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 30일의 제45회 중의원 총선거에서 민주당이 대승하고 난 뒤로(당시 분석은 선거결과 분석선거일후 정세를 참조) 정권이 교체가 되었다. 9월에 하토야마 내각이 70퍼센트를 넘는 높은 지지율로 출범했지만, 오자와 정치자금 문제가 부상하고, 하토야마는 세뱃돈을 너무 받아서 문제가 되었고, 하토야마와 오자와는 서로 잉야잉야 힘싸움을 하는 와중에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가 다시 지지부진한데다 문제의 복안이 뭔지 하여간 내각 지지율이 20퍼센트까지 급락하면서 하토야마와 오자와가 동반으로 퇴진했더랬다.(이 과정에서 연립 여당이었던 사민당은 대표인 후쿠시마 대표가 파면당하고, 연립에서 이탈했다.)

이틀 뒤의 대표 선거에서 간 나오토(菅直人)가 당선되면서 다시 내각 지지율은 급상승했지만, 다시 또 간 총리가 소비세를 들고 나오는 바람에 급락했다. 주를 달리하며 급락하는 마당에 선거가 무슨 큰 타격을 맞을 것 같아서, 간 총리는 이제 갈리는 마당에 2004년에 얻었던 의석(즉 이번에 교체되는 의석 가운데 당시에 얻은 의석)인 50석이나 지금 가지고 있는 54석(이번에 교체되는 의석)을 마지노선으로 잡았드랬다. 그러면서 만약 과반수를 못먹으면 어디든 손을 잡을 것이라고 표명했지만, 자민-공명-사민-민나노-공산 5개 당이 연립을 부정.......

이 와중에 자민당에서도 선거 책임으로 이번 선거를 노리고 우후죽순 신당을 만들었드랬다. 우정민영화에 반대했었던 히라누마 다케오(平沼赳夫)와 선거 책임을 묻던 요사노 가오루(与謝野馨) 등등이 뛰쳐나가 진짜로 '일어서라 일본'이라는 당을 만들었다..... 자민당 집행부를 주로 까던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도 뛰쳐나가고 일부 몇몇이 모여 신당 개혁(新党 改革)을 만들었다. 여기서 탈당한 요사노나 마스조에는 탈당신고가 수리 안되고 그냥 제명당했다.

여기서 2009년에 자민당을 떠난 와타나베 요시미(渡辺喜美)가 만든 민나노당(みんなの党/모두의 당)이 의외로 부상했다. 공약 자체는 고이즈미틱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보이는데, 공약때문은 아닌 것 같고 자민당 이놈들 반성해라!하고 민주당으로 갔다가, 이 산이 아닌가벼...하는 애들 중에 상당수가 여기로 쏠렸으리라 짐작된다. 원래 얘들도 사실은 정권 획득!보다는 정계 재편을 목표로 삼았지만, 민주당이 못하는 바람에 갑자기 지지율이 올라 어어?!하고 있는 것 같음. 간 나오토가 나타나는 바람에 다시 지지율이 빠지는 것 같았으나, 다시 민주당 지지율이 떨어지는 바람에 지지율이 상승.... 그러나 보수계열이다.

그러던 과정에서 선거가 찾아왔습니다. 2010년 7월 11일에 열린 선거의 의미는 이런 위에서의 정계의 움직임과 함께, 민주당이 정권을 잡고 처음 맞는 선거이자 자민당 창당 이래 처음으로 야당인 선거. 결과를 까보니.


