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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BC 2년차 중반 지지율은 오늘 기사로 뜬 녀석임.
  • “똑같은 국민장인데 최규하가 저평가된거냐 노무현이 거품이 낀거냐?”
  • 어떤 일이 전적으로 누군가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미끄러운 경사길을 내려가는 것처럼 종래에는 전혀 관계없는 것 까지도 그 사람의 책임이 된다. 그리고 이건 일종의 정신병이다.
  • 고인은 유언에서 ‘원망하지 마라’며 화해와 용서의 정신을 강조했다. 고인의 뜻을 진정으로 받들려면 분열과 대립이 아닌 통합과 화합의 길을 찾아야 정상이다. 그렇지만 민심은 더욱 찢어지고 배타적이 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조문민란’ ‘조문항쟁’이라는 극한적 용어를 쓰며 이명박정부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키우고 있다. 노동계는 노 전 대통령 지지자의 반발 기류를 투쟁동력으로 삼아 6월 항쟁으로 이어갈 움직임이다. 반대편에선 권력형 비리 혐의에 대한 법의식 부재와 추모 열기의 감성적 행태를 꼬집고 있다. - 세계일보 5.30 조간 사설
  • 노무현만이 인간입니까? 참여정부 시절에 시위 현장에서 죽어간, 또는 삶이 벼랑 끝에 몰려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노동자, 농민들에 대해서 당신들은 어떤 태도를 보였습니까? 마치 노무현의 발목을 잡고 앞길을 가로막는 사람들 취급하면서 애도는커녕 냉소를 보냈지요.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는지요?  /  참여정부가 약자의 편, 서민의 편이라고 말하지요. 지금 이명박의 행태가 너무나 극심하니까 상대적으로 나아보이지만 참여정부 시절에도 파업은 가혹하게 응징당했고, 노동자 농민들, 빈민들의 목소리는 종종 무시당해 왔습니다. 사회양극화는 극으로 치달았고 서민들의 삶은 점점 벼랑으로 내몰렸습니다. 노동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과 손잡고 참여정부는 비정규직법을 만들었고, 비정규직이 대량 해고되었습니다.
  • 노 대통령이 측근 비리에 연루됐다는 검찰의 수사발표 이후인 2003년 12월 30일 한국갤럽이 전국 성인 73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 노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 45.7%, ‘받지 않아도 괜찮다’ 47.5%였다.
  • 2009년 4월 28일 전국의 만 19세 이상 남녀 1천27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74.7%가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돈 거래 사실을 “알았을 것”이라고 답했고, “몰랐을 것”이란 응답은 19.3%에 그쳤다. 노 전 대통령 소환 조사 자체에 대해서도 찬성이 69.8%로 반대(28.7%)보다 훨씬 많았다.
  • 노 대통령 취임 전후 변화에 대한 조사 결과, 1년 전에 비해 가정의 살림살이가 ‘나빠졌다’는 응답은 49.8%인 반면, ‘좋아졌다’는 3%였다. 분야별로 빈부격차가 ‘커졌다’(73.1%), 우리사회가 ‘분열됐다’(64.5%) 등 부정적 평가가 압도적이었고, 개인의 행복여부도 ‘불행해졌다’(29.1%)가 ‘행복해졌다’(13.1%)보다 두배 이상이었다. 부정부패에 대해서만 ‘줄어들었다’(36.7%)는 긍정적 평가가 ‘늘어났다’(29.2%)보다 다소 많았다.
  • [광복60주년 국민의식조사, 2004.12.31] 역대 정권 인상  -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 대해선 혼란(51.5%)의 인상이 첫 번째로 꼽혔다. 그 다음으로 퇴보(36.4%) 어두움(27.7%) 자유(20.3%) 가난(19.9%) 밝음(9.2%) 발전(8.8%) 안정(5.6%) 풍족(3.7%) 속박(3.1%)의 이미지를 생각했다.
  • 지난 12월 갤럽조사에선 ‘대선에서 노 대통령이 지원하는 후보가 있다면 그 후보를 지지하지 않겠다’가 74.1%에 달했다.
  • 전문가들은 ‘신뢰 상실’이 노무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한준 연세대 교수는 “상대의 말을 믿기 위해선 ‘말의 내용’과 더불어 ‘전달자’에 대한 신뢰가 동시에 충족되어야 한다”며 “노 대통령은 ‘전달자’로서 신뢰를 상실해 국민과 의사소통에서 실패하고 있다”고 말했다.
  • 김병국 고려대 교수는 “지난 4년간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에 따른 자업자득”이라며 “지지율이 10%대에 불과한 상황에선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다른 의도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큰 정책을 추진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다.
  • 우리 국민의 5명 중 4명 가량은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4년 동안 빈부격차가 커지고 사회가 분열됐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실시한 갤럽조사에서 ‘노 대통령 취임 이전에 비해 가정 살림살이가 좋아졌느냐’는 설문에 ‘나빠졌다’(52.5%)는 응답이 ‘비슷하다’(36.6%), ‘좋아졌다’(9.6%)보다 월등히 높았다. 50대 이상과 자영업자에서 가정 살림살이에 대한 불만이 가장 컸다. ‘빈부격차’에 대해서도 응답자 10명 중 8명 이상(83.4%)이 ‘커졌다’고 평가했고, ‘비슷하다’ 는 7.7%, ‘줄어들었다’는 4.1%에 불과했다. 노 대통령과 여당 지지층에서조차 빈부격차가 악화됐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각각 69%와 74%에 달했다. ‘노 대통령 취임 후 우리 사회가 통합됐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설문에 대해 75.3%가 ‘분열됐다’고 했고, ‘비슷하다’(11.9%)와 ‘통합됐다’(6.3%)는 소수였다. 모든 연령층과 지역에서 우리 사회가 ‘통합됐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10% 이하에 그쳤다.
  • 추모는 추모의 영역에서 하되, 평가는 별론으로 하여야 한다.
  • 차악과 최악이 있는데, 요새는 차악을 최선인줄로 알고 있다.
  • 10억을 먹든 100억을 먹든, 그 형사책임이나 비난의 문제는 별론으로 하되 둘 다 범죄자인 것은 틀림이 없다.
  • 이회창 대 노무현에서 노무현을 찍은 사람과, 정동영 대 이명박에서 이명박을 찍은 사람 가운데 누가 더 병신이냐.
  • 이명박이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무현이 잘했던 것도 아니다.
  • 그럼 왜 이명박은 잘 안까고 노무현은 안까느냐. 이명박은 내가 아니라도 깔 사람이 많지만, 이명박 외에 대해서는 안까면 사람들이 정말 깔데가 없는줄 알거든.
  • 이 땅의 진보라는 작자의 행태가 꼭 조선일보와 같다. 전두환 자결하라, 이명박 죽어라를 직접 구호로 들고 나왔던 인간들은 모두 그 유명한 조중동수구꼴통인가?

