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國憲法

1946년 11월 3일 공포
1947년 5월 3일 시행



상유(上諭)

짐은 일본 국민의 총의(總意)를 바탕으로 새 일본 건설의 기초(基礎)가 정해지기에 이름을 깊이 기뻐하며, 추밀고문의 자순(諮詢) 및 제국헌법 제73조에 따라 제국의회의 의결을 거친 제국헌법의 개정을 재가(裁可)하고, 이에 이를 공포케 하노라.


어명어새(御名御璽)


쇼와(昭和) 21년 11월 3일
 내각총리대신 겸 외무대신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국 무 대 신 남작 시데하라 기주로(幣原喜重郎)
 사 법 대 신    기무라 도쿠타로(木村篤太郎)
 내 무 대 신    오무라 세이치(大村淸一)
 문 부 대 신    다나카 고타로(田中耕太郎)
 농 림 대 신    와다 히로오(和田博雄)
 국 무 대 신    사이토 다카오(齋藤隆夫)
 체 신 대 신    히토쓰마쓰 사다요시(一松定吉)
 상 공 대 신    호시지마 지로(星島二郎)
 후 생 대 신    가와이 요시나리(河合良成)
 국 무 대 신    우에하라 에쓰지로(植原悦二郎)
 운 수 대 신    히라쓰카 쓰네지로(平塚常次郎)
 대 장 대 신    이시바시 단잔(石橋湛山)
 국 무 대 신    가나모리 도쿠지로(金森德次郎)
 국 무 대 신    젠 게이노스케(膳桂之助)



일본국헌법

 일본 국민은 정당하게 선거(選擧)된 국회의 대표자를 통하여 행동하고, 우리와 우리의 자손을 위하여 여러 국민과의 화합과 협력에 의한 성과와 우리나라 전토(全土)에서 자유가 가져오는 혜택을 확보하며, 정부의 행위로 다시 전쟁의 참화(慘禍)가 일어나는 일이 없기를 결의하며, 이에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선언하여 이 헌법을 확정한다. 무릇 국정은 국민의 엄숙한 신탁(信託)에 의한 것으로, 그 권위는 국민으로부터 유래하고, 그 권력은 국민의 대표자가 이를 행사하며, 그 복리(福利)는 국민이 누린다. 이는 인류 보편(普遍)의 원리로, 이 헌법은 그러한 원리에 기초한 것이다. 우리는 이와 어긋나는 일체의 헌법, 법령 및 조칙(詔勅)을 배제한다.

 일본 국민은 항구평화(恒久平和)를 염원하고, 인간 상호관계(相互關係)를 지배하는 숭고한 이상을 깊이 자각(自覺)하며, 평화를 사랑하는 여러 국민의 공정(公正)과 신의(信義)를 신뢰(信賴)하여 우리의 안전과 생존을 지키기로 결의한다. 우리는 평화를 유지하고, 전제(專制)와 예종(隷從), 압박(壓迫)과 편협(偏狹)을 지상에서 영원히 제거하고자 노력하는 국제사회에서 명예로운 지위에 서고자 한다. 우리는 전 세계의 국민이 모두 공포와 결핍(缺乏)에서 벗어나고, 평화 속에 생존할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한다.

 우리는 어떤 국가도 자국의 일에만 전념하여 다른 국가를 무시하여서는 아니 되며, 정치도덕(政治道德)의 법칙은 보편적(普遍的)인 것으로, 이 법칙에 따라 자국의 주권을 유지하고, 다른 국가와 대등한 관계에 서는 것이 각국의 책무(責務)라고 믿는다.

 일본 국민은 국가의 명예를 걸고, 전력(全力)을 다하여 이 숭고한 이상과 목적을 달성할 것을 맹세한다.


   제1장 천황(天皇)

제1조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象徵)이자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이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의 총의에 바탕한다.

제2조
황위는 세습되며, 국회가 의결한 황실전범(皇室典範)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이를 계승한다.

제3조
천황의 국사에 관한 모든 행위에는 내각의 조언과 승인을 필요로 하며, 내각이 그 책임을 진다.

제4조
① 천황은 이 헌법에서 정하는 국사(國事)에 관한 행위만을 수행하고, 국정에 관한 권능을 가지지 아니한다.
② 천황은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국사에 관한 행위를 위임할 수 있다.

제5조
황실전범에서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섭정을 둘 때에는, 섭정은 천황의 이름으로 그 국사에 관한 행위를 수행한다. 이 경우에는 앞의 조(條) 제1항의 규정을 준용한다.

제6조
① 천황은 국회의 지명(指名)에 기초하여 내각총리대신(內閣總理大臣)을 임명한다.
② 천황은 내각의 지명(指名)에 기초하여 최고재판소(最高裁判所)의 수장[長]이 되는 재판관을 임명한다.

제7조
천황은 내각의 조언과 승인에 의하여, 국민을 위해 다음의 국사에 관한 행위를 수행한다.

  1. 헌법개정, 법률, 정령(政令) 및 조약을 공포(公布)하는 일.
  2. 국회를 소집(召集)하는 일.
  3. 중의원(衆議院)을 해산(解散)하는 일.
  4. 국회의원 총선거 시행을 공시(公示)하는 일.
  5. 국무대신(國務大臣) 및 법률에서 정하는 그 밖의 관리(官吏)의 임면(任免)과 전권위임장(全權委任狀) 및 대사(大使), 공사(公使)의 신임장(信任狀)을 인증(認證)하는 일.
  6. 대사(大赦), 특사(特赦), 감형(減刑), 형(刑)의 집행면제 및 복권(復權)을 인증하는 일.
  7. 영전(榮典)을 수여하는 일.
  8. 비준서(批准書) 및 법률에서 정하는 그 밖의 외교문서를 인증하는 일.
  9. 외국의 대사 및 공사를 접수(接受)하는 일.
  10. 의식(儀式)을 행하는 일.
제8조
황실(皇室)에 재산(財産)을 양도(讓渡)하거나, 또는 황실이 재산을 양수(讓受)하거나 사여(賜與)하는 것은 국회의 의결에 바탕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2장 전쟁의 포기(放棄)

제9조
① 일본 국민은 정의(正義)와 질서(秩序)를 기조(基調)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希求)하고, 국권(國權)의 발동(發動)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하(威嚇) 또는 무력행사(武力行使)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② 앞의 항(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육해공군(陸海空軍)과 그 밖의 전력은 보유[保持]하지 아니한다. 국가(國家)의 교전권(交戰權)은 인정하지 아니한다.


   제3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제10조
일본 국민이 되는 요건은 법률로 정한다.

제11조
국민은 모든 기본적 인권의 향유를 방해받지 아니한다. 이 헌법이 국민에게 보장하는 기본적 인권은 침해할 수 없는 영구한 권리로, 현재와 장래의 국민에게 부여한다.

제12조
이 헌법이 국민에게 보장하는 자유와 권리는 국민의 부단한 노력에 의하여 유지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또한 국민은 이를 남용하여서는 아니 되며, 항상 공공복지(公共福祉)를 위하여 이용할 책임(責任)을 진다.

제13조
모든 국민은 개인(個人)으로서 존중된다. 생명, 자유 및 행복추구에 대한 국민의 권리는 공공복지에 어긋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입법(立法)과 그 밖의 국정(國政)에서 최대(最大)로 존중(尊重)할 필요가 있다.

제14조
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인종, 신조(信條), 성별, 사회적 신분 또는 가문[門地]으로 정치적, 경제적 또는 사회적 관계에서 차별받지 아니 한다.
② 화족(華族)과 그 밖의 귀족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 한다.
③ 영예(榮譽), 훈장과 그 밖의 영전(榮典)의 수여(授與)는 어떠한 특권도 따르지 아니한다. 영전의 수여는 현재 이를 가지거나 장래에 이를 받는 자의 1대(代)에 한정하여 그 효력을 가진다.

제15조
① 공무원을 선정(選定)하고, 또 이를 파면(罷免)함은 국민 고유의 권리이다.
② 모든 공무원은 전체의 봉사자이지, 일부의 봉사자가 아니다.
③ 공무원의 선거는 성년자(成年者)에 의한 보통선거(普通選擧)를 보장한다.
④ 모든 선거에서 투표의 비밀을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선거인(選擧人)은 그 선택에 공적(公的)으로도 사적(私的)으로도 책임을 묻지 아니 한다.

제16조
누구도 손해의 구제(救濟), 공무원의 파면, 법률, 명령 또는 규칙의 제정, 폐지 또는 개정이나 그 밖의 사항을 위하여 평온하게 청원할 권리를 가지며, 누구라도 이러한 청원을 함으로 인한 어떠한 차별 대우를 받지 아니한다.

제17조
누구도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받은 때에는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국가 또는 공공단체(公共團體)에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제18조
누구도 어떠한 노예적 구속도 받지 아니한다. 또한 범죄로 인하여 처벌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뜻에 어긋나는 고역(苦役)을 받지 아니한다.

제19조
사상 및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제20조
① 신교(信敎)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보장한다. 어떠한 종교단체도 국가로부터 특권을 받거나 또는 정치상 권력을 행사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누구라도 종교상 행위, 축전(祝典), 의식(儀式) 또는 행사에 참가하는 것을 강제받지 아니한다.
③ 국가와 그 기관은 종교교육과 그 밖의 어떠한 종교적 활동도 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21조
① 집회(集會), 결사(結社) 및 언론, 출판과 그 밖의 모든 표현의 자유는 보장한다.
② 검열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통신의 비밀은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22조
① 누구라도 공공복지(公共福祉)에 어긋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거주, 이전 및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
② 누구라도 외국에 이주하거나 국적을 이탈할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제23조
학문의 자유는 보장한다.

제24조
① 혼인은 양성(兩性)의 합의에 따라서만 성립하며, 부부가 동등한 권리를 가짐을 기본으로 하며, 상호의 협력으로 유지되지 않으면 아니 된다.
② 배우자의 선택, 재산권, 상속, 주거의 선정(選定), 이혼과 혼인 및 가족에 관한 그 밖의 사항은 법률로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본질적 평등에 입각하여 제정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25조
①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한도의 생활을 영위할 권리를 가진다.
② 국가는 모든 생활부분에서 사회복지(社會福祉), 사회보장(社會保障) 및 공중위생(公衆衛生)의 향상 및 증진에 노력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26조
① 모든 국민은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능력에 따른 동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② 모든 국민은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보호하는 자녀에게 보통교육(普通敎育)을 받게 할 의무를 진다.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

제27조
①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지며, 의무를 진다.
② 임금, 취업시간, 휴식과 그 밖의 근로조건에 관한 기준은 법률로 정한다.
③ 아동은 혹사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28조
근로자의 단결할 권리 및 단체교섭과 그 밖의 단체행동을 할 권리는 보장한다.

제29조
① 재산권은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재산권의 내용은 공공복지에 적합하도록 법률로 정한다.
③ 사유재산은 정당한 보상 하에 공공(公共)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다.

제30조
국민은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납세의 의무를 진다.

제31조
누구라도 법률에서 정하는 절차[手続]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그 생명 또는 자유를 박탈하거나 또는 그 밖의 형벌을 과(科)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32조
누구라도 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빼앗기지 아니한다.

제33조
누구라도 현행범으로 체포된 경우를 빼고는 권한을 가진 사법관리[司法官憲]가 발급하고, 또한 이유가 되는 범죄를 명시한 영장에 의하지 아니하면 체포되지 아니한다.

제34조
누구라도 이유를 직접 고지(告知)받고, 또한 직접 변호인에게 의뢰(依賴)할 권리를 주지 아니하면 억류(抑留) 또는 구금(拘禁)되지 아니한다. 또한 누구라도 정당한 이유가 없다면 구금되지 아니하며, 요구가 있으면 그 이유는 직접 본인 및 그 변호인이 출석하는 공개(公開) 법정(法廷)에서 제시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35조
① 누구라도 그 주거, 서류 및 소지품에 대하여 침입(侵入), 수색(搜索) 및 압수(押收) 받지 아니할 권리는, 제33조의 경우를 빼고는, 정당한 이유에 따라 발급되고 또한 수색하는 장소와 압수할 물건을 명시한 영장이 없이는 침해되지 아니한다.
② 수색 또는 압수는 권한을 가진 사법관리[司法官憲]가 발급한 각각의 영장에 의하여 수행한다.

제36조
공무원에 의한 고문(拷問)과 잔학(殘虐)한 형벌은 절대 금한다.

제37조
① 모든 형사사건에서 피고인은 공평(公平)한 재판소의 신속한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② 형사피고인은 모든 증인에게 심문할 기회를 충분히 받으며, 또한 공공의 비용으로 자기를 위하여 강제적 절차에 의한 증인을 구할 권리를 가진다.
③ 형사피고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자격을 가진 변호인을 의뢰할 수 있다. 피고인이 스스로 의뢰할 수 없는 때에는 국가가 붙인다.

제38조
① 누구라도 자기에게 불이익한 진술[供述]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② 강제(强制), 고문(拷問)이나 협박(脅迫)에 의한 자백 또는 부당하게 오래 억류나 구금된 후의 자백은 이를 증거로 삼을 수 없다.
③ 누구라도 자기에게 불이익한 유일한 증거가 본인의 자백인 경우에는 유죄가 되거나 형벌이 과(科)하여지지 아니한다.

제39조
누구라도 실행시(實行時)에 적법하였던 행위 또는 이미 무죄로 된 행위에는 형사상의 책임을 묻지 아니한다. 또한 동일한 범죄에 거듭 형사상의 책임을 묻지 아니한다.

제40조
누구라도 억류 또는 구금된 후 무죄 판결을 받은 때에는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국가에 그 보상(補償)을 청구할 수 있다.


   제4장 국회(國會)

제41조
국회는 국권(國權)의 최고기관(最高機關)이며, 국가의 유일한 입법기관(立法機關)이다.

제42조
국회는 중의원(衆議院)과 참의원(參議院)의 양 의원(議院)으로 구성한다.

제43조
① 양 의원은 전국민(全國民)을 대표하여 선거(選擧)된 의원(議員)으로 조직한다.
② 양 의원의 의원(議員) 정수(定數)는 법률로 정한다.

