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선 사람은 매양 좁은 시각에 잡히어 큰 것을 보지 못하고, 작은 것에만 집착하는 느낌이 든다. 동해(東海) 이름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도 그러하다.

무릇 바다라는 것은 어느 한 나라의 것이 아니라, 인류 공동의 유산이다. 그러하기에 여러 이름들 또한 황해(黃海, Yellow Sea)라거나 태평양(太平洋, Pacific Ocean), 지중해(地中海, Mediterranean Sea)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모두 그 바다의 특성을 따 붙인 것이다.

또는 바다의 이름에 지명과 국가를 붙인 일이 있다. 동지나해(東支那海, East China Sea)가 그러하고, 비율빈해(比律賓海, Philippine Sea)가 그러하며, 악곽차극해(鄂霍次克海, Sea of Okhotsk)가 그러하다.

삼가 생각하건대 바다에 한 나라의 이름을 붙인 것은, 동지나해는 그 특징을 나타낼 만한 것이 없음이 그 원인이다. 비율빈해나 악곽차극해 또한 비율빈과 악곽차극 이외에는 그 특징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어 생각하건대 동해라고도 하고, 동한국해(東韓國海)라고 부르자한다. 내일신문 시론은 극동해(極東海)라고 부르잔다. 왜국에서는 일본해(日本海)라 부른다. 노서아(露西亞)에서는 왜국의 이야기를 따른다. 함께 생각하니 세계가 일본해라고 부르다가, 일본해와 동해를 함께 병기한다는데 이것은 동해가 정당한 것이 아니라, 일본해가 정당치 아니하기에 또한 정당치 않은 동해를 함께 쓴 것이 아닌가 한다.

마땅히 그 바다를 동해라고 불러야 할 명백한 이유가 있는가. 울릉도(鬱陵島) 및 독도가 차지하는 그 바다의 비율은 절반이 넘지 아니한다. 해양주권 운운함도 우스운 일이다. 넓은 그 바다는 모두 우리 것이라고 공인된 바도 없을뿐더러, 우리 것 또한 아니다. 반크라고 하는 집단이 있는데, 이 집단이 대량의 메일을 발송하는 것 또한 왜국의 말처럼 그 내용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받는 사람은 스팸으로 느낄 수 있는 불쾌한 방법을 이용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일전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왜국 총리에게 평화의 바다라는 이름을 제안한 일이 있는데, 우리 조선사람은 매양 내 것을 남에게 빼앗긴다는 생각만 하여 그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만을 한 일이 있다. 마땅히 국제적인 안목을 갖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냐. 이 글을 쓰던 중에 서남포럼에 인하대학의 최원식 교수께서 이에 대한 글(누지름)을 쓰신 것을 보았다. 자세히 살펴(글 말고 문제) 생각을 깊이하여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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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란 무엇인가 - 10점
아미노 요시히코 지음, 박훈 옮김

전후(戰後) 역사학은 '일본'자체에 대해 진정한 역사적 시각을 전혀 지니지 못하고, 지극히 오랜 옛날부터 하늘에서 내려온 것처럼 '일본'이 존재했다는 식으로 막연하게 인식하는 데 머물렀다. 이 책은 일본 열도에서 수십만년 전부터 영위해온 인류사회의 역사 가운데 '일본국'의 위치를 설정하고, 약 1300년에 걸친 '일본국'의 역사를 철저하게 총괄하여 그 실체를 백일하에 드러내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다. 패전 전의 '망령'들이 그 모습을 바꾸어 우리들 앞에 분명히 드러난 지금이야말로 그 총괄작업을 개시할 최적의 싯점이다.