책임을 이명박에게 돌리고 자기는 책임을 피해가려는 무리들. 그리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자기 손으로 무너뜨리고는 민주화 운운하는 무리들. 도대체 저 무수한 여론조사들은 죄다 조작이냐. 아무리 오차가 있고, 여론조사가 손대기가 쉽지만 우리가 봐 왔던 역사들은 모두 왜곡이고 사실은 참여정부는 대륙에 있었나? 저 여론들은 모두 어디가고, 지금은 나라가 이 꼴인가. 신격화는 박정희 숭배하고 똑같은 꼬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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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한국이라는 이름을 단 글을 쓰는데. 노무현이 사흘 전에 죽었다. 뭐, 전직 대통령이었으니 노무현 제16대 대통령의 서거라는 이름을 다는건 블로그 성격상 거시기하고. 심정적으로는 노가리나 노종을 쓰고 싶기도 하고.

하여간 노종임금이 사흘전에 등하를 하였다. 그리고 검찰의 수사는 대상이 없으니 종결될 수 밖에 없고, 또 공식적으로도 종결이 되었고. 이제는 뭐 노종 타살설부터 사흘이 되었으니 출관부활한다는 웃긴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어제도 쓴 이야기지만 조문을 둘러싸고 벌어진 몇 가지 사건인지 해프닝인지부터 시작해서, 또 다시금 나라가 광기(狂氣)에 휩싸이는 것 같아서 우려가 없지 않다. 그 뭐시기지, 투쟁을 지적했던 것도 노무현의 죽음은 반이명박세력 전체의 죽음과 같다 이러는 이야기도 있어서 그랬는데. 왜 노무현의 죽음을 거기에 빗대는지 모르겠다. 왜 자기들 멋대로 반이명박세력 전체를 죽이나. 투쟁에 눈이 멀어 사람들을 선동하면서 자기들까지 죽이는 꼴 밖에 되지 못한다. 그 이유가 그들에게 동조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노무현이 죽고나서 이 수많은 조문열풍, 추모열풍은 과연 노무현이 훌륭한 대통령이어서 그런가. 노무현은 개인적인 평가로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서 한 획을 그은 것임에 틀림이 없고. 또한 민주주의 2.0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정치적인 민주주의에 있어서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준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 인간이 어떠한 지는 별론으로 하되.

그렇다고 훌륭한 대통령이었나. 그건 아니라고 할 것이다. 이제는 이명박이를 탄핵하자고 하는 무리도 있는데. 그야말로 정치가 고딩들 촛불들고 하는 장난도 아니고... 이명박을 뽑아 놓은건 그야말로 국민들이다. 나는 안뽑았다, 지지율이 얼마 안된다 하는건 그야말로 진정한 미친 소리고. 그러면 무조건 만장일치 화백제도로 대통령을 뽑아야 하나? 투표율은 왜 그렇게도 낮았으며, 후보는 왜 전부다 그모양 그 꼴이었나. 이글루스에도 헛소리가 많이 나돌긴 하지만, 이회창과 노무현 가운데 노무현을 뽑은 놈과 정동영과 이명박 가운데 이명박을 뽑은 놈 가운데 어느 놈이 덜 미친 놈일까.

이명박이 무능하고 모자란 대통령이라는 문제는 분명히 심각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탄핵을 할 대상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일전에 2MBC 탄핵의 시세와 관련하여에서도 지적한 바가 있는데 분명히 탄핵의 대상도 아니고. 차라리 노무현이 탄핵에 있어서 그 이유가 더 중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뭐 대통령을 뽑아 놨으면 대화와 소통으로 대통령의 정책이 마음에 안들면 막아야 하고. 그만큼 다 보장을 해주고나서 정책 집행 개개에 대해서 해결을 해야되는데, 너는 무능해 굿바이 해야해 그러니까 탄핵 ㄱㄱ 하면서 일단 탄핵을 외치고 나오는 무리야 말로 전두환 노태우와 같은 반민주주의 반헌정질서 세력이자 박정희와 같은 반민주주의 세력임에 틀림 없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그렇게 지적하던 조중동과 무엇이 다른가. 나이가 다른가. 분명 작년하고도 석달전에 지적했듯이 지들이 이명박이를 까면서 하는 꼴이 자기들이 욕하던 조중동의 모습과 똑같다는 사실을 모르는걸까. 노무현이 탓이나 이명박이 탓이나 그게 그 꼴이라는걸 다시 새길 필요가 있다.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이 이명박이 탓이다. 일단 노무현 세력이 돈을 먹은 것을 두고, 그것이 잘못인가를 따져야지. 누구씨보다 덜 먹었다, 누구씨는 아직 살았다 라거나. 이런식의 접근이 도대체 무엇인가. 최악보다 차악이 덜 나쁘니 추모해야하나. 나쁜건 매한가지고, 그만큼 비난의 강도는 달라져야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과 같은 분위기가 허용될 수 있는가.

인류 역사에서의 민주주의는 이러한 맹점을 분명 고려하고 있을 것이다. 토론과 상대방에 대한 관용은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양측 모두 이러한 점은 아우트 오브 안중이다. 조중동을 욕하기 전에 이른바 진보세력이라고 주장하는 그 무리들, 과연 진보인가. 그리고 민주세력인가. 진보는 현실 사회에 대한 진전을 논하여야지, 현실 사회의 파괴를 주장하여서는 안된다. 이것이 공산세력과 진보의 가장 큰 차이일 것이다. 조중동만 반민주세력이 아니라 이른바 진보라고 주장하는 일련의 무리들도 반민주세력이다. 차라리 국가를 갖지 않을지언정 편협한 국수주의와 맞서 싸우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사상을 갖지 아니할 지언정 그러한 무서운 반민주사상과 맞서 싸우는 것이 진정한 민주세력의 역할이다. 노무현은 가면서 화해와 통합, 용서를 이야기했다. 과연 노무현을 둘러싼 그 풍경에서 화해와 통합, 용서를 과연 노무현이 이야기할 수 있는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지금 이 풍경은 화해와 통합, 용서를 이야기하는가. 그야말로 노무현의 뒤를 따르는 무리들의 노무현 신봉 파시즘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상례(常例)를 상례로 치르고, 또한 새로운 영역에 있어서 감성을 배제한 이성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풍경 속에서 과연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웃긴 선거의 풍경, 동정표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나라를 망치는 것은 우익 파시즘만이 아니라, 좌익 파시즘, 진보 파시즘도 매한가지다. 자유민주주의의 영역에서 생각하라. 그리고 행동하라. 덜 나쁜 놈이 아니라 더 나쁜 놈을 욕하는 게 아니라 둘 다 욕해야 한다. 선거는 차악(次惡)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최선(最善)을 골라야 한다. 차악을 고르라는 논리, 사표를 방지하라는 논리야말로 가장 반민주적인 주장이다.