민주당이 44석으로 대패.... 별 코멘트 안하겠음. 승자가 민나하고 자민당밖에 없네여, 우왕....... 며칠 더 지나보면 제대로 된 분석을 할 수 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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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오카 신이치(北岡伸一)의 『自民党-政権党の38年』. 직역하면 『자민당 : 정권당의 38년』이라고 하겠다. 기타오카는 정치학자이자 사학자로 도쿄 대학 교수로 있다. 일본정치외교사 전문으로, 원래는 육군 연구에서 시작했지만 1980년대말부터는 현대 정치에 대한 논평을 시작한다. 일본이 어떻게 하면 국제평화에 적극적으로 공헌할 수 있을까. 보통국가로 나아갈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에 대해 거침없이 이야기한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제9조에 대한 문제, 즉 일본국헌법의 평화조항에 대한 문제를 살피던 중이었다. 주로 개헌론측에 서서 논리를 강변하던 기타오카 교수는, 애초에 그저 보수주의의 대명사일뿐 지성계의 거두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의 책을 찾던 중에 흥미로운 제목을 발견했다. 자민당. 부제(?)를 제외하면 단 석자다. 자유민주당도 아닌 자민당. 이건 각설하고, 결국 제9조 문제와 관련한 기타오카 교수의 책은 하나도 읽지 않았지만, 자민당은 꾸준히 읽고 있다. 그 자체가 보수주의적 시각이자 일본의 자주적 시각(이른바이다.)에서 쓰여진 터라 서술에 걸리적거리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 면을 포함하더라도 훌륭한 책이다. 간결하고, 명확하다. 요시노 사쿠조상을 받았다던데, 뭔지는 몰라도 상이라니까 좋은가보다. 좋은 책이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왜 이런 책은 번역을 아무도 안한걸까. 고심하다가, 하기로 했다. 저작권 문제가 특히 걸린다. 남의 저작권을 날로 먹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부하는 셈을 치고, 이러한 책을 소개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기에 번역하기로 했다. 번역이 끝나면 내릴 작정이다. 책의 전문을 공개하는 것은 저작권 위반에서 빠져나갈 틈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한 면에서 이 번역물에 대하여는 엄격하게, 무단전제게재등을 막아보기로 한다. 어차피 작정하고 가져가면 큰 어려움만 남겠지만, 그래도 책을 소개하려는 의도가 더욱 강한 것이니.

책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1995년도에 나온 책이다. 요미우리 신문사에서 간행되었고. 그래서 예전의 모습을 기준으로 서술하였다. 2008년에 주오코론신샤中央公論新社에서 문고판으로 복간되었다.

머리말을 대충 번역해보니, 원문이 문고판(A6)을 기준으로 일곱쪽이던 것이 A4를 기준으로 다섯장이 되었다. 모르는 사람이 많으리라 감안하고 가열차게 각주를 단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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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지성이를 조선에 기대하리라는 것이 무리란 것을 안지가 한참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인이 그 굴(위키백과를 이름)에 있었던 것은 내가 이미 뿌린 씨앗이 있었고, 또한 조선의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저 일본국에 대하여 알기를 원할 때에 무엇인가를 찾는데 도움이 되라고 하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자꾸 번역이를 하고 갖다가 뿌린 것이 어언 1년이 넘은 것이다.

허나 탈퇴의 변이라고 제언이(누지름)를 썼던 이래로 다시 활동을 하여도 예전과 같은 열정이 돌아올 일은 없고, 또한 자꾸 다음이에서 오는 놈들이나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인하여 애증이 교차하는 아침판 연속극같은 마음만 자꾸 더해지므로 그 제언이 이래로 만들었던 니혼모노가타리(누지름)를 자꾸 쓰게 되는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 바탕한 것이다.

과인은 본래 나눔에 인색한 사람이 아니지만, 남의 것을 공짜로 훔쳐먹으려는 자에게는 그리 인색할 수가 없다. 과인이 대인배가 아닌 탓도 있으나, 이 소인배들은 공부를 하지 아니하면서 학점을 왜 아니주느냐만 탓하고 있으니 이런 도둑놈들이 어디있나. 그야말로 학비(學匪:학문의 도적)라는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 틀림이 없으리라.

하여간에 그러한 연유에도 일이 있고, 또한 조선에서 일본국의 법학 이야기나 정치이야기를 찾으려면 만만한 텍스트도 없고 오직 몇몇 자료에만 의존하여 지극히 단편적인 이야기만 줏어 들을 수 밖에 없으니 그야말로 조선에서 일본을 보는 이야기가 이모양이 된 때에는 그러한 요인이 그래도 한 몫을 차지하였으리라. 과인이 천학(淺學)하여 일본국 말을 야매로 배운 바만 있으므로 번역 실력이 그리 좋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여러 텍스트를 조선말로 옮긴다면 필경 이를 보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 있으리라 하여 여러 텍스트를 조선말로 옮기는데 신경을 쓰는 지경이 되었다. 미노베 교수의 변명(누지름) 또한 조선에서 옮기는 이도 없을 뿐더러 그 말이 어려워 필경 일본어를 아는 조선사람 또한 읽기가 쉽지 않을 것인지라, 과인이 부족한 실력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하여 겨우 옮긴 것이다. 이도 찾는 사람이 종종 있으니 이에 아쉽지 아니한 마음을 달랠 뿐이다.

