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평소 좋은 농담 원론서의 필요성을 느껴왔지만, 반드시 이러한 점에 대하여 느끼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농담에 대하여 언급한 문헌이 극히 적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이론의 정립 또한 요원(遙遠)하게만 느껴졌으므로 원론서를 쓰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농담학에 투신한지도 수년이 되었고, 그동안 나름대로 깊은 연구를 하였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책도 한권 없고, 논문다운 논문도 크게 없는 것은 과인의 무능함과 나태함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 외에도 제대로 된 농담에 대하여 고민하는 사람이 적은 것도 원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농담이란 무엇인가. 이 명제는 이 책을 집필함에 있어 일관된 원리로 삼아 지키고자 한 것이다. 21세기의 지식농담시대에 있어서 과거의 농담에 대한 여러 원리가 그대로 적용될 수 있겠는가. 그러한 원리는 이미 과거의 농담에 대한 원리일 뿐, 우리의 현실은 그러한 농담의 개념이 생기던 당시에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문제(이를테면 수화를 통한 농담 등)를 그대로 맞닥뜨리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해결에 있어서 제대로 된 고민조차 없던 상태였다.

 21세기 지식농담사회에서의 농담학원론은 이러한 문제와 과제의 해결을 통하여 이루려는 목표에 한층 더 다가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주장은 있으나 그 근거가 없다면 뿌리없는 나무요, 열매없는 고자일 것이다. 또한 일정한 원칙 없이 농담에 관한 여러 사실만 열거하는 것도 크나큰 문제일 것이므로 내용상 불필요하다고 느낄만한 부분이 있을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은 다양한 이야기들이 서로의 원론을 가지고 부딫힌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논쟁들이 꼭 불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책이 나올 때에 많은 도움을 준 사람들이 있다. 농담대학에서 생명만담학을 연구하는 농담학의 다른 권위자 임야옹 교수는 특히 다양한 견해를 제시하여 주었다. 또한 그 동생 박달녀 여사 또한 견해를 통한 논증과 근거를 제시하여 필자에게 많은 반성의 기회를 주었다고 할 것이다. 최알젝 선생도 마찬가지이다. 농담대학교 총장을 맡고 있는 사보테니우스 3세, 즉 선인장 총장 또한 늦게나마 견해를 보강해주어 조금이라도 더 충실한 책이 되도록 도움을 주었다.

 농담의 진보를 위한 왕립학회의 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티거 선생 또한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여 농담학의 추가적인 발전점과 미래의 검토점을 제시하여 주었다 할 것이다. 특히 놀고먹기를 좋아하는 김향은이 또한 쓸데없기는 하지만 다양한 견해를 제시하여 주었다. 이러한 도움은 차기 어선왕조 형법 개정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같은 길을 가는 최아무개 또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비록 주식은 반토막이 났더라도 좋은 사람이 틀림없다. 그 외에도 이날개, Ellif de arsle 선생, 한로르리쉬, 방황치킨, 황이피 선생, 하나님 등이 도움을 주었다. 감사한다.


2008년 11월
서울에서

著  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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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구글에서 저렇게 접속을 하였으니, 크게 기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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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의 계 획 서
2008년 2학기 강좌코드 : ABCDEFG 강좌명 : 현대농담입문 교수명 : 김천어
연락처 hehe@he.com.ne.kr
수업
목표
1  한국현대농담의 주요 개념을 이해한다.
2  한국현대농담 주요 농담을 읽고 토론함으로써 체험적으로 이해한다.
3  
4  
5  
수업개요  한국현대농담의 개념을 강의를 통해 이해하고, 주요 농담을 학생들이 직접 읽고 발표하고 토의함으로써 체험적으로 이해한다.
수업진행 이론 실험/실습 실기 설계 기타
5% 0   0  95%
수업방법 강의 토의/토론 견학/현장강의 팀별/개별발표 온라인강의 기타
Y N N N N Y
평가방법 시험 발표 과제 출석 기타
5%   15%     80%
주교재 1  서명:현대농담의이해   저자명:김천어   출판사:창자와 비장
2  
3  
부교재 1  서명:한국농담사   저자명:김천어
2  서명:한국현대농담인연구   저자명:김천어
3  서명:한국현대농담 100년 대표농담 100선 연구 1~3   저자명:김천어
주별
강의
내용
1주  농담이란 무엇인가(1)
2주  농담이란 무엇인가(2)
3주  한국현대농담이란 무엇인가(1)
4주  한국현대농담이란 무엇인가(2)
5주  한국현대농담이란 무엇인가(3)
6주  한국현대농담이란 무엇인가(4)
7주  한국현대농담이란 무엇인가(5)
8주  중간고사
9주  [발표 및 토론] 김천어농담학이해 (1)
10주  [발표 및 토론] 김천어농담학이해 (2)
11주  한국현대농담학이란 무엇인가
12주  [발표 및 토론] 김천어농담학이해 (3)
13주  [발표 및 토론] 김천어농담학이해 (4)
14주  [발표 및 토론] 김천어농담학이해 (5)
15주  [발표 및 토론] 김천어농담학이해 (6)
16주  기말고사
과제 부교재로 들어있는 김천어선생저서를 모두 사서 읽은 후 독후감을 써서 구입한 책과 함께 제출할 것.(아참 책은 나중에 다시 돌려줍니다 ^^)
비고 이건 내가 책을 팔러 온게 아니고. 아 참, 주교재는 물론 사서 검사를 맡아야 합니다.
성적에 이의를 제기하면 무조건 낙제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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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에서 한자의 역할에 대하여