노무현이 민주주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노무현의 죽음은 과연 민주주의의 성장에 어떠한 역할을 하는가. 파시즘의 부활, 진보라는 이름을 쓴 전제주의의 부활을 통해 민주주의를 퇴보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선거에 책임지지 않는 국민의 양산을 통해, 책임을 거절하는 국민을 통해. 다시금 박정희와 같은 반민주세력, 그리고 새로운 반민주주의의 부활을 꿈꾸고 있지는 않을까. 다시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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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천어 트랙백 2 : 댓글 17
민주화가 되더니 민주적인 견해는 안나오고, 날이 갈수록 파시즘적인 견해만 세상에 난무한다. 조선일보는 하물며, 이전에도 몇 차례 지적했지만 그것을 까는 자들도 더욱 파시즘적이 되어간다. 이래서야 조중동이 조중동이 하는 인간이나 조중동이나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미리견 소수입 반대 집회도 그렇다. 매냥 평화적 평화적 우기더니 결국은 법적 형사처벌의 논의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면서 집회의 자유 운운하지만, 무슨 평화적 시위의 바탕에 어떠한 검증도 거치지 않았고, 어떤 민주적인 절차도 거치는 바가 없이 집회부터 열어놓는 것이 무슨 민주국가 공화국가냐. 가장 좋은 제도인 선거를 물말아먹은 작자들이 무슨 가장 이상한 시위부터 하는 것인가(물론 집회와 시위는 다르다). 평화적인 집회가 무슨 동아일보 앞에 있는 광고판에다 재산권을 홀라당 말아먹게 만드는 황당한 짓거리를 하나. 해가 지면 옥외집회나 시위가 금지되지만, 질서유지인을 두면 얼마든지 허용될 수 있다.

집회의 자유는 민주주의질서의 필수불가결의 구성요소이고, 민주적 공동체의 여론을 형성하는 필수적 기능요소이다. 그래도 이건 아니잖는가. 집회의 자유와 다른 법익이 충돌할 때에 두 법익을 잘 생각해서 좋은 쪽으로 이끌어 가야지, 검토만 하면 무슨 집회의 자유 운운하면서 온갖가지 생각할 요소는 제치고 엿먹어라 하는 꼴이 한겨레라는 작자들이랑 조중동이라는 작자들이랑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난 황색저널 문화일보를 본다. 강한남자인가 하는 그거는 재미가 없긴 하지만.

그리고 우리 학교에서 수업하는 모 교수가 직접민주제를 주장하는데, 이 나라가 직접민주제를 해야 이 백성들 속이 풀릴 모양이다. 그러면 난 더 이상 이 나라에 있을 자신이 없다..........

덧붙여 나한테 미국소수입 어쩌고 하면서 익명으로 문자보냈던 인간 걸리면 때찌함-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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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천어 트랙백 0 : 댓글 7
시세(時世)가 2MBC[각주:1]를 탄핵하자고 한다. 이제 서명한 자가 6십만을 넘었다한다. 기가 찬 일이다. 노무현씨[각주:2] 정권에 일부 몰지각한 정치세력이 대통령을 감이 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탄핵을 동원하더니, 이 나라 백성이 탄핵이란 것을 만만하게 알도록 하는 꼴만 되었다.

광우병의 위험성 문제나, 조선소(牛를 말한다) 또는 미리견소의 위험성 비교는 내가 전문적인 판단의 영역에서 알지 못하므로 이 문제는 일단 생략을 하고서라도, 이 탄핵제도라는 것의 목적을 살피면 이것이 본시는 의회가 기타의 국가기관을 감시하고 비판하며 견제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던 것이다. 특히 조선에서는 고위에 있는 공직자가 헌법을 침해하는 경우에 대한 대책으로, 헌법이나 법률을 침해한 경우에 그 직(職)에서 파면토록 하는 제도이다. 이것은 노무현씨 탄핵때 헌법재판소가 판시한 내용에서도 이야기한 바와 같이 "정치적 심판절차가 아닌 법위반을 이유로 하는 규범적 심판절차"[각주:3]이다. 이것을 만들어 놓은 이유는 일반적인 사법절차를 거쳐 책임을 묻기가 어렵거나 징계절차를 거쳐 징계를 내리기가 힘든 공무원, 또는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의 경우에 그 책임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각주:4]으므로, 그 권력을 남용하는 경우에 권한을 박탈하여 법적인 책임을 추궁하도록 함으로써 헌법을 보호하는 기능을 수행토록 하는 것이다.

결국 2MBC를 탄핵하자고 하는 것은 이 2MBC가 탄핵의 감이 된다고 여겼겠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탄핵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이고, 탄핵소추의 사유는 "탄핵심판청구가 이유있는 때"이다. 여기서 직무집행에 대해서 전직이냐 현직이냐에 대해 견해가 갈리나[각주:5], 현직인 2MBC에 대하여는 아무도 부정하는 사람이 없으므로 당연히 해당할 것이다.[각주:6]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탄핵의 핵심인 위법행위인데, 여기서 탄핵사유와 소추사유, 파면사유 등등의 여러 사유를 두고 견해가 갈리지만 핵심적인 문제, 즉 2MBC가 실정(失政)을 했으니 잘라야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상식의 선에서 판단할 때에도 부당한 것이다. 특히 노무현씨 탄핵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위법차원이 아닌 부당한 정책을 결정한 행위나 정치적 무능력으로 야기한 행위 등은 탄핵의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이미 밝힌 바가 있다. 그것은 일단 실정(失政)의 경우에는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하였는지 여부를 문제로 삼기 힘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경우에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민주적 정당성[각주:7]의 무게가 다른 국회의원 등의 경우보다도 훨씬 높은 경우이다. 그 선거를 통해 선출된, 그것도 잘하든 못하든 이제 2개월이 지나서 (레임덕이 온지는 모르겠지만) 정책이라고 집행한 것도 변변찮은(이것은 확실히 무능하기는 한 것 같다) 대통령을 탄핵한다는 것은 법리(法理)의 영역에서나 민주주의의 영역, 그리고 상식의 영역에서 판단할 때에도 가당치 않은 소리임에 틀림이 없다.

물론 이에 대하여 민주적인 견제기구나 절차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으나, 헌법과 법률은 얼마든지의 절차 등을 마련하여 두고 있다. 특히 1개월도 안된 지난 선거는 그러한 민주적인 견제기구를 구성하는, 국회의원 총선거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민주적인 절차와 기관을 두고 그를 활용하지 못하는 백성이 더욱 안타까운 것이 현실이다.
  1. 종래에는 본인이 iMBC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으나, 이것이 MBC 문화방송의 iMBC와 헷갈릴 수 있으므로, 이후에는 i대신 2를 사용하기로 하였다. 이명박씨<FONT color=#8e8e8e>(李明博氏)</FONT>로 알아서 해독하기 바람. [본문으로]
  2. 종래와 같은 표현을 쓰자면 마땅히 노가리선생이라고 표현하여야겠으나, 혹여나 문제가 생길까 하여 이 글에서는 노무현씨로 표현한다. [본문으로]
  3. 헌법재판소 2004년 5월 14일 결정, 2004헌나1. [본문으로]
  4. 이순재, 라이나 생명 CM. [본문으로]
  5. 이에 대하여는 알아서 관련서적을 참조하시기 바람. [본문으로]
  6. 이에 관하여 측근의 비리가 탄핵사유가 되느냐의 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 직위를 보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행한 탄핵대상 공무원 자신의 위법행위만이 소추사유가 될 수 있다고 이전의 노무현씨 탄핵사건에서 헌법재판소가 판시한 바 있다. [본문으로]
  7. 50% 투표해서 50% 얻은 것이 무슨 문제냐고 하겠지만, 투표를 하지 않는 민주적 시민은 민주적 정당성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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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혐일주의에 대한 슬픔(누지름)에 대해 잠깐 이야기한 바가 있지만, 이제는 좀 더 성숙한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해 논할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해 다시 몇 자 제언을 쓴다.

