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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3.16 일본헌법사 소고

日本國憲法

1946년 11월 3일 공포
1947년 5월 3일 시행



상유(上諭)

짐은 일본 국민의 총의(總意)를 바탕으로 새 일본 건설의 기초(基礎)가 정해지기에 이름을 깊이 기뻐하며, 추밀고문의 자순(諮詢) 및 제국헌법 제73조에 따라 제국의회의 의결을 거친 제국헌법의 개정을 재가(裁可)하고, 이에 이를 공포케 하노라.


어명어새(御名御璽)


쇼와(昭和) 21년 11월 3일
 내각총리대신 겸 외무대신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국 무 대 신 남작 시데하라 기주로(幣原喜重郎)
 사 법 대 신    기무라 도쿠타로(木村篤太郎)
 내 무 대 신    오무라 세이치(大村淸一)
 문 부 대 신    다나카 고타로(田中耕太郎)
 농 림 대 신    와다 히로오(和田博雄)
 국 무 대 신    사이토 다카오(齋藤隆夫)
 체 신 대 신    히토쓰마쓰 사다요시(一松定吉)
 상 공 대 신    호시지마 지로(星島二郎)
 후 생 대 신    가와이 요시나리(河合良成)
 국 무 대 신    우에하라 에쓰지로(植原悦二郎)
 운 수 대 신    히라쓰카 쓰네지로(平塚常次郎)
 대 장 대 신    이시바시 단잔(石橋湛山)
 국 무 대 신    가나모리 도쿠지로(金森德次郎)
 국 무 대 신    젠 게이노스케(膳桂之助)



일본국헌법

 일본 국민은 정당하게 선거(選擧)된 국회의 대표자를 통하여 행동하고, 우리와 우리의 자손을 위하여 여러 국민과의 화합과 협력에 의한 성과와 우리나라 전토(全土)에서 자유가 가져오는 혜택을 확보하며, 정부의 행위로 다시 전쟁의 참화(慘禍)가 일어나는 일이 없기를 결의하며, 이에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선언하여 이 헌법을 확정한다. 무릇 국정은 국민의 엄숙한 신탁(信託)에 의한 것으로, 그 권위는 국민으로부터 유래하고, 그 권력은 국민의 대표자가 이를 행사하며, 그 복리(福利)는 국민이 누린다. 이는 인류 보편(普遍)의 원리로, 이 헌법은 그러한 원리에 기초한 것이다. 우리는 이와 어긋나는 일체의 헌법, 법령 및 조칙(詔勅)을 배제한다.

 일본 국민은 항구평화(恒久平和)를 염원하고, 인간 상호관계(相互關係)를 지배하는 숭고한 이상을 깊이 자각(自覺)하며, 평화를 사랑하는 여러 국민의 공정(公正)과 신의(信義)를 신뢰(信賴)하여 우리의 안전과 생존을 지키기로 결의한다. 우리는 평화를 유지하고, 전제(專制)와 예종(隷從), 압박(壓迫)과 편협(偏狹)을 지상에서 영원히 제거하고자 노력하는 국제사회에서 명예로운 지위에 서고자 한다. 우리는 전 세계의 국민이 모두 공포와 결핍(缺乏)에서 벗어나고, 평화 속에 생존할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한다.

 우리는 어떤 국가도 자국의 일에만 전념하여 다른 국가를 무시하여서는 아니 되며, 정치도덕(政治道德)의 법칙은 보편적(普遍的)인 것으로, 이 법칙에 따라 자국의 주권을 유지하고, 다른 국가와 대등한 관계에 서는 것이 각국의 책무(責務)라고 믿는다.

 일본 국민은 국가의 명예를 걸고, 전력(全力)을 다하여 이 숭고한 이상과 목적을 달성할 것을 맹세한다.


   제1장 천황(天皇)

제1조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象徵)이자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이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의 총의에 바탕한다.

제2조
황위는 세습되며, 국회가 의결한 황실전범(皇室典範)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이를 계승한다.

제3조
천황의 국사에 관한 모든 행위에는 내각의 조언과 승인을 필요로 하며, 내각이 그 책임을 진다.

제4조
① 천황은 이 헌법에서 정하는 국사(國事)에 관한 행위만을 수행하고, 국정에 관한 권능을 가지지 아니한다.
② 천황은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국사에 관한 행위를 위임할 수 있다.

제5조
황실전범에서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섭정을 둘 때에는, 섭정은 천황의 이름으로 그 국사에 관한 행위를 수행한다. 이 경우에는 앞의 조(條) 제1항의 규정을 준용한다.

제6조
① 천황은 국회의 지명(指名)에 기초하여 내각총리대신(內閣總理大臣)을 임명한다.
② 천황은 내각의 지명(指名)에 기초하여 최고재판소(最高裁判所)의 수장[長]이 되는 재판관을 임명한다.

제7조
천황은 내각의 조언과 승인에 의하여, 국민을 위해 다음의 국사에 관한 행위를 수행한다.

  1. 헌법개정, 법률, 정령(政令) 및 조약을 공포(公布)하는 일.
  2. 국회를 소집(召集)하는 일.
  3. 중의원(衆議院)을 해산(解散)하는 일.
  4. 국회의원 총선거 시행을 공시(公示)하는 일.
  5. 국무대신(國務大臣) 및 법률에서 정하는 그 밖의 관리(官吏)의 임면(任免)과 전권위임장(全權委任狀) 및 대사(大使), 공사(公使)의 신임장(信任狀)을 인증(認證)하는 일.
  6. 대사(大赦), 특사(特赦), 감형(減刑), 형(刑)의 집행면제 및 복권(復權)을 인증하는 일.
  7. 영전(榮典)을 수여하는 일.
  8. 비준서(批准書) 및 법률에서 정하는 그 밖의 외교문서를 인증하는 일.
  9. 외국의 대사 및 공사를 접수(接受)하는 일.
  10. 의식(儀式)을 행하는 일.
제8조
황실(皇室)에 재산(財産)을 양도(讓渡)하거나, 또는 황실이 재산을 양수(讓受)하거나 사여(賜與)하는 것은 국회의 의결에 바탕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2장 전쟁의 포기(放棄)

제9조
① 일본 국민은 정의(正義)와 질서(秩序)를 기조(基調)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希求)하고, 국권(國權)의 발동(發動)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하(威嚇) 또는 무력행사(武力行使)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② 앞의 항(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육해공군(陸海空軍)과 그 밖의 전력은 보유[保持]하지 아니한다. 국가(國家)의 교전권(交戰權)은 인정하지 아니한다.


   제3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제10조
일본 국민이 되는 요건은 법률로 정한다.

제11조
국민은 모든 기본적 인권의 향유를 방해받지 아니한다. 이 헌법이 국민에게 보장하는 기본적 인권은 침해할 수 없는 영구한 권리로, 현재와 장래의 국민에게 부여한다.

제12조
이 헌법이 국민에게 보장하는 자유와 권리는 국민의 부단한 노력에 의하여 유지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또한 국민은 이를 남용하여서는 아니 되며, 항상 공공복지(公共福祉)를 위하여 이용할 책임(責任)을 진다.