제44조
양 의원의 의원(議員) 및 그 선거인(選擧人)의 자격은 법률로 정한다. 다만, 인종(人種), 신조(信條), 성별(性別), 사회적 신분(身分), 가문[門地], 교육(敎育), 재산(財産) 또는 수입(收入)에 의하여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45조
중의원 의원(議員)의 임기는 4년으로 한다. 다만, 중의원이 해산된 경우에는 그 기간이 끝나기 전에 종료한다.

제46조
참의원 의원(議員)의 임기는 6년으로 하며, 3년마다 의원의 반수(半數)를 개선(改選)한다.

제47조
선거구(選擧區), 투표 방법, 그 밖의 양 의원의 의원(議員)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48조
누구라도 동시(同時)에 양 의원의 의원(議員)이 될 수 없다.

제49조
양 의원의 의원(議員)은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국고(國庫)에서 적절한[相當] 액수(額數)의 세비(歲費)를 받는다.

제50조
양 의원의 의원(議員)은 법률에서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회의 회기(會期) 중에 체포되지 아니하며, 회기 전에 체포된 의원은 그 의원(議院)의 요구가 있으면 회기 중에 석방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51조
양 의원의 의원(議員)이 의원(議院)에서 한 연설, 토론 또는 표결은 원외(院外)에서 책임을 묻지 아니한다.

제52조
국회의 상회(常會)는 매년 1회 소집(召集)한다.

제53조
내각은 국회 임시회(臨時會)의 소집을 결정할 수 있다. 어느 의원(議院)의 총의원(總議員)의 4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으면, 내각은 그 소집을 결정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54조
① 중의원이 해산된 때에는 해산의 날부터 40일 이내에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실시하고, 그 선거일부터 30일 이내에 국회를 소집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② 중의원이 해산된 때에 참의원은 동시에 폐회(閉會)한다. 다만, 내각은 국가에 긴급한 필요가 있는 때에는 참의원의 긴급집회(緊急集會)를 요구할 수 있다.
③ 앞의 항(項) 단서(但書)의 긴급집회에서 채결(採決)된 조치는 임시적인 것으로, 다음 국회가 개회한 뒤 10일 이내에 중의원의 동의(同意)가 없는 경우에는 그 효력을 잃는다.

제55조
양 의원은 각각 그 의원(議員)의 자격(資格)에 관한 쟁송(爭訟)을 재판(裁判)한다. 다만, 의원(議員)의 의석(議席)을 잃게 하는 경우에는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다수(多數)에 의한 의결(議決)이 필요하다.

제56조
① 양 의원은 각각 그 총의원(總議員)의 3분의 1 이상의 출석이 없으면 의사(議事)를 열고 의결(議決)할 수 없다.
② 양 의원의 의사(議事)는 이 헌법에서 특별히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출석의원의 과반수(過半數)로 결정하고, 가부동수(可否同數)인 때에는 의장이 결정하는 바에 의한다.

제57조
① 양 의원의 회의(會議)는 공개한다. 다만, 출석의원의 3분의 2 이상의 다수로 의결(議決)한 때에는 비밀회(秘密會)를 열 수 있다.
② 양 의원은 각각 그 회의기록을 보존하며, 비밀회 기록 가운데 특히 비밀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것 이외에는 이를 공표하고, 또한 일반에 널리 알려야[頒布] 한다.
③ 출석의원의 5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으면 각 의원(議員)의 표결은 회의록에 기록[記載]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58조
① 양 의원은 각각 그 의장(議長)과 그 밖의 임원[役員]을 선임(選任)한다.
② 양 의원은 각각 그 회의와 그 밖의 절차[手續] 및 내부 규율(規律)에 관한 규칙을 정하고, 또한 원내(院內)의 질서(秩序)를 어지럽힌 의원(議員)을 징계[懲罰]할 수 있다. 다만, 의원(議員)을 제명(除名)함에는 출석의원의 3분의 2 이상의 다수에 의한 의결(議決)이 필요하다.

제59조
① 법률안은, 이 헌법에서 특별히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양 의원에서 가결한 때에 법률이 된다.
② 중의원에서 가결하고, 참의원에서 이와 다른 의결을 한 법률안은 중의원에서 출석의원의 3분의 2 이상의 다수로 다시 가결한 때에는 법률이 된다.
③ 앞 항(項)의 규정은,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중의원이 양 의원의 협의회(協議會)를 여는 것을 요구하는 것을 방해하지 아니한다.
④ 참의원이 중의원에서 가결한 법률안을 접수한 뒤에 국회 휴회 중의 기간을 제외하고 60일 이내에 의결하지 아니한 때에는 중의원은 참의원이 그 법률안을 부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제60조
① 예산은 먼저 중의원에 제출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② 예산에 대하여 참의원에서 중의원과 다른 의결을 한 경우에,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양 의원의 협의회를 열어도 의견이 일치하지 아니하는 때 또는 참의원이 중의원에서 가결한 예산을 접수한 뒤에 국회 휴회 중의 기간을 제외하고 30일 이내에 의결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중의원의 의결을 국회의 의결로 한다.

제61조
조약(條約)의 체결(締結)에 필요한 국회의 승인은 앞 조 제2항의 규정을 준용(準用)한다.

제62조
양 의원은 각각 국정(國政)에 관한 조사를 수행하고, 이를 위하여 증인 출두(出頭) 및 증언이나 기록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제63조
내각총리대신(內閣總理大臣)과 그 밖의 국무대신(國務大臣)은 양 의원의 하나에 의석을 가지거나 가지지 않거나와 관계없이 의안(議案)에 대해 발언하기 위하여 의원(議院)에 출석할 수 있다. 또한 답변 또는 설명을 위해 출석을 요구받은 때에는 출석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제64조
① 국회는 파면(罷免) 소추(訴追)를 받은 재판관(裁判官)을 재판(裁判)하기 위하여 양 의원의 의원(議員)으로 조직한 탄핵재판소(彈劾裁判所)를 둔다.
② 탄핵(彈劾)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5장 내각(內閣)

제66조
행정권(行政權)은 내각(內閣)에 속한다.

제66조
① 내각은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수장인 내각총리대신(內閣總理大臣)과 그 밖의 국무대신(國務大臣)으로 조직한다.
② 내각총리대신과 그 밖의 국무대신은 문민(文民)이 아니면 아니 된다.
③ 내각은 행정권의 행사(行使)에 관하여 국회에 연대(連帶)하여 책임을 진다.

제67조
① 내각총리대신은 국회의원 가운데에서 국회의 의결(議決)로 지명(指名)한다. 이 지명은 다른 모든 안건(案件)에 우선하여 한다.
② 중의원과 참의원이 다른 지명 의결을 한 경우,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양 의원의 협의회를 열어도 의견이 일치하지 아니하는 때 또는 중의원이 지명 의결을 한 뒤 국회 휴회 중의 기간을 제외하고 10일 이내에 참의원이 지명 의결을 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중의원의 의결을 국회의 의결로 한다.

제68조
① 내각총리대신은 국무대신을 임명(任命)한다. 다만, 그 과반수(過半數)는 국회의원 가운데에서 선임(選任)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② 내각총리대신은 임의(任意)로 국무대신을 파면(罷免)할 수 있다.

제69조
내각은 중의원에서 불신임(不信任) 결의안을 가결하거나 신임(信任) 결의안을 부결한 때에는 10일 이내에 중의원이 해산되지 않는 한 총사직(總辭職)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70조
내각총리대신이 없는 때 또는 중의원 의원 총선거 뒤 처음으로 국회가 소집한 때에 내각은 총사직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71조
앞의 2개 조(條)의 경우에, 내각은 새로이 내각총리대신이 임명되기까지 계속하여 그 직무를 수행한다.

제72조
내각총리대신은 내각을 대표(代表)하여 의안(議案)을 국회에 제출하고, 일반 국무(國務) 및 외교관계에 대하여 국회에 보고(報告)하고, 또한 행정각부(行政各部)를 지휘(指揮)·감독(監督)한다.

제73조
내각은 다른 일반 행정사무 외에 다음의 사무를 수행한다. 
  1. 법률(法律)을 성실히 집행(執行)하고, 국무(國務)를 총리(總理)하는 일.
  2. 외교관계(外交關係)를 처리하는 일.
  3. 조약(條約)을 체결하는 일. 다만, 사전(事前)에, 시의(時宜)에 따라서는 사후(事後)에 국회의 승인(承認)을 거칠 것을 필요로 한다.
  4. 법률에서 정하는 기준에 따라 관리(官吏)에 관한 사무(事務)를 맡아 처리하는[掌理] 일.
  5. 예산(豫算)을 작성하여 국회에 제출하는 일.
  6. 이 헌법 및 법률의 규정을 실시하기 위하여 정령(政令)을 제정하는 일. 다만, 정령(政令)에는 특별히 그 법률이 위임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벌칙을 둘 수 없다.
  7. 대사(大赦), 특사(特赦), 감형(減刑), 형(刑)의 집행면제 및 복권(復權)을 결정하는 일.
제74조
모든 법률(法律) 및 정령(政令)에는 주임(主任) 국무대신이 서명(署名)하고, 내각총리대신이 연서(連署)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제75조
국무대신은 그 재임 중 내각총리대신의 동의(同意)가 없으면 소추(訴追)되지 아니한다. 다만, 이로 인하여 소추의 권리가 침해되지 아니한다.


   제6장 사법(司法)

제76조
① 모든 사법권(司法權)은 최고재판소(最高裁判所) 및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설치하는 하급(下級) 재판소에 속한다.
② 특별(特別) 재판소는 설치할 수 없다. 행정기관(行政機關)은 종심(終審)으로 재판을 수행할 수 없다.
③ 모든 재판관(裁判官)은 그 양심(良心)에 따라 독립하여 직권(職權)을 수행하며, 이 헌법 및 법률에만 구속된다.

제77조
① 최고재판소는 소송(訴訟)에 관한 절차[手續], 변호사(辯護士), 재판소의 내부 규율 및 사법사무(司法寺務) 처리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규칙을 정할 권한을 가진다.
② 검찰관(檢察官)은 최고재판소가 정하는 규칙에 따르지 않으면 아니 된다.
③ 최고재판소는 하급 재판소에 관한 규칙을 정할 권한을 하급 재판소에 위임(委任)할 수 있다.

제78조
재판관은 재판에 의하여 심신(心身)의 장애[故障]로 인하여 직무를 집행할 수 없다고 결정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민[公]의 탄핵(彈劾)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罷免)되지 아니한다. 재판관의 징계처분(懲戒處分)은 행정기관이 수행할 수 없다.

제79조
① 최고재판소는 그 수장인 재판관 및 법률에서 정하는 인원[員數]의 그 밖의 재판관으로 구성하며, 그 수장인 재판관 이외의 재판관은 내각에서 임명한다.
② 최고재판소 재판관의 임명은, 그 임명 뒤 처음으로 하는 중의원 의원 총선거 때 국민의 심사(審査)에 올리며[付], 그 뒤 10년이 경과하고 처음으로 열리는 중의원 의원 총선거 때 심사에 올리고, 그 뒤에도 같다.
③ 앞의 항(項)의 경우에 투표자(投票者)의 다수(多數)가 재판관의 파면(罷免)에 찬성[可]하는 때에 그 재판관은 파면된다.
④ 심사를 위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⑤ 최고재판소 재판관은 법률에서 정하는 나이[年齡]에 이른 때에 퇴관(退官)한다.
⑥ 최고재판소 재판관은 모두 정기적으로 적당한[相當] 액수(額數)의 보수(報酬)를 받는다. 이 보수는 재임 중 감액(減額)할 수 없다.

제80조
① 하급 재판소 재판관은 최고재판소에서 지명한 자로 구성된 명부(名簿)에 의하여 내각에서 임명한다. 그 재판관은 임기를 10년으로 하며, 재임(在任)할 수 있다. 다만, 법률에서 정하는 나이[年齡]에 이른 때에는 퇴관(退官)한다.
② 하급 재판소 재판관은 모두 정기적으로 적당한[相當] 액수(額數)의 보수(報酬)를 받는다. 이 보수는 재임 중 감액(減額)할 수 없다.

제81조
최고재판소는 모든 법률, 명령, 규칙 또는 처분(處分)이 헌법에 적합한지 여부를 결정할 권한을 가지는 종심(終審) 재판소이다.

제82조
① 재판의 대심(對審) 및 판결(判決)은 공개(公開) 법정(法廷)에서 한다.
② 재판소가 재판관 전원 일치로 공공질서(公共秩序) 또는 선량한 풍속(風俗)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결정한 경우에는 대심(對審)을 공개하지 아니하고 할 수 있다. 다만, 정치범죄(政治犯罪), 출판(出版)에 관한 범죄 또는 이 헌법 제3장에서 보장하는 국민의 권리가 문제가 되는 사건의 대심은 항상 이를 공개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7장 재정(財政)

제83조
국가[國]의 재정(財政)을 처리하는 권한은, 국회의 의결에 근거[基]하여 행사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84조
새로이 조세(租稅)를 부과[課]하거나 현행 조세를 변경함에는 법률 또는 법률에서 정하는 조건에 따를 것을 필요로 한다.

제85조
국비(國費)를 지출(支出)하거나 국가[國]가 채무(債務)를 부담함에는 국회의 의결에 근거[基]할 것을 필요로 한다.

제86조
내각은 매 회계연도의 예산을 작성하고, 국회에 제출하여 그 심의(審議)를 받아 의결을 거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87조
① 예견(豫見)하기 어려운 예산의 부족에 충당하기 위하여, 국회의 의결에 기초[基]하여 예비비(豫備費)를 두고, 내각의 책임으로 이를 지출할 수 있다.
② 모든 예비비의 지출에 대하여 내각은 사후에 국회의 승낙(承諾)을 얻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88조
모든 황실재산(皇室財産)은 국가[國]에 속한다. 모든 황실의 비용(費用)은 예산에 계상(計上)하여 국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89조
공금(公金)과 그 밖의 공공재산(公共財産)은 종교상의 조직(組織) 내지는 단체(團體)의 사용(使用), 편익(便益) 혹은 유지(維持)를 위하여 또는 공공(公共)의 지배에 속하지 아니하는 자선(慈善), 교육(敎育) 혹은 박애(博愛) 사업에 대하여 이를 지출하거나 그 이용에 제공[供]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90조
① 국가[國]의 수집․지출의 결산(決算)은 모두 매년 회계검사원(會計檢査院)이 검사하고, 내각은 다음 연도에 그 검사보고와 함께 이를 국회에 제출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② 회계검사원의 조직 및 권한은 법률로 정한다.