과연 한국과 일본의 현재의 관계는 무엇인가. 인접한 국가? 자유민주국가로서의 우방? 아니면 둘 다 친미국가로서의 동질감? 아니면 북조선에 국민들을 납치당한 공공의 적을 가진 존재? 아니면, 아직도 우리의 적? 이명박 당선자는 "우리가 사과나 반성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일본도 매우 형식적인 사과와 반성을 한 것이 사실이고 그 사과가 한국 국민들에게 그렇게 감동을 주지 못했다"고 이야기하였다. 이어 이야기하기를 "새로 성숙된 한일 관계를 위해서 사과하라거나 반성하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언급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 오사카 출신의 대통령 당선자가 더럽게 친일성향을 드러낸 것이라고 보아야 할까?

지난 1995년, 일본의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총리는 내각총리대신으로서의 담화 전후 50주년의 종전기념일을 맞아(누지름)를 발표하고 향후의 관계와 일본의 미래에 대해 잠깐 이야기한 바 있다. 여전히 이러한 원칙은 살아있으며,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견해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말 우리는 일본이 사과를 요구하고,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한다면 기뻐할 수 있는가. 이명박 당선자의 말처럼 일본이 정상적인 자세로 사과를 한다거나, 또는 여전히 일본의 과거사는 지금의 일본이 안고 가야할 숙제인가. 그럼 일본은 어떻게 사과를 하여야 하는가.

전후 60주년을 바라보고 있다. 일본 정부가 일본 전역에 대한 지도를 제작하면서, 그 가운데에 독도의 지도도 포함되어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과연 이에 대하여 우리는 어떠한 대처를 하여야 하는가.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고, 독도 문제에 대하여 반박을 하여야 하는가? 아니다. 일본국 정부가 대한민국 영토인 독도에 소재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건조물을 표시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영토주권의 불법적인 침해로 받아들이고, 그에 대하여 사과를 요구하여야지 이전의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사과를 요구해서는 안된다.

양국간의 다른 제 문제에 대하여는 어떻게 대처하여야 하는가. 징용 및 정신대 배상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의 문제가 더 크다. 지난 60여 년간 한국 정부는 이미 일본 정부에 대해서 해당 논의에 대해 어떠한 언급을 할 지위를 스스로 방기하였다. 그럼 한국 정부의 향후의 과제는 무엇인가. 해당 문제 등으로 상처입은 대한민국 국민을 보살피고, 또한 해당 국민들이 일본국 정부 또는 기타 가해자에 대하여 보상 등을 요구할 때 지원을 해주어야 할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전후 60년이 지난 일본은 이미 사과한 상태이고, 이제 그 향후 조치를 취하여야 할 단계이지, 이제 와서 다시 사과를 요구할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이 지난 제국주의 침략 역사에 대하여 찬양·미화하고, 또한 다시 제국주의 침략으로 나아가려는 야망을 드러냈을 때에는 사과가 아니라 일본을 비판하고, 또한 외교적으로 대응하여야 하는 것이다. 사과가 제국주의 침략을 막아줄 수 있는 유일한 보도(寶刀)는 아닌 것이다.

사과나 반성이라는 것은 표면적으로 드러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사과나 반성의 반대 측면은 쉽게 드러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 대하여, 이미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과를 다시 요구하기 보다는, 그 반대 측면의 행위가 나타났을 때에 그 측면에 대하여 비판을 가하는 것이 국가적으로도, 아니면 양국 간의 정상적인 관계에 있어서도 좀 더 현명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한국은 여전히 정서적인 측면에서 효과적인 사과라는 표현을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면서도, 또한 너무 소홀하게 취급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글이 또 길어졌으므로 읽는 사람이 별로 없을테지만, 혹여 읽고 또 다시 글과 관계없는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에게는 미노베 다쓰키치 교수의 「일신상의 변명」(누지름)을 권하고 싶다.
+3주년 핑계 재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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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중심 진짜 독재, 파시스트 독재가 부활할 지경이다. 선거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 한나라당을 죽였냐 살렸냐. 국민이 절묘하게 153석을 줬지만, 친박연대가 어디로 가느냐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 무식한 백성들이 열심히 투표를 해서 한나라당에 과반이 넘는 의석을 줬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이미 중요한 대상이 아니라, 무식한 백성들이 투표를 안했고 더 무식한 백성들은 투표를 해서 무식하게 한나라당을 찍었다.

이게 무슨 민주주의 국가의 개념들이냐. 거기서 더 나아가 이제는 아마도 2할만 투표했다는 20대를 깐다. 한나라당 지지율이 20대에서 5할이 넘는댄다. 미쳤다, 정신이 나갔다, 나라가 망했다. 이러한 비판은 이미 그들이 줄기차게 까대던 조중동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발언들 아닌가. 집권 정당이 5할을 먹었다는 사실에서, 민주주의의 견제는 사라지고, 백성에 대한 까대기와 함께 나라는 망국의 길로 접어든 꼴이 된다.

조선말도 모르고 민주주의도 모르는 놈들이 언제나 투표를 안했니 한나라당을 찍었니 하면서 까지만, 실지로는 결국 이 땅에 한나라당 없는 독재를 실현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가 된다. 이번 선거 전후에서 나타난 목표도 한나라당이 사라져야 한단다. 자기네들이 그렇게 까대던 한나라당도 다른 정당보고 사라지라고는 안했다. 결국 국민들은 대운하와 아무 관계가 없는 북한산 산밑에서 이재오를 떨어뜨렸고, 운하반대 문국현을 당선시키지 않았던가. 나도 아쉬워하는 노회찬에게도 노원구 주민들은 43%나 되는 표를 던져주지 않았던가. 자기 맘에 안든다고 파시스트 독재를 실현하려는 국민이야말로 무식한 국민들이고, 이명박보다 더 해가 되는 독재 패당이다. 슬픈 블로그 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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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적 사고의 선상에서 생각할 때, 한나라당이 이명박 정부가 일을 잘할 수 있도록 표를 좀 몰아주시오 하는 것은, 박그네 선생은 박각하의 딸이니 그네선생을 뽑으면 각하를 뽑는 것이라고 하는 것보다 더 웃긴 일이다. 어디 국회를 정부가 일 잘하라고 만들어 놓았나, 사실 국회는 정부를 견제하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인위적인 여대야소는 정상적인 구조가 아니다. 국회는 그저 머리에 똥만 가득찬 거수기가 되는 것이지.

5권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3권을 분배한 권력분립의 견지에서, 권력을 갈라놓은 것은 민주적이고도 공화적인 제도의 표상이다. 갈라놓은 것을 지네들끼리 갈라 먹으려고 하는 짓거리를 보면, 물론 아직도 노가리 정부에 한이 덜 풀려서 나는 한나라패당을 찍어서 국정파탄세력 통합민주패당을 몰아내 보겠다고 하는 여론이야 어쩔 수 없지만, 대통령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거대 야당을 만들어달라? 그럼 제일 잘사는 나라는 왕정국가지, 무슨 영길리나 미리견같은 야만국가가 잘 살 것인가.