천어
2008. 6.

제1장 서론

농담에 대한 연구는 인류의 탄생 이래로 지속되어 온 것이다. 인류가 지구에 등장한 이래로 수십만 년동안 이루어진 농담은 농경사회와 산업사회, 그리고 21세기의 지식농담시대에 들어서 끊임없는 진보와 발전을 이루어 왔다.

21세기의 지식농담사회에서는 창조적인 농담이 중심이 될 것이다. 농담의 정보화는 인류가 지난 역사에서 수행해 온 농담을 체계적이고도 과학적으로 분류하는데에 크나큰 물결을 더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농담의 시대를 맞아, 예로부터 깊은 농담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한국에서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농담의 시대를 이끌 새로운 농담의 창출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는 경향이 깊다.

이러한 경향의 원인으로는 지난 한국의 역사에서 펼쳐진 농담을 되돌아보고 성찰하여, 이를 새로이 창조해 나아가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움직임이 크지 않은 것에서 기인한다. 서구 문명의 경우에는 현대 영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제국의 농담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 르네상스를 일구어낸 르네상스 농담, 그리고 심지어는 구약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히브리어 농담까지 연구·비판하여 새로운 자세를 만들어내는 형편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는 개화기 이후 개화(開化)의 물결 속에서 서구의 농담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또한 해방(解放) 이후에는 미국식의 농담을 무차별적으로 수입하면서 지난 농담의 시간을 겸허하고도 지속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경향이 크다. 가깝게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의 농담, 대표적으로 정다산의 농담에 대한 연구 또한 근래에 들어서야 조금씩 수행되고 있는 형편임을 생각한다면, 고려 또는 그 이전의 삼국 시대의 농담에 대해서야 오죽이랴.

본 고(考)에서는 이러한 전반적인 사정에 대한 기점(起點)을 이루고자 하는 의미에서, 한국어 농담에서 한자가 가지는 그 비중을 탐색하고 또한 그 전환점을 모색하는 데에서 그 의의(意義)를 찾을 것이다.


제2장 한자를 이용한 농담의 현황

한자를 이용한 농담의 경우 지금도 그 사례는 상당한 편이다. 이를테면 굿데이의 기사 제목에서 사용된 「유럽 후궁문화 꽃피운 性君」의 경우에는 ‘성군’(聖君)과의 음적(音的) 동일성을 이용한 훌륭한 농담의 예가 될 수 있다[각주:1].

뿐만 아니라 신문윤리위원회가 비공개로 경고(했다는데 이미 다 까진)한 대상으로 「弗어나는 오일머니」, 「濠好 아줌마」, 「칼의 노래를 佛러본다」 등도 독음(讀音)이 같다는 이유로 사용된 낮은 단계의 농담에 해당한다.

이렇듯 신문 기사에서 한자를 한글과 섞어쓰는 것은 기사의 함의를 보다 간명하게 표현할 수 있고, 독자의 눈길과 함께 익숙한 표현으로 다가갈 수 있는 큰 효과를 가진다. (다만 억지조어라는 이유로 언어체계를 파괴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낮은 단계의 말장난적 농담 이외에도 순수하게 한자를 이용한 농담도 가능하다. 이를테면 “힘은 하나일 때에는 하나이지만, 협력하면 넷이 된다.”는 식의 농담이다. 이것은 힘을 나타내는 한자 ‘력’(力)에서는 ‘력’(力)이 하나가 나타나지만, ‘협력’(協力)의 경우에는 ‘력’(力)이 네 차례 나타난다는 것에서 유래한 농담이다.