일본이 조선(뿐만 아니라 아시아 제국에 대하여)에 가한 일들은 말로 할 수 없을 것인데, 이를 어찌 돈이나 한낱 말로 하여금 청산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일본은 조선과 지척에 있는 나라로 물 한줄기만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같이 살지 아니할 수 없는 이웃이다. 이러한 지경에 있는 나라로서 서로 마음을 다하여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어찌 이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오오사까 출신의 대통령이 나온다고 어찌 마음을 다하였다고 하겠는가. 그럼에 있어서는 우리가 다가가는 것도 중요하겠으나, 일본이 지난 날의 일을 반성하고 아시아 제국의 평화를 위해 진심(塵心)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려면 우선 조선도 그를 도와야 할 진댄, 그를 돕는데 어찌 이웃을 모르고 이러한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일본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서 비롯하는 것이다.

자위대와 평화헌법의 문제도 그러하다. 자위대에 대하여나 헌법에 대하여, 또는 그 내용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데 어찌 일본의 군비 문제를 이야기할 것이며, 어찌 그 헌법에 대하여 이야기할 것인가. 그럼에 있어서는 알기 위한 노력이 있다고 하여도 필경 알 수 있는 텍스트가 없으므로, 과인이 고금의 자료를 상고하여 여러 일을 쓰게 되었다. 이는 여기서 비롯한 것이다.

이야기가 길어졌으나 일단은 과인이 뿌린 씨앗이 있으므로 그 굴에서 씨앗을 고치는 데에는 신경을 쓰지 아니할 수 없으나, 다음에는 그곳에 씨앗이 뿌려질지는 보증하지 못할 일이다. 필경 과인의 이야기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있으리라 할 수는 없으나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과인을 돌보고자 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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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10

2008.05.12 08:54 from 일상茶房사
요새 하는 일은 없다.

생협에 가끔 나가고, 동아리도 가끔 가고, 아르바도 가끔 하고.
알바는 조만간에 그만주어야 하겠다. 이것이 돈을 만지니 온갖 세균이 나를 잡아먹는 것과 같은데다가, 몸도 피폐해지고 마음도 피폐해진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특히 중국인들이 싫다.

일본 이야기(는 일본물어에서)를 안쓴지 참 오래되었다. 저작권 문제때문에 마음이 걸리고 이것 저것 마음에 안드는 부분이 있어서 그간 놔두었더니 언제 돌아갈지 모르겠다.

지금 블로그 관련하여 하고 있는 일은 일본국 최고재판소에서 존속살해죄에 대하여 위헌판결을 내렸던 사건의 판결문을 번역하고 있다. 이번에 느낀건데 왜국 재판소 재판관들도 참 판결문을 못쓰더라...... 하여간 법학에서 중문복문은 만고(萬古)의 보도(寶刀)이니 함부로 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그 사건의 주문은 다음과 같다.

주문(主文)
원 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을 징역 2년 6개월에 처한다.
이 판결의 확정일로부터 3년간 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원심 판결에서 적용되었던 존속살해죄의 형량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었다. 일반살해죄에 비하여 형량이 훨씬 다르다. 이러한 점에 대하여 일본에서도 그간(물론 이 판결 이전까지) 존속살해를 일반 살해와 다르게 취급하는 것의 문제라거나, 아니면 존속살해죄에 대해서도 형량이 일반살해죄에 비해 너무 큰 것이 아니냐(즉 차별은 하여야겠으나, 무조건 사형 무기는 옳지 않다는 주장들)는 이야기가 자주 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한국에서도 있었는데, 지금은 존속살해와 일반살해의 차이가 많이 좁혀져서 후자의 이야기는 줄어들었지만, 전자의 이야기는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법학의 떡밥이다. 하여간 이 사건을 통해서 일본에서 존속살해죄를 차별하는 것은 헌법상의 평등에 반하는 불합리한 조치(물론 형량이 일반살해죄에 비해서 너무 차이가 났던 탓이 클 것이다. 차이가 적었다면 존속살해죄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최고재판소에서 이야기하면서 이후에 판도가 바뀌게 되었는데, 판결문의 번역은 아직 일반적인 법학번역의 내용이 아니니까, 이런 것들을 번역해 놓으면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많이 찾을지 모르겠다. 나는 이미 천황기관설에 관한 미노베 다쓰키치 의원의 이른바 「일신상의 변명」을 주목한 례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위키백과에서 있었던 이야기 가운데 과인의 교서(등)를 두고 ‘자기 중심적인 성격’이라거나 ‘너무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이 무슨 '어종'인가 뭔가 하는 왕이라 하는 것은 뭔지’라는 지적이 있었던 적이 있는데, (물론 이 블로그 내에서 언급한 내용에 대해서는 위키백과 내에서 답변하지 않으니, 알아서 하기바람) 해괴한 일이다. 유모어 센스가 없는 거이도 문제지만, 남의 글을 제대로 읽지 않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뿐만 아니라 민주국가에서 백성이 모두 왕이라는 사실에 바탕을 두지 못하는 것은 더욱 슬픈 일이다. 근일내로 자유민주주의국가 남조선에서 백성이 왕이라는 의미와, 과인이 임금을 칭하는 것에 대하여 몇자로 평을 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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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혐일주의에 대한 슬픔(누지름)에 대해 잠깐 이야기한 바가 있지만, 이제는 좀 더 성숙한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해 논할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해 다시 몇 자 제언을 쓴다.