제13조
모든 국민은 개인(個人)으로서 존중된다. 생명, 자유 및 행복추구에 대한 국민의 권리는 공공복지에 어긋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입법(立法)과 그 밖의 국정(國政)에서 최대(最大)로 존중(尊重)할 필요가 있다.

제14조
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인종, 신조(信條), 성별, 사회적 신분 또는 가문[門地]으로 정치적, 경제적 또는 사회적 관계에서 차별받지 아니 한다.
② 화족(華族)과 그 밖의 귀족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 한다.
③ 영예(榮譽), 훈장과 그 밖의 영전(榮典)의 수여(授與)는 어떠한 특권도 따르지 아니한다. 영전의 수여는 현재 이를 가지거나 장래에 이를 받는 자의 1대(代)에 한정하여 그 효력을 가진다.

제15조
① 공무원을 선정(選定)하고, 또 이를 파면(罷免)함은 국민 고유의 권리이다.
② 모든 공무원은 전체의 봉사자이지, 일부의 봉사자가 아니다.
③ 공무원의 선거는 성년자(成年者)에 의한 보통선거(普通選擧)를 보장한다.
④ 모든 선거에서 투표의 비밀을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선거인(選擧人)은 그 선택에 공적(公的)으로도 사적(私的)으로도 책임을 묻지 아니 한다.

제16조
누구도 손해의 구제(救濟), 공무원의 파면, 법률, 명령 또는 규칙의 제정, 폐지 또는 개정이나 그 밖의 사항을 위하여 평온하게 청원할 권리를 가지며, 누구라도 이러한 청원을 함으로 인한 어떠한 차별 대우를 받지 아니한다.

제17조
누구도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받은 때에는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국가 또는 공공단체(公共團體)에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제18조
누구도 어떠한 노예적 구속도 받지 아니한다. 또한 범죄로 인하여 처벌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뜻에 어긋나는 고역(苦役)을 받지 아니한다.

제19조
사상 및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제20조
① 신교(信敎)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보장한다. 어떠한 종교단체도 국가로부터 특권을 받거나 또는 정치상 권력을 행사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누구라도 종교상 행위, 축전(祝典), 의식(儀式) 또는 행사에 참가하는 것을 강제받지 아니한다.
③ 국가와 그 기관은 종교교육과 그 밖의 어떠한 종교적 활동도 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21조
① 집회(集會), 결사(結社) 및 언론, 출판과 그 밖의 모든 표현의 자유는 보장한다.
② 검열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통신의 비밀은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22조
① 누구라도 공공복지(公共福祉)에 어긋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거주, 이전 및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
② 누구라도 외국에 이주하거나 국적을 이탈할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제23조
학문의 자유는 보장한다.

제24조
① 혼인은 양성(兩性)의 합의에 따라서만 성립하며, 부부가 동등한 권리를 가짐을 기본으로 하며, 상호의 협력으로 유지되지 않으면 아니 된다.
② 배우자의 선택, 재산권, 상속, 주거의 선정(選定), 이혼과 혼인 및 가족에 관한 그 밖의 사항은 법률로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본질적 평등에 입각하여 제정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25조
①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한도의 생활을 영위할 권리를 가진다.
② 국가는 모든 생활부분에서 사회복지(社會福祉), 사회보장(社會保障) 및 공중위생(公衆衛生)의 향상 및 증진에 노력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26조
① 모든 국민은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능력에 따른 동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② 모든 국민은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보호하는 자녀에게 보통교육(普通敎育)을 받게 할 의무를 진다.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

제27조
①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지며, 의무를 진다.
② 임금, 취업시간, 휴식과 그 밖의 근로조건에 관한 기준은 법률로 정한다.
③ 아동은 혹사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28조
근로자의 단결할 권리 및 단체교섭과 그 밖의 단체행동을 할 권리는 보장한다.

제29조
① 재산권은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재산권의 내용은 공공복지에 적합하도록 법률로 정한다.
③ 사유재산은 정당한 보상 하에 공공(公共)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다.

제30조
국민은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납세의 의무를 진다.

제31조
누구라도 법률에서 정하는 절차[手続]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그 생명 또는 자유를 박탈하거나 또는 그 밖의 형벌을 과(科)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32조
누구라도 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빼앗기지 아니한다.

제33조
누구라도 현행범으로 체포된 경우를 빼고는 권한을 가진 사법관리[司法官憲]가 발급하고, 또한 이유가 되는 범죄를 명시한 영장에 의하지 아니하면 체포되지 아니한다.

제34조
누구라도 이유를 직접 고지(告知)받고, 또한 직접 변호인에게 의뢰(依賴)할 권리를 주지 아니하면 억류(抑留) 또는 구금(拘禁)되지 아니한다. 또한 누구라도 정당한 이유가 없다면 구금되지 아니하며, 요구가 있으면 그 이유는 직접 본인 및 그 변호인이 출석하는 공개(公開) 법정(法廷)에서 제시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35조
① 누구라도 그 주거, 서류 및 소지품에 대하여 침입(侵入), 수색(搜索) 및 압수(押收) 받지 아니할 권리는, 제33조의 경우를 빼고는, 정당한 이유에 따라 발급되고 또한 수색하는 장소와 압수할 물건을 명시한 영장이 없이는 침해되지 아니한다.
② 수색 또는 압수는 권한을 가진 사법관리[司法官憲]가 발급한 각각의 영장에 의하여 수행한다.

제36조
공무원에 의한 고문(拷問)과 잔학(殘虐)한 형벌은 절대 금한다.

제37조
① 모든 형사사건에서 피고인은 공평(公平)한 재판소의 신속한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② 형사피고인은 모든 증인에게 심문할 기회를 충분히 받으며, 또한 공공의 비용으로 자기를 위하여 강제적 절차에 의한 증인을 구할 권리를 가진다.
③ 형사피고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자격을 가진 변호인을 의뢰할 수 있다. 피고인이 스스로 의뢰할 수 없는 때에는 국가가 붙인다.

제38조
① 누구라도 자기에게 불이익한 진술[供述]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② 강제(强制), 고문(拷問)이나 협박(脅迫)에 의한 자백 또는 부당하게 오래 억류나 구금된 후의 자백은 이를 증거로 삼을 수 없다.
③ 누구라도 자기에게 불이익한 유일한 증거가 본인의 자백인 경우에는 유죄가 되거나 형벌이 과(科)하여지지 아니한다.

제39조
누구라도 실행시(實行時)에 적법하였던 행위 또는 이미 무죄로 된 행위에는 형사상의 책임을 묻지 아니한다. 또한 동일한 범죄에 거듭 형사상의 책임을 묻지 아니한다.

제40조
누구라도 억류 또는 구금된 후 무죄 판결을 받은 때에는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국가에 그 보상(補償)을 청구할 수 있다.


   제4장 국회(國會)

제41조
국회는 국권(國權)의 최고기관(最高機關)이며, 국가의 유일한 입법기관(立法機關)이다.

