)이 아니고, 무학(無學)도 아니었는데 어느새 무학(無學)은 무학(無學)이 되었고 유학(有學)도 무학(無學)이 되었으니 해괴하다.(김향은이가 해괴하다는 표현을 해괴하게 여기던데 뭐 어떠한가, 하여간 저 유무학 표현을 이해한다면 그 또한 유학이라 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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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천어 트랙백 0 : 댓글 3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원회의 이경숙 위원장의 영어 교육 이야기와 관련하여 사회적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다. 당선자와 위원장 간에 모종의 커넥션이 있었다거나, 아니면 청계천처럼 전기로 물 끌어다 붓는 영어교육 만들겠다거나. 그러나 결국 현 교육의 문제는 영어교육이 아니라, 제 갈 길을 잊은 초·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이다.

초등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등교육으로의 기본교육이자 예비교육이며, 그리고 또한 고급 보육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초등교육에서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은 중등교육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또한 사회 일반의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수행하기 위한 한국어 교육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영어 교육이 초등학교 고학년에 배치된 이유 또한 중등교육으로 넘어가기 위한 기본적인 예비과정에서, 영어에 대한 친밀도와 접근성,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지, 정신나간듯이 영어를 배우라는 미친 이야기가 아니다.

중등교육 또한 고등교육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본이자 예비 교육으로서의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부분을 가르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지금처럼 대학 진학을 위한 진학기관으로 전락해버린 상황에서 중등교육은 고등교육이 아니라 진학교육만을 수행하게 되고, 결국 그 중등교육의 역할을 대학이라는 고등교육기관이 수행하는 엄청난 사회적 낭비를 낳게 된다. 대학 입학자의 학력 저하가 이러한 기저에서 생겨나는 것이고, 결국 고등교육기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면 명목상의 고등교육수혜자 즉 대학졸업자는 넘쳐나는데, 그 수준은 날이 갈수록 저하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기저에서 중등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한국어교육이 결국 영어교육에 의하여 소외된다면, 지금도 엉망인 한국의 한국어교육이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는 자명하다. 중등교육뿐만 아니라 고등교육을 거친 사람이 취업준비를 하지 않으면 몰(歿)하다 라는 표현을 인지하지 못한 지경에 이른 한국의 한국어교육은 어떠한 해답을 내놓을 수 있는가. 논술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이다. 기본적인 문헌 독해도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고등교육으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어휘력과 표현력을 기르는 일은 영어교육에서만 중요한 일이 아니다. 방향을 잃은 한국의 초중등교육과 덩달아 몰락해버린 고등교육에서도 지금 당면한 제1과제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누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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