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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8

2008.03.23 08:57 from 일상茶房사

근래에는 불로거(不路居:blog)에 쓰는 글이 근황의 일색이다. 물론 내 불로거가 근황 블로그가 되어가는 것이 나로서도 반갑지만은, 자꾸 근황만 쓰다보면 결국에는 정신있는 글을 쓰지 못할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

이야기하다가 말았는데, 며칠 전에 모판(母版:motherboard)께서 의문사하는 바람에 새로 모판을 구해야 할 처지였으나 도필리(刀筆吏) 선생님의 도움을 얻어 시피유와 모판을 함께 바꾸었다. 그 뒤로 컴퓨터가 그 전보다 괜찮은듯 하니 다행이다. 그런데 이 모판을 넣을랬더니 케이스가 너무 작은지라 결국 도필리 선생님이 주신 케이스를 가져다 쓰고 있다.

학교를 어슬렁거리다가 보니 동래(東來:Busan)의 도자이대학(東西大學)의 일본연구센터에서 한일차세대학술포럼 제5회 국제학술대회라는 것을 경성(京城:Keijzyou)의 경성민국대학에서 한다고 하더라. 이것 일반 참가도 받는다길래 연통하여 학부생이 놀러가도 무방하오 하고 물었더니 지난 해에도 1인의 학부생이 있었으니 너의 정체를 밝히고 얼른 발목을 잡히라 하길래 나중에 다시 연통하겠소 하고 내뺐다. 시간이 되면 가보고 싶기는 허다.

편의점에 앉아 있으니 너도 뉴약거(紐約居:Newyorker)가 될 수 있는 옥수수죽(Cornsoup)이라면서 나를 꼬시길래 먹었더니, 아 이놈의 죽을 먹고나서 단번에 든 생각이 이딴 것을 먹으니 미리견 양이들이 당뇨에나 걸리는 것이다 하는 생각이 절로나더라. 하여간 오랑캐의 습속을 잘못 배웠는지 아니면 오랑캐라 그런지 의심이 든다.

아차 모판을 갈면서 남은 시피유 가져갈 자가 있느냐. 아마도 야옹선생이 필요한가 싶은데, 2.8Ghz 셀러론에 478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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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 전반에 걸친 여러가지 잡다한 글을 읽다보면 재미있는 일화가 몇 가지 있다. 긁어모아 본다. (만담을 저리 적은 것은 부러 한 짓이다.)

정이 누구냐
키에르케골과 틸리히의 책들을 읽으며 마음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던 것이 대학시절의 교양이었던 것 같다. 영어로 된 융(C. Jung)의 책을 읽고있으니 법대친구가 "정(Jung)이 누구냐?"하고 물었다. 나는 속으로 이런 무식한 법대생은 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각주:1]

카알 슈미트와의 서신 교환
카알 슈미트(Carl Schimitt, 1888~1985)는 너무나 유명한 학자인데 나는 한번도 만나본 일이 없고 다만 두 번 서신만 교환했을 뿐이다. 그것은 정말 우연한 계기였다. 프라이부르그에서 우연히 슈미트와 가깝다는 일본 교토대학의 헌법교수 아베 데루야(阿部照哉)교수를 만나 한국에서도 김기범(金基範)교수가 슈미트의 『헌법이론』Verfassungslehre 을 번역 출간하였다고 자랑삼아 얘기했다. 그랬더니 아베 교수는 모레 슈미트교수를 만나러 가는데 그 얘기를 하겠다고 한다. 나는 "아차, 혹시 번역허가권 문제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그 날 밤 서울로 김교수께 급히 편지로 알려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김교수는 번역허가를 받지 않았으니 내가 잘 얘기해달라는 답장을 보내오셨다. 나는 좀 난처했지만 정중히 그런 사정을 슈미트교수에게 썼다. 얼마 후 답장이 왔는데, 걱정과는 달리 김교수에게 감사의 뜻을 전해달라는 친절한 내용이어서 역시 대가답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이 사실을 김교수에게 기쁘게 전해드렸다. 그런데 얼마 후 김교수께서 타계하셨다는 소식이 왔다. 그래서 다시 슈미트교수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그랬더니 또 알려줘서 고맙다는 편지가 왔다. 내가 이 편지 교신 얘기를 했더니 프라이부르그의 교수와 학생들이 그 편지를 잘 보관해두면 나중에 보물이 될 것이라고들 웃었다.[각주:2]

물권행위에 대한 유인성과 무인성 논쟁
이 이야기는 내가 이은영 교수의 론문에서 읽었던 일인데, 크게 알 길이 없으니 두루뭉실하게 적는다. 민법의 물권행위 분야에서 독자성 문제와 유인성(有因性)/무인성(無因性) 문제는 오랜 기간 쟁점이 되어왔는데, 서울대학교에서 1세대 대한민국 법학자라고 할 수 있는 김증한 교수는 이른바 무인론을 주장하였고, 2세대 학자인 곽윤직 교수는 이른바 유인론을 주장하였다. 그런데 이 두 교수께서 활약하시던 서울대의 70년대가 지나고, 김증한 교수께서 1985년도에 퇴임을 하셨는데 오호 통재라,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원에서 박사학위론문을 쓴 정옥태 교수께서 김증한 교수를 따라 무인론을 결론으로 하는 론문을 제출한 것이다. 이은영 교수의 이야기에 따르면 법대를 휘어잡던 곽윤직 교수께서 그를 이유로 론문심사를 거절하시는 바람에 결국 정옥태 교수는 결론 부분을 유인론으로 수정하고 론문심사를 통과하였다고 한다(이야기를 기준으로 하면 해당 논문은 정옥태, 부동산 등기의 공신력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1987년.이다. 확인치는 못하였다.). 이은영 교수에 의하면 이후에 낸 론문에서 바로 이러한 사실을 자백하고 견해를 수정하였다고 하는데, 앞의 박사학위논문은 내가 아직 확인치 못하였고, 정옥태 교수의 이후 유무인론 관련 론문을 살폈는데 천학(淺學)하여 저러한 일을 확인치 못하였다.[각주:3] 덧붙여 일전에 정옥태 교수를 찾던 중에 이 분이 故 라는 수식이 붙었으므로 몰하신 것은 알았으나 시기는 알 수 없었다. 중앙대학교 법과대학장까지 지내셨다는데 어찌 기록이 없을까, 안타깝다.

+ 추가증보한다. 조선일보 기사를 뒤진 결과, 1993년 7월 24일에 전라도 영암에서 교통사고로 별세하셨다. 사고직후 정학장의 일방적 과실로 알려졌으나 유족과 경찰이 끈질긴추적끝에 상대편 과실임을 밝혀냈다고 한다. 2010.3.23 추가

  1. 최종고, 체험적 한국법사학, 법사학연구 제24호, 한국법사학회, 2001년. [본문으로]
  2. 최종고, 앞의 글. [본문으로]
  3. 이상 대부분 : 이은영, 물권행위에 관한 이론적 논쟁, 한국민법이론의 발전 : 무암 이영준 박사 화갑 기념 논문집, 1999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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