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기관설에 관한 미노베 다쓰키치 의원의 이른바 「일신상의 변명」
天皇機関説に関する美濃部達吉議員のいわゆる「一身上の弁明」

1935년(쇼와 10년) 2월 25일 제67회 제국의회 귀족원

[의장] (공작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麿 군) 미노베 다쓰키치 군으로부터, 동군의 언론에 부친 지난날 당 의장에 있어 의원으로부터 발언이 있었던 문제에 부쳐, 일신상의 변명을 올리고자 하는 신청이 있었으므로, 이를 허락함에 이의있으십니까.

〔"이의 없음"이라고 하는 자 있음.〕

[의장] 이의없다고 인정합니다. 미노베 다쓰키치 군.

〔미노베 다쓰키치 군 연단에 오르다.〕

 지난 (1935년) 2월 19일의 본회의에 있었던, 기쿠치 남작 기타 분들께서 제 저서에 해주신 말씀에 일단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이에 일언일신상의 변명을 표하는 데에 이르게 된 것은 저로서도 깊은 유감을 가지는 바입니다. 기쿠치 남작은 작년(1934년)의 65회 의회에서도 제 저서의 일을 들어 이러한 사상을 따르는 자는 문관고등시험위원에서 쫓아내야만 한다는 등의 심한 말씀과 같은 비난을 하신 바 있습니다. 이번 의회에서도 다시 제 저서를 들어 명백한 반역적 사상이라고 말씀하시고는, 모반인이라고도 하셨습니다. 또한 학문을 이용한 도적(学匪)이라고 까지 단언하신 것입니다.

 일본의 신민(臣民)인 자로 반역자이며 모반인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 심한 모욕도 없을 것입니다. 또한 학문을 전공해 연구하는 사람에게 학문을 이용한 도적이라는 이야기만큼 참기 어려운 모욕도 없을 것입니다. 나는 이와 같은 이야기가 귀족원에 있어 공공의 회의장에 공언되고, 의장으로부터의 취소 명령도 없이 용납되는 것이 과연 귀족원의 품위에 비추어 볼 때 가능한 것인지 의문스럽지만, 어쨌든 귀족원에 있어서, 또한 귀족원의 이 공공의 회의장에서 이와 같은 모욕이 가해진 일에 대하여 나는 아무리 생각하여도 그러한 일이 묵과하기 어려운 일로 보이는 것입니다. 본 회의장에 있어서 이와 같은 문제를 이야기 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적당한 것임을 알고 있고, 또한 귀중한 시간을 이와 같은 이야기에 써버리는 것에 대하여 매우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일단 승낙을 구하고 싶은 것입니다.

 무릇 어떠한 학문에서도 그 학문을 전공한 자의 학설을 비판하여 그 정당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그 비판자가 해당 학문에 상당한 조예를 가지고 있고, 상당한 비판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와 같은 법률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군학(軍學)에 대한 학자의 전문적인 저술을 비평하는 말을 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웃음거리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만, 기쿠치 남작이 제 책에 대하여 논한 일에 대해 생각해보면 동 남작이 과연 제 저서를 통독하셨는지 의문이며, 만약에 읽으셨다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이해가 되신 것인지 말씀드리고 싶을 정도로 깊은 궁금증이 듭니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단편적으로 제 저서의 어떤 문장구만을 떼어내, 그 전후 문맥도 살피지 않고 단지 그 부분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의미로 오해하여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만약 정말로 제 저서 전부를 정독하시고, 또한 그것을 정당하게 이해하셨다면 이와 같은 비판을 가할 이유는 없으리라 확신하는 바입니다.

 기쿠치 남작은 제 저서를 마치 우리 국체(國體)를 부인하고 군주주권을 부정하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이야말로 실로 제 저서를 읽지 않았거나 또는 읽어도 그 이해를 하지 못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우리 헌법(대일본제국헌법)상 국가 통치의 대권이 천황에게 속한다고 적힌 것에 대해서는 천하 만민 중 어느 사람도 이에 의심을 품을 자는 없는 것입니다. 헌법의 상유(上諭)에서는 “국가통치의 대권은 짐이 이를 조종에게서 이어받아 이를 자손에게 전하는 바이다.”라고 명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헌법 제1조에서는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이를 통치한다.”고 합니다. 더욱이 제4조에서는 “천황은 국가의 원수로서 통치권을 총람하고 이 헌법의 조규에 따라 이를 행한다.”고 하니 일월(日月)과 같이 명백한 일입니다. 만약 이를 부정하는 자가 있으면 반역사상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도 마땅한 것이나, 제 저서가 어떠한 곳에서도 이를 부정하는 일은 있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물며 그것이 일본 헌법의 가장 중요한 기본원칙인 것을 반복하여 설명하고 있을 뿐입니다.