위 박스에 들어있는 서평의 경우, 여러 사이트를 찾아 길이와 내용이 적절한 것을 찾는데, 대개 좋은 책의 경우 서평만으로 드러낼 수 없는 내용들이 많은데 이 책이 바로 딱 그런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미노 요시히코(網野善彦)씨의 호칭을 뭣이라고 할까 마땅치 않으나, 생전에 카나가와 대학에서 교수를 지냈으므로 아미노 교수라고 약칭하도록 하자. 생전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 책이 한국에 소개된 2003년의 이듬해에 안타깝게도 향년 76세로 폐암으로 영면하였으므로 이미 고인이 된 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의미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미노 교수의 학술적인 역사에 있어 말년에 나온 책이기에 그의 학술적 생애의 말미로, 일본인으로서 일본에 대한 역사적 시각으로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일본론(日本論)'에 대한 시각을 제시했다는 것 뿐만 아니라, 그를 통해 동북아 국가가 종전(終戰) 이후 새로운 아시아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데에도 충분히 생각할만한 화두를 떠올리게 했다는데 있다.

아미노 교수는 중세사학자로 분류된다고 할 수 있는데, 그의 초기 연구에서 일본의 중세라고 할 수 있는 바쿠후[幕府] 시대의 여러가지 탐구가 드러나는데 비해 후기로 접어들수록 '일본론'이라는 주제와 열도(列島)의 역사에 대한 깊은 고민과 통찰이 드러나고 있기에 중세사학자가 아니라 한 일본인의 평처럼 '역사철학자'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는 분이다.

이 책의 옮긴이(박훈 옮김)의 말에서 지칭하는 '아미노 사관(史觀)'은  '국민국가론'ㅡ국가와 국민, 민족을 상대적으로 바라보는ㅡ의 성과를 흡수하면서도 우리가 익숙하게 접하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식의 국민사관론ㅡ이란 용어는 이 글에서만 통용하는 임시칭이다ㅡ이나 '요미우리-쮸우꼬오(讀賣-中公) 그룹'ㅡ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국민사관론과는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며 일본근대사에 대한 부정 일변도의 시각에 거부감을 보이며 '일본'에 대한 내용을 재구성하려는 집단이라고 한다ㅡ과 '진보사관'ㅡ의 경우는 맑스주의적 근대역사학ㅡ의 세 관점에 대해 모두 문제를 제기하는, 한국에서라면 '반골(反骨)'이라고 불릴지도 모르는 독특한 역사적 시각을 전개한다.

이 책은 '일본'이라는 관념에 대한 의문과 함께, '천황'이라는 명칭이나 '일본'이라는 명칭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과 '민족성'이라고 부를만한 여러가지 상징들에 대해 비판을 제기한다. 그러면서도 또한 '일본'의 역사에서 드러나는 여러가지 특이한 점에 주목하면서, '일본'의 특징에 대해 꼼꼼하게 짚어내고 있다는 것은 한국에서 보기에도 상당히 정교하고 의미있는 기술(記述)임에 틀림없다.

또한 아미노 교수가 '일본인'으로서 '일본해(日本海)'에 대한 비판을 제시하는 것도 우리는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일 것이다. 과연 '동해(東海)'나 '동한국해(東韓國海)'라는 명칭이 가지는 당위성이라거나, '청해(靑海/淸海)'라는 명칭에서 나타나는 부분이라거나. 이런 점을 고려하면서 한국과 일본간의 관계를 새로 구성해야 할 필요성이라는 점까지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또 덧붙이면 옮긴이인 박훈氏의 번역은 상당히 괜찮으면서도, 외래어 표기에서 한국어의 특유성을 잘 살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외래어표기법'과는 맞지 않을지 몰라도, 일각에서 주장하고 있는 '외래어 표기법 개정'에 대한 논의를 생각하면, 상당히 합리적이고 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 요시히코/요시히꼬)

그리고 이 책이 일반 독자의 시각을 고려해 쉬운 편이라고 해도, 여전히 일본사에 문외한인 한국사람들에게는 많이 어려울 것이므로, 일본사에 대한 짧은 개관 정도는 훑어본다거나 지도를 펼쳐놓는 것이 참으로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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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천어 트랙백 0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