과연 한국과 일본의 현재의 관계는 무엇인가. 인접한 국가? 자유민주국가로서의 우방? 아니면 둘 다 친미국가로서의 동질감? 아니면 북조선에 국민들을 납치당한 공공의 적을 가진 존재? 아니면, 아직도 우리의 적? 이명박 당선자는 "우리가 사과나 반성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일본도 매우 형식적인 사과와 반성을 한 것이 사실이고 그 사과가 한국 국민들에게 그렇게 감동을 주지 못했다"고 이야기하였다. 이어 이야기하기를 "새로 성숙된 한일 관계를 위해서 사과하라거나 반성하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언급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 오사카 출신의 대통령 당선자가 더럽게 친일성향을 드러낸 것이라고 보아야 할까?

지난 1995년, 일본의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총리는 내각총리대신으로서의 담화 전후 50주년의 종전기념일을 맞아(누지름)를 발표하고 향후의 관계와 일본의 미래에 대해 잠깐 이야기한 바 있다. 여전히 이러한 원칙은 살아있으며,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견해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말 우리는 일본이 사과를 요구하고,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한다면 기뻐할 수 있는가. 이명박 당선자의 말처럼 일본이 정상적인 자세로 사과를 한다거나, 또는 여전히 일본의 과거사는 지금의 일본이 안고 가야할 숙제인가. 그럼 일본은 어떻게 사과를 하여야 하는가.

전후 60주년을 바라보고 있다. 일본 정부가 일본 전역에 대한 지도를 제작하면서, 그 가운데에 독도의 지도도 포함되어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과연 이에 대하여 우리는 어떠한 대처를 하여야 하는가.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고, 독도 문제에 대하여 반박을 하여야 하는가? 아니다. 일본국 정부가 대한민국 영토인 독도에 소재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건조물을 표시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영토주권의 불법적인 침해로 받아들이고, 그에 대하여 사과를 요구하여야지 이전의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사과를 요구해서는 안된다.

양국간의 다른 제 문제에 대하여는 어떻게 대처하여야 하는가. 징용 및 정신대 배상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의 문제가 더 크다. 지난 60여 년간 한국 정부는 이미 일본 정부에 대해서 해당 논의에 대해 어떠한 언급을 할 지위를 스스로 방기하였다. 그럼 한국 정부의 향후의 과제는 무엇인가. 해당 문제 등으로 상처입은 대한민국 국민을 보살피고, 또한 해당 국민들이 일본국 정부 또는 기타 가해자에 대하여 보상 등을 요구할 때 지원을 해주어야 할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전후 60년이 지난 일본은 이미 사과한 상태이고, 이제 그 향후 조치를 취하여야 할 단계이지, 이제 와서 다시 사과를 요구할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이 지난 제국주의 침략 역사에 대하여 찬양·미화하고, 또한 다시 제국주의 침략으로 나아가려는 야망을 드러냈을 때에는 사과가 아니라 일본을 비판하고, 또한 외교적으로 대응하여야 하는 것이다. 사과가 제국주의 침략을 막아줄 수 있는 유일한 보도(寶刀)는 아닌 것이다.