 예를 들어 기쿠치 남작이 들었던 『헌법정의』(憲法精義)의 15항에서 16항이 있는 곳을 보시면, 일본의 헌법의 기본주의라는 제목 하에 “가장 중요한 기본주의는 일본의 국체를 기초로 하는 군주주권주의이다. 이는 서양의 문명으로부터 전해진 입헌주의의 요소를 가한 일본의 헌법의 주요한 원칙이다.”, 즉 군주주권주의에 입헌주의의 요소를 가한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만세가 시작된 이래로 전하는 것으로 일본 개벽 이래 일찍이 변한 일이 없는, 또한 장래 영원히 변하는 일이 없는 것이다.”라고 언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저술인 『헌법촬요』(憲法撮要)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기쿠치 남작이 거론한 책 이외에도, 제 헌법에 관한 저술은 메이지 39년에는 이미 『일본국법학』(日本国法学)을 저술한 바 있으며, 다이쇼 10년에는 『일본헌법』 제1권을 출판한 바 있습니다. 더욱 최근인 쇼와 9년에는 『일본헌법의 기본주의』(日本憲法の基本主義)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지만, 어떠한 책을 보셔도 군주주권주의가 일본 헌법의 가장 중요하고 가장 근본적인 원칙이라는 말은 어느 책에서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그것에 대하여 헌법상의 법리론으로서 문제가 되는 점은 대충 두 가지를 들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이 천황의 통치의 대권은 천황 일신에 속하는 권리인 것인가, 또는 천황이 나라의 원수로 그 지위에서 총람하는 권능인가의 문제입니다. 즉 천황의 통치의 대권은 법률상의 관념으로는 권리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권능으로 보아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다음 문제는 천황의 대권은 절대 제한할 수 없는 만능의 권력인가, 아니면 헌법의 조문에 의하여 행할 수 있는 제한 있는 권능인가의 문제입니다.

 제 저서에서 표명하는 견해는 첫 번째로 천황의 통치의 대권은 법률상의 관념으로서는 권리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권능이라는 점이며, 또한 두 번째로는 만능 무제한의 권력이 아니라 헌법의 조규에 의하여 행하는 권능이라는 점입니다. 이 두 가지 견해가 기쿠치 남작과 다른 분의 의혹을 푸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표합니다.

 첫 번째로 천황의 국가 통치의 대권은 법률상의 관념으로 천황 일신에 속하는 권리라고 볼 수 있는지 여부의 문제는, 법률학의 첫 발을 내딛은 사람이 숙지하는 점입니다만, 법률학에서 권리라고 하는 것은 이익이라는 것을 요소로 하는 관념이기 때문에, 즉 자신의 이익 때문에 … 자기의 목적 때문에 존재하는 법률상의 힘이기 때문에 권리라는 관념에는 해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권리를 가진다고 하는 것은 그 힘을 그 사람 스스로의 이익 때문에, 바꾸어 말하면 그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인정을 받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권리주체라고 하는 것은 이익의 주체, 목적의 주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국가 통치의 대권이 천황 일신에 속하는 권리라고 해석하면 통치권이 천황 일신의 이익을 위하여, 일신의 목적을 위하여 존재하는 힘이라고 하는 식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한 견해가 과연 우리 존귀한 국체에 적합한 것이겠습니까. 우리 고래의 역사에 비추어 보아도 어떤 시대에서도 천황이 그 일신이나 그 일가를 위하여, 일가의 이익을 위하여 통치를 행하는 것이라고 하는 사상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천황은 우리나라 개벽 이래로 하늘 아래 대군(大君)으로 우러러 보는 존재입니다만, 하늘 아래의 존귀한 존재라고 하는 것은 그 일신 때문이 아니라 국가를 위한다는 일은 고래로부터 항상 의식하고 있었던 명백한 사실이며, 역대의 천황의 조서에서도 그러한 것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 적지 않은 것입니다.