이렇듯 한자어를 사용하는 농담의 경우 간단하고 1차적인 농담뿐만 아니라, 그 한자의 내용을 이용한 2차적인 농담, 그리고 그 이상의 3차적인 농담도 가능하다.

1차적인 농담과 2차적인 농담의 구분 기준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학설이 갈린다. 20세기 말까지 유행하던 학설의 경우에는 1차적 농담과 2차적 농담의 구분에 대하여 그 함의(含意)를 기준으로 하고자 하였으나, 그 기준이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아 현재는 주장하는 학자가 없다.

21세기에 들어서 유력하게 제기되는 견해로는 양자의 구분에는 한자의 사용이 주(主)가 되느냐, 부(副)가 되느냐로 구분하자는 견해와 함께 재미의 농도가 빅재미(Big在美)인 경우 2차적인 농담이나 사소한 재미인 경우에는 1차적인 농담이라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 양 학설 또한 앞에서 언급한 학설에 대한 비판과 동일한 비판이 가능하다.

마지막 견해로 농담의 1·2차적 구분에는 실익이 없으니,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학설이 있다. 그러나 농담의 차수(次數)를 구분하는 것은 농담학을 더욱 복잡하게 하고, 또한 농담학을 더욱 쓸데없는 농담에 치중하는 것을 지향하게 하는 큰 효과가 있으므로 실익이 없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에 한자의 사용이 주(主)인지를 기준으로 구분하는 제2설이 타당하다. 다만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으나, “농담은 인간이 하는 것으로 필연적으로 주관적이다”[각주:2]라는 지적을 생각한다면 구분 기준의 모호성에 대하여는 새삼 지적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제3장 결론

이상과 같이 농담에서 한자의 역할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끝이다.


각주
  1. 다만 저 기사는 억지조어라는 이유로 경고를 먹었다. [본문으로]
  2. 천어, 농담이란 무엇인가 : 쓸데없는 농담을 중심으로, 2008년, 농담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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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의 진보를 위한 왕립학회 창립을 진심으로 경하합니다.

인류는 탄생 이래 수십만 년동안 지구 상에서 농담을 해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 나일강과 유프라테스강, 인더스강과 황하 등의 하천 유역에서 농경을 시작하고 정착을 하게 되었고, 이러한 농경시대를 거쳐 18세기에는 산업사회를 맞았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류는 21세기의 지식농담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지식농담사회에서는 창조적인 농담, 농담의 인재, 농담인이 중심이 되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농담의 정보화를 통해 농담의 영역은 이제 혁명적으로 넓어집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농담의 격차 또한 확대되고 있습니다. 농담학의 선구자인 과인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만일 농담에 약한 사람들에게 농담화 교육을 적절히 시킨다면 수많은 농담학 연구자들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시대가 오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1세기는 농담의 시대입니다. 한국은 예로부터 깊은 농담의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고급문화를 통해 창의적이고 혁신적으로 발전한 한국의 농담은, 새로운 농담의 문화를 창조하는데 앞장 서 왔습니다.

우리는 최근 세계의 안타까운 정세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지구 인류가 좀 더 넓은 자세로 농담을 하기를 바랍니다. 농담은 인류를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지구를 즐겁게 하고, 나아가서는 인류의 평화에 가장 크게 공헌할 것입니다.

미리견의 사람들은 이른바 어메리컨 조크(American joke)라는 것을 합니다. 이러한 그들 특유의 농담 문화는 지금의 미국을 풍요로운 국가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음은 여러 연구에서 밝혀질 바 있을 것입니다. 아이젠하워는 1953년 북한과 전쟁 중에 대화를 통해 휴전협정을 성립시키고,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왔습니다. 이러한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농담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여간 농담은 중요합니다.

닉슨도 중국의 마오쩌둥을 찾아갔습니다. 그 결과 중국은 개혁과 개방을 통해 오늘날의 변화를 맞았습니다. 레이건소련을 악마의 제국이라고 비판했지만, 그 악마와 대화해 소련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해, 오늘의 민주화를 실현시켰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모두 농담이 들어있었을까요? 그럴것이라고 과인는 생각합니다.

농담은 깊은 친밀함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좀 더 친밀해지기 위해서, 소원한 사람과의 농담은 소원을 이루어 줍니다. 국가의 이익이나 세계평화에 필요하다면 악마와도 농담을 해야합니다.