제42조
국회는 중의원(衆議院)과 참의원(參議院)의 양 의원(議院)으로 구성한다.

제43조
① 양 의원은 전국민(全國民)을 대표하여 선거(選擧)된 의원(議員)으로 조직한다.
② 양 의원의 의원(議員) 정수(定數)는 법률로 정한다.

제44조
양 의원의 의원(議員) 및 그 선거인(選擧人)의 자격은 법률로 정한다. 다만, 인종(人種), 신조(信條), 성별(性別), 사회적 신분(身分), 가문[門地], 교육(敎育), 재산(財産) 또는 수입(收入)에 의하여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45조
중의원 의원(議員)의 임기는 4년으로 한다. 다만, 중의원이 해산된 경우에는 그 기간이 끝나기 전에 종료한다.

제46조
참의원 의원(議員)의 임기는 6년으로 하며, 3년마다 의원의 반수(半數)를 개선(改選)한다.

제47조
선거구(選擧區), 투표 방법, 그 밖의 양 의원의 의원(議員)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48조
누구라도 동시(同時)에 양 의원의 의원(議員)이 될 수 없다.

제49조
양 의원의 의원(議員)은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국고(國庫)에서 적절한[相當] 액수(額數)의 세비(歲費)를 받는다.

제50조
양 의원의 의원(議員)은 법률에서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회의 회기(會期) 중에 체포되지 아니하며, 회기 전에 체포된 의원은 그 의원(議院)의 요구가 있으면 회기 중에 석방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51조
양 의원의 의원(議員)이 의원(議院)에서 한 연설, 토론 또는 표결은 원외(院外)에서 책임을 묻지 아니한다.

제52조
국회의 상회(常會)는 매년 1회 소집(召集)한다.

제53조
내각은 국회 임시회(臨時會)의 소집을 결정할 수 있다. 어느 의원(議院)의 총의원(總議員)의 4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으면, 내각은 그 소집을 결정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54조
① 중의원이 해산된 때에는 해산의 날부터 40일 이내에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실시하고, 그 선거일부터 30일 이내에 국회를 소집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② 중의원이 해산된 때에 참의원은 동시에 폐회(閉會)한다. 다만, 내각은 국가에 긴급한 필요가 있는 때에는 참의원의 긴급집회(緊急集會)를 요구할 수 있다.
③ 앞의 항(項) 단서(但書)의 긴급집회에서 채결(採決)된 조치는 임시적인 것으로, 다음 국회가 개회한 뒤 10일 이내에 중의원의 동의(同意)가 없는 경우에는 그 효력을 잃는다.

제55조
양 의원은 각각 그 의원(議員)의 자격(資格)에 관한 쟁송(爭訟)을 재판(裁判)한다. 다만, 의원(議員)의 의석(議席)을 잃게 하는 경우에는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다수(多數)에 의한 의결(議決)이 필요하다.

제56조
① 양 의원은 각각 그 총의원(總議員)의 3분의 1 이상의 출석이 없으면 의사(議事)를 열고 의결(議決)할 수 없다.
② 양 의원의 의사(議事)는 이 헌법에서 특별히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출석의원의 과반수(過半數)로 결정하고, 가부동수(可否同數)인 때에는 의장이 결정하는 바에 의한다.

제57조
① 양 의원의 회의(會議)는 공개한다. 다만, 출석의원의 3분의 2 이상의 다수로 의결(議決)한 때에는 비밀회(秘密會)를 열 수 있다.
② 양 의원은 각각 그 회의기록을 보존하며, 비밀회 기록 가운데 특히 비밀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것 이외에는 이를 공표하고, 또한 일반에 널리 알려야[頒布] 한다.
③ 출석의원의 5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으면 각 의원(議員)의 표결은 회의록에 기록[記載]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58조
① 양 의원은 각각 그 의장(議長)과 그 밖의 임원[役員]을 선임(選任)한다.
② 양 의원은 각각 그 회의와 그 밖의 절차[手續] 및 내부 규율(規律)에 관한 규칙을 정하고, 또한 원내(院內)의 질서(秩序)를 어지럽힌 의원(議員)을 징계[懲罰]할 수 있다. 다만, 의원(議員)을 제명(除名)함에는 출석의원의 3분의 2 이상의 다수에 의한 의결(議決)이 필요하다.

제59조
① 법률안은, 이 헌법에서 특별히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양 의원에서 가결한 때에 법률이 된다.
② 중의원에서 가결하고, 참의원에서 이와 다른 의결을 한 법률안은 중의원에서 출석의원의 3분의 2 이상의 다수로 다시 가결한 때에는 법률이 된다.
③ 앞 항(項)의 규정은,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중의원이 양 의원의 협의회(協議會)를 여는 것을 요구하는 것을 방해하지 아니한다.
④ 참의원이 중의원에서 가결한 법률안을 접수한 뒤에 국회 휴회 중의 기간을 제외하고 60일 이내에 의결하지 아니한 때에는 중의원은 참의원이 그 법률안을 부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제60조
① 예산은 먼저 중의원에 제출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② 예산에 대하여 참의원에서 중의원과 다른 의결을 한 경우에,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양 의원의 협의회를 열어도 의견이 일치하지 아니하는 때 또는 참의원이 중의원에서 가결한 예산을 접수한 뒤에 국회 휴회 중의 기간을 제외하고 30일 이내에 의결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중의원의 의결을 국회의 의결로 한다.

제61조
조약(條約)의 체결(締結)에 필요한 국회의 승인은 앞 조 제2항의 규정을 준용(準用)한다.

제62조
양 의원은 각각 국정(國政)에 관한 조사를 수행하고, 이를 위하여 증인 출두(出頭) 및 증언이나 기록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제63조
내각총리대신(內閣總理大臣)과 그 밖의 국무대신(國務大臣)은 양 의원의 하나에 의석을 가지거나 가지지 않거나와 관계없이 의안(議案)에 대해 발언하기 위하여 의원(議院)에 출석할 수 있다. 또한 답변 또는 설명을 위해 출석을 요구받은 때에는 출석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제64조
① 국회는 파면(罷免) 소추(訴追)를 받은 재판관(裁判官)을 재판(裁判)하기 위하여 양 의원의 의원(議員)으로 조직한 탄핵재판소(彈劾裁判所)를 둔다.
② 탄핵(彈劾)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5장 내각(內閣)

제66조
행정권(行政權)은 내각(內閣)에 속한다.

제66조
① 내각은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수장인 내각총리대신(內閣總理大臣)과 그 밖의 국무대신(國務大臣)으로 조직한다.
② 내각총리대신과 그 밖의 국무대신은 문민(文民)이 아니면 아니 된다.
③ 내각은 행정권의 행사(行使)에 관하여 국회에 연대(連帶)하여 책임을 진다.

제67조
① 내각총리대신은 국회의원 가운데에서 국회의 의결(議決)로 지명(指名)한다. 이 지명은 다른 모든 안건(案件)에 우선하여 한다.
② 중의원과 참의원이 다른 지명 의결을 한 경우,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양 의원의 협의회를 열어도 의견이 일치하지 아니하는 때 또는 중의원이 지명 의결을 한 뒤 국회 휴회 중의 기간을 제외하고 10일 이내에 참의원이 지명 의결을 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중의원의 의결을 국회의 의결로 한다.