제91조
내각은 국회 및 국민에 대하여 정기적으로 적어도 매년 1회, 국가[國]의 재정상황에 대하여 보고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8장 지방자치(地方自治)

제92조
지방공공단체(地方公共團體)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사항은 지방자치의 본뜻[本旨]을 바탕으로 하여 법률로 정한다.

제93조
① 지방공공단체에는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의사기관(議事機關)으로 의회(議會)를 설치한다.
② 지방공공단체의 수장, 그 의회의 의원(議員) 및 법률에서 정하는 그 밖의 지방공무원[吏員]은 그 지방공공단체의 주민(住民)이 직접 선거(選擧)한다.

제94조
지방공공단체는 그 재산을 관리하고, 사무를 처리하며, 또한 행정을 집행하는 권능을 가지고, 법률의 범위 내에서 조례(條例)를 제정할 수 있다.

제95조
하나의 지방공공단체에만 적용되는 특별법은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지방공공단체의 주민투표에서 그 과반수의 동의를 얻지 아니하면 국회는 이를 제정할 수 없다.


   제9장 개정(改正)

제96조
① 이 헌법의 개정은 각 의원(議院)의 총의원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국회가 이를 발의(發議)하고, 국민에게 제안(提案)하여 그 승인(承認)을 거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이 승인에는 특별한 국민투표 또는 국회에서 정하는 선거 시에 하는 투표에서 그 과반수의 찬성을 필요로 한다.
② 헌법 개정에 대하여 앞의 항(項)의 승인을 거친 때에 천황은 국민의 이름으로 이 헌법과 하나[一體]를 이루는 것으로 즉시 이를 공포한다.


   제10장 최고법규(最高法規)

제97조
이 헌법이 일본 국민에게 보장하는 기본적 인권은 인류의 오랜 세월[多年]에 걸친 자유를 획득하려는 노력의 성과로서, 이러한 권리는 과거의 숱한 시련을 견뎌 현재 및 장래의 국민에게 침해할 수 없는 영구(永久)한 권리로 신탁(信託)된 것이다.

제98조
① 이 헌법은 국가[國]의 최고법규로서, 그 조규(條規)에 어긋나는 법률, 명령, 조칙(詔勅) 및 국무(國務)에 관한 그 밖의 행위의 전부 또는 일부는 그 효력을 가지지 아니한다.
② 일본국(日本國)이 체결한 조약 및 확립된 국제법규는 이를 성실히 준수[遵守]할 것을 필요로 한다.

제99조
천황 또는 섭정(攝政) 및 국무대신, 국회의원, 재판관과 그 밖의 공무원은 이 헌법을 존중하고 옹호할 의무를 진다.


   제11장 보칙(補則)

제100조
① 이 헌법은 공포한 날부터 계산[起算]하여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
② 이 헌법을 시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법률의 제정, 참의원 의원 선거 및 국회 소집 절차[手續] 혹은 이 헌법을 시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준비절차[準備手續]는 앞의 항(項)의 날짜[期日] 전에 수행할 수 있다.

제101조
이 헌법 시행 시에 참의원이 아직 성립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성립할 때까지, 중의원은 국회로서의 권한을 수행한다.

제102조
이 헌법에 의한 제1기 참의원 의원 가운데 그 반수의 임기는 3년으로 한다. 그 의원(議員)은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정한다.

제103조
이 헌법 시행 시에 재직(在職)하는 국무대신, 중의원 의원 및 재판관 혹은 그 밖의 공무원으로 그 지위에 상응하는 지위가 이 헌법에서 인정되는 자는 법률에서 특별히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헌법 시행으로 인하여 당연히 그 지위를 상실하지는 아니한다. 다만, 이 헌법에 의하여 후임자가 선거 또는 임명된 때에는 당연히 그 지위를 잃는다.



참고문헌
일본국헌법 원문.
일본국헌법 영문판.
법제처, 『(일본) 법제업무 편람』, 2008년.
법제처, 『알기 쉬운 법령 정비기준』,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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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aramcozy
    2010.01.27 02:32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와까리야스이시료데스네..
    와까리야스이하게 편하게 지내시길..

  2. 어헝
    2011.10.18 00:37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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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헤이세이 5년) 3월 23일
건조물침입·기물손괴·위력업무방해피고사건 (오키나와 국체 히노마루 소각 사건 제1심)[각주:1]



주문

 피고인을 징역 1년에 처한다.
 이 재판 확정의 날로부터 3년간 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소송비용 가운데 증인 네하라 마사아키(根原正明)에게 지급한 부분 가운데 제3회 및 제6회 공판분의 각 5분과 함께 그 나머지 증인에게 지급한 부분은 피고인의 부담으로 한다.



이유


 범행에 이른 경위

 제42회 국민체육대회 하·추계 대회(이하 「오키나와 국체」라고 한다.)는 쇼와 59년(1984년) 7월 4일, 재단법인 일본체육협회(이하 「일체협」이라고 한다.), 문부성 및 오키나와 현이 주최하여 쇼와 62년(1987년)에 오키나와 현에서 개최하도록 하여 그 가운데 소프트볼 경기는 요미탄촌(讀谷村), 온나촌(恩納村), 가데나정(嘉手納町) 및 차탄정(北谷町)의 4개 정촌(町村)에서 앞의 주최자 외에 각 경기의 회장지의 정촌도 함께 주최하여 재단법인 일본소프트볼협회(이하 「일소협」이라고 한다.)가 주관하여 실시하게 되었다. 요미탄손에서는 소년남자소프트볼경기회(이하 「본건 경기회」라고 한다.)를 개최하게 되었고, 이를 운영하기 위하여 쇼와 59년 7월 20일에 요미탄촌이 중심이 되어 제42회 국민체육대회 요미탄촌 실행위원회(이하 「요미탄촌 실행위원회」라고 한다.)를 설립하여 요미탄촌장 야마우치 도쿠신(山内徳信, 이하 「야마우치 촌장」이라고 한다.)이 그 회장이 되었다.

 오키나와 국체의 각 경기회의 개회식에서는 오키나와 국체의 주최자가 정한 실시요항(実施要項)과 이에 따라 준거하는 것으로 보는 국민체육대회 개최기준요항 등에 바탕하여, 오키나와현 실행위원회가 쇼와 61년 1월에 각 경기회의 개회식 등의 실시요항을 정하고, 그 가운데 개회식 등은 회장지 시정촌 실행위원회가 당해 경기단체와 협의 하에 실시하며, 개회식에서는 히노마루 기를 국기로서 게양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요미탄촌 실행위원회에서는 일소협 등과 협의하여 개회식 등의 실시요령을 정하고, 그 운영을 맡게 되었다.

 한편으로 일소협회장인 히로세 마사루(弘瀬勝, 이하 「히로세 회장」이라고 한다.)는 그 때까지 국체에서는 그 개회식 외에 각 경기회의 개시식에서도 히노마루 기를 국기로서 게양하는 것이 관행이 되었으므로, 오키나와 국체의 소프트볼 경기의 개회식에서도 히노마루 기를 국기로서 게양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으나, 쇼와 61년 7월경에 오키나와 국체의 리허설으로 열린 소프트볼 대회 후의 파티에서 히노마루 기 게양 등에 대하여 오키나와현민 사이에 반대가 있고, 특히 요미탄촌에서 반대가 강해 문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설명을 들었으므로, 야마우치 촌장에 대하여 본건 경기회의 개회식에서 히노마루 기의 게양 등이 관행대로 행할 수 있는지 타진하였다. 이에 대해 야마우치 촌장이 「여러가지로 어려운 문제도 있으나, 국체를 여는 이상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괜찮다고 생각합니다.」고 말하였으므로, 히로세 회장은 본건 경기회의 개회식에서도 히노마루 기의 게양 등을 관행대로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으나, 혹시 야마우치 회장에 대하여 그에 대하여 문제가 생긴 경우에는 연락을 바란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한편 야마우치 회장은 위 시점에서는 본건 경기회를 요미탄촌에서 개최하기 위하여 그 개시식에서 히노마루 기의 게양 등을 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였으나, 동년 12월에 요미탄촌의회에서 「히노마루 게양, 기미가요(君が代) 제창의 강요에 반대하는 요청결의」(日の丸掲揚、君が代斉唱の押しつけに反対する要請決議)가 채택되었고, 그 즈음 요미탄촌내에서 히노마루 기 게양이나 기미가요 제창의 강제에 반대하는 뜻의 서명이 촌민의 삼할에 가까운 8,000여 명으로부터 모이기도 하였고, 또한 쇼와 62년 3월에는 야마우치 촌장 자신이 학교의 졸업식, 입학식 등에서의 히노마루 기 게양이나 기미가요 제창의 강제는 유감이라는 뜻의 촌장으로서의 시정방침연설을 행하는 등이 진행되던 가운데, 이번 기회에 히노마루 기의 게양 등이 없이 본건 경기회의 개회식을 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앞의 의향을 일소협에 전하여 협의하여도 붇아들여지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직접 히로시 회장에게 전하는 등의 조치를 강구하지 않았다. 이처럼 판단을 망설인 채로 본건 경기회의 개최일이 다가오고, 야마우치 촌장은 드디어 일소협의 하부단체인 오키나와현 소프트볼협회의 이사장에게 히노마루 기의 게양 등이 없이 본건 경기회의 개회식을 행할 방침을 전달했다.

 본건 경기회는 쇼와 62년 10월 26일부터 29일까지의 일정으로 개최하게 되었으나, 급히 날아온 위 방침을 알게 된 히로세 회장은 새삼스레 상부 단체인 일체협의 의향에 반하여 히노마루 기의 게양 등이 없이 개시식을 행할 수는 없고, 급히 결론을 낼 필요가 있으므로 강경하게 시정의 번의를 촉구하고자 생각하고, 동월 22일에 야마우치 회장에 대하여 전화로 히노마루 기를 게양하지 않는다면 회장 변경도 있을 수 있다는 뜻을 전했다. 이에 요미탄촌 실행위원회에서 협의를 거듭하여, 익23일에는 기미가요의 제창은 없이, 히노마루 기는 게양한다고 결론을 내고, 히로세 회장도 이에 승낙하였다. 그리고 익24일에 요미탄촌사무소의 촌장실에서 매스컴이나 관계자에 대하여 히노마루 기를 게양하는 것으로 화합하였다는 것이 공표되었다.

 피고인은 전후 요미탄촌에서 나고 자라, 고향에서 슈퍼마켓을 경영하는 등으로 처자와 함께 거주하고 있는 자이나,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오키나와전에서 동촌에 있는 치비치리가마(チビチリガマ, 동굴)에서 일어난 주민의 집단자결에 대하여 조사를 진행하고 있던 가운데, 히노마루 기는 국민을 전쟁에 동원하는 것에 이용된 기로, 국기로 어울리지 않으며, 국기는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생각하여 오키나와 국체에 히노마루 기를 게양하는 것에 반대하였던 것이 히로세 회장으로부터의 강경한 요청의 결과 본건 경기회의 개시식에서 히노마루 기를 게양하게 된 것을 알자 히로세 회장에 의하여 히노마루 기의 게양이 강압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요미탄촌민이 이레가 되어 본건 경기회를 성공시키기 위하여 노력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동 촌민의 의사를 짓밟아 뭉개는 것이므로 히노마루 기의 게양을 방치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동월 25일에는 익일의 개시식에서 동료와 함께 히노마루 기 반대를 표현하는 플래카드를 거는 것과 함께 히노마루 기가 게양되면 단독으로 이를 끌어내리리라 생각하는데 이르렀다.


 범죄 사실(罪となるべき事実)[각주:2]

 피고인은 쇼와 62년 10월 26일, 오키나와현(번지 생략) 소재의 요미탄 평화의 숲 구장에서 본건 경기회의 개시식의 모습을 보고 있었던 바, 동 구장 외야 스탠드에 지어진 철근콘크리트조의 제기게양대 겸 스코어보드(이하 「본건 스코어보드」라고 한다.)의 제기게양대에 설치된 센터폴에 국기로서 히노마루 기가 게양된 것을 보고, 앞의 히노마루 기를 끌어내리는 것과 함께 그 재게양을 방해하기 위하여 태워버리자고 결의하고, 또한 위 행위에 의하여 본건 경기회의 업무를 방해하게 되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여, 동일 오전 9시 17분경 요미탄촌 촌장 겸 요미탄촌 실행위원회 회장 야마우치 도쿠신이 계원에게 스코어보드 조작실 등으로의 출입구 문을 잠그게 하는 등 지키게 한 본건 스코어보드의 남서측 벽면의 꽃블록을 타고 올라 그 옥상에 이유 없이 침입하여 센터폴에 달게 한 요미탄촌 소유의 로프를 미리 준비한 커터칼로 절단한 뒤에 동 폴에 국기로서 게양되어 있는 요미탄촌 실행위원회 소유의 히노마루 기 1매(가로 약1.3미터)를 끌어내려 이를 소지하고 있던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이를 위 구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인 뒤에 그 자리에 던져 버리고, 그 반 가량을 소실시켜 일체협, 문부성, 오키나와현 및 요미탄촌이 주최하고, 일소협이 주관하며, 요미탄촌 실행위원회가 운영하는 본건 경기회의 운영을 혼란케 하고, 그 경기의 개시를 약 15분간 지연시키는 등을 하며, 또한 타인 소유의 기물(器物)을 손괴(損壞)한 동시에 위력(威力)을 써서 본건 경기회의 업무를 방해한 것이다.