오늘 지식농담시대에 아프리카나 서남아시아까지 세계의 모든 사람이 참여하도록 길을 열어야 합니다. 학회의 최대의 목표는 세계의 평화 속에서 농담을 보급하고, 진보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러한 목적의 실현을 통해 농담은 평화의 깃발로 태어날 것이라고 과인은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농담의 진보를 위한 왕립학회 연구이사 겸 고문
어선왕조 임금


농담의 진보를 위한 왕립학회(The Royal Society for the Improvement of Nongdam), 줄여서 왕립농담학회가 문을 열었으므로 내가 창립사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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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대학교 농담학 박사 학위 논문

농담이란 무엇인가
- 쓸데없는 농담을 중심으로 -

천어
2008. 2.


제1장 농담가와 농담(弄談)

농담[각주:1]이란 무엇인가. 필자는 이 질문 자체를 무의미하거나 소용없다고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 각각 『농담 근대사』의 1차 및 2차 간행과 관계되는 구절을 빌려서 이야기의 주제로 삼으려고 한다.

19세기가 후세에게 전해주려고 하는 농담을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유용한 방식으로 건넬 수 있게 기록해 두기에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이다. … 우리들은 적절한 분업에 의하여 이를 수행할 것이며, 최근의 문서나 국제적인 연구에 의하여 도출된 가장 원숙한 농담들을 모든 사람에게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우리 세대에 완전한 농담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들은 재래의 안습적인 농담을 청산할 수 있고, 또한 한 지점에서 또 다른 지점으로 가는 길에서 우리가 도달한 지점을 보여줄 수도 있다. 오늘날 우리들은 어떠한 농담도 건넬 수 있고, 따라서 어떤 사실에 대하여도 농담을 시도할 수 있다.


권위 있는 농담인들이 이처럼 서로 격렬하게 대립하는 농담에 대해서는 연구해야할 가치가 크다. 나는 내 자신이 1990년대에 유행한 농담은 모두 넌센스적인 것들이라고 단정할 만큼 충분히 현대적이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나는 또한 2000년대에 등장한 농담은 모두 의미있다고 생각할 만큼 앞서있지도 않다. 이미 짐작했겠지만 사실 그와 같은 농담은 농담의 본질이란 문제보다도 더 포괄적인 문제로 우리를 인도한다. 농담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우리들의 대답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 자신이 처해있는 시대적 위치를 반영하며, 따라서 그 대답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보다 포괄적인 문제에 대한 우리들의 답의 일부가 된다.

흔히 나는 농담했다고 한다. 물론 그것은 진실이 아니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농담을 던진 사람이 이를 설명할 때에만 농담은 말한다. 그리고 농담에 발언권을 줄 것인가를 결정하고, 어떤 내용을 어떻게 농담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농담가이다. 김국진의 농담이 1990년대에 유행한 것이라고 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그 농담이 그 시대에만 유행하고 이후에는 사장되어버린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김국진 이전이나 이후의 수백만의 농담이 건네진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데 반해, 김국진이 작은 농담을 하나 던진 것이 유행한 것이 되는 것은 농담가들이 그 나름의 이유로 그것을 농담사적인 사건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실없는 농담이든 실있는 농담이든 생각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는 개뿔도 아니다. 모 교수는 농담을 ‘실재에 대한 인식 태도의 선택적 체계’라고 말한 적이 있다. 좀 더 쉬운 말로 표현할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괘씸하다. 그러나 농담은 바로 그런 것이다. 농담가는 반드시 (농담을) 던져야 한다. 농담가의 발언으로부터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존재하지만 발언되지 않은 농담 사실이라는 해괴한 이야기를 믿는 것은 미친짓이다 ― 다행히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1990년대의 농담 숭배는 문서 숭배로 완성되고 정당화되었다. 민주화의 열풍을 타고 등장한 이른바 정치 꽁트는 전대갈과 물태우라는 두 전직 대통령 뿐만 아니라 YS이라는 현직 대통령, 그리고 삼김의 다른 두 축이었던 JP와 DJ마저도 희화화시켰다. 경건한 농담가는 머리를 숙이고 문서에 다가서서 떨리는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문서에 있는 것은 대체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문서들 ― 이를테면 이순자 여사가 영화 『士官과 紳士』를 “土官과 神土”라고 읽었다는 둥의 이야기 ― 은 농담가가 농담을 던질 때 우리에게 과연 무엇을 말해주는가. 어떠한 농담도 농담의 창작자가 생각했던 것 이상을 말해주지 않는다. 이렇게 말해도 좋을지 모르나 농담가의 문서 이용은 곧 농담의 처리 과정이다.