제68조
① 내각총리대신은 국무대신을 임명(任命)한다. 다만, 그 과반수(過半數)는 국회의원 가운데에서 선임(選任)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② 내각총리대신은 임의(任意)로 국무대신을 파면(罷免)할 수 있다.

제69조
내각은 중의원에서 불신임(不信任) 결의안을 가결하거나 신임(信任) 결의안을 부결한 때에는 10일 이내에 중의원이 해산되지 않는 한 총사직(總辭職)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70조
내각총리대신이 없는 때 또는 중의원 의원 총선거 뒤 처음으로 국회가 소집한 때에 내각은 총사직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71조
앞의 2개 조(條)의 경우에, 내각은 새로이 내각총리대신이 임명되기까지 계속하여 그 직무를 수행한다.

제72조
내각총리대신은 내각을 대표(代表)하여 의안(議案)을 국회에 제출하고, 일반 국무(國務) 및 외교관계에 대하여 국회에 보고(報告)하고, 또한 행정각부(行政各部)를 지휘(指揮)·감독(監督)한다.

제73조
내각은 다른 일반 행정사무 외에 다음의 사무를 수행한다. 
  1. 법률(法律)을 성실히 집행(執行)하고, 국무(國務)를 총리(總理)하는 일.
  2. 외교관계(外交關係)를 처리하는 일.
  3. 조약(條約)을 체결하는 일. 다만, 사전(事前)에, 시의(時宜)에 따라서는 사후(事後)에 국회의 승인(承認)을 거칠 것을 필요로 한다.
  4. 법률에서 정하는 기준에 따라 관리(官吏)에 관한 사무(事務)를 맡아 처리하는[掌理] 일.
  5. 예산(豫算)을 작성하여 국회에 제출하는 일.
  6. 이 헌법 및 법률의 규정을 실시하기 위하여 정령(政令)을 제정하는 일. 다만, 정령(政令)에는 특별히 그 법률이 위임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벌칙을 둘 수 없다.
  7. 대사(大赦), 특사(特赦), 감형(減刑), 형(刑)의 집행면제 및 복권(復權)을 결정하는 일.
제74조
모든 법률(法律) 및 정령(政令)에는 주임(主任) 국무대신이 서명(署名)하고, 내각총리대신이 연서(連署)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제75조
국무대신은 그 재임 중 내각총리대신의 동의(同意)가 없으면 소추(訴追)되지 아니한다. 다만, 이로 인하여 소추의 권리가 침해되지 아니한다.


   제6장 사법(司法)

제76조
① 모든 사법권(司法權)은 최고재판소(最高裁判所) 및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설치하는 하급(下級) 재판소에 속한다.
② 특별(特別) 재판소는 설치할 수 없다. 행정기관(行政機關)은 종심(終審)으로 재판을 수행할 수 없다.
③ 모든 재판관(裁判官)은 그 양심(良心)에 따라 독립하여 직권(職權)을 수행하며, 이 헌법 및 법률에만 구속된다.

제77조
① 최고재판소는 소송(訴訟)에 관한 절차[手續], 변호사(辯護士), 재판소의 내부 규율 및 사법사무(司法寺務) 처리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규칙을 정할 권한을 가진다.
② 검찰관(檢察官)은 최고재판소가 정하는 규칙에 따르지 않으면 아니 된다.
③ 최고재판소는 하급 재판소에 관한 규칙을 정할 권한을 하급 재판소에 위임(委任)할 수 있다.

제78조
재판관은 재판에 의하여 심신(心身)의 장애[故障]로 인하여 직무를 집행할 수 없다고 결정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민[公]의 탄핵(彈劾)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罷免)되지 아니한다. 재판관의 징계처분(懲戒處分)은 행정기관이 수행할 수 없다.

제79조
① 최고재판소는 그 수장인 재판관 및 법률에서 정하는 인원[員數]의 그 밖의 재판관으로 구성하며, 그 수장인 재판관 이외의 재판관은 내각에서 임명한다.
② 최고재판소 재판관의 임명은, 그 임명 뒤 처음으로 하는 중의원 의원 총선거 때 국민의 심사(審査)에 올리며[付], 그 뒤 10년이 경과하고 처음으로 열리는 중의원 의원 총선거 때 심사에 올리고, 그 뒤에도 같다.
③ 앞의 항(項)의 경우에 투표자(投票者)의 다수(多數)가 재판관의 파면(罷免)에 찬성[可]하는 때에 그 재판관은 파면된다.
④ 심사를 위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⑤ 최고재판소 재판관은 법률에서 정하는 나이[年齡]에 이른 때에 퇴관(退官)한다.
⑥ 최고재판소 재판관은 모두 정기적으로 적당한[相當] 액수(額數)의 보수(報酬)를 받는다. 이 보수는 재임 중 감액(減額)할 수 없다.

제80조
① 하급 재판소 재판관은 최고재판소에서 지명한 자로 구성된 명부(名簿)에 의하여 내각에서 임명한다. 그 재판관은 임기를 10년으로 하며, 재임(在任)할 수 있다. 다만, 법률에서 정하는 나이[年齡]에 이른 때에는 퇴관(退官)한다.
② 하급 재판소 재판관은 모두 정기적으로 적당한[相當] 액수(額數)의 보수(報酬)를 받는다. 이 보수는 재임 중 감액(減額)할 수 없다.

제81조
최고재판소는 모든 법률, 명령, 규칙 또는 처분(處分)이 헌법에 적합한지 여부를 결정할 권한을 가지는 종심(終審) 재판소이다.

제82조
① 재판의 대심(對審) 및 판결(判決)은 공개(公開) 법정(法廷)에서 한다.
② 재판소가 재판관 전원 일치로 공공질서(公共秩序) 또는 선량한 풍속(風俗)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결정한 경우에는 대심(對審)을 공개하지 아니하고 할 수 있다. 다만, 정치범죄(政治犯罪), 출판(出版)에 관한 범죄 또는 이 헌법 제3장에서 보장하는 국민의 권리가 문제가 되는 사건의 대심은 항상 이를 공개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7장 재정(財政)

제83조
국가[國]의 재정(財政)을 처리하는 권한은, 국회의 의결에 근거[基]하여 행사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84조
새로이 조세(租稅)를 부과[課]하거나 현행 조세를 변경함에는 법률 또는 법률에서 정하는 조건에 따를 것을 필요로 한다.

제85조
국비(國費)를 지출(支出)하거나 국가[國]가 채무(債務)를 부담함에는 국회의 의결에 근거[基]할 것을 필요로 한다.