 『니혼쇼키』(日本書記)에 등장하는 스이진 천황(崇神天皇)의 조서에서는 “생각건대 우리 황조 천황께서 고교쿠(京極)에 광림(光臨)하신 것은 단지 한 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무릇 인신을 사목(司牧)하고 천하를 경륜하는 것을 위함이다.”라고 하였고, 닌토쿠 천황(仁徳天皇)의 조서에서는 “하늘이 임금을 세우는 것은 바로 백성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바로 임금은 백성을 그 근본으로 한다.”고 하였습니다. 서양의 오래된 사상은 국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마치 국왕의 일가의 재산을 다스리는 것과 같이 생각하여 한 개인이 자신의 권리로 재산을 소유하여 다스리는 것과 같았기 때문에, 국왕이 자신의 일가의 재산인 국토와 국민을 영유하여 지배하고, 이를 자손에게 전하는 것으로 생각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사상을 가산국사상(家産國思想), 가산설(Patrimonial theory)이라고 하였습니다. 국가를 마치 국왕 한 사람, 그 집안에 속하는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와 같은 서양 중세의 사상은 일본의 고래의 역사에서 일찍이 보이지 않았던 사상으로, 처음부터 우리 국체에 어울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토 공(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의미함)의 『헌법의해』(憲法義解)의 제1조의 주석에서는 “통치는 대위(大位:천황의 자리)에서 대권을 총괄하여 국토와 국민을 다스리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확실히 조종(祖宗:역대 천황)은 그 천직(天職)을 중요시하고, 군주의 덕은 팔주(八洲:여덟 개의 섬, 일본)의 신민을 통치하는 데에 어울리고, 한 사람이나 한 집안을 위하는 사사로운 것이 아님을 나타낸다. 즉 이는 이 헌법이 기반하고, 기초로 하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 또한 같은 취지를 말하는 것으로 통치가 결단코 천황의 일신을 위해 존재하는 힘이 아니고, 따라서 법률상의 관념으로 생각하면 천황 일신의 사리(私利)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명확합니다.

 『고지키』(古事記)에는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가 이즈모(出雲)의 오오쿠니누시노미코토(大国主命)에게 물어보신 말이라고 하여 “그대가 사령(私領, 사적인 땅)으로 보유하고 있는 아시하라노나카쓰구니(葦原ノ中ツ国)는, 우리 아들이 통치할 나라” 운운하며 통치하는(シラス:領らす) 것과 사령으로(ウシハク:領く) 가진다는 말을 따로 구분하여 쓰고 있습니다. 어떤 국학자의 학설에 의하면 후자의 것은 개인이 가진다는 의미이고, 전자의 것은 통치한다는 의미로, 즉 천하를 위해 땅과 인민을 거느리고 다스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창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학설이 옳은지 어떤지는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만, 만약 그것이 옳다면 천황 일신의 권리로서 통치권을 보유하시는 것이라고 이해되며, 이는 곧 천황이 나라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통치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국체에 맞지 않는 것이 명백하다고 생각합니다. 통치권은 천황 일신을 위해 존재하는 힘이고, 따라서 천황 일신에 있는 사권(私權)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 주체는 법률상 무엇이라고 보아야 합니까. 앞에서도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권리의 주체는 또한 목적의 주체이기 때문에, 통치의 권리주체는 곧 통치의 목적주체라는 것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황이 하늘 아래에 있는 것은 천하의 국가를 위한 것이며, 그 목적이 귀속하는 것은 영원 항구(恒久)한 국체의 국가라는 관념으로, 천황은 나라의 원수로, 다시 말하면 나라의 최고기관으로서 이 국가의 일체의 권리를 총람하고, 국가의 일체의 활동은 입법도 사법도 전부 천황을 그 최고의 원천으로 삼는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른바 기관설이라고 하는 것은 국가 그 자신이 하나의 생명으로, 그 자신의 목적을 가지는 항구적인 단체, 즉 법률학상의 단어를 빌리면 하나의 법인이라는 관념에서, 천황은 이 법인인 국가의 원수되는 지위에 있어 국가를 대표하고 국가의 일체의 권리를 총람하고, 천황이 헌법에 따라 행하는 행위는 즉 국가의 행위로 효력을 발하게 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국가를 법인이라고 본다는 것은, 물론 헌법이 법률학의 교과서는 아니라는 점 때문에 명문에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만, 헌법의 조문 내에는 국가를 법인으로 보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는 규정은 적지 않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헌법은 그 제목부터 이미 대일본제국헌법이라고 하여 국가의 헌법인 것을 명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55조 및 제56조에서는 ‘국무’(國務)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어서 모든 통치 작용은 국가의 사무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제62조 제3항에서는 ‘국채’(國債) 및 ‘국고’(國庫)라고 하고 있으며, 제64조 및 제72조에서는 ‘국가의 세출세입’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66조에서는 국고에서 황실경비를 지출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모든 이러한 자구(字句)는 국가 자신이 공채를 발행하고, 세출과 세입을 관장하고, 자기의 재산을 가지고, 황실경비를 지출하는 주체인 것을 명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국가 그 자신이 법인이라고 해석하지 않으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또한 국세(國稅)라고 하는 것이나 국유재산(國有財産)이란 것, 국제조약(國際條約)이라고 하는 말은 법률상 널리 공인된 말입니다만, 그것은 국가 그 자신의 조세를 부과하고, 재산을 소유하고, 조약을 맺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즉 국가 그 자신이 하나의 법인이며, 권리주체라고 하는 것이 우리 헌법 및 법률이 공인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법인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단체이고 무형인(無形人)이기 때문에,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법인을 대표하는 것이 있어, 그 사람의 행위가 법률상 법인의 행위의 효력을 소유하는 행위여야 하므로 이러한 바와 같이 법인을 대표하여 법인의 권리를 행하는 사람을 법률학상의 관념으로 법인의 기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갑자기 천황이 국가의 기관인 지위에 있다고 하는 것이, 법률학의 지식이 없는 사람으로는 혹여 불온한 말을 내뱉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압니다만, 그 의미하는 바는 천황 일신과 그 일가의 권리로 통치권을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국가의 공사(公事)로 천황의 뜻이 국가에 체현(體現)되고, 국가의 모든 활동은 천황을 그 최고 원천으로 하고, 천황의 행위가 그 일신의 사사로운 행위가 아니라 국가의 행위로 효력을 발한다는 말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의 헌법은 메이지 천황이 흠정(欽定)한 것입니다만, 메이지 천황 일신의 저작물이 아니라 그 명칭에서도 나타나는 바와 같이 대일본제국의 헌법이며, 국가의 헌법으로 영구히 효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조약은 헌법 제13조에서 규정한 바와 같이 천황이 체결하는 것이지만, 분명 그것은 국제조약, 즉 국가와 국가 간의 조약으로 효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만약에 소위 기관설을 부정해서 통치권은 천황 일신에 속하는 권리라고 하면, 그 통치권을 기초로 하여 부과되는 조세는 국세가 아니라 천황 일신에 속하는 수입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천황 일신에 속하는 수입이 되지 않으면 안 되고, 천황이 체결한 조약은 국제조약이 아니라 천황 일신의 계약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외국채(外國債)라고 하는 것, 국유재산(國有財産)이라고 하는 것, 국가의 세출세입이라고 하는 것 등 만일 통치권이 국가에 속하는 권리라는 것을 부정한다면 어떻게 이를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통치권이 국가에 속하는 권리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결단코 천황이 통치의 대권을 소유하는 것을 부정하는 취지가 아닌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국가의 일체의 통치권은 천황이 총람한다는 것은 헌법이 명언하고 있는 바입니다. 제가 주장하는 바는 천황의 대권은 천황 일신에 속하는 사사로운 권리가 아니라 천황이 국가의 원수로서 행하는 권능이며, 국가의 통치권을 움직이게 하는 힘, 즉 통치의 모든 권능이 천황에게서 나온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국체에 반하지 않는다는 것은 물론, 가장 우리 국체에 적합한 것이라는 점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입니다.