사과나 반성이라는 것은 표면적으로 드러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사과나 반성의 반대 측면은 쉽게 드러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 대하여, 이미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과를 다시 요구하기 보다는, 그 반대 측면의 행위가 나타났을 때에 그 측면에 대하여 비판을 가하는 것이 국가적으로도, 아니면 양국 간의 정상적인 관계에 있어서도 좀 더 현명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한국은 여전히 정서적인 측면에서 효과적인 사과라는 표현을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면서도, 또한 너무 소홀하게 취급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글이 또 길어졌으므로 읽는 사람이 별로 없을테지만, 혹여 읽고 또 다시 글과 관계없는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에게는 미노베 다쓰키치 교수의 「일신상의 변명」(누지름)을 권하고 싶다.
+3주년 핑계 재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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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8

2008.03.23 08:57 from 일상茶房사

근래에는 불로거(不路居:blog)에 쓰는 글이 근황의 일색이다. 물론 내 불로거가 근황 블로그가 되어가는 것이 나로서도 반갑지만은, 자꾸 근황만 쓰다보면 결국에는 정신있는 글을 쓰지 못할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

이야기하다가 말았는데, 며칠 전에 모판(母版:motherboard)께서 의문사하는 바람에 새로 모판을 구해야 할 처지였으나 도필리(刀筆吏) 선생님의 도움을 얻어 시피유와 모판을 함께 바꾸었다. 그 뒤로 컴퓨터가 그 전보다 괜찮은듯 하니 다행이다. 그런데 이 모판을 넣을랬더니 케이스가 너무 작은지라 결국 도필리 선생님이 주신 케이스를 가져다 쓰고 있다.

학교를 어슬렁거리다가 보니 동래(東來:Busan)의 도자이대학(東西大學)의 일본연구센터에서 한일차세대학술포럼 제5회 국제학술대회라는 것을 경성(京城:Keijzyou)의 경성민국대학에서 한다고 하더라. 이것 일반 참가도 받는다길래 연통하여 학부생이 놀러가도 무방하오 하고 물었더니 지난 해에도 1인의 학부생이 있었으니 너의 정체를 밝히고 얼른 발목을 잡히라 하길래 나중에 다시 연통하겠소 하고 내뺐다. 시간이 되면 가보고 싶기는 허다.

편의점에 앉아 있으니 너도 뉴약거(紐約居:Newyorker)가 될 수 있는 옥수수죽(Cornsoup)이라면서 나를 꼬시길래 먹었더니, 아 이놈의 죽을 먹고나서 단번에 든 생각이 이딴 것을 먹으니 미리견 양이들이 당뇨에나 걸리는 것이다 하는 생각이 절로나더라. 하여간 오랑캐의 습속을 잘못 배웠는지 아니면 오랑캐라 그런지 의심이 든다.

아차 모판을 갈면서 남은 시피유 가져갈 자가 있느냐. 아마도 야옹선생이 필요한가 싶은데, 2.8Ghz 셀러론에 478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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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란 무엇인가 - 10점
아미노 요시히코 지음, 박훈 옮김

전후(戰後) 역사학은 '일본'자체에 대해 진정한 역사적 시각을 전혀 지니지 못하고, 지극히 오랜 옛날부터 하늘에서 내려온 것처럼 '일본'이 존재했다는 식으로 막연하게 인식하는 데 머물렀다. 이 책은 일본 열도에서 수십만년 전부터 영위해온 인류사회의 역사 가운데 '일본국'의 위치를 설정하고, 약 1300년에 걸친 '일본국'의 역사를 철저하게 총괄하여 그 실체를 백일하에 드러내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다. 패전 전의 '망령'들이 그 모습을 바꾸어 우리들 앞에 분명히 드러난 지금이야말로 그 총괄작업을 개시할 최적의 싯점이다.


