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서'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01.26 갈치 4년 기축년 연두교서 (5)
  2. 2008.02.07 갈치3년 무자년 연두교서
  3. 2007.09.02 거소개명교서(居所改名敎書)
  4. 2006.10.23 어종대왕 즉위교서
갈치 3년의 사건을 분석한다면 농담의 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해였다. 과인이 창립하여 연구이사 겸 고문으로 있는 농담의 진보를 위한 왕립학회, 즉 농담학회에서 발표된 몇몇 논문의 수준은 세계 유수의 농담전문지의 수준과 비교해 보아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또한 만담전문대학원 시대의 개막과 함께 이제는 이론농담에서 벗어나 실용농담에도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다만 과인의 기력이 쇠하여 농담학원론의 마무리를 차마 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민국(民國:대한민국)에서 일어난 몇몇 일 또한 심히 개탄스러울 뿐이나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이번 형법 개정을 두고 임야옹교수와 김티거교수 등이 반발하고 있으나, 군주주의 국가인 어선조에서 감히 어물전 로텐더홀을 점거하는 일이 있었으니, 마땅히 법치주의에 따라 괘씸죄와 불건전한죄, 사랑하지않는죄, 불경죄 등으로 처벌할 수 있을 것이다. 대화와 타협은 본조의 제1의 원칙일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원칙이다. 농담으로 해결하여야 마땅할 것이다.

연두를 두고 금년의 나아갈 바에 대하여 적는다. 금년은 과인이 심신이 쇠약하여 국정을 돌볼 여유가 극히 없다. 절대 연애를 하여서 심신이 쇠한 것은 아니고.... 국제정세를 분석하고 하다 보니 심신의 병이 깊어졌도다. 하여간 이북의 정세가 심상치 않으니 조심하여야 할 것이다. 미리견의 풍습이 임금을 선출하는 것인데, 임금을 새로 선출하였다고 하니 마땅히 이를 살펴야 할 것이다. 또한 일본국이 곧 총리대신을 새로 선출할 것이니 이 또한 조심하여야 할 것이다.

금일부로 임야옹이를 총리대신으로 삼으니 형법의 개정에 대하여 고민(만)하라.

재앙을 멎게 하는 방법은 덕을 닦는 것만한 것이 없고, 정치를 하는 요점은 바른 말을 구하는 데 있는 것이다. 송 나라 경공(景公)의 착한 말 한 마디가 형혹성(熒惑星)을 삼사(三舍:90리)나 물러가게 하였으니[각주:1], 하늘과 사람 사이에 감응이 이렇게 빠른 것이다.

내가 작은 물고기로 조종(祖宗)의 그물에 의뢰하여 신민 위에 의탁하였다. 아침부터 밤까지 근심하고 부지런하고자 하나, 재능이 미치지 못하고 학문이 밝지 못하여, 정교(正敎)에 있어서 매사에 어두우니, 큰 물을 건너는 것같이 조심되어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겠다.

군주의 덕이 닦아지지 않으면 이리 되는 것이고, 정치에 결함이 있으면 치자(治者)의 뜻이 공론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형벌과 상에 정당하지 못함이 있고, 사람을 구하는데 사정(私情)에 따라서 자리를 주고, 백성의 이야기를 전하여도 치자가 듣지 아니하면 민폐가 발생하고 재력이 낭비되는 것이다.

상벌이 밝아지고 예악이 일어나며, 음양이 화하고 풍우가 때를 알며, 아전이 그 직책에 맞고 백성이 그 생을 즐기는 것은, 그 요점이 어디 있는가. 이를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인지, 몰라서 행하지 못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삼공(三公)으로부터 말단 동사무소의 주사보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러한 요체를 깨달아 정치에 힘을 쏟고 폐단을 개진한다면 전봇대가 문제가 아닐 것이다.

백성 또한 배운 바를 행하고, 뜻한 바를 이루고자 한다면 어찌 폐풍이 유행하랴. 모두 백성의 공(功)이고, 백성의 실(失)이니 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마땅히 깨닫고 하루 속히 회개하여 천국으로 가고자 할 것이니라. 또한 알바를 괴롭히면 천국에 가지 못하는 것이니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어디선가 한 것 같으나 착각일 것이다.