 증거목록(証拠の標目)
  <생략>


 변호인의 주장에 대한 판단(弁護人の主張に対する判断)

 제1 공소기각의 신청에 대하여

  1 공소권 남용의 주장에 대하여

 변호인은 「기물손괴죄에 대하여는 불과 3500엔의 히노마루 기를 소각한 것에 지나지 않고, 가령 범죄의 혐의가 인정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경미사건으로서 기소유예처분이 상당함에도, 굳이 소추한 본건 기소는 평등원칙에 위반하는 것이다. 또한 기물손괴의 방법·수단인 행위를 건조물침입죄로서, 그 영향·결과인 현상을 위력업무방해죄로서 각각 소추하고 있으나, 이들에 대하여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건조물침입죄는 외벽을, 더욱이 공연하게 오른 것 뿐이며, 그 법익침해의 정도는 적고, 위력업무방해도 방해된 업무의 내용, 정도가 막연하여 명확하할 수 없는 정도의 법익침해에 지나지 않는 점, 이들은 히노마루 소각을 기물손괴죄로 다루기 위하여 부수하여 기소한 것이 명확하므로 건조물침입죄 및 위력업무방해죄에 대한 기소도 평등원칙에 위반하는 것이다.」라고 하여 본건 공소 제기는 헌법 14조에 위반하여 공소권의 남용이므로 무효이며, 공소기각하여야 한다는 뜻을 주장한다.

 검토하자면 분명 검찰관의 재량권의 일탈이 공소제기를 무효라고 할 수 있는 경우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나, 현행 법제 하에서는 공소제기를 할지 말지 검찰관에게 광범한 재량권이 주어져 있는 것에 비추어 생각하면 공소제기가 무효가 되는 것은 공소제기 자체가 직무범죄를 구성하는 것과 같은 극한적인 경우에 한하여야 하는 점, 전기(前記) 인정의 사실 관계에 비추어 본건 공소제기가 무효가 될 정도로 극한적인 경우에 해당한다고는 할 수 없으므로 위 주장은 이유가 없다.

  2 소인(訴因) 불특정의 주장에 대하여

 변호인은 「기소장에 기재된 공소사실에서는 기물손괴죄의 대상인 기물에 관하여 「국기」라고 기재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 국기가 존재하는지 않는지, 또한 어떠한 기가 국기인가 법제화되지 않았고 확정하지 않는 이상 「국기」라고 하는 기재는 의미불명이다. 또한 위력업무방해죄의 대상인 업무에 대하여 경기회의 어떠한 업무를 방해한 것인지 명확히 되어있지 않다.」고 하여 본건 공소제기는 소인(訴因)이 불특정이므로 무효이며, 공소기각하여야 한다는 뜻을 주장한다.

 먼저 기물손괴죄의 소인(訴因)에 대하여 보면, 제1회 공판에서 검찰관은 「국기(國旗)란 히노마루 기이다.」라고 석명(釋明)하고 있던 점, 히노마루 기를 「국기」라고 기재하고 있는 것이 소인의 특정, 명시에 흠결을 가지는 지에 대하여 검토한다.

 국기라고 하는 용어는 법률 등에 의하여 국가를 상징하는 기(旗)로서 쓰여야 하는 것으로 정해진 기를 말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 경우에 한하지 않고 사실상 국민의 다수에 의하여 국가를 상징하는 기로서 인식되어 쓰이고 있는 기를 말하는 경우도 있다.

 현행 법제상 히노마루 기를 가지고 우리나라의 국기로 하는 뜻의 일반적인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변호인이 지적하는 대로다. 그러나 선박법 등에서는 일정한 선박에 국기를 게양하도록 하는 것 등이 정하여져 있고, 그 경우에 국기로서 쓰여야 하는 기에 대하여는 선박규칙(메이지 3년 1월 27일 태정관 포고 제57호)에 근거하여, 또는 당연한 전제로서 히노마루 기를 가리킨다고 해석된다. 이렇듯 히노마루 기는 국제관계에 있어서는 타국과 식별하기 위하여 법률 등에 의하여 국가로서 쓰여야 한다는 것이 정하여져 있다고 할 수 있으나, 다른 한편 국내관계에 있어서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쓰이는 경우의 국기에 대하여는 어떠한 법률도 존재하지 않으며, 국민 일반에 어떠한 행위도 의무지우지 아니한다. 그러나 현재 국민으로부터 히노마루 기 이외에 국기로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없고, 또한 다수의 국민이 히노마루 기를 국기로서 인식하고 쓰고 있으므로 검찰관이 공소사실에 있어서 기물손괴죄의 대상물로서 기재한 「국기」란 「히노마루 기」를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고, 소인의 특정, 명시가 흠결인 바는 없다.  (이하 위력업무방해죄의 소인 흠결에 대한 검토 생략)

 제2 구성요건에 관한 주장에 대하여

  1 위력업무방회죄의 성부(成否)에 대하여 (번역 중 생략)

  2 건조물침입죄의 성부(成否)에 대하여 (번역 중 생략)

 제3 위법성 조각(阻却)에 관한 주장에 대하여

  1 가벌적 위법성의 부존재에 대하여

 변호인은 「피고인이 손괴한 히노마루 기 및 로프는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무가치와 같은 물건으로, 또한 위력업무방해나 건조물침입에 대하여는 법익침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가 극히 경미하여 모두 가벌적 위법성이 없다.」는 뜻을 주장한다.

 먼저 기물손괴의 점에 대하여 검토하자면 동죄에 있어서 「물」(物)이란 재물(財物), 즉 보호가치 있는 물건을 말하나 본건의 객체인 히노마루 기 및 로프는 전기(前記) 인정대로 모두 그 본래의 효용에 좇아 현실적으로 사용되고 있던 것이므로 보호가치를 가지는 물건이며, 이들을 손괴한 행위는 기물손괴죄에 해당하여 실질적으로도 위법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위력업무방해 및 건조물침입의 점에 대하여도 각각의 범행 태양(態樣)이나 그 결과는 전기(前記) 인정대로이며, 법익침해의 정도가 극히 경미하다고는 할 수 없고, 그 주장은 전제를 잃어 부당하다. 위 각 주장은 모두 이유 없다.

  2 정당방위 등에 대하여

 변호인은 「히로세 회장에 의한 히노마루 기의 강제에 의하여 요미탄촌, 촌민, 경기회 개시식 참가자 및 피고인의 사상·양심의 자유, 동촌 및 촌민의 의사결정의 자유(지방자치)와 동촌, 촌민 및 피고인의 「히노마루가 없는 국체」를 행하자고 하는 표현의 자유가 부정하게 침해된 것이므로 이에 대하여 행해진 피고인의 기물파손행위는 정당방위 또는 자구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 위력업무방해행위 및 건조물침입행위는 긴급피난 또는 자구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뜻을 주장한다.

 그러나 전기(前記)와 같이 국내관계에 있어서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쓰이는 경우의 국기에 대하여는 어떠한 법률이 존재하지 아니하고, 국민 일반에 아무런 행위도 의무지우지 아니하는 히노마루 기를 이 의미에서의 국기로서 쓸 것인가 않을 것인가, 어떠한 곳에 게양할 것인가는 국민 각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맡겨져 있는 것이므로, 본건 경기회의 개시식에 있어서 히노마루 기를 국기로서 게양할 것인가 않을 것인가 또한 그 주최자들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여야 할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의사결정과정을 보면 전기(前記) 인정과 같이 오키나와 국체의 주최자들에 의하여 본건 경기회의 개시식에 대하여는 요미탄촌 실행위원회가 주관자인 일소협과 협의한 뒤 실시하는 것이라고 정하여져 있었던 바, 본건 경기회의 개시식이 가까워져 요미탄촌 실행위원회로서는 히노마루 기를 국기로서 게양하지 않는 방침인 것을 안 일소협의 히로세 회장이 상부단체인 일체협의 의향을 따라 히노마루 기를 국기로서 게양하지 않는다면 회장의 변경도 있을 수 있다고 하며 강경한 자세로 이를 행하도록 요청하고, 요미탄촌 실행위원회에서 협의를 거듭하여 본건 경기회의 개시식에 있어서 히노마루 기를 게양하는 것으로 되어 요미탄촌 실행위원회와 일소협의 협의가 정리된 것이다. 분명 위 협의가 정리되는 과정에서 히로세 회장의 발언에는 온당하지 않은 점도 있으나, 이는 요미탄촌 실행위원회가 적절한 시기에 방침을 확정하고, 필요에 응하여 일소협과의 협의에 미치지 못한 것이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으며, 전기(前記) 인정의 경위에서 본다면 이러한 발언이 있었으므로 요미탄촌 실행위원회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부당하게 빼앗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결국 주최자들의 의사결정에 근거하여 본건 경기회의 개시식에 있어서 히노마루 기가 국기로서 게양된 것이다. 따라서 위와 같은 경위를 거쳐 행하여진 히노마루 기의 게양이 부정한 침해라거나 현재의 위난에 해당한다고는 인정할 수 없고, 위 주장은 이유 없다.

  3 정당행위에 대하여

 변호인은 「기물손괴행위는 방위행위, 표현행위 및 저항행위이며 수단의 상당성, 법익의 균형성, 필요성 및 긴급성도 있으며, 또한 위력업무방해행위 및 건조물침입행위는 법익침해의 경미성,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상당성, 필요성 및 긴급성이 있어 모두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뜻을 주장한다.

 피고인이 히노마루 기는 국기로서 어울리지 않고, 국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소이(所以) 및 위 사상에 바탕하여 본건 범행에 이른 것은 전기(前記) 인정대로이나, 전게(前揭) 관계 각 증거에 따르면 요미탄촌민 가운데에는 피고인과 같은 사상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 인정되는 바이나, 민주주의사회에 있어서는 자기 주장의 실현은 언론에 의한 토론이나 설득 등의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행하여져야 하는 것이며, 가령 본건 경기회에 있어서 히노마루 기의 게양에 반대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주장의 실현을 위하여 전기(前記) 인정과 같은 피고인의 실력행사는 수단에 있어서 상당한 것이라고는 하기 어렵고, 이들이 정당행위라고는 할 수 없으므로 위 주장에는 이유 없다.


 법령의 적용 (번역 중 생략)


 양형의 이유

 본건은 오키나와 국체에서 소년남자 소프트볼 경기회의 개시식에서 히노마루 기를 게양한 것이 강제되었다고 생각한 피고인이 스코어보드의 옥상에 침입하여 센터폴에 달게 한 로프를 절단한 뒤 히노마루 기를 끌어내려 태워 버리는 등을 하여 본건 경기회의 업무를 방해한 것이라고 하는 사안이지만, 주최자인 일체협의 의향을 따fms 히로세 회장으로부터 경기회의 개시식에서의 히노마루 기를 게양하도록 강한 요청이 있었던 것, 최종적으로는 경기회의 운영을 맡은 요미탄촌 실행위원회 내에서도 상의하여 히노마루 기의 게양이 결정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자기의 신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는 것으로 실력을 가지고 히노마루 기를 태워버리기 위하여 본건 범행에 이른 것이며,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서는 결코 용인하기 어려운 일탈한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피고인의 위 행위에 의하여 요미탄촌민들이 손수 국체로서 협력하여 성공시키자고 준비해 온 경기회의 업무를 방해한 결과가 발생하고 있는 것, 피고인에게는 반성의 태도도 볼 수 없는 것 등도 고려하면 피고인의 형책(刑責:형사책임)은 경시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다른 한편으로 경기회의 운영을 맡은 요미탄촌 실행위원회의 회장인 야마우치 촌장이 주최자인 일체협이나 오키나와현의 의향을 따라 개시식에서 히노마루 기를 게양할 지 아닌지 판단을 헤매고, 그 개최에 임박하게 되어서야 드디어 요미탄촌 실행위원회로서는 시작식에서 히노마루 기를 게양하지 않는다는 의향이었던 것이 그 운영에 관하여 협의하여야 하는 것으로 보는 일소협에 전해져 그 대응에 고려한 일소협의 히로세 회장이 요미탄촌 실행위원회에 대하여 히노마루 기를 게양시켰다고 하는 경위에 대하여, 본래 하여야 할 협의가 충분히 되지 아니한 것이 피고인의 본건 범행을 유발시킨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점, 요미탄촌에서 나고 자란 피고인이 동촌에 있어서 오키나와전의 역사, 특히 치비치리가마의 집단자결의 조사 등을 통하여 히노마루 기에 대하여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는 것에 이른 것 자체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닌 점, 손괴한 물건은 비교적 저렴하고, 업무방해의 결과도 비교적 적은 점, 피고인은 오랜 기간 견실한 직업에 종사하면서 요미탄촌 상공회의 임원을 맡기도 하는 등 동촌의 발전에 협력하여 온 자인 점 등 피고인을 위하여 참작할 사정도 인정되는 것으로서, 이들 사정을 또한 함께 고려한 뒤에 주문에 적힌 바와 같이 형의 양정을 하였다.



 따라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재판장 재판관 미야기 교이치  宮城京一
재판관 아키바 야스히로 秋葉康弘
재판관 다나카 겐지   田中健治



 이 사건은 피고인이 1987년(쇼와 62년) 10월에 오키나와현(沖縄県) 나카가미군(中頭郡) 요미탄촌(讀谷村)에서 열린 제42회 국민체육대회 소프트볼 경기 개시식에서 깃대에 게양된 히노마루(日の丸)를 끌어 내려 소각하였다고 하여 공소가 제기된 건조물침입, 기물손괴, 위력업무방해피고사건의 제1심 판결이다. 소인(訴因)의 특정과 관련하여 히노마루가 국기(國旗)인가 아닌가가 다투어졌으므로 매스컴 등에서 널리 보도되었다. 사건의 배경에는 태평양전쟁에서 비참한 지상전을 체험하고, 주민이 집단자결에 몰리는 등의 오키나와의 히노마루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있다.

 변호인의 주장은 공소권 남용, 가벌적 위법성의 부존재, 정당방위, 정당행위 등 여러 면에 걸치나, ① 소인이 불특정이란 주장에 관하여 기소장에 기재된 공소사실에서는 기물손괴죄의 대상인 기물에 관하여 「국기」(國旗)라고 기재하고 있으나, 일본에 국기가 존재하는가 아닌가, 또한 어떠한 깃발이 국기인가는 법제화되어 있지 않아 확정되어 있지 않는 이상, 「국기」라는 기재는 의미불명으로 본건 공소제기는 소인이 불특정된 까닭에 무효로 공소기각하여야 하며, ② 위력업무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관하여 피고인의 행위는 사람의 의사를 제압할만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으므로 위력에 해당하지 않으며, 피고인의 행위에 따라 업무방해가 현실적으로 야기된 바가 없으며, 그 구체적 위험 또한 발생하지 않은 것이므로 피고인의 행위는 업무방해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등을 주장하였다.