제86조
내각은 매 회계연도의 예산을 작성하고, 국회에 제출하여 그 심의(審議)를 받아 의결을 거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87조
① 예견(豫見)하기 어려운 예산의 부족에 충당하기 위하여, 국회의 의결에 기초[基]하여 예비비(豫備費)를 두고, 내각의 책임으로 이를 지출할 수 있다.
② 모든 예비비의 지출에 대하여 내각은 사후에 국회의 승낙(承諾)을 얻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88조
모든 황실재산(皇室財産)은 국가[國]에 속한다. 모든 황실의 비용(費用)은 예산에 계상(計上)하여 국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89조
공금(公金)과 그 밖의 공공재산(公共財産)은 종교상의 조직(組織) 내지는 단체(團體)의 사용(使用), 편익(便益) 혹은 유지(維持)를 위하여 또는 공공(公共)의 지배에 속하지 아니하는 자선(慈善), 교육(敎育) 혹은 박애(博愛) 사업에 대하여 이를 지출하거나 그 이용에 제공[供]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90조
① 국가[國]의 수집․지출의 결산(決算)은 모두 매년 회계검사원(會計檢査院)이 검사하고, 내각은 다음 연도에 그 검사보고와 함께 이를 국회에 제출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② 회계검사원의 조직 및 권한은 법률로 정한다.

제91조
내각은 국회 및 국민에 대하여 정기적으로 적어도 매년 1회, 국가[國]의 재정상황에 대하여 보고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8장 지방자치(地方自治)

제92조
지방공공단체(地方公共團體)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사항은 지방자치의 본뜻[本旨]을 바탕으로 하여 법률로 정한다.

제93조
① 지방공공단체에는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의사기관(議事機關)으로 의회(議會)를 설치한다.
② 지방공공단체의 수장, 그 의회의 의원(議員) 및 법률에서 정하는 그 밖의 지방공무원[吏員]은 그 지방공공단체의 주민(住民)이 직접 선거(選擧)한다.

제94조
지방공공단체는 그 재산을 관리하고, 사무를 처리하며, 또한 행정을 집행하는 권능을 가지고, 법률의 범위 내에서 조례(條例)를 제정할 수 있다.

제95조
하나의 지방공공단체에만 적용되는 특별법은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지방공공단체의 주민투표에서 그 과반수의 동의를 얻지 아니하면 국회는 이를 제정할 수 없다.


   제9장 개정(改正)

제96조
① 이 헌법의 개정은 각 의원(議院)의 총의원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국회가 이를 발의(發議)하고, 국민에게 제안(提案)하여 그 승인(承認)을 거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이 승인에는 특별한 국민투표 또는 국회에서 정하는 선거 시에 하는 투표에서 그 과반수의 찬성을 필요로 한다.
② 헌법 개정에 대하여 앞의 항(項)의 승인을 거친 때에 천황은 국민의 이름으로 이 헌법과 하나[一體]를 이루는 것으로 즉시 이를 공포한다.


   제10장 최고법규(最高法規)

제97조
이 헌법이 일본 국민에게 보장하는 기본적 인권은 인류의 오랜 세월[多年]에 걸친 자유를 획득하려는 노력의 성과로서, 이러한 권리는 과거의 숱한 시련을 견뎌 현재 및 장래의 국민에게 침해할 수 없는 영구(永久)한 권리로 신탁(信託)된 것이다.

제98조
① 이 헌법은 국가[國]의 최고법규로서, 그 조규(條規)에 어긋나는 법률, 명령, 조칙(詔勅) 및 국무(國務)에 관한 그 밖의 행위의 전부 또는 일부는 그 효력을 가지지 아니한다.
② 일본국(日本國)이 체결한 조약 및 확립된 국제법규는 이를 성실히 준수[遵守]할 것을 필요로 한다.

제99조
천황 또는 섭정(攝政) 및 국무대신, 국회의원, 재판관과 그 밖의 공무원은 이 헌법을 존중하고 옹호할 의무를 진다.


   제11장 보칙(補則)

제100조
① 이 헌법은 공포한 날부터 계산[起算]하여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
② 이 헌법을 시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법률의 제정, 참의원 의원 선거 및 국회 소집 절차[手續] 혹은 이 헌법을 시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준비절차[準備手續]는 앞의 항(項)의 날짜[期日] 전에 수행할 수 있다.

제101조
이 헌법 시행 시에 참의원이 아직 성립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성립할 때까지, 중의원은 국회로서의 권한을 수행한다.

제102조
이 헌법에 의한 제1기 참의원 의원 가운데 그 반수의 임기는 3년으로 한다. 그 의원(議員)은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정한다.

제103조
이 헌법 시행 시에 재직(在職)하는 국무대신, 중의원 의원 및 재판관 혹은 그 밖의 공무원으로 그 지위에 상응하는 지위가 이 헌법에서 인정되는 자는 법률에서 특별히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헌법 시행으로 인하여 당연히 그 지위를 상실하지는 아니한다. 다만, 이 헌법에 의하여 후임자가 선거 또는 임명된 때에는 당연히 그 지위를 잃는다.



참고문헌
일본국헌법 원문.
일본국헌법 영문판.
법제처, 『(일본) 법제업무 편람』, 2008년.
법제처, 『알기 쉬운 법령 정비기준』,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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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헌법사 소고(日本憲法史 小考)



Ⅰ. 메이지(明治) 헌법


1. 총설

 (1) 봉건제도의 해체

  1) 막부정치의 폐지
  도쿠가와 막부(徳川幕府)는 모든 정치권력을 쥐고 260년 동안 봉건적·쇄국적 체제를 지배하였다. 그러나 구미(歐美) 자본주의국가의 개국 요구나 강해진 도막운동(倒幕運動), 그리고 경제체제의 모순 등의 격증에 의하여 급속하게 권위를 잃게 되었다. 그리고 이에 막부는 게이오(慶応) 3년(1867년) 10월 14일을 기하여 「대정봉환」(大政奉還, 다이세이호칸), 즉 정권을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조정(朝廷)에 다시 돌렸고, 이후 같은 해 12월 9일에는 「왕정복고」(王政復古)의 대호령(大号令)을 발하여 이에 천황 친정(親政)의 체제가 부활하였다.

  2) 번제(藩制)의 폐지
  메이지 정부는 중앙집권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하고, 그 실현을 위하여는 우선 번(藩, 당시 263개 이상의 번이 있었다.)을 폐지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메이지(明治) 2년(1869년)에는 드디어 「판적봉환」(版籍奉還), 즉 번의 영지와 그 주민을 중앙정부에서 관리하되 그 관리의 담당은 번의 주인이던 다이묘(大名)들이 지번사(知藩事) 혹은 번지사(藩知事)의 형태로 맡게 되었으며, 이어 메이지 4년(1871년)에는 「폐번치현」(廃藩置県)을 단행하게 되었다.