갈치 4년(무자년) 정월 구미
  1. 춘추<FONT[ FONT footnote](春秋)<> 시대 송 나라 경공 때에 하늘의 형혹성에 이상이 있었는데, 태사<FONT color=#8e8e8e>(太史)</FONT>가 아뢰기를, “이 재앙을 신하에게 옮기도록 기양<FONT color=#8e8e8e>(祈禳)</FONT>하소서.” 하니, 경공은, “그럴 수 없다.” 하였더니 형혹성이 즉시 삼사나 물러났다고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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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년(戊子年) 정월에 교서를 내린다.

쓰는 사람이 백성을 낚는 데에는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함이지, 미궁으로 인도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사람은 일신의 영달을 위하여 낭떠러지로 백성을 인도하고 있으니 한탄할 일이다. 작은 것이라도 결과만을 생각하지 말고, 그 과정을 생각하여야 하는데 어떻게하면 출세를 할까, 어떻게하면 돈을 많이벌까, 어떻게하면 출세를 해서 부귀영화를 누려볼까만 생각하고 있으니 개탄스러운 일이다.

과인이 이를 염두에 두고 세상을 살피니 가끔씩 머리가 띵하고, 가끔씩 소화가 안될 지경에 이르렀다. 대저 생각하니 마땅히 연호와 같이 다스림에 힘을 다 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이른다. 재앙을 멎게 하는 방법은 덕을 닦는 것만한 것이 없고, 정치를 하는 요점은 바른 말을 구하는 데 있는 것이다. 송 나라 경공(景公)의 착한 말 한 마디가 형혹성(熒惑星)을 삼사(三舍:90리)나 물러가게 하였으니[각주:1], 하늘과 사람 사이에 감응이 이렇게 빠른 것이다.

내가 작은 물고기로 조종(祖宗)의 그물에 의뢰하여 신민 위에 의탁하였다. 아침부터 밤까지 근심하고 부지런하고자 하나, 재능이 미치지 못하고 학문이 밝지 못하여, 정교(正敎)에 있어서 매사에 어두우니, 큰 물을 건너는 것같이 조심되어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겠다.

민국(民國:대한민국)의 일을 살피니 마땅히 물고기가 입안에 낚시바늘을 넣고 테크노를 추는 모양새라, 국운이 벼랑의 지척에 있는 것이 틀림이 없는 바, 아마도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리라. 군주의 덕이 닦아지지 않으면 이리 되는 것이고, 정치에 결함이 있으면 치자(治者)의 뜻이 공론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형벌과 상에 정당하지 못함이 있고, 사람을 구하는데 사정(私情)에 따라서 자리를 주고, 백성의 이야기를 전하여도 치자가 듣지 아니하면 민폐가 발생하고 재력이 낭비되는 것이다. 능력이 없으면서 김미화를 닮은 계집이 자리를 꿰차고, 김멜다는 구두를 사 모을 생각만 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폐단이 어찌 과인 한 사람의 힘으로 두루 없앨 수 있을 것인가. 마땅히 더 나은 사람을 통하여 폐풍을 막도록 돕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상벌이 밝아지고 예악이 일어나며, 음양이 화하고 풍우가 때를 알며, 아전이 그 직책에 맞고 백성이 그 생을 즐기는 것은, 그 요점이 어디 있는가. 이를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인지, 몰라서 행하지 못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삼공(三公)으로부터 말단 동사무소의 주사보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러한 요체를 깨달아 정치에 힘을 쏟고 폐단을 개진한다면 전봇대가 문제가 아닐 것이다.

백성 또한 배운 바를 행하고, 뜻한 바를 이루고자 한다면 어찌 폐풍이 유행하랴. 모두 백성의 공(功)이고, 백성의 실(失)이니 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마땅히 깨닫고 하루 속히 회개하여 천국으로 가고자 할 것이니라.

