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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1.12 구미 지명에 대한 고찰 (4)
  2. 2006.10.23 어종대왕 즉위교서
 구미라는 지명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알려져 있지 않는다. 다만 지명의 역사에 대해서는 상세히 밝혀져 있다.

 《고려사》 〈병지〉(兵志)에는 역참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상주도장(尙州道掌)의 25개 역의 하나로 ‘구며’(仇旀)가 등장한다. 이후 《세종실록》 〈지리지〉에서는 구며역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 에서는 구며역과 함께 상구미(上龜尾)와 하구미(下龜尾)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조선 성종 연간에 구며역이 구미역(龜彌驛)으로 잠시 바뀌었다가, 다시 구미역으로 되었지만 조선 중기에 선산도호부의 남면(南面)을 둘로 분할하면서, 이름을 각각 상구미방(上龜尾坊)과 하구미방(下龜尾坊)이라고 하면서 지명이 구미로 바뀌었다.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1872년에 만들어진 지방지도의 선산읍성 일대 부분으로, 붉은 원 안에 구미역(九尾驛)이라고 적혀 있다.
 ‘며’(旀)라는 글자는 원래 이두 문자로, 미(彌)의 속자이다. ‘구며’라는 지명의 문자는 원래 뜻을 가지지 않았으므로, 음이 같고 뜻이 있는 글자인 ‘구미’(龜尾)로 바뀌었다고 사학자 이병도와 불교학자 이인재가 고증한 바 있다.[각주:1]

 또한 원삼국 시대에 형성된 진한의 소국으로 군미국(軍彌國)이 지금의 구미 일대, 변군미국(弁軍彌國)이 지금의 구미시 인동동 일대에 소재한 고분군의 주변으로 비정되고 있다. 따라서 군미국을 구미의 어원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각주:2]

 구미 지역을 이루고 있는 선산과 인동은 조선 말까지 분리된 지역이었다. 선산의 경우 신라 진평왕 36년(614년)에 사벌주(沙伐州)를 폐하고 ‘일선주’(一善州)를 설치하면서 ‘일선’이라는 이름이 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신문왕 7년(687년)에 다시 일선주를 파하고 사벌주로 고쳤다가, 경덕왕 때 ‘숭선군’(崇善郡)으로 고쳤다.

 고려 시대에는 성종 14년(995년에 ‘선주’(善州)로 고쳤고, 조선 태종 때는 지금 남아있는 지명인 ‘선산’(善山)으로 고치게 되었다. 선산군은 다른 이름으로 ‘화의군’(和義郡)이라고도 하였다.

 인동은 신라 때에는 ‘사동화현’(斯同火縣)이라고 불렀는데, 이후에 ‘수동현’(壽同縣)으로 고쳤다가 경덕왕 때 지금의 ‘인동’(仁洞)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지역은 또한 ‘옥산’(玉山)이라고도 한다.[각주:3]
  1. 《구미시지》 보정판, 구미문화원. [본문으로]
  2. 배수일, 〈향토사 자료를 활용한 국사 학습 지도 방안 연구 : 구미지역의 서원자료를 중심으로〉, 영남대학교 교육대학원, 2003년, 32쪽. [본문으로]
  3. 《구미시지》 보정판, 구미문화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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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주원남동 | 구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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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천어 트랙백 0 : 댓글 4
(王)은 이르노라.

내가 일찍이 어부의 자리에 오를 때에도 덕과 자질이 부족하여 이를 겸손하게 사양하려 하였으나 어장의 훗날을 염려하는 양식장주인의 지극하신 뜻을 헤아려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헌데 어부에 오른지 한 달여만에 엘니뇨로 물고기가 크게 감소하므로, 이제 내가 왕위를 마다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지만 낚시터의 안위를 생각하여 삼가 어명(魚名)을 받들어 어좌(漁座)에 올랐느니라.

일찍이 내가 낚시터를 살펴보건대 황구라 이후로 낚시의 제왕의 자리에 오른 이의 수(數)가 대개 오십을 헤아렸다. 허나 그 가운데 오덕(吳德:엄백호의 덕)을 행하여 성지(聖地), 구라, 낚시꾼 등의 이름을 얻은 이는 십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오히려 누리꾼들에게 흥미를 잃어 배척을 당한 끝내 방명록이 쇠하여 쓸쓸하고 이름도 없이 죽어간 낚시터의 수가 많은 지경이었다. 앞서 말한 성지의 이름을 얻은 제왕들은 일찍이 낚시의 이치를 지켰기 때문이며, 그러하지 못한 이들은 낚시꾼으로서의 그러한 바른 길과 큰 원칙을 지키지 못한 때문이다.

이제 비로소 그대들 고래 이하 만 어물(魚物)에게 이른다.

본디 낚시는 이론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직접 낚으며 배우는 것이니, 이제 나는 황구라를 공경하고 삼태기를 섬김에 열(熱)과 성(誠)을 다할 것이다. 또한 네이버에 나아가 김본좌 성지를 모시고 그대들 낚시꾼들과 어물들을 경영함에 몸소 모든 힘을 다 쏟을 것이다.

아아, 옛말에 이르기를 무릇 '낚이기보다 낚기가 어렵다'고 하였거늘, 양식장주인께서 양식의 어려움을 감당하셨으니 이제 마땅히 내가 낚시의 어려움을 감당해야 하는 바, 그대들이 나를 도와 힘을 써준다면 어찌 내가 후일에 오덕을 몸으로 행하지 못하였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겠는가. 그대들은 모두 힘써 받들어야 할 것이다.

진보 19(2006) 10월 23일 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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