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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1.12 구미 지명에 대한 고찰 (4)
 구미라는 지명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알려져 있지 않는다. 다만 지명의 역사에 대해서는 상세히 밝혀져 있다.

 《고려사》 〈병지〉(兵志)에는 역참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상주도장(尙州道掌)의 25개 역의 하나로 ‘구며’(仇旀)가 등장한다. 이후 《세종실록》 〈지리지〉에서는 구며역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 에서는 구며역과 함께 상구미(上龜尾)와 하구미(下龜尾)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조선 성종 연간에 구며역이 구미역(龜彌驛)으로 잠시 바뀌었다가, 다시 구미역으로 되었지만 조선 중기에 선산도호부의 남면(南面)을 둘로 분할하면서, 이름을 각각 상구미방(上龜尾坊)과 하구미방(下龜尾坊)이라고 하면서 지명이 구미로 바뀌었다.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1872년에 만들어진 지방지도의 선산읍성 일대 부분으로, 붉은 원 안에 구미역(九尾驛)이라고 적혀 있다.
 ‘며’(旀)라는 글자는 원래 이두 문자로, 미(彌)의 속자이다. ‘구며’라는 지명의 문자는 원래 뜻을 가지지 않았으므로, 음이 같고 뜻이 있는 글자인 ‘구미’(龜尾)로 바뀌었다고 사학자 이병도와 불교학자 이인재가 고증한 바 있다.[각주:1]

 또한 원삼국 시대에 형성된 진한의 소국으로 군미국(軍彌國)이 지금의 구미 일대, 변군미국(弁軍彌國)이 지금의 구미시 인동동 일대에 소재한 고분군의 주변으로 비정되고 있다. 따라서 군미국을 구미의 어원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각주:2]

 구미 지역을 이루고 있는 선산과 인동은 조선 말까지 분리된 지역이었다. 선산의 경우 신라 진평왕 36년(614년)에 사벌주(沙伐州)를 폐하고 ‘일선주’(一善州)를 설치하면서 ‘일선’이라는 이름이 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신문왕 7년(687년)에 다시 일선주를 파하고 사벌주로 고쳤다가, 경덕왕 때 ‘숭선군’(崇善郡)으로 고쳤다.

 고려 시대에는 성종 14년(995년에 ‘선주’(善州)로 고쳤고, 조선 태종 때는 지금 남아있는 지명인 ‘선산’(善山)으로 고치게 되었다. 선산군은 다른 이름으로 ‘화의군’(和義郡)이라고도 하였다.

 인동은 신라 때에는 ‘사동화현’(斯同火縣)이라고 불렀는데, 이후에 ‘수동현’(壽同縣)으로 고쳤다가 경덕왕 때 지금의 ‘인동’(仁洞)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지역은 또한 ‘옥산’(玉山)이라고도 한다.[각주:3]
  1. 《구미시지》 보정판, 구미문화원. [본문으로]
  2. 배수일, 〈향토사 자료를 활용한 국사 학습 지도 방안 연구 : 구미지역의 서원자료를 중심으로〉, 영남대학교 교육대학원, 2003년, 32쪽. [본문으로]
  3. 《구미시지》 보정판, 구미문화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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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주원남동 | 구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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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천어 트랙백 0 :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