 본 판결은 ①의 주장에 대하여 검찰관이 제1회 공판기일에 「국기란 히노마루 기이다」라는 뜻을 석명하고 있는 것을 지적한 뒤, 국기라고 하는 용어는 법률 등에 따라 국가를 상징하는 기로서 쓰이도록 정하여진 기를 말하는 경우도 있으나, 그 경우에 한하지 아니하고 사실상 국민의 다수에 의하여 국가를 상징하는 기로서 인식되고, 쓰이고 있는 기를 말하는 경우도 있으며, 현행 법제상 히노마루 기를 가지고 일본의 국기라고 하는 뜻의 일반적인 규정은 존재하지 않으나, 국제관계에 있어서는 선박법 등에 따라 히노마루 기를 타국과 식별하기 위한 국기로서 쓰도록 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고, 한편으로는 국내관계에 있어서도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쓰이는 경우의 국기에 대하여는 아무런 법률도 존재하지 아니하며, 국민 일반으로 하여금 어떠한 행위도 의무지우지 아니하나, 현재 국민으로부터 히노마루 기 이외의 국기로서 취급되고 있는 것이 없고, 또한 다수의 국민이 히노마루 기를 국기로서 인식하고 쓰고 있으므로, 검찰관이 공소사실에 있어서 기물손괴죄의 대상물로서 기재한 「국기」란 「히노마루 기」를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고, 소인의 특정에 흠결이 있는 것이 없다는 뜻의 판시를 하였다. 본 판결은 공소사실에 기재된 「국기」가 「히노마루 기」를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는 사안에 응하여 판단하였으므로 일반적으로 말하면 소인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특정을 요한다고 생각할 것인지는 판례상에서 분명 명확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실무상은 소인의 기재는 다른 범죄사실에서의 식별 특정으로 족하다는 견해가 유력하다.[각주:3]
  1. 나하<SPAN style="COLOR: #8e8e8e">(那覇)</SPAN> 지방재판소 판결 쇼와 62년 (わ) 제346호 [본문으로]
  2. 원문을 직역하면 죄가 될 만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으나, 한국의 일반적인 판결문에 준하여 범죄 사실로 표현한다. [본문으로]
  3. 『판례타임스』<SPAN style="COLOR: #8e8e8e">(判例タイムス)</SPAN> 제815호, 1993년 7월, 114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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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보다 화딱지나서 정리한 것. 손으로 쓴 내용을 옮긴 것이라 정자가 아닌 글자가 좀 있지만, 법학도라면 충분히 이해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음. 객관성(?) 유지를 위하여 각 견해에 대한 비판은 기술하지 않았으므로, 이에 대하여는 알아서 찾아보시고연...

참고문헌은

제성호, 「분단과 통일에 관한 법적쟁점 - 헌법의 영토조항과 통일조항을 중심으로 -」, 『중앙법학』 제6집 제2호, 2004년.
도회근(발표 곽상진), 「제3조(영토조항)와 제4조(통일조항)」 - 헌법개정연구 제1분과위원회, 『헌법학연구』 제12권 제2호, 2006년.
도회근, 「헌법의 영토와 통일조항 개정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헌법학연구』 제12권 제4호, 2006년.
기타 몇 권의 단행본 연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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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tigger.tistory.com BlogIcon tigger10
    2009.03.28 00:45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배움이 미천하고 법학도도 아니라 이해가 좀 힘든 자료군요... 근데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건 좀 신기한 관점...

    1. Re: 김꽃님
      2009.03.28 22:00 신고 삭제 주소

      휴전선 이북을 불법 무력점거하는 반국가 무력도당일 뿐입니다. 넵.

  2. Favicon of http://yuptogun.tistory.com BlogIcon 엽토군
    2009.03.30 15:49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아 슈ㅣ발 PDF 펼쳐서 한자어 읽다 말고 "조선일보명조"라고 생각해 버리면 지는겁니까? OTL OTL OTL

    1. Re: Favicon of http://www.7t7l.pe.kr BlogIcon 천어
      2009.03.30 22:15 신고 삭제 주소

      나 조선일보명조체 좋아함'-^

  3. 마스테아
    2009.04.05 11:53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당최 뭔 소린지..

  4. Favicon of http://ex.tistory.com BlogIcon kitten
    2009.04.05 15:50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한자가 많아서 왕편이라도 찾아야겠는데 내 왕편을 본가에 두고왔구나. 과학이를 하니 어디 한자 찾을 일이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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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헌법사 소고(日本憲法史 小考)



Ⅰ. 메이지(明治) 헌법


1. 총설

 (1) 봉건제도의 해체

  1) 막부정치의 폐지
  도쿠가와 막부(徳川幕府)는 모든 정치권력을 쥐고 260년 동안 봉건적·쇄국적 체제를 지배하였다. 그러나 구미(歐美) 자본주의국가의 개국 요구나 강해진 도막운동(倒幕運動), 그리고 경제체제의 모순 등의 격증에 의하여 급속하게 권위를 잃게 되었다. 그리고 이에 막부는 게이오(慶応) 3년(1867년) 10월 14일을 기하여 「대정봉환」(大政奉還, 다이세이호칸), 즉 정권을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조정(朝廷)에 다시 돌렸고, 이후 같은 해 12월 9일에는 「왕정복고」(王政復古)의 대호령(大号令)을 발하여 이에 천황 친정(親政)의 체제가 부활하였다.

  2) 번제(藩制)의 폐지
  메이지 정부는 중앙집권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하고, 그 실현을 위하여는 우선 번(藩, 당시 263개 이상의 번이 있었다.)을 폐지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메이지(明治) 2년(1869년)에는 드디어 「판적봉환」(版籍奉還), 즉 번의 영지와 그 주민을 중앙정부에서 관리하되 그 관리의 담당은 번의 주인이던 다이묘(大名)들이 지번사(知藩事) 혹은 번지사(藩知事)의 형태로 맡게 되었으며, 이어 메이지 4년(1871년)에는 「폐번치현」(廃藩置県)을 단행하게 되었다.

  3) 신분제도의 폐지
  도쿠가와 막부 시대의 신분은 공경(公卿)·제후(諸侯)·사(士)·농(農)·공(工)·상(商) 등의 계급이 나누어져, 각각의 신분에 의하여 엄격한 차별을 받는 원인이었다. 메이지 정부는 「사민평등」(四民平等)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신분제도를 폐지하는데 착수하였으나, 개혁은 불완전한 채로 끝났다. 오히려 메이지 정부는 시대에 역행하는, 이른바 화족(華族, 공경이나 제후가 변한 것)·사족(士族, 신하)·평민(농·공·상·민)의 3종의 신분을 새로이 만들었다. 결국 「사민평등」의 사상은 그림의 떡처럼 변했고, 역으로 인종적인 편견이나 부라쿠(部落) 차별 등의 차별을 오늘날까지 남기는 원인이 되었다.

 (2) 근대 민족국가로의 움직임

  일본이 근대국가로서의 움직임을 내딛은 것은 1860년대에서 1870년대를 전후한 시기였다. 이 시기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를 둘러싸고 정치사상이나 헌법제도등의 많은 움직임이 있던 시기이다.

  1) 「공의사상」(公議思想)
  「공의사상」(公議思想)은 막부에서 메이지 유신에 걸쳐 일본의 지식층에서 탄생한 정치사상으로, 그 목적은 도쿠가와 막부의 군사적 독재정치에 저항하여 정치의 무대에 공경이나 제후 및 무사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상을 명시하게 된 것이 게이오 4년(1868년)의 「5개조의 어서문(五ヶ条の御誓文)이다.

  2) 민선의회(民選議會)의 설치
  민선의회 설치의 움직임은 문명개화의 소리가 급속하게 높아지던 근대 유럽의 사상과 제도의 영향을 받아 서민(庶民)의 정치적 자각이 높아지면서 나타났다. 정한론(征韓論)에서 진 소지마 다네오미(副島種臣)·이타가키 다이스케(板垣退助)·고토 쇼지로(後藤象二郎)·에토 신페이(江藤新平) 등이 사쓰마(薩摩)의 번벌(藩閥)을 중심으로 하는 관료의 전제에 대항하여 1874년에 「민선의회설립의 건백서」(民選議会成立の建白書)를 정부에 주장한 움직임이 그것이다.

  3) 국회 개설의 칙유(勅諭)와 흠정헌법(欽定憲法)
  민선의회를 개설하여 헌법을 제정하자는 주장에 대하여 정부 내에서도 다양한 움직임이 있었다. 오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로 대표되며 영국의 의원내각제를 채용하자고 주장하는 「급진론」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로 대표되며 프러시아의 군주주의를 채용하자고 주장하는 「점진론」이 그것이다. 두 주장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어전회의」(御前会議)에서 점진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자 오오쿠마 시게노부는 면직되었다(이른바 메이지 14년의 「정변」이다.). 그리고 메이지 14년(1881년) 10월 12일에 칙유(勅諭)가 내려졌고, 정부가 이를 받아 1890년에 국회를 개설하며 천황이 헌법을 제정하는 것 등을 발표하였다.

  4) 메이지 헌법의 제정과 공포
  메이지 정부는 헌법을 제정하기로 한 태도를 굳히고, 이토 히로부미를 각국의 헌법조사를 위하여 유렵으로 파견한다. 그는 주로 독일계의 헌법이론을 배우고, 군권(君權) 중심의 입헌제를 지지할 의지를 굳혀 귀국한다. 메이지 헌법 제정을 위한 구체적 작업은 1886년부터 이토 히로부미를 중심으로 이노우에 고와시(井上毅)·이토 미요지(伊東巳代治)·가네코 겐타로(金子堅太郎)와 함께 헌법과 관계법령안을 준비하여 1889년에 안이 완성되어 주상(奏上)하였다.
  이 안은 추밀원(枢密院)에서 심의하여 메이지 22년(1889년) 2월 11일에 천황이 「대일본제국헌법」(이른바 메이지 헌법)을 제정·공포하였다. 이는 일본의 첫 성문헌법이다. 그리고 1890년 7월에 제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가 시행되어 제1회 제국의회(帝国議会)가 개설되었고, 메이지 헌법도 그 날부터 시행되었다.


2. 메이지 헌법의 성격

 (1) 개설(槪說)

  메이지 정부는 한편으로는 선진 여러 국가의 입헌주의 제도를 취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절대주의적인 권력구조의 확립을 목표로 하였으므로, 필연적으로 서로 모순적인 작업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메이지 헌법은 그러한 상황에서 제정된 헌법이므로, 그 성격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원리, 그리고 군주주의의 원리의 타협의 산물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전제적인 성격이 강한 헌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2) 민주적인 원리와 제도

  1) 의회제도
  법률이나 예산의 성립에 대하여 의회의 관여를 필요로 하는 것은 근대의회주의제도의 성격을 취한 것이다. 그러나 ① 제국의회는 천황의 입법원 행사를 위한 협찬기관에 지나지 않은 점, ② 정당이나 군부, 관료의 힘을 억제할 수 없었던 점, ③ 천황은 많은 명령을 단독으로 발하는 것이 인정된 점 등은 불완전한 의회제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 대신(大臣)의 조언
  천황의 국무상의 행위에는 모든 대신의 보필(輔弼)을 필요로 하였다. 그러나 군통수권(軍統帥權)과 황실에 관한 사무 등은 대신의 조언에서 벗어나 있었으므로, 충분한 효과를 얻지는 못했다.

  3) 신민(臣民)의 권리보장
  메이지 헌법도 근대입헌국가와 같이 「신민권리의무」(臣民權利義務)라는 표제로 일련의 자유권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권리와 자유는 천황이 신민에 대하여 은혜적으로 준 것에 지나지 않았으며, 자연법사상에서 생긴 인권의 관념은 아니었다. 또한 그 보장에 있어서도 행정권이 아닌 입법에 의한 제약에는 어떠한 보장수단이 없었으므로, 「법률의 범위 내」에서의 보장에 지나지 않았다.

  4) 권력분립
  메이지 헌법도 「권력분립」(權力分立)을 위하여 국가권력을 입법(立法)·사법(司法)·행정(行政)으로 나누고, 제국의회와 재판소(裁判所)·내각(內閣)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제국의회는 천황이 입법권을 행사하기 위한 「협찬기관」에 지나지 않았으며, 또한 국무대신은 천황이 통치권을 행사하기 위해 「보필하는 지위」였으며, 재판소 또한 「천황의 이름으로」 사법권을 행사하는 기관이었던 등 모두 천황대권을 보좌하는 기관으로서의 분립제에 지나지 않았다.

  5) 사법권의 독립
  메이지 헌법은 「사법권 독립의 원칙」을 취하여 이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재판관의 신분보장을 두었다. 단 행정사건에 대하여는 별도의 행정재판소의 설치를 인정하고, 군인·화족 등 특별한 신분이나 사건에 대하여는 특별재판소의 설치도 허용하였다. 그렇다고 하여도 사법권의 독립은 메이지 헌법 하의 민주적 여러 제도 가운데에서는 비교적 실현을 본 제도라고 할 수 있다.

 (3) 반민주적인 원칙과 제도

  1) 천황주권(天皇主權)
  메이지 헌법은 「천황주권」을 근본원칙으로 하여 특이한 천황제 구조를 취하고 있다. 즉 일본의 정치의 방향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천황이라고 하는 천황주권의 근거는, 「천손강림(天孫降臨)의 신칙(神勅)」에 바탕한 「천양무궁(天壤無窮:하늘과 땅처럼 무궁함)」에 있다는 설이다. 또한 천황은 신성한 존재이므로, 감히 범하여서는 아니되는 이른바 천황의 신격화가 이루어졌다.

  2) 대권중심주의(大權中心主義)
  메이지 헌법에 있어서 천황은 통치권을 총람하는 것에 의하여 최고의 권위자로서 군림하였다. 「천황은 통치권을 총람(總攬)한다」는 것은 입법권과 행정권 및 사법권 등의 권력이 결국에는 천황에게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천황대권은 범위가 넓고, 특히 의회가 관여할 수 없는 천황의 권능이 크게 행사될 수 있는 것은 천황제 관료에 의한 행정권 우위의 제도, 즉 「약한 의회에 대하여, 강한 정부」라고 하는 체제를 명실히 확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 통수권(統帥權)의 독립
  메이지 헌법은 천황이 육해군을 통수한다고 정하고, 이른바 「통수권의 독립」을 규정하였다. 그러나 실제 운용은 참모총장(參謀總長, 육군)과 군령부총장(軍令部總長, 해군) 등의 기관이 조언하여 정부 및 의회에서 전혀 컨트롤할 수 없는 별도의 계통의 권한이었다.