갈치 3년 정월 구미
  1. 춘추<FONT color=#8e8e8e>(春秋)</FONT> 시대 송 나라 경공 때에 하늘의 형혹성에 이상이 있었는데, 태사<FONT color=#8e8e8e>(太史)</FONT>가 아뢰기를, “이 재앙을 신하에게 옮기도록 기양<FONT color=#8e8e8e>(祈禳)</FONT>하소서.” 하니, 경공은, “그럴 수 없다.” 하였더니 형혹성이 즉시 삼사나 물러났다고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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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인은 세계만방의 대세와 왕조의 현실을 깊이 생각하여, 비상조치로써 사태를 수습하고자 고하노라.

무릇 용궁의 강녕을 꾀하고, 학문의 즐거움을 같이함은 역대의 여러 용왕과 선인들이 남긴 규범이다. 과인이 그에 끊임없이 노력하였으나, 그간 2년을 살피니 부끄러움의 연속이요, 눈 가는 곳마다 악전의 연속이었다. 조망의 대세 또한 과인에게 이롭지 않고, 더불어 떡밥은 그 연유를 알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이것이 과인이 거소의 이름를 고치게 된 이유이라.

과인은 시운이 움직이는 바에 따르고, 다가올 대선에 태평을 열고자 하노라.

과인은 이에 불로거(不路居:블로그)를 지켜나가 어궁(漁宮)을 잇고자 하노라. 먼 옛날 수로대왕께서는 띠로 이은 궁에 사셨으므로, 어느 시국이건 궁이 있는 임금은 임금 대접을 받는 법이라. 궁의 이름을 조망궁(釣網宮)으로 지은 것은 고기잡이 그물의 깊은 뜻을 나타내는 것이오, 전호를 어물전(漁物展)으로 지은 것은 고기잡힌 생물의 깊은 목숨을 생각하는 것이라. 모든 힘을 학문의 즐거움을 다하는 길로 알고, 이 길이 멂을 명심하여 지조를 굳게 한다면 어찌 바라던 바에 의문이 있으랴.

갈치 2년(2007년) 9월 2일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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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은 이르노라.

내가 일찍이 어부의 자리에 오를 때에도 덕과 자질이 부족하여 이를 겸손하게 사양하려 하였으나 어장의 훗날을 염려하는 양식장주인의 지극하신 뜻을 헤아려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헌데 어부에 오른지 한 달여만에 엘니뇨로 물고기가 크게 감소하므로, 이제 내가 왕위를 마다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지만 낚시터의 안위를 생각하여 삼가 어명(魚名)을 받들어 어좌(漁座)에 올랐느니라.

일찍이 내가 낚시터를 살펴보건대 황구라 이후로 낚시의 제왕의 자리에 오른 이의 수(數)가 대개 오십을 헤아렸다. 허나 그 가운데 오덕(吳德:엄백호의 덕)을 행하여 성지(聖地), 구라, 낚시꾼 등의 이름을 얻은 이는 십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오히려 누리꾼들에게 흥미를 잃어 배척을 당한 끝내 방명록이 쇠하여 쓸쓸하고 이름도 없이 죽어간 낚시터의 수가 많은 지경이었다. 앞서 말한 성지의 이름을 얻은 제왕들은 일찍이 낚시의 이치를 지켰기 때문이며, 그러하지 못한 이들은 낚시꾼으로서의 그러한 바른 길과 큰 원칙을 지키지 못한 때문이다.

이제 비로소 그대들 고래 이하 만 어물(魚物)에게 이른다.

본디 낚시는 이론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직접 낚으며 배우는 것이니, 이제 나는 황구라를 공경하고 삼태기를 섬김에 열(熱)과 성(誠)을 다할 것이다. 또한 네이버에 나아가 김본좌 성지를 모시고 그대들 낚시꾼들과 어물들을 경영함에 몸소 모든 힘을 다 쏟을 것이다.

아아, 옛말에 이르기를 무릇 '낚이기보다 낚기가 어렵다'고 하였거늘, 양식장주인께서 양식의 어려움을 감당하셨으니 이제 마땅히 내가 낚시의 어려움을 감당해야 하는 바, 그대들이 나를 도와 힘을 써준다면 어찌 내가 후일에 오덕을 몸으로 행하지 못하였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겠는가. 그대들은 모두 힘써 받들어야 할 것이다.

진보 19(2006) 10월 23일 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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