저 멀리 부탄에는 임금님이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선거를 치르겠다 했는데, 그 아들 되는 임금님이 서양에서 공부하여 사고가 양식이라 선거를 금년에 했다던가 하더라. 근데 투표율이 80%를 기록했는데 이 사람들이 임금님들이 하라고 하시니 어찌 지엄한 왕명을 거스르겠소 하고 질서정연하게 와서 투표를 했다더라. 그래서 결과는 왕당파의 압승 수준이니 멋진 지경이다. 물론 부탄 국민들이 행복하다고 소문나있고, 서양과 같은 제도에 익숙치 않은 것도 소문이 나 있지만. 일찌기 서양문물을 받아들여(늦긴 했지만), 민주주의가 최고여 하는 이런 나라에서 어찌 독재패당에 앞장서겠는가. 백성이 행복하다면 왕정도 좋고 그러하다는 것이 내 지론이지만, 일단 민주공화정을 가치로 삼았으면 독재로 다시 회귀하는 것은 막아야 않겠는가. 민주주의 정당이라는 당이 이런 소리나 하고 앉았고, 국민은 또 표를 주니 참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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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이 당선될테니 다른 후보는 찍을 필요가 없다고 하는 사람을 깠던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이제는 정반대로 이명박이 당선되었다고 까는 사람들을 좀 까야겠다. 나도 이명박을 좋아하지는 않지만(정확히 말하면 싫어하는 측에 속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일단은 무식한 백성이든 노망든 국민이든 선거를 통해서 뽑아주고, 그리고 이제 갓 취임식을 하려는(그리고 지금은 한) 대통령을 두고 뒤져라 미쳤다 운운하는건 도대체 어느 나라 법인지 모르겠다. 장관을 땅투기꾼 사기꾼 만들어 놨으면 그걸 욕을 하고, 청문회에서 안넘어가게 막아야 하고, 대운하가 싫으면 반대를 하면된다. 밀가루값이 올라도 이명박이 탓이오, 내가 취업을 못하는 것도 이명박이 탓이오, 맞춤법 바뀐지가 언젠데 아직도 옛날 맞춤법 알고 틀리는 이명박이는 나가 죽어라 하는 꼴이 너무 보기싫다. 지들이 이명박이를 까면서 하는 꼴이 자기들이 욕하던 조중동의 모습과 똑같다는 사실을 모르는걸까. 노무현이 탓이나 이명박이 탓이나 그게 그 꼴이라는걸 다시 새길 필요가 있다. 선거로 뽑힌 사람을 자기가 안뽑았다고, 뭐가 있다고 탄핵 운운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고, 그럼 뭐하러 민주주의 선거를 하나 지 맘에 드는 사람 뽑지. 무식한 백성에게 민주주의라는 칼을 쥐어줬다고 무식한 백성이 또 까는 꼴이 제일 웃기다.

그나저나 이 옆 블로그(일본물어)에 인기 키워드로 후쿠다 야스오(일본 총리)의 부인이 누군지 찾는 사람이 많이 걸렸다. 재미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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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유형으로 존재하는 각종 "차별"들은 모두가 지나간 시간 속에서 "암묵"적인 "동의"를 거쳐 형성된 것이 대부분이다. 경상도와 전라도, 내국인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 흑인과 백인과 같은 차별들은 대부분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하지만(그리고 늘어나고 있지만), 일부가 차별을 시작하면 "나와 다르다"는 상황에서 휩쓸려 지속적이고 조직적인 형태의 "차별"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역사 속에서 형성된 추잡한 "인습"에 의해 여성이 남성에게 차별받는, 그리고 사회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던 남성에 의해 사회가 "남성 중심적"으로 변모해가며 끊임없는 차별을 가해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남성"또한 강요당한 "역할"에 의해 차별받아 왔다는 이야기 이전에, 과연 그 역할이 "웨" 강요되어 왔던가를 생각하면, "남성위주" 사회에서 "남성"의 지위와 권위를 세우기 위한, 일종의 "차별수단"을 양산하기 위한 "역할"이었지, 그 역할이 절대로 "여성주의"나 "여성"들이 남성을 이용하기 위한, 그러한 수단으로 "역할"을 강요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지속적인 차별을 통해 그 격차가 벌어져 있다면, 해소하는 데에는 적지않은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 전체가 "평등" 의식을 가지고 차별 해소에 노력한다면 "여성부"는 필요없을테지만, 여전히 "차별"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여성부"가 필요한 것이다. 여성부의 주요 정책은 "여성 인력 개발"과 "성차별의 해소"이지, 역차별이 아니다. 일정한 차별의 해소를 위한 노력을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시키려는 "역차별"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과연 이성적으로 합당한 주장인가. 일정한 차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차별을 해소시키려는 노력은 배제하고 그 노력을 저지하려는 것이 인정될 수 있을 것인가.

이상은 2006년 11월에 어느 양반이 쓴 글에 대해 내가 썼던 반박문의 일부이다.[각주:1] 그 블로그는 어떤 일인지 금세 문을 닫았지만, 하여간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 “여성부 혐오”라는 증세는 조선남자들에게서 뿌리깊은 병증(病症)이 되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여성부가 뻘짓에다 예산을 넣는다거나 여성부가 한 일이라고 떠돌아다니는 일련의 것이다. 일단 전자의 경우에는 공무원 사회의 구조라거나 그 체계가 예산을 낭비하고 있는 구조로 되어있고, 그 악습을 깨부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여성부가 돈을 쓸데없이 썼으니 없애자! 하는 생각은 얼마나 무식하고 어린 생각인가. 필경 그런 사람은 정부가 필요없을 것이니 저 섬에 자신의 왕국을 세워 혼자 살아가야 할 것이다―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진짜로 그러한 연상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아니고 여성부가 돈을 썼으니 없애자는 수준의 생각에서 표현한 것이다. 결론은 여성부의 예산 낭비를 여성부의 개선 문제가 아닌 폐지 문제로 몰아가는 어리석음이다(그리고 후자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뻘글이었음이 여러 차례 밝혀졌음에도 아직 믿는 어리석은 중생이 있다는 것에는 심히 유감스럽다는 뜻을 잠깐 밝히는 바이다).

분명히 누구나 우리 사회의 전반에 걸쳐 심각한 불평등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어째서 그 불평등에 대해 어떠한 반발이나 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은 거부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기득권층은 그 불평등에 자리잡아 편안함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여성부 보다는 평등 및 인권을 중심으로 하는―크게는 국가인권위원회를 포괄할 수 있는―그러한 기관으로 발전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사회 일반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불평등과 차별―이를테면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가정, 편부모 가정 등등등의 일들에 대해 포괄적으로 감싸안고 개선을 향해 나아가도록 도울 수 있는 그런 류의 것이다. 물론 여기에 이전의 여성가족부 기능의 확대라고 보면 좋겠지만.
  1. 전문은 <A href="http://7t7l.tistory.com/356" target=_blank>여성주의, 남성주의(누지름)</A>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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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원회의 이경숙 위원장의 영어 교육 이야기와 관련하여 사회적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다. 당선자와 위원장 간에 모종의 커넥션이 있었다거나, 아니면 청계천처럼 전기로 물 끌어다 붓는 영어교육 만들겠다거나. 그러나 결국 현 교육의 문제는 영어교육이 아니라, 제 갈 길을 잊은 초·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이다.