  4) 황실자율주의(皇室自律主義)
  천황제를 절대화하기 위하여 황실에 관한 것은 황실 스스로가 정하도록 하는, 이른바 「황실자율주의」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그를 실시하기 위하여 황실전범(皇室典範)이라는 법률을 제정하여 메이지 헌법과 함께 최고의 위치에 두고, 양자의 사이에는 효력상의 우열이 없도록 하였다.


3. 메이지 헌법의 운용(運用)

 (1) 개설(槪說)

  메이지 헌법은 근대입헌주의와 절대주의라는 상반된 복합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 실제 정치에서 운용되는 것 또한 여러 가지로 모순을 낳는 결과가 되었다. 여기서는 메이지 헌법사를 4가지의 시대로 나누고, 요점만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2) 제1기 : 헌법시행(1890년, 메이지 23년)부터 청일전쟁(1894~1895년) 무렵까지

  이 시기는 메이지 헌법을 성립시킨 번벌정부(藩閥政府)와 의회가 헌법상의 권능을 근거로하여 격돌한 때이다. 정부는 「천황의 정부」로 어떠한 정당정치에서도 초연(初演)한, 의회에서 컨트롤 할 수 없는 이른바 「초연주의」(超然主義)의 방침이 취해졌다.

 (3) 제2기 : 청일전쟁 이후부터 1912년(메이지 45년) 무렵까지

  이 시기는 정부가 정당과 제휴하는 방침을 취하여 정당도 또한 관료(官僚)·군벌(軍閥)에 앞서, 의회의 의 권한이 높아진 때이다. 정당의 근대화를 외치는 가운데 민주적인 원칙을 추진하자고 하는 움직임은 정당내각의 발전을 가져온 중요한 의미가 있다. 또한 청일전쟁 이후에는 일본의 자본주의가 촉진되고, 이에 그치지 않고 노동운동도 발전하게 되어 파업 등도 발생하였다. 이에 위기를 느낀 정부는 곧 「치안경찰법」(治安警察法)을 제정하여 탄압을 꾀하게 되었다.

 (4) 제3기 : 1912년(다이쇼 원년)부터 쇼와 초기 무렵까지

  이 시기는 자유주의적 세력이 차츰 세력을 넓히고, 정당의 비중이 다소 높아진 이른바 「정당내각」에 의한 정치가 행해진 때였다. 특히 2번에 걸친 「호헌운동」(護憲運動)은 정당내각 확립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운동의 성과로서 이른바 「헌정(憲政)의 상도(常道)[각주:1]가 헌법관습으로 인정되고, 정당내각제가 확립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당내각도 재벌(財閥)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고, 군벌관료와 손을 잡아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등을 제정하기에 이르러 이 시기의 민주정치의 성격도 그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5) 제4기 : 쇼와 초기부터 1945년(쇼와 20년)에 이르기까지

  이 시기는 입헌주의의 기능이 절반은 정지한 때이다. 정치는 좌익운동을 강압적으로 끊으려는 방침을 취하고, 우익운동에 대하여는 영합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로 인하여 우익은 군벌과 결탁하여 힘을 가지고 약한 의회를 더욱 후퇴시켰으며, 결국은 국정을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그 결과 「5·15 사건」(1932년)[각주:2]이나 「2·26 사건」(1936년)[각주:3]의 발생과 함께 중일전쟁(1937년)의 격발이라는 어두운 시대로 돌입하게 되었다. 군벌 및 관료의 독재는 「국가총동원법」을 낳았고, 이에 의회의 법률의결권은 실질적인 힘을 잃게 되었다. 그리고 1940년(쇼와 15년)에는 각 정당이 어쩔 수 없이 해산되었고, 새로이 「대정익찬회」(大政翼贊會/大政翼賛会, 다이세이요쿠산카이)가 결성되는 등 일본의 정당정치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까지 부활하지 못했다.



Ⅱ. 일본국헌법의 제정


1. 총설

 (1) 포츠담 선언의 수락과 점령체제

  1945년(쇼와 20년) 8월 14일, 일본정부는 항복을 요구하는 연합국의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고, 9월 2일 항복문서에 서명하였다. 포츠담 선언의 수락은 메이지 헌법체제의 근본적 변혁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즉 그때부터 일본의 통치권은 연합군 최고사령관의 권한을 바탕으로 위임된 것이 되는, 「간접통치」의 방식이 되었다.[각주:4] 그리고 이러한 점령체제는 「대일평화조약」(對日平和條約)[각주:5]이 체결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포츠담 선언은 13항목으로 구성되었으며, 특히 헌법제정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되는 규정은 다음의 두 가지이다. 우선 민주주의적 경향의 부활을 강화하는 한편 언론과 종교 및 사상과 같은 기본적 인권의 존중을 확립하는 것(제10항), 즉 신격천황제(神格天皇制)를 부정하고, 봉건적 신분제도를 폐지함과 함께 기본적 인권을 존중하고, 교육의 민주화를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민주주의적·평화적인 정치조직을 확립하는 것(제12항), 즉 의회제도와 선거제도의 개혁, 정당의 편성, 지방제도의 개혁 등을 행하는 것이다.

 (2) 헌법개정의 경과

  1) 마쓰모토(松本) 위원회의 조사
  연합군최고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는 시데하라(幣原) 총리가 총사령부를 방문했을 때 메이지 헌법의 민주화를 포함한 일본의 전통적 사회질서의 개혁 필요성을 시사(示唆)하였다. 그에 이어 정부는 마쓰모토 국무대신을 주임으로 하는 「헌법문제조사위원회」(1945년(쇼와 20년) 10월 25일)를 설치하였다. 위원회는 이른바 「마쓰모토 4원칙」을 바탕으로 개정작업을 시작했으며, 다음 해 2월 8일에 총사령부에 제출하였다(이른바 「마쓰모토 안」).

  2) 맥아더 초안의 제시
  그런데 1946년 2월 1일에 마쓰모토 안이 마이니치 신문에 의하여 공개되었고, 총사령부도 이를 알게 되었다. 이를 안 맥아더는 그러한 보수적 감상의 정부에게는 민주적 헌법의 제정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하고 마쓰모토 안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방침을 굳혀 총사령부에서 독자적인 헌법초안을 작성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맥아더는 총사령부에 대하여 세가지 원칙[각주:6]과 이른바 SWNCC-228[각주:7]을 지침으로 하여 극비리에 작업을 지시하였다. 지시를 받은 총사령부는 곧 헌법초안을 완성하였고, 2월 13일에 일본정부에게 이를 전달하였다.

  헌법초안이 이례적으로 빠르게 작성된 것도 놀랍지만, 당시의 정부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혁명적인 내용은 대단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총사령부의 강한 의향과 국제적·국내적 여러 사정을 고려한 뒤 결국 초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3) 제국의회의 심의·공포·시행
  정부는 이 초안을 기본으로 작업을 진행하여 3월 6일에 「헌법개정초안요강」으로 대중에 공표하였다. 그리고 그 초안은 중의원 총선거(4월 10일) 뒤에 열린 제90제국의회(6월 20일)에서 메이지 헌법 73조의 개정절차에 따라 상정되었다. 중의원 및 귀족원은 그 초안을 수정가결하였고, 10월 29일에 추밀원에서 가결된 초안은 천황의 재가를 거쳐 1946년(쇼와 21년) 11월 3일 「일본국헌법」으로 공포되어 다음 해 5월 3일[각주:8]에 시행되었다.


2. 일본국헌법 제정의 법리(法理)

 (1) 개설(槪說)

  일본국헌법은 포츠담 선언의 수락을 바탕으로 점령통치하에서 총사령부가 원안을 작성하고, 일본 정부는 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뒤에 메이지 헌법의 개정절차를 따라 시행되었다. 그러나 메이지 헌법의 군주주권원리에서 일본국헌법의 국민주권원리로의 이행은 헌법의 근본적 변혁을 가져오는 것으로서, 그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설명이 제시되고 있다.

 (2) 일본국헌법 제정의 법리

  1) 헌법개정무한계설
  헌법개정에는 내용상의 한계는 없다고 하는 견해에 의하면 "일본국헌법은 메이지 헌법 73조의 개정절차에 따라 천황의 칙명으로 개정안이 발의되어 제국의회의 의결 및 천황의 재가를 거쳐 공포된 형식으로 성립된 것이다. 즉 일본국헌법은 메이지 헌법의 개정절차에 의하여 성립한 것이므로 흠정헌법(欽定憲法)이며, 법적 연통성(連通性)을 가진다."는 것이다.[각주:9]

  2) 헌법개정한계설
  헌법개정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하는 견해에서는 미야자와 도시요시(宮沢俊義)의 「8월 혁명설」이 지배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다(통설). 그 근거로 ① 일본은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였으며, "일본의 최종(最終)의 정치형태"는 "일본국민의 자유에서 표명된 의사에 따라 결정"된 것이라는 전제에서 일본국헌법은 메이지 헌법 73조의 개정절차에 의하여 메이지 헌법의 근본 바탕인 신권주권(神權主權, 천황주권)을 변경한 것, ② 더욱이 천황주권을 국민주권으로 전환한 것은 일본 정부도 또한 천황의 의사를 가지고 있었더라도 합법적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라는 등에서 그 변혁은 헌법적으로는 「혁명」이라고 한다.[각주:10]


참고문헌
  • 우에다 마사카즈(上田正一), 『일본국헌법』(日本国憲法), 사가노쇼인(嵯峨野書院), 2008년.
  1. 「헌정<FONT color=#8e8e8e>(憲政)</FONT>의 상도<FONT color=#8e8e8e>(常道)</FONT>」란 정부에 대하여 중의원의 다수당이 지배권을 갖는 정당내각제를 말한다. [본문으로]
  2. 「5·15 사건」이란 해군청년장교 일부가 수상관저를 급습하여 당시 호헌운동의 우두머리로 불리던 이누카이<FONT color=#8e8e8e>(犬養, 당시 78세) </FONT>총리를 살해하였다. 전전<FONT color=#8e8e8e>(戰前)</FONT>의 정당내각시대에 치명상을 입힌 사건으로, 국가를 전쟁의 늪에 깊이 빠뜨리는 기로로 몰고간 결정적인 요인이다. [본문으로]
  3. 「2·26 사건」이란 황도파<FONT color=#8e8e8e>(皇道派)</FONT> 청년장교가 1500여 명의 부대를 이끌고 쇼와 유신<FONT color=#8e8e8e>(昭和維新)</FONT>의 단행·존황토간<FONT color=#8e8e8e>(尊皇討奸 : 천황을 받들고 간신을 토벌한다)</FONT> 등의 구호로 반란을 일으켜 정부 요인을 살해하고 나가타초<FONT color=#8e8e8e>(永田町)</FONT> 일대를 점거한 사건이다. 이후 천황의 토벌명령과 함께 계엄령이 내려졌고, 진압되었다. [본문으로]
  4. 「간접통치」란 연합국 최고사령부가 그 권한을 행사하는 경우 원칙적으로는 일본정부를 통하여 행사하고, 때로는 직접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본문으로]
  5. 「대일평화조약」이란 일본과 49개 연합국이 1951년 9월 8일에 샌프란시스코의 오페라하우스에서 체결한 평화조약으로, 소련과 인도는 불참하였다. [본문으로]
  6. ① 천황제를 개혁하는 것, ② 전쟁의 방기<FONT color=#8e8e8e>(放棄)</FONT> 및 군비의 불보지<FONT color=#8e8e8e>(不保持)</FONT>, 교전권을 부인하는 것, 그리고 ③ 봉건제를 폐지하는 세가지 원칙을 말한다. [본문으로]
  7. SWNCC는 State-War-Navy Coordinating Committee<FONT color=#8e8e8e>(국무-육군-해군 삼성 조정위원회)</FONT>의 약칭으로, SWNCC-228은 삼성 조정위원회 문서 228호 「일본 통치제도의 개혁」을 말한다. [본문으로]
  8. 「국민의 축일에 관한 법률」<FONT color=#8e8e8e>(国民の祝日に関する法律)</FONT> 제2조는 이 날을 「헌법기념일」로 정하고 있다. [본문으로]
  9. 사사키 소이치<FONT color=#8e8e8e>(佐々木惣一)</FONT>, 『일본국헌법론』<FONT color=#8e8e8e>(日本国憲法論)</FONT>, 유히카쿠, 1952년. [본문으로]
  10. 미야자와 도시요시, 『일본국헌법 <FONT color=#8e8e8e>(코멘타르 별책부록)</FONT>』, 315쪽, 닛폰효론샤, 1955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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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日本帝國憲法
메이지 22년(1889년) 2월 11일 공포
메이지 23년(1890년) 11월 29일 시행


고문(告文)

천황 짐(朕)은 삼가 황조황종(皇祖皇宗)의 신령께 고하노니, 천황 짐은 천양무궁(天壤無窮:하늘과 땅처럼 무궁한)의 광모(宏謨:큰 뜻)에 따라 유신(惟神:신령)의 보조(寶祚:보위)를 승계하고, 구도(舊圖:옛 뜻)를 보지(保持)하여 감히 실추(失墜)시키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살피건대 세국(世局:시국)의 진운(進運)에 응하고 인문의 발달에 따라, 가로되 황조황종의 유훈(遺訓)을 명징(明徵)하여 전헌(典憲)을 성립하고 조장(條章)을 소시(昭示:선포)하여, 안으로는 자손이 솔유(率由:따름)할 바로 하고 밖으로는 신민익찬(臣民翼贊)의 길을 넓히고, 영원히 준행(遵行:그대로 따름)하게 하여 더욱 국가의 비기(丕基:왕업)을 공고히 하여 팔주(八洲:일본) 민생의 경복(慶福)을 증진해야 할 것이므로 이에 황실전범(皇室典範) 및 헌법을 제정합니다. 살피건대 이는 황조황종께서 후예(後裔)에게 남기신 통치의 홍범(洪範)을 소술(紹述:이음)하는 것에 따라 짐이 몸소 체득하여 거행하는 것은 황조황종 및 우리 황고(皇考:선대 임금)의 위령(威靈)에 의자(倚藉:의지)하는 것에 그 연유를 두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천황 짐은 우러러 황조황종 및 황고의 신우(神祐:도움)를 빌고 함께 짐이 현재와 장래에 신민을 솔선하고 또한 헌장(憲章)을 이행(履行)하여 어그러짐이 없을 것을 맹세합니다. 원컨대 신령은 이를 살피소서.