지난 시간동안 농담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일련의 진지하지 않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별 영양가는 없으니 생략한다. 다만 이탈리아의 농담학자 B. 그렇지(Groce)는 독일의 농담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받은 이른바 “농담철학”을 제창하였다. 그렇지는 모든 농담은 ‘우스갯소리’라고 선언했는데, 이 말은 별 의미가 없다. 따라서 생략한다.[각주:2]

하여간 농담을 할 때에는 언제나 농담가의 머릿속에서 오가는 농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무 농담도 하지 못하는 경우 너는 바보거나 아니면 너무 진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농담은 생선가게에 널린 문어와 같은 것은 결코 아니다. 농담은 광대하고 때로는 접근할 수 없는 대양(大洋)을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와 같다. 따라서 농담가가 어떤 떡밥을 던져 물고기를 낚을 것인지는, 부분적으로는 우연도 작용하지만, 주로 바다의 어느 지점에서 떡밥을 던지는가 또는 까는가 찬양하는가의 여부에 따라 좌우된다 ― 이 두 요소는 물론 그가 낚으려는 누리꾼들의 종류에 따라 결정되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주로 까는 떡밥이 성공한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농담가는 자신이 던지려는 농담, 즉 떡밥을 받아먹는 사람들의 마음과 그들의 정신세계의 배후에서 작용하는 사상을 상상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내가 ‘상상적으로 이해’한다고 한 것은 즉, 던져서 이해할 수 있는 떡밥을 던지라는 이야기이다. 이해할 수 없는 떡밥을 던지는 경우에, 그 대상들은 분명 떡밥에 입만 대어보고는 떡밥만 더럽히고 도주한다 ― 불로거(不路居:blog)에서는 주로 댓글만 던져놓고 어떠한 연결수단을 남기지 않는 해괴한 물고기가 많다.

더불어 농담가는 오직 현재의 눈을 통해서만 과거를 볼 수 있고 과거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세한 사항은 생략한다.

지난 10년 동안 공중파 상에서 일어난 농담 세력의 변화는 김국진에 대한 농담가들의 태도를 뒤집어 놓았다. 이어 전산망(電算網:internet)의 등장은 김구라와 같은 인물들에 대한 농담가들의 태도를 바꾸어 놓았다. 모 교수는 농담가는 “진담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좀 애매한 권고이다. 따라서 생략한다.

지금까지 농담관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살펴보는 척을 했지만, 이제는 그것을 깔 차례이다. 왜냐하면 농담 서술에서 까는 행위의 논리적인 귀결점은, 결국 객관적 농담은 전적으로 배제되고 농담이란 농담가가 던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까기만 하다보면 좋은 소리를 못 듣게 되고, 김구라와 같이 안티세력이 증가하게 된다. 결국 부르다(Brouda)의 논평처럼 농담은 “어떤 것이든 싫어하는 단어를 끄집어 내는 어린아이의 글맞추기 장난감”같은 것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농담은 적당히 던지는 것이 몸에 좇타.

농담가는 농담의 잠정적 선택과 그 농담이 만들어낸 이야기로부터 출발한다 ― 그 농담이 자신이 생각한 것이든 타인이 생각한 것을 그냥 전달하는 것이든 말이다. 농담을 진행함에 따라 해석 및 농담의 선택과 정리는 양자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미묘하고 반쯤은 무의식적인 변화를 겪는다. 또한 농담가는 농담의 일부분이되, 농담가는 농담의 바깥부분이므로 이 상호작용에는 농담과 사실사이의 상호작용도 포함된다. 농담가와 농담은 서로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이다. 농담하지 못하는 농담가는 뿌리가 없으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고자이다. 던질 농담가 없는 농담은 죽은 것이고 무의미한 것이다. 그러므로 농담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필자의 첫 번째 대답은, 농담은 농담가와 농담 사이의 지속적이 상호작용 과정, 즉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농담이라는 것이다.


제2장 농담, 과학, 그리고 도덕

나는 아주 어렸을 때, 고래고기가 맛있어서 감명받았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포경(捕鯨)이 금지되는 바람에 고래고기를 맛보기가 힘들다. 마찬가지로 농담학이 과학이 아닌 것이 분명한 것과 나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이런 말장난은 재미가 없다.