 두 번째 문제가 우리 헌법상 천황의 통치의 대권은 만능무제한의 권력인가 또한 이 점에 대해서도 우리 국체를 논하자면, 절대무제한이 되는 만능의 권력이 천황에게 속하는 것이 우리 국체에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저는 이를 우리 국체의 인식에 대단한 오해를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군주가 만능의 권력을 가진다는 것은, 분명 순수한 서양의 사상입니다. 로마법이나 17~18세기의 프랑스 등의 사상으로, 우리 역사상에 비추어 볼 때에는 어떤 시대에서도 천황이 무제한인 만능의 권력을 이용해 신민(臣民)에게 명령하는 일은 없었던 것입니다. 어디를 살펴보더라도 결코 무한한 권력을 행할 수 있다는 의미는 없습니다. 헌법의 상유(上諭)에서도 “짐이 친애하는 바의 신민이 곧 짐의 조종께서 혜무자양(惠撫慈養:사랑해 어루만지고, 자애롭게 기르다)하신 바의 신민임을 헤아려”라고 하고 있습니다. 즉 역대 천황의 신민에 대한 관계를 혜무자양(恵撫慈養)이라는 말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헌법 제4조에서는 “천황은 나라의 원수로서 통치권을 총람하고 이 헌법의 조규에 의하여 이를 행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헌법의 상유에서는 “짐과 짐의 자손은 장래 이 헌법의 조장(條章)에 따라 이를 행하는 것을 그르침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고 있어 천황의 통치의 대권이 헌법의 규정에 따라 행하여야 한다고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명백하여 의심을 품을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천황의 제국의회에 대한 관계에 대해서도 역시 헌법의 조규에 따라 행할 수 있는 것이 명백합니다. 기쿠치 남작은 제 저서에서, 의회가 전혀 천황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라고 쓰고 있다는 것처럼 이야기하였습니다만, 만약에 해산의 명이 있어도 그에 구속되지 않고 회의를 여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일 뿐더러, 그것도 그 분이 제 저서를 통독하지 않았거나 또는 읽더라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의회가 천황의 대명(大命)에 의하여 소집되고, 또한 개회와 폐회, 정회 및 중의원의 해산을 명하는 것은 헌법 제7조에 명백히 규정되어 있는 것으로, 또한 제 책에서도 동일하게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오직 헌법과 법률에 정해져 있는 사항을 제외하고, 그 이외의 사항에 즉 헌법의 조규를 기초로 하지 않고 천황이 의회에 명령하는 일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의회가 원칙적으로 천황의 명령에 따르는 것은 아니라는 말은 그러한 의미로, 원칙적이라는 말은 특정하게 정해진 일을 제외하고라는 의미를 말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좀 더 살피자면 의회가 입법이나 예산에 협찬하고, 긴급명령 기타의 승낙을 하고, 또는 상주나 건의를 하고, 질문을 통해 정부의 변명을 구하는 것은 모두 의회 자기의 독립의 의견에 의하여 행하는 것으로, 칙명이 내리고 칙명에 따라 이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일례로 입법의 협찬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법률안은 혹은 정부에서 제출하고 혹은 의회에서 제출하는 것이 있습니다만, 의원(議院)에서 제출하는 안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군명(君命)을 받아 협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정부제출안에 대해서도 의회는 자기의 독립된 의견에 의하여 이를 가결하거나 부결하는 자유를 가진다는 것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의회가 폐하의 명령을 받아 그 명령을 멋대로 가결하지 않는 일이 있다거나 이를 수정하고 또는 부결하는 자유를 가지는 데에 이르게 된다면 이는 협찬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며, 의회제도를 설치한 목적은 전혀 달성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헌법 제66조에서는 황실경비에 대해 특히 의회의 협찬을 요하지 않는다고 명언(明言)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 기쿠치 남작께서 의회에 대해 정부가 제출한 법률안을 부결하고 그 협찬을 막았을 경우에, 의회가 조칙을 어긴 책임을 진다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계신 것은 아닙니까. 상주나 건의, 질문등에 이르러서도 임금의 명령에 따라 이를 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이야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쿠치 남작은 그 연설에서 폐하의 신탁(信託)에 의하여 대정(大政)을 보필하는 중책을 담당하고 있는 국무대신에 대하여 현 내각은 본보기가 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판결을 내리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폐하의 지고(至高)한 고문(顧問)의 역할을 맡는 추밀원(樞密院) 의장에 대해서도 극단적인 폭언을 한 바가 있습니다. 이는 두렵게도 폐하께서 임명한 그 사람을 임명하지 아니한 것만 못하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약 의회의 독립적인 보필을 부정하고, 의회는 하나의 칙명에 따라 이 권능을 행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폐하의 신임을 방기한 중신들에 대하여 이와 같은 비난의 말을 하는 것이 인정될 수 있는 것인지 어디에서 찾겠습니까. 그것은 의회의 독립성을 전제로 하여 설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제가 의회는 국민대표의 기관이므로, 천황에게서 권한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한 것에 대해서도 심한 비난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의회가 천황의 임명에 의한 관부(官府)가 아니라, 국민대표의 기관으로서 설치되어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의심이 없는 부분이며, 그것은 의회가 구 제도의 원로원(元老院)이나 지금의 추밀원(樞密院)과 법률상의 지위를 달리하는 이유입니다. 원로원이나 추밀원은 천황의 관리에서 성립하게 된 것으로, 원로원 의관(議官)이나 추밀원 고문관(顧問官)이라고 하는 것은 천황의 관(官)임을 나타냅니다. 천황이 이를 임명하게 되는 것, 즉 그 권한을 수여하는 데에 기인한 것입니다. 제국의회를 구성하는 것은 반대로 의원(議員)이라고 부를 뿐, 의관(議官)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천황의 기관(機關)으로서 설치된 것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다시 『헌법의해』를 인용해 살펴보면, 제33조의 주석에는 “귀족원은 귀신(貴紳)을 모으고, 중의원은 서민이 뽑아 양원합동으로 하나의 제국의회를 성립하고 이에 전국의 공의(公議)를 대표한다.”라고 하고 있는데, 즉 전국의 공의를 대표하기 위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은 헌법의해에서도 명백히 인정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것이 원로원이나 추밀원과 같은 천황의 기관과 구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명백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상 말씀드린 것은 헌법학에서는 지극히도 평범한 진리로, 보통 학자라면 인정하는 것이고, 또한 최근에서야 처음으로 제가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30년이상 주장되어 온 내용입니다. 지금에 이르러 이와 같은 비난이 본 의장(議場)에 나타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제 생각에도 이상한 일입니다. 오늘 이 석상에서 이와 같이 헌법의 강의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매우 황송한 일입니다만, 이에 대해 고개를 숙이는 바입니다. 제가 간절하게 희망하는 것은 만약에 제 학설에 대하여 비평을 하고자 한다면 여기저기에서 잘라 모은 단편적인 문구만을 긁어모아 헛된 비방과 중상의 말을 하시기보다는, 진실로 제 저서의 전체를 통독하고 전후(前後)의 맥락을 밝혀 참된 의미를 이해하신 연후에 비평해 달라고 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상으로 제 변명의 말을 마칩니다.(박수)