초등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등교육으로의 기본교육이자 예비교육이며, 그리고 또한 고급 보육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초등교육에서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은 중등교육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또한 사회 일반의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수행하기 위한 한국어 교육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영어 교육이 초등학교 고학년에 배치된 이유 또한 중등교육으로 넘어가기 위한 기본적인 예비과정에서, 영어에 대한 친밀도와 접근성,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지, 정신나간듯이 영어를 배우라는 미친 이야기가 아니다.

중등교육 또한 고등교육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본이자 예비 교육으로서의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부분을 가르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지금처럼 대학 진학을 위한 진학기관으로 전락해버린 상황에서 중등교육은 고등교육이 아니라 진학교육만을 수행하게 되고, 결국 그 중등교육의 역할을 대학이라는 고등교육기관이 수행하는 엄청난 사회적 낭비를 낳게 된다. 대학 입학자의 학력 저하가 이러한 기저에서 생겨나는 것이고, 결국 고등교육기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면 명목상의 고등교육수혜자 즉 대학졸업자는 넘쳐나는데, 그 수준은 날이 갈수록 저하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기저에서 중등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한국어교육이 결국 영어교육에 의하여 소외된다면, 지금도 엉망인 한국의 한국어교육이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는 자명하다. 중등교육뿐만 아니라 고등교육을 거친 사람이 취업준비를 하지 않으면 몰(歿)하다 라는 표현을 인지하지 못한 지경에 이른 한국의 한국어교육은 어떠한 해답을 내놓을 수 있는가. 논술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이다. 기본적인 문헌 독해도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고등교육으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어휘력과 표현력을 기르는 일은 영어교육에서만 중요한 일이 아니다. 방향을 잃은 한국의 초중등교육과 덩달아 몰락해버린 고등교육에서도 지금 당면한 제1과제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누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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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사업 민영화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인가 : 주요 국가 우정 민영화와 함께 살펴본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인수위원회의 민영화 방안에 대한 소고라는 이름의 글을 쓴 일이 있는데, 이 글에서 주요 사례로 들었던 것이 영길리(英吉利:England, 영국)의 로얄 메일과 함께 일본국의 일본우정, 신서란(新西蘭:Newzealand, 뉴질랜드)과 독일의 례였다. 이 중에 성공한 례는 독일의 례이고, 신서란과 영길리는 좋지 못한 길로 나아갔고, 일본우정은 이제 막 시작했으니 언급할만한 일이 없다.

이번에 또 하나 주목할만한 우정 사례가 미리견합중국우정청(彌利堅合衆國郵政廳:United States Postal Service, USPS, 이하 미리견우정)의 예이다. (이 부분에 관해 잠깐 이야기하자면, 1971년도에 우정성에서 대통령 직속의 행정기관인 우정청으로 전환하였다. 일본의 일부 민간에서 이 형태를 이른바 우정공사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우정공사로 번역하는 례가 적지않다. 명백히 정부의 기관인 우정청인 점과 함께 우정사업본부에서도 우정청으로 부른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우정청이라고 불러야 옳다.) 이 미리견우정의 임직원이 팔십만여 명이고, 우정산업 종사자는 약 900만 명에 달한다. 우편집배원이 20만 명 이상이고, 하루에 6억여 통의 우편물을 배달한다(FedEx가 1년간 배달하는 양이 USPS의 이틀 배달량과 비슷하다).

이런 미리견 우정을 두고 2006년에 우편법(속칭 2006년 우편법)이 제정되었는데, 이에 주요 역할을 한 것이 미리견우정에 관한 대통령위원회와 미연방회계국이다. 이 2006년 우편법은 "우편사업이 직면한 사업 환경은 보편적 우편서비스의 유지를 위협하고 있으며, 납세자 부담의 증가나 우편요금의 급격한 인상 위기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우편사업의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이 양 기관의 지적이 큰 역할을 하였는데, 대통령위원회는 여러가지 권고를 한 바 있으니 살펴보자.

일단 미리견우정은 연방정부의 집행기관 범위 내의 독자적 생존이 가능한 상업기업형태의 독립법인으로 존속되어야 한다. 갑작스런 민영화는 보편적 우편서비스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가 독점하라고 규정된 우편규정은 명확히 조정되어야 하며, 점진적으로 축소하여야 한다. 또한 미 전역의 모든 가정과 기업이 감당 가능한 요금에 신뢰할 수 있는 우편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하며, 대부분의 미국인이 우편서비스라고 생각하는 범위 밖의 새로운 수익사업의 추구는 지양해야 한다. 더불어 요금조정이라는 사안만 감당하고 있는 우편요금위원회(Postal Rate Commission)를 공익보호의 포괄적인 권한을 갖는 독립적인 우편규제위원회(Postal Regulatory Board)로 전환하여 미리견우정에 대한 명확한 감시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미리견우정의 불필요하게 넓은 네트워크를 검토하여, 작지만 강한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하며 민간기업 수준의 급여와 함께 세계적 수준의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단체교섭권을 가진 우편종사자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내용은 경향신문 이종탁 논설위원의 글에서도 소개된 바 있지만,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상업기업형태의 독립법인"이라는 부분 등이 우정공사화를 지양하는 내용처럼 소개된 것 같아 유감스럽다. (특히 우정청을 잘못 소개한 부분에 대해서는 오류가 명백하지만, 우편독점에 대해 소개한 내용은 반가울 정도이다.) 하여간 대통령위원회가 소개한 내용처럼 점진적인(장기적 관점에서의 민영화 논의에 대해서는 반대도 찬성도 아니다.) 공사화의 조정은 가능하다고 소개하고 있다.

특히 이 정부가 유지해야하는 기본적인 우편서비스 체계에 대해서는 지난 기회에도 지적한 바 있는데, 대한민국의 우편법 제14조 제1항은 "정보통신부장관은 전국에 걸쳐 효율적인 우편송달에 관한 체계적인 조직을 갖추어 모든 국민이 공평하게 다음 각호의 우편물을 적정한 요금으로 보내고 받을 수 있는 우편역무(이하 "기본우편역무"라 한다)를 제공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서, 이 범위가 매우 모호하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명확하게 규정해야한다는 요청이 수 차례 지적된 바 있지만, 어디 국회안에 전문가가 없는지 아니면 다른데 바빠서 그런지 아무도 신경을 못쓰는 것 같다.