위 박스에 들어있는 서평의 경우, 여러 사이트를 찾아 길이와 내용이 적절한 것을 찾는데, 대개 좋은 책의 경우 서평만으로 드러낼 수 없는 내용들이 많은데 이 책이 바로 딱 그런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미노 요시히코(網野善彦)씨의 호칭을 뭣이라고 할까 마땅치 않으나, 생전에 카나가와 대학에서 교수를 지냈으므로 아미노 교수라고 약칭하도록 하자. 생전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 책이 한국에 소개된 2003년의 이듬해에 안타깝게도 향년 76세로 폐암으로 영면하였으므로 이미 고인이 된 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의미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미노 교수의 학술적인 역사에 있어 말년에 나온 책이기에 그의 학술적 생애의 말미로, 일본인으로서 일본에 대한 역사적 시각으로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일본론(日本論)'에 대한 시각을 제시했다는 것 뿐만 아니라, 그를 통해 동북아 국가가 종전(終戰) 이후 새로운 아시아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데에도 충분히 생각할만한 화두를 떠올리게 했다는데 있다.

아미노 교수는 중세사학자로 분류된다고 할 수 있는데, 그의 초기 연구에서 일본의 중세라고 할 수 있는 바쿠후[幕府] 시대의 여러가지 탐구가 드러나는데 비해 후기로 접어들수록 '일본론'이라는 주제와 열도(列島)의 역사에 대한 깊은 고민과 통찰이 드러나고 있기에 중세사학자가 아니라 한 일본인의 평처럼 '역사철학자'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는 분이다.

이 책의 옮긴이(박훈 옮김)의 말에서 지칭하는 '아미노 사관(史觀)'은  '국민국가론'ㅡ국가와 국민, 민족을 상대적으로 바라보는ㅡ의 성과를 흡수하면서도 우리가 익숙하게 접하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식의 국민사관론ㅡ이란 용어는 이 글에서만 통용하는 임시칭이다ㅡ이나 '요미우리-쮸우꼬오(讀賣-中公) 그룹'ㅡ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국민사관론과는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며 일본근대사에 대한 부정 일변도의 시각에 거부감을 보이며 '일본'에 대한 내용을 재구성하려는 집단이라고 한다ㅡ과 '진보사관'ㅡ의 경우는 맑스주의적 근대역사학ㅡ의 세 관점에 대해 모두 문제를 제기하는, 한국에서라면 '반골(反骨)'이라고 불릴지도 모르는 독특한 역사적 시각을 전개한다.

이 책은 '일본'이라는 관념에 대한 의문과 함께, '천황'이라는 명칭이나 '일본'이라는 명칭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과 '민족성'이라고 부를만한 여러가지 상징들에 대해 비판을 제기한다. 그러면서도 또한 '일본'의 역사에서 드러나는 여러가지 특이한 점에 주목하면서, '일본'의 특징에 대해 꼼꼼하게 짚어내고 있다는 것은 한국에서 보기에도 상당히 정교하고 의미있는 기술(記述)임에 틀림없다.

또한 아미노 교수가 '일본인'으로서 '일본해(日本海)'에 대한 비판을 제시하는 것도 우리는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일 것이다. 과연 '동해(東海)'나 '동한국해(東韓國海)'라는 명칭이 가지는 당위성이라거나, '청해(靑海/淸海)'라는 명칭에서 나타나는 부분이라거나. 이런 점을 고려하면서 한국과 일본간의 관계를 새로 구성해야 할 필요성이라는 점까지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또 덧붙이면 옮긴이인 박훈氏의 번역은 상당히 괜찮으면서도, 외래어 표기에서 한국어의 특유성을 잘 살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외래어표기법'과는 맞지 않을지 몰라도, 일각에서 주장하고 있는 '외래어 표기법 개정'에 대한 논의를 생각하면, 상당히 합리적이고 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 요시히코/요시히꼬)

그리고 이 책이 일반 독자의 시각을 고려해 쉬운 편이라고 해도, 여전히 일본사에 문외한인 한국사람들에게는 많이 어려울 것이므로, 일본사에 대한 짧은 개관 정도는 훑어본다거나 지도를 펼쳐놓는 것이 참으로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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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펼쳐져 있는 혐일주의는 생각보다 심각한 편이다. 이러한 사정은 사견(私見)으로는 아무래도 보수가 진보를, 그리고 진보가 보수를 보는 시각 이상으로 강한 편인데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아무런 문제점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의 소지가 크다.