 귀족원에서는 단상에서 하는 연설에 대해서는 일체 박수를 보내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미노베 다쓰키치)의 연설에 소수이기는 해도 박수가 터졌다. 신문도 고금에 전례가 없는 일이라 하여 이를 보도했다. 박수를 보낸 사람은 9명이었다고도 하고 서너 명이었다고도 한다. 전 도쿄대 총장 오노즈카 기헤이지 선생, 이자와 다키오 씨, 교토대학 법학부 명예교수 오다 요로즈 선생, 물리학자 다나카다테 아이키쓰 박사 등이 박수를 보냈다는 것이다. 오노즈카 선생은 이때 아버지의 연설에 박수를 보냈다고 하여 우익단체의 표적이 되어 한때는 호위까지 붙는 지경에 처했다고 한다.(미노베 료키치, 『고민하는 데모크라시』)[각주:1]
  1. 다치바나 다카시<SPAN style="COLOR: #8e8e8e">(이규원 옮김)</SPAN>, 『천황과 도쿄대 1』, 청어람미디어, 2008년<SPAN style="COLOR: #8e8e8e">(2005년, 분게이슌주)</SPAN>, 433~434쪽.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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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기관설(天皇機關說)은 대일본제국헌법하에서 확립된 일본의 헌법 학설이다. 통치권(주권)은 법인인 국가에 있으며, 천황은 그러한 국가의 최고 기관으로서 다른 기관의 도움을 얻어 통치권을 행사한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독일의 공법학자 게오르그 옐리네크(Georg Jellinek)로 대표되는 국가법인설에 근거를 두고 있다.