헌법발포칙어(憲法發布勅語)

짐은 국가의 융창(隆昌)과 신민(臣民)의 경복(慶福)을 중심의 흔영(欣榮)으로 삼으며, 짐이 조종(祖宗)에게 받은 대권(大權)에 의해 현재와 장래의 신민에 대하여 이 불마(不磨)의 대전(大典)을 선포(宣布)한다.

살피건대 우리 조(祖)와 종(宗)께서는 신민(臣民)의 조선(祖先)의 협력(協力)과 보익(輔翼:보좌)에 의해 우리 제국을 조조(肇造:처음 만듦)하여 무궁히 드리웠다. 우리 신성한 조종의 위덕(威德)과 함께 신민이 충실히 용무(勇武)하여 나라를 사랑하고 순공(殉公)하였으므로 광휘(光輝)로운 국사(國史)의 성적(成跡)을 남긴 것이다. 짐은 우리 신민이 곧 조종의 충량(忠良)한 신민의 자손임을 회상(囘想)하고, 그 짐의 뜻을 봉체(奉體)하고, 짐의 일을 장순(奬順:따라 수행함)하고, 더불어 화충협동(和衷協同:마음을 합하여 협력함)하여 더욱 우리 제국의 광영(光榮)을 중외(中外)에 선양(宣揚)하고 조종의 유업을 영구히 공고하게 하려는 희망을 함께 하여 이 부담을 나누기를 마다하지 않을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상유(上諭)

짐은 조종(祖宗)의 유열(遺烈)을 이어받아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제위(帝位)에 올라, 짐이 친애하는 바의 신민이 곧 짐의 조종께서 혜무자양(惠撫慈養:사랑해 어루만지고, 자애롭게 기름)하신 바의 신민임을 헤아려, 그 강복(康福)을 증진하고 그 의덕(懿德:아름다운 덕)과 양능(良能)을 발달시키도록 하고, 또한 그 익찬(翼贊)에 의하여 함께 더불어 국가의 진운(進運)을 부지(扶持:도와 지탱하다)할 것을 바라며, 메이지(明治) 14년 10월 12일의 조명(詔命)을 이천(履踐:따름)하여 이에 대헌(大憲)을 제정하고 짐이 솔유(率由)하는 바를 밝히고, 짐이 후사(後嗣) 및 신민(臣民)과 신민의 자손되는 자로 하여금 영원히 순행(循行)하는 바를 알게 한다.

국가통치의 대권은 짐이 이를 조종에게서 이어받아 이를 자손에게 전하는 바이다. 짐과 짐의 자손은 장래 이 헌법의 조장에 따라 이를 행하는 것을 그르침이 없을 것이다.

짐은 우리 신민의 권리 및 재산의 안전을 귀중(貴重)하고 또한 이를 보호하며 이 헌법 및 법률의 범위 내에서 그 향유(享有)를 완전하게 할 것을 선언한다.

제국의회는 메이지 23년에 이를 소집하고, 의회 개회의 때를 이에 따라 헌법이 유효하게 하는 때로 한다.

장래 만일 이 헌법의 어떠한 조장(條章)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한 시의(時宜:마땅한 때)가 이르면 짐과 짐의 계통(繼統)의 자손은 발의(發議)의 권(權)을 가지며 이를 의회에 부치며, 의회는 이 헌법에서 정하는 요건에 의하여 의결하는 외에는 짐과 짐의 자손 및 신민이 엄하게 이의 분경(紛更:어지러이 고치다)을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짐과 재정(在廷)의 대신은 짐을 위하여 이 헌법을 시행하는 임무를 가지며, 짐의 현재 및 장래의 신민은 이 헌법에 대하여 영원히 순종의 의무를 질 것이다.

어명어새(御名御璽)

메이지(明治) 22년 2월 11일

내 각 총 리 대 신  백작 구로다 기요타카(黒田清隆)
추 밀 원   의 장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외  무   대  신  백작 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
해  군   대  신  백작 사이고 주도(西鄉從道)
농 상 무  대  신  백작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
사  법   대  신  백작 야마다 아키요시(山田顯義)
대장대신 겸 내무대신  백작 마쓰카타 마사요시(松方正義)
육  군   대  신  백작 오야마 이와오(大山巖)
문  부   대  신  자작 모리 아리노리(森有禮)
체  신   대  신  자작 에노모토 다케아키(榎本武揚)


대일본제국헌법

제1장 천황(天皇)

제1조
 대일본제국(大日本帝國)은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천황(天皇)이 이를 통치한다.

제2조
 황위(皇位)는 황실전범(皇室典範)이 정하는 바에 따라 황남자손(皇男子孫)이 이를 계승한다.

제3조
 천황은 신성하여 범할 수 없다.

제4조
 천황은 국가의 원수로서 통치권을 총람(總攬)하고 이 헌법의 조규(條規)에 따라 이를 행한다.

제5조
 천황은 제국의회(帝國議會)의 협찬(協贊)을 거쳐 입법권을 행한다.

제6조
 천황은 법률을 재가(裁可)하며 그 공포 및 집행을 명한다.

제7조
 천황은 제국의회를 소집하며 그 개회와 폐회, 정회 및 중의원(衆議院)의 해산을 명한다.

제8조
 천황은 공공의 안전을 보지(保持)하거나 그 재액(災厄)을 피하기 위하여 긴급한 필요에 따라 제국의회의 폐회의 경우에 법률을 대신하는 칙령(勅令)을 발한다.
 이 칙령은 다음 회기에 제국의회에 제출하여야 하며, 만일 의회에서 승락(承諾)하지 않는 때에는 정부는 장래에 향하여 그 효력을 잃음을 공포하여야 한다.

제9조
 천황은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安寧秩序)를 보지(保持)하고 신민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명령(命令)을 발하거나 또는 발하도록 한다. 단 명령으로 법률을 변경할 수는 없다.

제10조
 천황은 행정각부의 관제 및 문무관의 봉급을 정하고 또한 문무관을 임면(任免)한다. 단 이 헌법 또는 다른 법률에 특례를 둔 경우에는 각각 그 조항에 따른다.

제11조
 천황은 육해군을 통수한다.

제12조
 천황은 육해군의 편제 및 상비병액(常備兵額)을 정한다.

제13조
 천황은 전쟁을 선포하고 강화를 하며, 제반의 조약을 체결한다.

제14조
 천황은 계엄(戒嚴)을 선포한다.
 계엄의 요건 및 효력은 법률에 따라 이를 정한다.

제15조
 천황은 작위(爵位)와 훈장(勳章) 기타의 영전(榮典)을 수여한다.

제16조
 천황은 대사(大赦)와 특사(特赦), 감형(減刑) 및 복권(復權)을 명한다.

제17조
 섭정(攝政)을 두는 것은 황실전범이 정하는 바에 따른다.
 섭정은 천황의 이름으로 대권을 행한다.


제2장 신민권리의무(臣民權利義務)

제18조
 일본신민의 요건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른다.

제19조
 일본신민은 법률과 명령이 정하는 바의 자격에 따라 균등하게 문무관에 임명되며 또한 기타의 공무(公務)에 취임할 수 있다.

제20조
 일본신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좇아 병역의 의무를 진다.

제21조
 일본신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좇아 납세의 의무를 진다.

제22조
 일본신민은 법률의 범위 내에서 거주와 이전의 자유를 가진다.

제23조
 일본신민은 법률에 따르지 않고서 체포(逮捕)나 감금(監禁), 심문(審問) 및 처벌(處罰)을 받지 아니한다.

제24조
 일본신민은 법률이 정하는 재판관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제25조
 일본신민은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그 허락 없이 주소(住所)의 침입을 받거나 또는 수색을 받지 아니한다.

제26조
 일본신민은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신서(信書)의 비밀을 침해당하지 아니한다.

제27조
 일본신민은 그 소유권을 침해당하지 아니한다.
 공익을 위하여 필요한 처분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른다.

제28조
 일본신민은 안녕질서를 방해하지 아니하고 신민으로서의 의무에 위배되는 한에서 신교(信教)의 자유를 가진다.

제29조
 일본신민은 법률의 범위 안에서 언론과 저작, 인행(印行) 및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제30조
 일본국민은 상당한 경례(敬禮)를 지켜 따로 정하는 바의 규정(規程)에 좇아 청원을 할 수 있다.

제32조
 본장에 있는 조규는 전시(戰時) 또는 국가사변(國家事變)의 경우에 따라 천황대권이 시행을 방해하지 아니한다.

제32조
 본장에 있는 조규는 육해군의 법령 또는 기율(紀律)에 저촉되지 않는 한도에서 군인에게 준용한다.


제3장 제국의회(帝國議會)

제33조
 제국의회는 귀족원(貴族院)과 중의원(衆議院)의 양원으로 이를 성립시킨다.

제34조
 귀족원은 귀족원령(貴族院令)이 정하는 바에 따라 황족과 화족(華族) 및 칙임(勅任)된 의원으로 이를 조직한다.

제35조
 중의원은 선거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공선된 의원으로 이를 조직한다.

제36조
 누구라도 동시에 양 의원(議院)의 의원(議員)이 될 수 없다.

제37조
 무릇 법률은 제국의회의 협찬을 거칠 것을 요한다.

제38조
 양 의원은 정부가 제출한 법률안을 의결하고 또한 각각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다.

제39조
 양 의원의 한 쪽에서 부결된 법률안은 같은 회기 중에 다시 제출할 수 없다.

제40조
 양 의원은 법률 또는 기타의 사건에 대하여 각각 그 의견을 정부에 건의(建議)할 수 있다. 단 채납(採納)되지 못한 것은 같은 회기 중에 다시 건의할 수 없다.

제41조
 제국의회는 매년 그를 소집한다.

제42조
 제국의회는 3개월을 그 회기로 한다. 필요한 경우에는 칙령(勅令)으로 이를 연장할 수 있다.

제43조
 임시긴급(臨時緊急)의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상회(常會)의 외에 임시회(臨時會)를 소집할 수 있다.
 임시회의 회기를 정하는 것은 칙령에 의한다.

제44조
 제국의회의 개회 및 폐회와 회기의 연장 및 정회(停會)는 양원이 동시에 이를 행하여야 한다.
 중의원의 해산을 명받은 때에는 귀족원은 동시에 정회되어야 한다.

제45조
 중의원의 해산을 명받은 때에는 칙령으로 그 새로운 의원을 선거하게 하여 해산의 날로부터 5개월 이내에 이를 소집하여야 한다.

제46조
 양 의원은 각각 그 총 의원의 삼분의 일 이상 출석하지 않으면 의사(議事)를 열고 의결을 할 수 없다.

제47조
 양 의원의 의사(議事)는 과반수로 의결하며 가부동수인 때에는 의장이 결정하는 바에 따른다.

제48조
 양 의원의 회의는 공개한다. 단 정부의 요구 또는 그 원(院)의 의결에 따라 비밀회로 할 수 있다.

제49조
 양 의원은 각각 천황에게 상주할 수 있다.

제50조
 양 의원은 신민(臣民)이 정출(呈出)한 청원서를 받을 수 있다.

제51조
 양 의원은 이 헌법 및 의원법(議院法)이 정하는 이외에 내부의 정리(整理)에 필요한 제(諸) 규칙을 정할 수 있다.

제52조
 양 의원의 의원(議員)은 의원(議院)에 대하여 발언한 의견 및 표결에 대하여 원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 단 의원(議員) 스스로 그 언론(言論)을 연설이나 간행, 필기(筆記) 또는 기타 방법으로 공포하는 때에는 일반(一般)의 법률에 따라 처분된다.

제53조
 양 의원의 의원(議員)은 현행범죄 또는 내란이나 외환에 관한 죄를 제외하고 회기 중에 그 원(院)의 허락 없이 체포(逮捕)되지 아니한다.

제54조
 국무대신(國務大臣) 및 정부 위원(委員)은 언제라도 각 의원(議院)에 출석하고 또한 발언할 수 있다.


제4장 국무대신 및 추밀고문(樞密顧問)

제55조
 국무 각 대신은 천황을 보필(輔弼)하며 그 책임을 진다.
 무릇 법률이나 칙령(勅令) 기타 국무에 관한 조칙(詔勅)은 국무대신의 부서(副署)를 요한다.

제56조
 추밀고문(樞密顧問)은 추밀원 관제가 정하는 바에 따라 천황의 자순(諮詢)에 응하여 중요한 국무를 심의(審議)한다.


제5장 사법(司法)

제57조
 사법권은 천황의 이름으로 법률에 따라 재판소가 이를 행한다.
 재판소의 구성은 법률을 따라 이를 정한다.

제58조
 재판관은 법률이 정하는 자격을 갖춘 자에 따라 이를 임명한다.
 재판관은 형법의 선고(宣告) 또는 징계의 처분에 따르는 외에는 직(職)을 면하지 아니한다.
 징계의 조규(條規)는 법률이 정하는 바를 따른다.

제59조
 재판의 대심(對審)이나 판결은 그를 공개한다. 단 안녕질서(安寧秩序) 또는 풍속(風俗)을 해할 염려 있는 때에는 법률에 따라 또는 재판소의 결의를 따라 대심의 공개를 정지(停止)할 수 있다.

제60조
 특별재판소의 관할에 속하는 경우는 다른 법률이 정하는 바를 따른다.

제61조
 행정관청의 위법처분에 따라 권리를 상해(傷害)한 경우의 소송으로서 다른 법률에 따라 정하는 행정재판소의 재판에 속하는 경우에는 사법재판소가 그를 수리하지 못한다.


제6장 회계(會計)

제62조
 새로운 조세(租稅)를 매기거나 세율(稅率)을 변경하는 것은 법률에 따라 이를 정한다.
 단 보상(報償)에 속하는 행정상의 수수료(手數料) 및 기타의 수납금(收納金)은 전항에 따르지 아니한다.
 국채(國債)를 기채(起債)하거나 예산(豫算)에 정하는 것을 제외한 국고의 부담이 되는 계약을 하는 것은 제국의회의 협찬을 거쳐야 한다.