  3) 신분제도의 폐지
  도쿠가와 막부 시대의 신분은 공경(公卿)·제후(諸侯)·사(士)·농(農)·공(工)·상(商) 등의 계급이 나누어져, 각각의 신분에 의하여 엄격한 차별을 받는 원인이었다. 메이지 정부는 「사민평등」(四民平等)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신분제도를 폐지하는데 착수하였으나, 개혁은 불완전한 채로 끝났다. 오히려 메이지 정부는 시대에 역행하는, 이른바 화족(華族, 공경이나 제후가 변한 것)·사족(士族, 신하)·평민(농·공·상·민)의 3종의 신분을 새로이 만들었다. 결국 「사민평등」의 사상은 그림의 떡처럼 변했고, 역으로 인종적인 편견이나 부라쿠(部落) 차별 등의 차별을 오늘날까지 남기는 원인이 되었다.

 (2) 근대 민족국가로의 움직임

  일본이 근대국가로서의 움직임을 내딛은 것은 1860년대에서 1870년대를 전후한 시기였다. 이 시기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를 둘러싸고 정치사상이나 헌법제도등의 많은 움직임이 있던 시기이다.

  1) 「공의사상」(公議思想)
  「공의사상」(公議思想)은 막부에서 메이지 유신에 걸쳐 일본의 지식층에서 탄생한 정치사상으로, 그 목적은 도쿠가와 막부의 군사적 독재정치에 저항하여 정치의 무대에 공경이나 제후 및 무사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상을 명시하게 된 것이 게이오 4년(1868년)의 「5개조의 어서문(五ヶ条の御誓文)이다.

  2) 민선의회(民選議會)의 설치
  민선의회 설치의 움직임은 문명개화의 소리가 급속하게 높아지던 근대 유럽의 사상과 제도의 영향을 받아 서민(庶民)의 정치적 자각이 높아지면서 나타났다. 정한론(征韓論)에서 진 소지마 다네오미(副島種臣)·이타가키 다이스케(板垣退助)·고토 쇼지로(後藤象二郎)·에토 신페이(江藤新平) 등이 사쓰마(薩摩)의 번벌(藩閥)을 중심으로 하는 관료의 전제에 대항하여 1874년에 「민선의회설립의 건백서」(民選議会成立の建白書)를 정부에 주장한 움직임이 그것이다.

  3) 국회 개설의 칙유(勅諭)와 흠정헌법(欽定憲法)
  민선의회를 개설하여 헌법을 제정하자는 주장에 대하여 정부 내에서도 다양한 움직임이 있었다. 오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로 대표되며 영국의 의원내각제를 채용하자고 주장하는 「급진론」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로 대표되며 프러시아의 군주주의를 채용하자고 주장하는 「점진론」이 그것이다. 두 주장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어전회의」(御前会議)에서 점진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자 오오쿠마 시게노부는 면직되었다(이른바 메이지 14년의 「정변」이다.). 그리고 메이지 14년(1881년) 10월 12일에 칙유(勅諭)가 내려졌고, 정부가 이를 받아 1890년에 국회를 개설하며 천황이 헌법을 제정하는 것 등을 발표하였다.

  4) 메이지 헌법의 제정과 공포
  메이지 정부는 헌법을 제정하기로 한 태도를 굳히고, 이토 히로부미를 각국의 헌법조사를 위하여 유렵으로 파견한다. 그는 주로 독일계의 헌법이론을 배우고, 군권(君權) 중심의 입헌제를 지지할 의지를 굳혀 귀국한다. 메이지 헌법 제정을 위한 구체적 작업은 1886년부터 이토 히로부미를 중심으로 이노우에 고와시(井上毅)·이토 미요지(伊東巳代治)·가네코 겐타로(金子堅太郎)와 함께 헌법과 관계법령안을 준비하여 1889년에 안이 완성되어 주상(奏上)하였다.
  이 안은 추밀원(枢密院)에서 심의하여 메이지 22년(1889년) 2월 11일에 천황이 「대일본제국헌법」(이른바 메이지 헌법)을 제정·공포하였다. 이는 일본의 첫 성문헌법이다. 그리고 1890년 7월에 제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가 시행되어 제1회 제국의회(帝国議会)가 개설되었고, 메이지 헌법도 그 날부터 시행되었다.


2. 메이지 헌법의 성격

 (1) 개설(槪說)

  메이지 정부는 한편으로는 선진 여러 국가의 입헌주의 제도를 취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절대주의적인 권력구조의 확립을 목표로 하였으므로, 필연적으로 서로 모순적인 작업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메이지 헌법은 그러한 상황에서 제정된 헌법이므로, 그 성격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원리, 그리고 군주주의의 원리의 타협의 산물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전제적인 성격이 강한 헌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2) 민주적인 원리와 제도

  1) 의회제도
  법률이나 예산의 성립에 대하여 의회의 관여를 필요로 하는 것은 근대의회주의제도의 성격을 취한 것이다. 그러나 ① 제국의회는 천황의 입법원 행사를 위한 협찬기관에 지나지 않은 점, ② 정당이나 군부, 관료의 힘을 억제할 수 없었던 점, ③ 천황은 많은 명령을 단독으로 발하는 것이 인정된 점 등은 불완전한 의회제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 대신(大臣)의 조언
  천황의 국무상의 행위에는 모든 대신의 보필(輔弼)을 필요로 하였다. 그러나 군통수권(軍統帥權)과 황실에 관한 사무 등은 대신의 조언에서 벗어나 있었으므로, 충분한 효과를 얻지는 못했다.

  3) 신민(臣民)의 권리보장
  메이지 헌법도 근대입헌국가와 같이 「신민권리의무」(臣民權利義務)라는 표제로 일련의 자유권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권리와 자유는 천황이 신민에 대하여 은혜적으로 준 것에 지나지 않았으며, 자연법사상에서 생긴 인권의 관념은 아니었다. 또한 그 보장에 있어서도 행정권이 아닌 입법에 의한 제약에는 어떠한 보장수단이 없었으므로, 「법률의 범위 내」에서의 보장에 지나지 않았다.

  4) 권력분립
  메이지 헌법도 「권력분립」(權力分立)을 위하여 국가권력을 입법(立法)·사법(司法)·행정(行政)으로 나누고, 제국의회와 재판소(裁判所)·내각(內閣)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제국의회는 천황이 입법권을 행사하기 위한 「협찬기관」에 지나지 않았으며, 또한 국무대신은 천황이 통치권을 행사하기 위해 「보필하는 지위」였으며, 재판소 또한 「천황의 이름으로」 사법권을 행사하는 기관이었던 등 모두 천황대권을 보좌하는 기관으로서의 분립제에 지나지 않았다.

  5) 사법권의 독립
  메이지 헌법은 「사법권 독립의 원칙」을 취하여 이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재판관의 신분보장을 두었다. 단 행정사건에 대하여는 별도의 행정재판소의 설치를 인정하고, 군인·화족 등 특별한 신분이나 사건에 대하여는 특별재판소의 설치도 허용하였다. 그렇다고 하여도 사법권의 독립은 메이지 헌법 하의 민주적 여러 제도 가운데에서는 비교적 실현을 본 제도라고 할 수 있다.