국가주권설과 군주주권설·인민주권설

‘주권(이 경우에는 국가의 최고결정권을 지칭)은 누구에게 있는가?’하는 질문에 ‘군주’라고 대답하는 것이 군주주권설이며, ‘국민’ 또는 ‘인민’이라고 대답하는 것이 국민주권설 또는 인민주권설이지만, ‘국가’라고 대답해 주권의 소재를 애매하게 만든 것이 국가주권설이다. 군주주권설과 국민주권설의 중간적 위치에 서서 양 학설을 절충한 이론이므로, 정치체제의 변화에서 온건하지만 진보적인 사상으로 널리 수용될 수 있다.


천황기관설의 역사

대일본제국헌법의 해석은 당초 도쿄제국대학 교수였던 호즈미 야쓰카(穂積八束) 등이 주창한 천황주권설이 지배적인 학설의 위치에서, 번벌(藩閥) 관료 세력의 전제지배(초연 내각)를 이론적인 면에서 지탱했다. 천황주권설은 주권이 ‘천황’에게 있다는 학설로, 군주주권설이 일본에 적용된 형태이다. 또한 이러한 천황주권설은 궁극적으로는 천황의 선조(황조황종)에게 주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신칙주권이라고도 불렸다(왕권신수설이 일본에 적용된 형태).

천황기관설의 시작 이러한 천황주권설에 대해 도쿄제국대학 교수 이치키 기토쿠로(一木喜徳郎)는 ‘통치권은 법인인 국가에 귀속된다’고 하는 국가법인설에 근거하여, 천황은 국가의 여러 기관 가운데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규정한 천황기관설을 주창해 천황의 신격적 초월성을 부정했다. 이치키 교수가 도입한 국가법인설은 19세기 초기의 독일에서 인민주권설에 대응하여 군주주권설을 옹호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외견적 입헌군주제). 청일전쟁 이후에는 정당 세력과 타협을 꾀하고 있던 관료세력에게, 최고기관인 천황의 권한을 절대시한다는 이유로 중용되었다.

러일전쟁 이후 천황기관설은 이치키 교수의 제자이자 도쿄제국대학 교수였던 미노베 다쓰키치(美濃部達吉)에 의해 의회의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해 갔다. 미노베는 비스마르크 시대 이후의 독일의 군권 확대에 대한 저항 이론으로 국가법인설을 다시 이끌어 낸 옐리네크의 학설을 통해,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는 내각을 통해 천황의 의사를 구속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이론은 정당정치의 이론적 기초를 마련하였다.