앞에서 소개한 이종탁 논설위원의 글에서 특히 우정청 승격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하고있는데, 이 우정사업본부가 정보통신부의 소속기관에 불과하다고 기술하고 있지만 이미 우정사업본부는 독립채산제와 별도의 기구로 설립된 일종의 우정청이다. 우정사업본부가 일개 소속기관의 수준이니 우정청 승격이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말처럼 신속한 의사결정이라는 면이나 여러가지 면에서 우정청의 승격을 고려하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언론의 역할은 사실의 전달이 제일 중요하다. 사실을 왜곡하고 주장을 내세울 경우 오히려 역효과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정사업의 구조 개선은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인수위원회와 같이 콩구워먹는 민영화 논의는 우정산업을 더 이상 헤어나올 수 없는 막장 파탄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 있는 논의가 아닐까(우정산업뿐만 아니라 다른 개혁 주장도 마찬가지다.). 우정사업이 아직도 고비용의 투자를 필요로 하는 사업이자, 국가의 가장 중요한 기간산업인 점을 감안해 일단은 우정사업의 독립성과 함께 독점해야 하는 영역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것은 전술한 바 있고, 또한 미리견의 대통령위원회의 권고에서도 등장한 것처럼 우편 요금 체계와 그 수준, 기본 서비스의 감시를 수행할 기구가 필요하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긴 시간을 통해 다양한 개선과 변화를 추구한다면, 우정사업이 추구해야 하는 방향에 대해서는 명백해진다. 기본적인 우편 역무를 효율적이고, 전국에서 균일한 요금체계를 통해, 편안하고 안심할 수 있으며, 편리한 송달권을 보장받는 우편사업. 그러한 과정을 거친다면 우정민영화라는 카드가 그저 우정사업의 효율화라는 이름을 위한 보도(寶刀)이기 보다는 좀 더 편리하고 만족할 수 있는 우정사업을 위한 여러가지의 검토 대상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관련 글으로 : 2008/01/21 - [어종御製문/4. 시론편(時論篇)] - 우정사업 민영화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인가 : 주요 국가 우정 민영화와 함께 살펴본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인수위원회의 민영화 방안에 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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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당선자 인수위원회가 우정사업에 대한 점진적 공사화의 추진을 검토하면서, 이른바 우편과 금융의 분리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에 대해 중앙일보 사설은 “시대가 요구하는 우정사업 민영화” 운운하며 우정 민영화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는데[각주:1], 이 글에서는 이 우정 사업에 대해 잠깐 살펴보고 중앙일보가 그렇게 칭송하던 주요 국가의 우정 민영화와 함께 조선에서 과연 우정 민영화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을 수 있는가에 대해 잠깐 살피고자 한다.

이 우정사업이 조선에서 차지하는 역할에 대하여는 굳이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겠으나, 이른바 사업의 수지를 한번 살피면 2005년까지 우편 사업에 들어간 비용에 비해 수익이 뒤처지다가 2006년에 드디어 흑자로 전환할 수 있었는데, 이 배경이 무엇인지를 살피면 결국 우편 역무에서 효율화와 혁신을 추구한 것이 한 원인이 된다. 그렇다고 민영화가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이, 현재 우편 사업에서 가장 좋은 효율화 방안인 우편 물류 체계의 개선과 진보가 결국은 민영화체제로는 감당할 수 없는 과제가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우편 사업 운영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게 되는 중간물류, 즉 터미널 체계와 함께 배달 조직에 그만큼 비용이 소요되는데 현재 우정사업본부에서 수작업을 통해 처리되는 과정을 기계화하는 데에 소요되는 비용이나 과정, 그리고 그 이후의 과정을 생각하면 민영화는 대안이 될 수 없다.

우편 역무는 가장 보편적인 사업 기반(이에 대해서는 주요 국가마다 일정한 기준을 정하고 있으나, 현행 우편법에서는 명확한 기준을 정하고 있지 않은 점이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기도 하다.)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가 되어야 하는데, 이 보편 역무의 유지가 홀라당 내려앉은 경우가 바로 대표적인 민영화 사례인 영국의 사례이다. Excreation이 로열 메일의 막장화라고 지적한 바와 같이, 효율화를 추구하며 세계 최초로 우정산업 공사화를 이룩하며 민영화로 뛰어들었던 영국의 우편사업은 결국 저지경이 되고 말았다.[각주:2]

또 하나의 막장 사례로 언급되는 뉴질랜드 우정같은 경우는 인수위의 안과 같이 우편, 금융, 통신을 홀라당 민영화하였다가, 금융산업을 인수했던 호주의 ANZ가 경쟁으로 인해 실적이 내려앉았다며 영업에서 철수하면서 그만 다시 금융부문이 우체국 산하로 편입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본 우정민영화에서도 자주 언급된 성공사례인 독일 우정사업 민영화는 1989년에 민간의 우편사업 참여를 허용하면서 시작되었고, 우정성 산하의 우편·저금·전화의 3대사업을 분리하고, 5년 뒤에 100% 정부 출자의 주식회사로 전환하면서 결실을 맺었다. 이후에 독일우정, 이른바 도이치 포스트는 DHL을 인수하거나 Airforce(항공사)를 인수하고, 세계 1위의 물류기업 Excel을 인수하는 등 DPWN(Deutsche Post World Net)이 성공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지만 이것이 보편적인 사례가 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또한 물류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업 분야에서 그만한 기반을 구축하고 있었던 것이 원인이 될 것이므로 조선에 적용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중앙일보가 극찬한 일본 우정민영화 또한 금융 시장에서 차지하는 기형적인 구조(자세한 내용은 일본의 우정민영화를 참조)에 기인한 것으로, 그 또한 그만한 사업기반과 함께 조직을 간수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현재 우정사업본부의 인력은 4만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것이 실은 지속적으로 줄어든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배달 집배원의 숫자는 그 중 1만 5천명 수준으로 오히려 증가했다(비정규직 포함).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지금과 같은 배달률을 유지하고, 선진 우편 체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어디 민영화 체제에서 가능할 수 있었던 일이었을까. 이미 택배사업에서 일부 택배사 대리점의 물품 방치와 유기가 몇 차례 문제되었던 일들이 우편사업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것도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다.

또한 문제가 되는 것이 이른바 개방 경제 구조, FTA를 통한 우편시장 개방, WTO 내에서 우편 및 커리어 서비스 개방에서 과연 민영화 체제가 견뎌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미 통신 부문이 우정사업과 분리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민영화를 추진해 우정 산업에서 독점 지위를 포기하게 하는 경우 과연 소비자는 지금과 같은 우편서비스 수준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결국 유입되는 우편 자본의 대상은 특급 우편과 대규모 물류가 될 것이고, 지금과 같은 기본적인 우편 역무의 제공은 소요되는 원가에 비해 지극히 저가로 유지되는 점을 감안해 서비스 요금의 조정(이라고 했지만 사실상의 인상)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이 점은 독일 우정의 구조개혁에서 주요한 수단으로 작용한 바 있다.)