제63조
 현행의 조세는 새로 법률에 따라 이를 고치지 않는 한은 기존에 따라 이를 징수한다.

제64조
 국가의 세출(歲出)과 세입(歲入)은 매년 예산으로 제국의회의 협찬을 거쳐야 한다.
 예산의 관항(款項)을 초과하거나 또는 예산 외에 생긴 지출이 있을 때에는 후일(後日) 제국의회의 승락(承諾)을 구할 것을 요한다.

제65조
 예산은 먼저 중의원에 제출하여야 한다.

제66조
 황실경비(皇室經費)는 현재의 정액(定額)에 따라 매년 국고에서 이를 지출하며, 장래 증액(增額)을 요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제국의회의 협찬을 요하지 아니한다.

제67조
 헌법상의 대권에 기한 기정(既定)의 세출 및 법률의 결과에 따르거나 법률상 정부의 의무에 속하는 세출은 정부의 동의 없이는 제국의회가 이를 폐제(廢除)하거나 또는 삭감할 수 없다.

제68조
 특별한 수요(須要)로 인한 때에 정부는 미리 연한(年限)을 정하여 계속비(繼續費)로서 제국의회의 협찬을 구할 수 있다.

제69조
 피할 수 없는 예산의 부족을 보충하기 위하여 또는 예산 이외에 생긴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하여 예비비를 둘 수 있다.

제70조
 공공의 안전을 보지(保持)하기 위하여 긴급의 수용(需用)이 있는 경우에 이를 내외의 정형(情形)으로 인하여 정부가 제국의회를 소집할 수 없는 때에는 칙령에 따라 재정상 필요한 처분을 할 수 있다.
 전항의 경우에 따름은 다음의 회기에 제국의회에 제출하여 그 승락(承諾)을 구할 것을 요한다.

제71조
 제국의회에서 예산을 의정(議定)하지 않거나 또는 예산 성립에 이르지 못한 때에는 정부는 전년도의 예산을 시행할 수 있다.

제72조
 국가의 세출과 세입의 결산은 회계검사원(會計檢査院)이 이를 검사하고 확정하며, 정부는 그의 검사보고와 함께 이를 제국의회에 제출하여야 한다.
 회계검사원의 조직 및 직권(職權)은 법률에 따라 이를 정한다.


제7장 보칙(補則)

제73조
 장래 이 헌법의 조항을 개정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칙령(勅令)을 따라 의안(議案)을 제국의회에 부쳐야 한다.
 이 경우에 양 의원은 각각 그 총원(總員) 삼분의 이 이상 출석하지 않으면 의사를 열 수 없으며, 출석의원 삼분의 이 이상의 다수를 얻지 않으면 개정의 의결을 할 수 없다.

제74조
 황실전범(皇室典範)의 개정은 제국의회의 의결을 거침을 요하지 않는다.
 황실전범을 따라 이 헌법의 조규를 변경할 수 없다.

제75조
 헌법 및 황실전범은 섭정(攝政)을 두는 동안에 이를 변경할 수 없다.

제76조
 법률이나 규칙, 명령 또는 하등(何等)의 명칭(名稱)을 쓰는가에 얽매이지 않고 이 헌법의 모순(矛盾)되지 않는 현행의 법령은 모두 준유(遵由)의 효력을 가진다.
 세출상 정부의 의무에 관한 현재의 계약 또는 명령은 모두 제67조의 례(例)에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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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헝
    2011.10.18 00:36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참고할 일이 있었는데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2. 상선약수
    2015.09.17 10:11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자료로 잘 보았습니다.혹시 파일로 받을 수 없는지요

    1. Re: Favicon of http://www.7t7l.pe.kr BlogIcon 천어
      2015.10.02 12:48 신고 삭제 주소

      이메일 주소를 확인할 수가 없네요...


  3. 2015.09.17 10:13 삭제 겹댓글 주소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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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가 되더니 민주적인 견해는 안나오고, 날이 갈수록 파시즘적인 견해만 세상에 난무한다. 조선일보는 하물며, 이전에도 몇 차례 지적했지만 그것을 까는 자들도 더욱 파시즘적이 되어간다. 이래서야 조중동이 조중동이 하는 인간이나 조중동이나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미리견 소수입 반대 집회도 그렇다. 매냥 평화적 평화적 우기더니 결국은 법적 형사처벌의 논의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면서 집회의 자유 운운하지만, 무슨 평화적 시위의 바탕에 어떠한 검증도 거치지 않았고, 어떤 민주적인 절차도 거치는 바가 없이 집회부터 열어놓는 것이 무슨 민주국가 공화국가냐. 가장 좋은 제도인 선거를 물말아먹은 작자들이 무슨 가장 이상한 시위부터 하는 것인가(물론 집회와 시위는 다르다). 평화적인 집회가 무슨 동아일보 앞에 있는 광고판에다 재산권을 홀라당 말아먹게 만드는 황당한 짓거리를 하나. 해가 지면 옥외집회나 시위가 금지되지만, 질서유지인을 두면 얼마든지 허용될 수 있다.

집회의 자유는 민주주의질서의 필수불가결의 구성요소이고, 민주적 공동체의 여론을 형성하는 필수적 기능요소이다. 그래도 이건 아니잖는가. 집회의 자유와 다른 법익이 충돌할 때에 두 법익을 잘 생각해서 좋은 쪽으로 이끌어 가야지, 검토만 하면 무슨 집회의 자유 운운하면서 온갖가지 생각할 요소는 제치고 엿먹어라 하는 꼴이 한겨레라는 작자들이랑 조중동이라는 작자들이랑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난 황색저널 문화일보를 본다. 강한남자인가 하는 그거는 재미가 없긴 하지만.

그리고 우리 학교에서 수업하는 모 교수가 직접민주제를 주장하는데, 이 나라가 직접민주제를 해야 이 백성들 속이 풀릴 모양이다. 그러면 난 더 이상 이 나라에 있을 자신이 없다..........

덧붙여 나한테 미국소수입 어쩌고 하면서 익명으로 문자보냈던 인간 걸리면 때찌함-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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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ex.tistory.com BlogIcon Excretion
    2008.05.05 12:04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그래서 나는 비비씨뉴스를 본다.

  2. Favicon of http://anafilaxis.tistory.com BlogIcon Paradies
    2008.05.05 12:58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무식이 죄.

  3. 김꽃님
    2008.05.05 15:01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that they are endowed with certain unalienable rights; that among these are life,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that, to secure these rights, governments are instituted among men, deriving their just powers from the consent of the governed; that whenever any form of government becomes destructive of these ends, it is the right of the people to alter or to abolish it, and to institute new government, laying its foundation on such principles, and organizing its powers in such form, as to them shall seem most likely to effect their safety and happiness.

    .. 아 경우가 다른가효리?
    어쨌든 소싸움 틈에 물길 내고 의보 민영화 ㄱㄱ 가 더 무서움 'ㅅ'

    1. Re: Favicon of http://www.7t7l.pe.kr BlogIcon 천어
      2008.05.05 16:49 신고 삭제 주소

      윗 양반 말씀대로 무식이 죄이라 양이들 글이 뭔소리인지 당최 모르겠소............ 청도에 소싸움이 유명하지요.

  4. 무중력고기
    2008.05.05 17:46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시작할 땐 평화시위로 시작하지만 무리 가운데 사복경찰이 껴서 걔가 폭력시위로 바꾼다던데... 같이 평화시위하는 척하면서 경찰한테 도발하면 경찰은 옳타꾸나~ 무력진압, 시위하는 사람들도 열받아서 폭력시위..

  5. Favicon of http://zellobasecamp.tistory.com BlogIcon zello
    2008.05.12 00:57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직접 민주제 하면.... 진짜 이나라 떠나야 할지도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lighone BlogIcon 아가새
    2008.05.30 18:56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파시즘끼리 대결하는 모양새가 볼만합니다. 어느 쪽의 '편'이 아니라면, 살아남을 수 없게 여론이 형성되어있어요. 가령 양쪽 다 잘못했다고 말하면 금세 회색분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죠.

    그리고 대의제 형식으로는 이제 국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한계가 온 것 같아요. 그러니 직접민주제가 약간 변형되어서 지금 간접민주제 형식에 어느정도 가미되어야할 필요성은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에 대한 논의는 엄연히 별개로 이루어져야하는거죠. 제가 기가막힌건 엉뚱하게 국민이 한다고 해서 무력시위가 직접민주제의 발현이라고 주장한다는 겁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순 없습니다. 그런데 이미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것 같아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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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고사를 앞두고 넘치는 공부량에 죽을 지경입니다. 특히 형법 이론은 아무리봐도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고, 헌법은 아예 손을 안댔고, 개론은 뭔 숙제가 그리많은지 죽겠네죽겠어.

# 오랜 결심을 접고, 드디어 커피믹스에서 인스턴트커피로 전환, 이예. 브라운 각설탕도 사고, 룰루.

# 순대국밥에 밥마는데 밥그릇이 너무 뜨거워서 투척속도조절에실패해 순대국물 약 50ml가량이 공중으로 분산되어 다리로 투척되는 바람에 경미한 화상을 입고 약을 발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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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reskaz BlogIcon reskaz
    2007.04.24 19:11 신고 삭제 겹댓글 주소

    첫 중간고사가 졸업할 때까지 가므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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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헌법의 탄생 - 10점
이영록 지음/서해문집

1948년 제정 이후 1987년 개헌까지 40여 년간 아홉 번이나 개정한 헌법은 누더기 신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방 이후의 격동과 혼란은 고스란히 헌법에 반영되어 있고, 헌법의 역사는 정치사와 맞물려 있다. 따라서 헌법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정치사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우리 헌법의 탄생>은 헌법을 잉태한 정치적 공간인 해방 정국을 조명한다. 이 책은 정치적 열정이 들끓던 건국의 역사, 제헌의 역사를 반추하면서, 대한민국과 그 헌법의 태생적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성찰한다.


대한민국 헌법제1조라는 영화까지 나온 마당에, 헌법이 얼마만큼의 느낌을 주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만, 한가지 분명한건 대한민국헌법은 재미있는 존재이고, 권위적인 존재이며, 제1법으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헌법재판소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된 것은 행정수도판결과 노간지무현 탄핵재판을 기점으로가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그 전에는 헌법재판소에 대해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게 사실이고. 대법원은 법으로 판결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헌법을 가지고 법을 판결하지요. 정확한 지칭은 아닙니다, 물론. 법만 판결하는게 아니기도 하고, 법으로만 판결하는게 아니기도 하니까. 하여간 헌법에 관해서 이제 개헌론까지 종종 등장하고 있는데, 헌법은 과연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지금의 헌법은, 88년도에 제정된 10차개정헌법(맞나몰라 가물가물)이지만, 기본 골자. 대통령제라거나 이런 부분은 결국 제헌헌법에서 규정된 내용들이니까요. 건국헌법의 아버지라 불리는 현민 유진오선생이 쎄련된 필체루다가 우리 헌법을 멋지게 만든 이야기라던지(물론 저런표현은 책에 없습니다), 여러가지 논의가 있었던 일들을 그 사료도 없는 제헌시대 기록을 긁고긁고긁어서 정리해 둔다는게 참으로 멋진 책이기도 합니다.

평점은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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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우리 헌법 이야기 - 6점
한상범 지음/삼인

이 책은 지난 1997년 발간되었다가 절판된 『헌법이야기』를 그 동안 축적된 판례와 제정·개정법령 및 정치사회 흐름의 변화를 반영하여 재출간한 것으로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암호 같은 법조문과 판결문 뒤에 숨은 뜻을 형식적으로 해결하거나 에둘러 얼버무리지 않고, 바로 법이 제정된 애초의 의도와 역사적 배경, 그리고 핵심으로 육박하는 그의 글은 읽는 이의 속을 시원하게 한다.


누가 평하기를 "생긴건 소설책, 내용은 헌법학원론"이라는 평을 했는데, 참으로 명평이라 생각한다. 내가 이 책을 처음 들었던 것이 아마도 금년 1월 11일 즈음해서 였을텐데, 그 때 한가로이 보다가 책을 그만 덮어버렸다. 금년으로 고희를 맞으신, 한상범 교수이신데도 글을 읽으면 고희는 커녕 젊음과 열정이 느껴지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종심(從心)인가보다.

민주주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임다. 그러나 이것은 본래 우리의 것이 아니라 팔일오 해방과 함께 외부로부터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 국민이 그동안 우리 국민이 민주정치를 해보려고 여러가지로 노력을 해 왔으나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이 약해 값 비싼 시행착오만을 되풀이 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제도는 어렵고 정교한 정치 제도이기 때문에, 조건이 성숙되지 않으면 제대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입니다.

- 전두환 취임사 中

슬픈 우리의 역사의 일부분으로, 법이 권력자의 도구로 이용되었던 그 시절에 민주주의에 여러가지 수식어를 붙이고, "우리의 민주주의"라거나 "한국식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며 독재를 정당화하려 했던 그 권력자들은, 국민들에게 법은 항상 어려운 것이며, 민주주의는 어렵고 복잡한 것이라며 국민들이 그 사실을 모르도록 눈과 귀를 막으려 했지만, 이제와서 눈과 귀에 걸려있던 압제가 벗겨지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내 손으로 만나게 되었지만, 아직도 눈과 귀를 막으려고 노력하는 일부 집단들에게 법이란 것은 여전히 어려워야 하는 것이고, 힘든 것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에 어떠한 수식어도 없이, 단순히 "민주주의"라는 아름다운 용어 하나만으로도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숨김없이 내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한사람 한사람이 느끼고 깨닫게 된다면, 참 기쁜 일이겠지.

두서없는 서평이지만, 다시 책을 하나하나 살펴볼 때 느낀 점은, 생긴건 소설책 내용은 헌법학원론이지만, 문체와 풀어나가는 내용은 헌법학원론에서 머무르지 않고 우리나라 헌정사와 함께 한국 현대사의 큰 맥을 짚어나갈 수 있다는 점과, 민주주의의 의미와 함께 우리가 살고있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한 번 느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이 웨 하드커버(양장본)가 아니라 소프트커버인가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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