 (3) 반민주적인 원칙과 제도

  1) 천황주권(天皇主權)
  메이지 헌법은 「천황주권」을 근본원칙으로 하여 특이한 천황제 구조를 취하고 있다. 즉 일본의 정치의 방향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천황이라고 하는 천황주권의 근거는, 「천손강림(天孫降臨)의 신칙(神勅)」에 바탕한 「천양무궁(天壤無窮:하늘과 땅처럼 무궁함)」에 있다는 설이다. 또한 천황은 신성한 존재이므로, 감히 범하여서는 아니되는 이른바 천황의 신격화가 이루어졌다.

  2) 대권중심주의(大權中心主義)
  메이지 헌법에 있어서 천황은 통치권을 총람하는 것에 의하여 최고의 권위자로서 군림하였다. 「천황은 통치권을 총람(總攬)한다」는 것은 입법권과 행정권 및 사법권 등의 권력이 결국에는 천황에게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천황대권은 범위가 넓고, 특히 의회가 관여할 수 없는 천황의 권능이 크게 행사될 수 있는 것은 천황제 관료에 의한 행정권 우위의 제도, 즉 「약한 의회에 대하여, 강한 정부」라고 하는 체제를 명실히 확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 통수권(統帥權)의 독립
  메이지 헌법은 천황이 육해군을 통수한다고 정하고, 이른바 「통수권의 독립」을 규정하였다. 그러나 실제 운용은 참모총장(參謀總長, 육군)과 군령부총장(軍令部總長, 해군) 등의 기관이 조언하여 정부 및 의회에서 전혀 컨트롤할 수 없는 별도의 계통의 권한이었다.

  4) 황실자율주의(皇室自律主義)
  천황제를 절대화하기 위하여 황실에 관한 것은 황실 스스로가 정하도록 하는, 이른바 「황실자율주의」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그를 실시하기 위하여 황실전범(皇室典範)이라는 법률을 제정하여 메이지 헌법과 함께 최고의 위치에 두고, 양자의 사이에는 효력상의 우열이 없도록 하였다.


3. 메이지 헌법의 운용(運用)

 (1) 개설(槪說)

  메이지 헌법은 근대입헌주의와 절대주의라는 상반된 복합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 실제 정치에서 운용되는 것 또한 여러 가지로 모순을 낳는 결과가 되었다. 여기서는 메이지 헌법사를 4가지의 시대로 나누고, 요점만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2) 제1기 : 헌법시행(1890년, 메이지 23년)부터 청일전쟁(1894~1895년) 무렵까지

  이 시기는 메이지 헌법을 성립시킨 번벌정부(藩閥政府)와 의회가 헌법상의 권능을 근거로하여 격돌한 때이다. 정부는 「천황의 정부」로 어떠한 정당정치에서도 초연(初演)한, 의회에서 컨트롤 할 수 없는 이른바 「초연주의」(超然主義)의 방침이 취해졌다.

 (3) 제2기 : 청일전쟁 이후부터 1912년(메이지 45년) 무렵까지

  이 시기는 정부가 정당과 제휴하는 방침을 취하여 정당도 또한 관료(官僚)·군벌(軍閥)에 앞서, 의회의 의 권한이 높아진 때이다. 정당의 근대화를 외치는 가운데 민주적인 원칙을 추진하자고 하는 움직임은 정당내각의 발전을 가져온 중요한 의미가 있다. 또한 청일전쟁 이후에는 일본의 자본주의가 촉진되고, 이에 그치지 않고 노동운동도 발전하게 되어 파업 등도 발생하였다. 이에 위기를 느낀 정부는 곧 「치안경찰법」(治安警察法)을 제정하여 탄압을 꾀하게 되었다.

 (4) 제3기 : 1912년(다이쇼 원년)부터 쇼와 초기 무렵까지

  이 시기는 자유주의적 세력이 차츰 세력을 넓히고, 정당의 비중이 다소 높아진 이른바 「정당내각」에 의한 정치가 행해진 때였다. 특히 2번에 걸친 「호헌운동」(護憲運動)은 정당내각 확립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운동의 성과로서 이른바 「헌정(憲政)의 상도(常道)[각주:1]가 헌법관습으로 인정되고, 정당내각제가 확립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당내각도 재벌(財閥)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고, 군벌관료와 손을 잡아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등을 제정하기에 이르러 이 시기의 민주정치의 성격도 그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5) 제4기 : 쇼와 초기부터 1945년(쇼와 20년)에 이르기까지

  이 시기는 입헌주의의 기능이 절반은 정지한 때이다. 정치는 좌익운동을 강압적으로 끊으려는 방침을 취하고, 우익운동에 대하여는 영합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로 인하여 우익은 군벌과 결탁하여 힘을 가지고 약한 의회를 더욱 후퇴시켰으며, 결국은 국정을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그 결과 「5·15 사건」(1932년)[각주:2]이나 「2·26 사건」(1936년)[각주:3]의 발생과 함께 중일전쟁(1937년)의 격발이라는 어두운 시대로 돌입하게 되었다. 군벌 및 관료의 독재는 「국가총동원법」을 낳았고, 이에 의회의 법률의결권은 실질적인 힘을 잃게 되었다. 그리고 1940년(쇼와 15년)에는 각 정당이 어쩔 수 없이 해산되었고, 새로이 「대정익찬회」(大政翼贊會/大政翼賛会, 다이세이요쿠산카이)가 결성되는 등 일본의 정당정치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까지 부활하지 못했다.



Ⅱ. 일본국헌법의 제정


1. 총설

 (1) 포츠담 선언의 수락과 점령체제

  1945년(쇼와 20년) 8월 14일, 일본정부는 항복을 요구하는 연합국의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고, 9월 2일 항복문서에 서명하였다. 포츠담 선언의 수락은 메이지 헌법체제의 근본적 변혁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즉 그때부터 일본의 통치권은 연합군 최고사령관의 권한을 바탕으로 위임된 것이 되는, 「간접통치」의 방식이 되었다.[각주:4] 그리고 이러한 점령체제는 「대일평화조약」(對日平和條約)[각주:5]이 체결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포츠담 선언은 13항목으로 구성되었으며, 특히 헌법제정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되는 규정은 다음의 두 가지이다. 우선 민주주의적 경향의 부활을 강화하는 한편 언론과 종교 및 사상과 같은 기본적 인권의 존중을 확립하는 것(제10항), 즉 신격천황제(神格天皇制)를 부정하고, 봉건적 신분제도를 폐지함과 함께 기본적 인권을 존중하고, 교육의 민주화를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민주주의적·평화적인 정치조직을 확립하는 것(제12항), 즉 의회제도와 선거제도의 개혁, 정당의 편성, 지방제도의 개혁 등을 행하는 것이다.

 (2) 헌법개정의 경과

  1) 마쓰모토(松本) 위원회의 조사
  연합군최고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는 시데하라(幣原) 총리가 총사령부를 방문했을 때 메이지 헌법의 민주화를 포함한 일본의 전통적 사회질서의 개혁 필요성을 시사(示唆)하였다. 그에 이어 정부는 마쓰모토 국무대신을 주임으로 하는 「헌법문제조사위원회」(1945년(쇼와 20년) 10월 25일)를 설치하였다. 위원회는 이른바 「마쓰모토 4원칙」을 바탕으로 개정작업을 시작했으며, 다음 해 2월 8일에 총사령부에 제출하였다(이른바 「마쓰모토 안」).