미노베의 천황기관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이론적 구성을 갖는다.[각주:1]

  • 국가는 하나의 단체로 법률상의 인격을 갖는다.
  • 통치권은 법인인 국가에 속하는 권리다.
  • 국가는 기관에 의해 행동하며, 일본에서 그 최고기관은 천황에 해당한다.
  • 통치권을 행하는 최고권한인 주권은 천황이 갖는다.
  • 최고기관인 조직의 차이에 따라 정체가 구별된다.

다이쇼 시대 초기에는 호즈미 교수의 제자였던 도쿄제국대학 교수 우에스키 신키치(上杉慎吉)와 미노베의 논쟁이 일어난다. 서로 천황의 왕도적 통치를 이야기하지만, 우에스기는 천황과 국가를 동일시해 ‘천황은 자신을 위해 통치한다’거나 ‘국무대신의 도움 없이 통치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미노베는 ‘천황은 국가인민을 위하여 통치하는 것이지, 천황 자신을 위해 통치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설득했다.

이러한 논쟁 이후 교토제국대학 교수였던 사사키 소이치(佐々木惣一)도 거의 같은 학설을 따랐으며, 미노베의 천황기관설은 통설로 자리잡아갔다. 민본주의와 함께 의원내각제의 관행, 정당정치와 다이쇼 데모크라시를 유지하고, 미노베의 저서가 고등문관시험 준비의 필독서가 되면서 다이쇼 시대 중기부터 쇼와 시대 초기까지는 천황기관설이 국가가 공인한 헌법학설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 같은 시기의 섭정이자 나중에 천황이 되는 쇼와 천황 또한 천황기관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미노베와 전혀 다른 위치에 서 있던 우익 사상가 기타 잇키도 한때는 천황기관설을 수용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


천황기관설 사건

군부 파시즘의 대두와 함께 국체명징운동이 일어나고, 사상과 학문의 자유는 사실상 탄압되면서 천황기관설도 국체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배격되기 시작했다.

1935년 2월 19일에는 귀족원 본회의에서 육군 중장 기쿠치 다케오(菊池武夫) 남작이 미노베 다쓰키치(당시 귀족권 칙선의원·도쿄제국대학 명예교수·제국학사원 대표·문관고등시험위원) 의원의 천황기관설을 가리켜, ‘완만한 모반이며, 명백한 반역’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미노베 의원을 가리켜 ‘학문을 이용하는 도둑’(学匪)이라거나 ‘모반인’ 등으로 맹비난했다.

이 연설을 계기로 군부와 우익 세력에서 천황기관설을 배격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2월 25일에는 미노베가 천황기관설을 쉽고 간단하게 설명한 ‘일신상의 변명’이라는 해명 연설을 발표하자, 회의장에서는 박수가 쏟아졌으며, 기쿠치 남작도 ‘이정도면 문제 없’다고 이야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회의장 밖에서는 우익단체나 군인 단체가 소란을 피웠고, 개중에는 기관설을 오해해 ‘외람되게도 천황폐하를 기관총(기관차라는 설도 있음)에 빗대는 것은 무슨 일이냐’하며 격노하는 사람도 있었다.

미노베의 해명 연설에도 불구하고 천황기관설을 배격하는 목소리는 줄어들지 않았고, 연설내용이 신문을 통해 보도되자 우익이나 군부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져만 갔다. 이러한 흐름에 편승한 야당과 정우회는 기관설론자였던 추밀원 의장 이치키 기토쿠로나 내각법제국 장관 가나모리 도쿠지로 등의 실각, 오카다 게이스케 내각의 타도 등을 계획했다. 정부는 의회 폐회 후 군부대신의 요구에 따라 미노베를 조사하도록 지시했으며, 출판법 위반을 명목으로 하여 《헌법촬요》나 《축조헌법정의》(逐条憲法精義), 《일본국헌법의 기본주의》의 3종의 저서를 발행금지 처분에 처했다. 또한 문교부는 ‘국체명징훈령’을 발표했으며, 곧 8월 3일과 10월 15일의 양회에 걸쳐 국체명징성명을 발표하여 통치권의 주체는 천황에게 있다고 발표했고, 천황기관설의 교수를 금지했다.

미노베는 내무성에 불경죄로 고발되어 조사를 받았다. 조사를 담당한 검사는 물론 미노베의 저서를 통해 천황기관설을 배우고, 미노베가 시험관으로 있던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해 검사가 된 사람이었다. 조사가 끝난 뒤, 미노베는 기소 유예 처분을 받았지만, 9월 18일에 귀족원 의원을 사직했다. 다음해 미노베는 천황기관설에 반대하는 우익에게 폭탄을 맞아 중상을 입었다.