일본은 한국과 인접한 나라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수천 년간 지내온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은 편이며, 전여옥과 같은 일부 괴각자(怪覺者)들이 소개한 일본이라는 이미지가 덧붙여져 일본은 훨씬 야만적이고 또한 에로에로하며 생각없는 나라로 틀에 박힌 고정관념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돌이키기 힘든 고정관념은 고이즈미 전 총리나 일본 극우파 정치인의 행동과 결합되어 효과를 증폭시켰고, 그 결과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처럼 일본에 대한 인식 그 자체 또한 편향되거나 혹은 왜곡된 시각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미래사회는 일본과, 또한 중국과, 동북아시아와, 세계와 더불어 전진하는 연대와 평화의 세대가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행한 행동에 대한 한국의 반응과, 일본에서 행한 행동에 대한 한국의 반응은 판이하게 다르다. 일본이 35년간 조선반도를 장악하고(실제로는 그 이상이지만), 또한 펼쳤다는 만행을 생각해 보아도 그러한 골에 대한 연유로 제시하기에는 너무 큰 관념이 아닌가. 한국이 일본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감정과 비교할 때, 그러한 일본에 대한 지식은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또한 그러한 지식에 대한 지향조차 거의 없는 형편이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결국 지일(知日)을 외치는 일부 인사는 비주류로 전락하고, 친일(親日)을 외친 조영남과 같은 선각자는 매장당하는 상황이 연출되며 결국 살아남는 것은 극일(克日)을 주창한 지만원선생과 같은 양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분명 이러한 글을 쓰면 일제 36년이 어쩌고 하는 반응이 나오리라 생각하지만, 그러한 점을 생각하더라도 과연 일본에 대한 반응이 정상적이고 논리적, 합리적, 그리고 충분히 사회적인 일반의 상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또한 일본에 관련된 사항이면 친일이라느니, 신친일파로 몰아붙이는 박아무개같은 젊은 사람을 볼 때면 생각하는 것이지만 이 나라에 뿌리 깊게 박힌 혐일주의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을 것 같다. 나는 슬픔에 빠져 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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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로 사건(ポポロ事件)은 도쿄 대학의 공인 학생 단체인 ‘포포로 극단’의 연극 발표회 도중에, 학생이 발표회장의 사복 경찰에게 폭행을 가한 사건이다. 일본국 헌법 제23조가 보장하는 학문의 자유에 포함된 대학 자치의 문제가 불거져, 일본 최고재판소까지 간 사건이기도 하다.


발단

1952년 2월 20일, 포포로 극단은 도쿄 대학 혼고 캠퍼스에서 마쓰카와 사건을 주제로 한 연극 ‘언제의 일인가’(何時の日にか)를 공연했다. 이는 대학의 허가를 얻은 것이었다. 공연 도중에 관객중에 사복 경찰 3명이 있는 것을 발견한 학생들은 3명을 붙잡아 경찰 수첩을 빼앗고, 사죄문을 쓰게 했다. 그때 이 학생들은 나중에 폭력을 가했다는 이유로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에 의해 기소당하게 되었다.

1954년 5월 11일, 도쿄 지방재판소의 1심에서는 학생의 행위가 대학의 자치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이유로 정당하다고 판시하고, 학생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인 도쿄 고등재판소에서 열린 1956년의 재판에서도 1심을 지지해 무죄를 선고했고, 검찰은 상고했다.


최고재판소 판결

1963년 5월 22일의 최고재판소 판결은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도쿄 지방재판소로 환송했다.

최고재판소는 판결에서 “대학의 학문의 자유와 자치는 대학이 학술을 중심으로 하여 깊이 진리를 탐구하고, 전문적인 학예의 교수와 연구를 본질로 하는 것에 근거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는 교수 기타 연구자의 연구, 그 결과의 발표, 연구 결과의 교수의 자유와 이를 보장하기 위한 자치를 의미한다고 해석된다. 대학의 시설 및 학생은 이들 자유와 자치의 효과로서, 시설이 대학 당국에 의해 자치적으로 관리되어, 학생 또한 학문의 자유와 시설의 이용을 인정받는 것이다. (중략) 본 건의 집회는 사실상 학문적인 연구와 발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실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활동이며, 공개의 집회 또는 이에 준하는 것으로서, 대학의 학문의 자유와 자치는 이를 향유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본 건 집회에 경찰관이 입회한 것은 대학의 학문의 자유와 자치를 범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판시하였다.


환송 이후

1965년 6월 26일, 도쿄 지방재판소는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하였다. 이후 항소(도쿄 고등재판소, 1966년 9월 14일)와 상고(최고재판소, 1973년 9월 14일)가 모두 기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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