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라의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2000
〈川の流れのように〉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中島みゆき)가 1989년에 발표한 곡으로, 최후의 곡이 되었다.

사실 이 곡은 밝은 분위기의 새 싱글에 덤으로 들어갈 예정으로 만들어 졌으나, 미소라 본인이 이제까지의 여정을 돌아본다는 의미에서 타이틀로 할 것을 주장하면서 타이틀 곡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1989년 1월 7일에 한 시대를 이끌어왔던 쇼와 천황(昭和天皇:히로히토)이 붕어하면서, 1월 8일부터는 새 천황의 연호인 헤이세이(平成)가 사용되게 되었는데 11일에 발매된 이 곡은 결국 헤이세이 원년에 발매된 것이 되었다. 쇼와 시대를 이끌었던 가수 미소라 히바리 또한 이 곡을 발매한 뒤 몇몇 활동을 하다가 그 해 6월 24일에 향년 52세(사인은 간질성 폐렴으로 인한 호흡부전)로 사거하면서 최후의 곡이 된 사실은, 태평양 전쟁 직후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미소라가 헤이세이가 시작된 직후에 죽었다는 그 사실 또한 그를 전후 쇼와의 여왕이라고 불리게 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川の流れのように (흐르는 강물처럼)
知らず知らず 歩いてきた
모르는 사이에 걸어온

細く長い この道
좁고도 긴 이 길

振り返れば 遥か遠く
돌아보면 아득히 먼

故郷が見える
고향이 보여

でこぼこ道や曲がりくねった道
울퉁불퉁한 길과 구불구불한 길

地図さえないそれもまた人生
지도조차 없는 그것도 또한 인생

ああ 川の流れのように
아아 흐르는 강물처럼

ゆるやかに いくつも時代は過ぎて
몇 번이고 시대는 부드럽게 흐르고

ああ 川の流れのように
아아 흐르는 강물처럼

とめどなく空が黄昏に染まるだけ
하늘은 끝없이 황혼으로 물들뿐
生きることは旅すること
살아간다는 것은 여행하는 것

終わりのないこの道
끝이 없는 이 길

愛する人そばに連れて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夢探しながら
꿈을 찾으며

雨に降られてぬかるんだ道でも
비가 내려 젖어버린 길이라도

いつかはまた晴れる日が来るから
언젠가는 또 맑은 날이 오니까

ああ 川の流れのように
아아 흐르는 강물처럼

おだやかにこの身をまかせていたい
이 몸을 편안히 기대고 싶어

ああ 川の流れのように
아아 흐르는 강물처럼

移り行く季節 雪どけを待ちながら
변해가는 계절 눈녹기를 기다리면서


김연자의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이 곡은 콜롬비아 레코드에서 발매된 이후, 잡다한 버전까지 합쳐 150만 장 이상이 판매되었다고 전한다. 그 이외에 다른 가수들이 부른 것까지 모두 합하면 다양한 판본이 존재하는데, 2000년에 히사이시 조(久石譲)가 어레인지한(목소리는 89년도 판을 이용)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2000이 발매되기도 했다.

우측 영상은
미소라와 비슷한 목소리를 가졌다는 소문이 있었던 김연자의 영상으로, 김연자 또한 1994년 NHK 홍백가합전에서 이 곡을 부르기도 했다. 1999년 NHK 홍백가합전에서는 텐도 요시미가 이 곡을 부르기도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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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툽에 올린 미소라 히바리의 오마쯔리맘보입니다. 올린 즈음부터 지금까지 세계 각지[...]에서 덧글이 끊이지가 않길래 용기를 내어 이 블로그를 통하여 한국에도 소개하고자 합니다.

미소라 히바리는 쇼와 시대의 대표적인 가수로, 일본에서는 우타히메(歌姫 ; 디바)라고도 합니다. 이 곡은 1954년에 발표되었으며, 전후의 일본인들에게 희망과 꿈을 안겨주고 그들을 일으켜 세운 미소라 히바리의 대표적인 곡 중에 한 곡이기도 합니다.

해당 동영상은 "1988년 4월 11일에는 개장한지 얼마 되지않은 도쿄돔에서 열린 눈물의 부활콘서트인 「불사조 콘서트」"1981년 6월 25일 일본 부도칸에서 열린 데뷔 35주년 기념 리사이틀 실황서 공연된 모습이라고 합니다. 속칭 "왜색(倭色)"이 확연히 드러나는 영상이오니 일본에 관련된 일이면 심장이 약해지시는 분이나 왜색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노약자 혹은 네티즌께서는 재생을 삼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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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6월 24일 오전 0시 28분. 미소라 히바리(美空雲雀), 도쿄의 준텐도 대학 병원에서 간질성 폐렴으로 인한 호흡부전으로 별세. 향년 52세. 쇼와(昭和) 시대가 끝났다. 7월 4일, 사후에 일본 여성 최초로 국민 영예상을 수상.

한번 듣기만 하면 모든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었던 미소라. 1970년대 들어 인기가 떨어지고 말년에는 만성간염까지 걸려 사실상 가수로서의 수명이 다하는 듯했다. 그러나 1988년 5만명이 운집한 도쿄돔에서 눈물의 부활 콘서트를 가져 재기에 성공했지만 그것이 가수로서의 마지막 대형무대였다. 그가 남긴 노래만도 1500여곡을 헤아렸고 음반 판매량도 4000만장이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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