1937년, 문부성은 《국체의 본위》라는 책을 발행해 전국의 교육기관에 배포했다. 이 책은 일전의 국체명징성명을 바탕으로, 천황기관설은 서양의 사상을 무비판적으로 도입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기관설 문제는 서양사상에 영향을 받은 일부 지식인들의 폐풍에 원인이 있다고 진단했다.

2006년, 미국의회도서관에서 천황기관설을 주장한 헌법학자 19명에 대해 일본 문부성 사상국이 보복경고를 통해 전향이나 사상의 수정을 강요한 내용을 담은 기록이 발견되었다. 미국이 종전 이후 일본에서 접수한 〈각 대학에 있어서의 헌법학설 조사에 관한 문서〉로, 약 450쪽 분량이다. 개인의 이름이나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정부에 의한 사상통제의 과정이 기술되어 있다.


천황기관설의 사멸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한 이후, 헌법 개정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하지만 천황기관설의 중추였던 미노베는 헌법 개정에 단호히 반대했지만, 정부나 여러 정당의 헌법 초안은 모두 천황기관설에 근거한 것이었다. 하지만 천황을 최고기관으로 하지 않고, 국민주권의 원칙에 입각한 일본국 헌법이 성립하면서, 천황기관설은 헌법 해석 학설로서의 사명을 다했다.

  1. 중의원헌법조사회 사무국이 작성한 〈메이지헌법과 일본국헌법에 관한 기초적 자료〉에서 인용·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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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노베 다쓰키치(美濃部達吉, 1873년 5월 7일 ~ 1948년 5월 23일)는 일본의 헌법학자이다. 천황기관설로 잘 알려져 있다. 부인은 수학자인 기쿠치 다이로쿠의 장녀인 미노베 다미코이며, 장남 미노베 료키치는 도쿄 도지사를 지냈다.

효고 현에서 한방의사였던 미노베 슈호(美濃部秀芳)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도쿄제국대학에 입학하여 천황기관설을 주창했던 이치키 기토쿠로(一木喜徳郎)의 제자로 지내다가 졸업했다. 내무성에서 근무하다가 1899년에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으로 유학을 다녀온 뒤, 1900년에 도쿄제국대학의 동교수가 되었다. 1902년에는 교수가 되었다. 이때의 제자로 공법학자 다가미 조지가 있다.

1912년에 발표한 《헌법강화》(憲法講話)에서는, 천황은 국가의 최고기관으로 있다고 하는 독일의 게오르그 옐리네크의 국가법인설에 근거한 천황기관설을 발표했다. 이후 호즈미 야쓰카의 후계자로 도쿄제국대학 교수로 취임하고, 천황주권설을 주장한 우에스기 신키치와 논쟁을 전개했다. 이즈음 천황기관설은 학계와 정계 등에서 통설로 받아들여지면서, 국가공인의 학설처럼 되어갔다.

1932년에는 학사원 대표의 칙선의원으로, 귀족원 의원이 되었다.

1934년에 국체명징운동이 일어나면서, 천황기관설이 배격되기 시작하였다. 1935년의 귀족원 본회의에서 기쿠치 다케오 의원이 천황기관설을 배격하는 내용의 연설을 하자, 군부나 우익 등에서 천황기관설과 미노베 다쓰키치에 대한 배격이 격화되었다. 이에 대해 미노베는 ‘일신상의 변명’ 이라 불리는 해명을 했지만, 저서는 발행금지 처분을 당했고, 불경죄 의혹으로 조사를 받아, 귀족원 의원을 사퇴하게 되었다(천황기관설 사건). 천황주권을 외친 우에스기 신기치는 1929년에 사망했지만, 국체명징성명등을 통해 천황기관설 대신 천황주권설이 공인되었다. 미노베는 1936년, 천황기관설 사건에 분개한 우익의 습격을 받아 중상을 입는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헌법 개정에 대한 움직임이 높아지면서, 내각의 헌법문제조사회 고문이나 추밀고문관 등으로 헌법 개정에 참여했다. 그러나 국민주권의 원리에 근거한 헌법개정은 국체의 변경이라는 이유로 반대하면서, ‘구 자유주의자의 한계’라고 불렸다. 국민주권의 원리에 근거한 일본국 헌법이 성립하면서, 천황기관설은 학설로서의 운명을 마쳤다.

미노베는 헌법 개정 권력은 헌법의 근본규범에 대한 개정권은 가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일본제국 헌법과 일본국 헌법의 연속성에 대해 회의적 견해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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