  2) 맥아더 초안의 제시
  그런데 1946년 2월 1일에 마쓰모토 안이 마이니치 신문에 의하여 공개되었고, 총사령부도 이를 알게 되었다. 이를 안 맥아더는 그러한 보수적 감상의 정부에게는 민주적 헌법의 제정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하고 마쓰모토 안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방침을 굳혀 총사령부에서 독자적인 헌법초안을 작성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맥아더는 총사령부에 대하여 세가지 원칙[각주:6]과 이른바 SWNCC-228[각주:7]을 지침으로 하여 극비리에 작업을 지시하였다. 지시를 받은 총사령부는 곧 헌법초안을 완성하였고, 2월 13일에 일본정부에게 이를 전달하였다.

  헌법초안이 이례적으로 빠르게 작성된 것도 놀랍지만, 당시의 정부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혁명적인 내용은 대단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총사령부의 강한 의향과 국제적·국내적 여러 사정을 고려한 뒤 결국 초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3) 제국의회의 심의·공포·시행
  정부는 이 초안을 기본으로 작업을 진행하여 3월 6일에 「헌법개정초안요강」으로 대중에 공표하였다. 그리고 그 초안은 중의원 총선거(4월 10일) 뒤에 열린 제90제국의회(6월 20일)에서 메이지 헌법 73조의 개정절차에 따라 상정되었다. 중의원 및 귀족원은 그 초안을 수정가결하였고, 10월 29일에 추밀원에서 가결된 초안은 천황의 재가를 거쳐 1946년(쇼와 21년) 11월 3일 「일본국헌법」으로 공포되어 다음 해 5월 3일[각주:8]에 시행되었다.


2. 일본국헌법 제정의 법리(法理)

 (1) 개설(槪說)

  일본국헌법은 포츠담 선언의 수락을 바탕으로 점령통치하에서 총사령부가 원안을 작성하고, 일본 정부는 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뒤에 메이지 헌법의 개정절차를 따라 시행되었다. 그러나 메이지 헌법의 군주주권원리에서 일본국헌법의 국민주권원리로의 이행은 헌법의 근본적 변혁을 가져오는 것으로서, 그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설명이 제시되고 있다.

 (2) 일본국헌법 제정의 법리

  1) 헌법개정무한계설
  헌법개정에는 내용상의 한계는 없다고 하는 견해에 의하면 "일본국헌법은 메이지 헌법 73조의 개정절차에 따라 천황의 칙명으로 개정안이 발의되어 제국의회의 의결 및 천황의 재가를 거쳐 공포된 형식으로 성립된 것이다. 즉 일본국헌법은 메이지 헌법의 개정절차에 의하여 성립한 것이므로 흠정헌법(欽定憲法)이며, 법적 연통성(連通性)을 가진다."는 것이다.[각주:9]

  2) 헌법개정한계설
  헌법개정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하는 견해에서는 미야자와 도시요시(宮沢俊義)의 「8월 혁명설」이 지배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다(통설). 그 근거로 ① 일본은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였으며, "일본의 최종(最終)의 정치형태"는 "일본국민의 자유에서 표명된 의사에 따라 결정"된 것이라는 전제에서 일본국헌법은 메이지 헌법 73조의 개정절차에 의하여 메이지 헌법의 근본 바탕인 신권주권(神權主權, 천황주권)을 변경한 것, ② 더욱이 천황주권을 국민주권으로 전환한 것은 일본 정부도 또한 천황의 의사를 가지고 있었더라도 합법적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라는 등에서 그 변혁은 헌법적으로는 「혁명」이라고 한다.[각주:10]


참고문헌
  • 우에다 마사카즈(上田正一), 『일본국헌법』(日本国憲法), 사가노쇼인(嵯峨野書院), 2008년.
  1. 「헌정<FONT color=#8e8e8e>(憲政)</FONT>의 상도<FONT color=#8e8e8e>(常道)</FONT>」란 정부에 대하여 중의원의 다수당이 지배권을 갖는 정당내각제를 말한다. [본문으로]
  2. 「5·15 사건」이란 해군청년장교 일부가 수상관저를 급습하여 당시 호헌운동의 우두머리로 불리던 이누카이<FONT color=#8e8e8e>(犬養, 당시 78세) </FONT>총리를 살해하였다. 전전<FONT color=#8e8e8e>(戰前)</FONT>의 정당내각시대에 치명상을 입힌 사건으로, 국가를 전쟁의 늪에 깊이 빠뜨리는 기로로 몰고간 결정적인 요인이다. [본문으로]
  3. 「2·26 사건」이란 황도파<FONT color=#8e8e8e>(皇道派)</FONT> 청년장교가 1500여 명의 부대를 이끌고 쇼와 유신<FONT color=#8e8e8e>(昭和維新)</FONT>의 단행·존황토간<FONT color=#8e8e8e>(尊皇討奸 : 천황을 받들고 간신을 토벌한다)</FONT> 등의 구호로 반란을 일으켜 정부 요인을 살해하고 나가타초<FONT color=#8e8e8e>(永田町)</FONT> 일대를 점거한 사건이다. 이후 천황의 토벌명령과 함께 계엄령이 내려졌고, 진압되었다. [본문으로]
  4. 「간접통치」란 연합국 최고사령부가 그 권한을 행사하는 경우 원칙적으로는 일본정부를 통하여 행사하고, 때로는 직접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본문으로]
  5. 「대일평화조약」이란 일본과 49개 연합국이 1951년 9월 8일에 샌프란시스코의 오페라하우스에서 체결한 평화조약으로, 소련과 인도는 불참하였다. [본문으로]
  6. ① 천황제를 개혁하는 것, ② 전쟁의 방기<FONT color=#8e8e8e>(放棄)</FONT> 및 군비의 불보지<FONT color=#8e8e8e>(不保持)</FONT>, 교전권을 부인하는 것, 그리고 ③ 봉건제를 폐지하는 세가지 원칙을 말한다. [본문으로]
  7. SWNCC는 State-War-Navy Coordinating Committee<FONT color=#8e8e8e>(국무-육군-해군 삼성 조정위원회)</FONT>의 약칭으로, SWNCC-228은 삼성 조정위원회 문서 228호 「일본 통치제도의 개혁」을 말한다. [본문으로]
  8. 「국민의 축일에 관한 법률」<FONT color=#8e8e8e>(国民の祝日に関する法律)</FONT> 제2조는 이 날을 「헌법기념일」로 정하고 있다. [본문으로]
  9. 사사키 소이치<FONT color=#8e8e8e>(佐々木惣一)</FONT>, 『일본국헌법론』<FONT color=#8e8e8e>(日本国憲法論)</FONT>, 유히카쿠, 1952년. [본문으로]
  10. 미야자와 도시요시, 『일본국헌법 <FONT color=#8e8e8e>(코멘타르 별책부록)</FONT>』, 315쪽, 닛폰효론샤, 1955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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