농담학은 과학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과학이라는 개념과 농담학이라는 개념간의 차이는 어떠한 바탕을 가지고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농담학의 기저에는 농담(弄談)이 깔려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농담은 사실이 아닌 것을 전제로 깔고 있다. 그러한 바탕에서 자연과학의 법칙(法則)이란 개념이 농담학에 수용되기는 어렵다 ― 다만 웃긴 농담만이 농담에 해당한다는 학설이 있지만, 안웃긴 농담이 더욱 많은 현대사회에서 과연 웃겨야 농담인가 하는 명제에 대해서는 깊은 연구를 필요로 한다.

농담에서의 구분에 대한 논쟁도 이런 범주에 속한다. 농담에서의 구분은 사실이 아니라 필요한 가설 혹은 사고의 도구이며, 농담해석에 도움이 되는 한에서만 유효하고, 그 유효성도 해석에 따라 좌우된다. 웃긴 농담의 기준은 어디인가 하는 문제에 견해를 달리하는 농담가들은 특정 농담에 대한 해석에서도 견해를 달리한다. 농담구분 문제는 사실 필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의미없는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닌 것이다. 농담을 지리적 단위로 구분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사실이 아니라 가설이다. 지리적으로 구분한 미리견농담(彌利堅弄談:American joke)을 운위(云爲)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는 타당하고 유효한 가설이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정신줄 놓은 유해한 가설이 될 수도 있다. 대부분의 농담가들은 조지 워커 부시 (George Walker Bush)의 농담을 미리견농담이라고 보지만, 일부 농담가들은 결코 그렇게 보지 않는다 ― 이것은 부시의 농담은 일반 미리견 대중의 농담과 유리되어 있다는 것을 바탕으로 한다. 그릇장사 코렐(corelle)은 이런 농담을 던졌다.

안깨져요.

해괴하다. 유리그릇이 안깨진다면 유리그릇이라고 할 수 있는가. 언급할 가치가 없으므로 생략한다.

하여간 농담은 전적으로 농담인 반면에 과학은 진담이다. 또한 농담은 아무런 교훈도 주지 않는다. 인간은 농담을 하기 때문에, 농담은 필연적으로 주관적이다. 농담은 과학과 달리 종교와 도덕의 문제를 포함한다. 나는 이 문제들을 차례로 검토하고자 한다.

첫째, 농담은 전적으로 농담을 바탕으로 하고, 과학은 진담을 바탕으로 한다. 끝.

둘째, 농담은 아무런 교훈도 주지 않는다. 농담에서 교훈을 얻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정신적으로 이룩한 성취일 뿐이지 농담이 준 성취가 아니다. 물론 그 성취도 농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셋째, 농담은 인간이 하는 것으로 필연적으로 주관적이다. 우리는 사회 일반적으로 농담을 던졌을 때 던진 사람은 미친듯이 웃는데 비해, 듣는 사람은 뭐야 쟤 하는 반응을 나타내는 경우를 경험한다.

넷째, 농담은 과학과 달리 종교와 도덕의 문제를 포함한다. 함부로 종교를 까다가는 해당 종교인들에게 몰매를 맞거나 비난을 받게 된다. 종교적인 내용을 포함하는 농담을 한다는 것은 이러한 사항을 감수한다는 것이며, 또한 비도덕적인 농담은 웃길지는 모르지만 결국 욕을 얻어 먹는 지름길이 된다.

이상 농담과 과학, 그리고 도덕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제3장 농담에 있어서의 인과관계

우유를 냄비에다 끓이면 따뜻하다. 따뜻한 우유를 마시면 잠이 잘 온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필자가 이때까지 따뜻한 우유를 많이 마셔도 잠이 잘 오지 않았으니 이것은 농담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것으로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다. 누가 도대체 왜 이러한 농담을 던진 것일까. 농담이 아니라면 이것은 진담인 것인가. 위대한 농담가는 과연 농담을 진담처럼 던지는 사람인가, 농담을 농담처럼 던지는 사람인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차후에 연구하기로 하겠다.

  1. 여기서 농담(弄談)은 농담과 농담학의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본문으로]
  2. 다만 이 영양가라고는 쥐꼬리만큼도 없는 이야기를 좀 더 상술(詳述)하자면 “모든 농담적 판단의 기저에 놓여있는 실천적 요구는 모든 농담에 ‘우스갯소리’적 성격을 부여한다.”라고 하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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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천어 트랙백 0 : 댓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