게다가 현재의 우체국 네트워크가 유지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민영화 과정에서 소규모 및 적자 우체국의 축소는 대부분의 민영화에서 나타나는 쟁점이다.)와 함께 우편 물류 종사자들의 책임감의 저하, 또한 신뢰감 상실 등에서 나타나는 악영향 등을 감안할 때 우정 민영화가 뉴질랜드처럼 인수위 콩 볶아 먹듯이 날름 처리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관련 글으로 : 2008/01/26 - [어종御製문/4. 시론편(時論篇)] - 우정사업 민영화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인가 2 : 미합중국우정청의 예와 함께 살펴본 차후의 우정사업의 방향에 대하여
  1. <A href="http://news.joins.com/article/aid/2008/01/19/3049171.html" target=_blank>시대가 요구하는 우정사업 민영화</A>, 중앙일보 2008년 1월 19일. [본문으로]
  2. 내용은 짧아야 호응이 크므로 자세한 사항은 언급하지 아니하오니, <A href="http://www.kinds.or.kr/main/search/searchcontent.php?docid=01100101.20080107102253" target=_blank>경향신문 2008년 1월 7일자 논설 우정사업</A>과 <A href="http://www.kinds.or.kr/main/search/searchcontent.php?docid=01101001.20061212103367" target=_blank>2006년 12월 12일자 한겨레 기사 영국 우체국 “전자우편이 미워~”</A>를 참조하시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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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의 정부 개편안을 보다보면 황당한 부분이 적지 않다. 특히 재정기획에 대한 부분이다. 1월 초의 신년사에서 이명박 당선자는 “대장성을 없앤 일본에 감탄한다.”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대장성이란 무엇이며, 또한 2001년의 중앙성청개편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메이지 유신 이전인 약 800년을 전후로 하여 사용되기 시작한 대장성(大藏省)이란 용어는, 메이지 유신 이후에 경제부처로 계속 그 이름을 유지하게 된다. 종전(終戰) 이후에 일본의 개혁을 추진하던 미군정은 내무성(內務省)을 자치성과 경찰청, 건설성, 후생성, 노동성 등으로 분할하면서도 오히려 대장성에는 내무성의 해체와는 달리 국세청을 산하에 삽입(-_-)함으로써 대장성의 위치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동시에, 이후에 대장성의 위신을 결정하는 주요한 원인을 제공하였다.

대장성이 이른바 ‘성(省) 중의 성’이라거나, 성의 으뜸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역시 대장성의 예산심사권일 것이다. 대장성은 예산심사권을 가지고 다른 성청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으며, 이른바 대장 관료의 성장을 돕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또한 재정뿐만 아니라 금융을 함께 관리하면서, 구미의 기관이 재정과 금융을 분리하면서 국세청을 독립시킨 것과 비교할 때 대장성의 위치는 확연하게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일본의 고도성장의 배후에서 관료의 역할을 중요하게 만든 한 원인이지만, 결국 이 구조는 이후의 일본 경제에 비수로 박히는 한 원인이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대장성에 집중된 금융정책에 대한 포괄적 기능이다.

대장성 시절의 일본은행장 및 이사의 인사권은 내각과 대장대신의 소관이었다. 대장대신은 인사권을 가지면서, 또한 일본은행의 감독권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일본은행의 예산 인가권을 대장성이 가지고 있었던 것은 일본은행을 사실상 대장성의 소관에 두게하는 모습이었다.

주요 금융규제기관의 하나였던 예금보험기구 역시 주요 지위의 경우 대장성이 인사권을 가졌고, 핵심업무에 대한 허가권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른바 행정지도로 불리는 조치들은 대장성의 행정이 결국 기관의 규제를 결정하는 원인이 되었고, 이후에도 대장성의 여러 가지 규제권한의 집중과 관리권한과 함께 금융기관 부실채권에 대한 관리소홀은 대장성 개혁론을 끊이지 않게 만들었다. 기존의 대장성 중심의 선단식 정책 운영과 더불어 대장관료의 각종 비리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대장성의 개혁은 결국 정치문제의 핵심으로 대두하였다.

결국 하시모토 류타로 정권 시절에 연립여당에서는 금융시스템의 검토를 시작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자유민주당 뿐만 아니라 사회민주당을 비롯한 다양한 연립여당의 참여는 자민당 정권하에서 어려운 문제였던 대장성 개혁에 처음으로 메스를 대게 만든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대장관료와 정계의 첨예한 다툼이 아웅다웅 벌어지다가, 결국 금융감독 권한을 공정취인위원회 등을 중심으로 분리해 나간다는 계획이 세워졌다.

1996년의 중의원 선거에서도 정부 개편은 주요한 화두로 작용했고, 결국 금융감독청을 신설하여 대장성의 금융검사·감독기능을 이관한다는 식으로 분리가 결정되었다. 금융감독청, 당시 금융검사감독청은 총리부 산하에 두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대장성은 금융의 기획 및 입안기능을 갖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분리를 통해서도 대장성과 금융감독청간의 인적 교류는 막지 못했고, 감독에서 대장성의 간섭을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후일에 다시 금융청이 설치되면서 표면적으로 금융과 재정의 분리가 달성되었다.

이러한 대장성의 분리 과정에서 나타난 아쉬운 점이나 남은 문제점 등은 나중에 살펴보기로 기약하고, 다시 결론을 내리자면 90년대 초반에 나타난 금융 사태를 바탕으로 대장성에 대한 개혁논의가 활발해지면서 결국 2001년에 정부 조직을 전면적으로 갈아치운 중앙성청개편을 마무리로 이케다 전 총리가 쓴 대장성 현판을 내리고, 최후의 대장대신이자 초대 재무대신 미야자와 기이치가 컴퓨터 폰트로 주문한 재무성의 현판이 올라가게 되었다.

글이 길면 안읽을 확률이 확연히 높아지지만, 두서없이 글을 쓰다보니 하여간 글이 길게 되었다. 이명박 당선자가 보름전에 대장성을 없앤 일본에 감탄한다!고 했는데, 이 감탄이 멋져서 감탄이 아니라 안멋져서 감탄이었나보다. 기획재정부는 정책기획과 함께 예산과 세제를 모두 총괄하는, 일본 대장성의 기능만큼은 안되지만, 하여간 조선의 대장성으로 자리잡게 될 것인가. 대장성을 없앤 일본에 절망했다, 이런 당선자가 있는 조선에 절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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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천어 트랙백 1 : 댓글 0

내가 아는 사람중에 이명박을 지지하는 사람이 딱 세 사람 있는데, 그 중 한 사람만 내가 친하고 싶은 사람이다. (선거에 영향을 끼치지 아니하는 중립적인 표현을 쓰기가 매우 힘이 든다) 하여간에 선거 이야기는 떠나서, 개중 하나가 당선 가능성이 유력 후보보다 낮은 후보에게 투표하겠다는 것을 사표니 찍지 말라고 하는 것을 듣고는 경악했었지. 그것도 법학을 배우고, 민주주의의 원리를 다 배운 놈이 그런 소리를 하고는 사상의 차이 운운하다니. 그게 못 배운 보수의 전형이리라. 조선에서 배운 놈들이 진보가 될 수 없는 원인이 여기 있으리라. 가르쳐주면 금방 까먹는데,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유주의 다 떠나서 민주주의 공화주의 기본 원리만 지켜도 행복하고 살림살이 나아지리라. 민주주의 왕국에서 사표 운운하는 논리가 2002년에도 통했다지만, 이번에도 그딴 소리를 하는 놈이 있다니. 절망적인 조선을 떠나서 나는 희망의 나라로 갈테야. 우리 모두 사표나 쓰고, 액상프리마에 몸을 던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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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천어 트랙백 0 : 댓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