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및국가에관한법률(国旗及び国歌に関する法律)
헤이세이(平成) 11년(1999년) 8월 13일 법률 제127호


(국기)
제1조 ① 국기(国旗)는 일장기(日章旗)로 한다.
② 일장기의 제식(制式)은 별기(別記) 제1과 같도록 한다.

(국가)
제2조 ① 국가는 기미가요(君が代)로 한다.
② 기미가요의 가사(歌詞) 및 악곡(楽曲)은 별기 제2와 같도록 한다.


부칙

(시행기일)
1 이 법률은 공포하는 날부터 시행한다.

(상선규칙의 폐지)
2 상선규칙(商船規則, 메이지 3년 태정관 포고 제57호)은 폐지한다.

(일장기의 제식의 특례)
3 일장기의 제식에 대하여는 당분간 별기 제1의 규정에 불구하고 촌법(寸法)의 비율에 대하여 세로[縱]를 가로[橫]의 10분의 7로 하고, 또한 일장(日章)의 중심의 위치에 대하여는 기의 중심에서 깃대측에 가로의 길이의 100분의 1이 떨어진 위치로 할 수 있다.


별기 제1 (제1조 관계)

 일장기의 제식

 


 1. 촌법의 비율 및 일장의 위치
  세로 가로의 3분의 2
  일장
   직경 가로의 5분의 3
   중심 기의 중심

 2. 채색
  바탕 백색(白色)
  일장 홍색(紅色)


별기 제2 (제2조 관계)

 기미가요의 가사 및 악곡

 1. 가사
  君が代は    (키미가―요와 / 천황의 대가)
  千代に八千代に (치요니――야치요니 / 천대로 팔천대로)
  さざれ石の   (사자레이시노 / 잔돌이)
  いわおとなりて (이와오토나리테 / 바위가 되어서)
  こけのむすまで (코케노무―스―마――데 / 이끼가 끼기까지)

 2. 악곡
  



일장기를 국기로, 기미가요를 국가로 정하는 「국기및국가에관한법률」이다.

일본국헌법뿐만 아니라, 전전(戰前)의 대일본제국헌법에서도 국기나 국가에 관한 규정은 없었다. 또한 국기나 국가를 규정한 법률도 존재하지 않았으나, 대일본제국헌법 시대에는 히노마루(日の丸)의 경우 본 법률로 폐지된 상선규칙이나 다른 포고에 따라 사실상 국기로, 기미가요의 경우 주로 문부성(文部省)의 고시나 문부성령에 따라 사실상의 국가로 취급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 군정(軍政)시에 잠시 히노마루의 게양이나 기미가요의 제창이 금지되었으나, 이후에 관공서에서의 행사 등에서 히노마루가 사실상 국기로서 게양되었고, 이후 기업이나 은행에서도 이러한 관행을 따르게 되었다. 기미가요 또한 관공서의 행사 등에서 국가로서 불리면서 함께 관행으로 굳어져 갔다.

일반 국민 사이에서도 일정 부분 국기로서 받아들여지던 히노마루와 기미가요가 문제로 부상(浮上)한 계기는 교육현장에서의 히노마루 게양과 기미가요 제창을 일부 교사나 학생이 거부한 것이다. 일반 국민에게 널리 퍼지면서도, 천황의 상징으로 전전(戰前)에 군국주의의 상징으로도 사용되던 히노마루와 기미가요가 이후 국민주권시대에 들어서면서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여진데에 대한 반발을 가진 일부에서 반대하는 것이다.

전후에 문부성의 학습지도요령 등에서 히노마루를 국기로, 기미가요를 국가로 칭하면서 게양 및 제창을 권고하다가, 후일에는 거의 의무화함으로써 일선 교육현장의 반발을 불러왔고, 특히 기미가요의 경우 일선 교육현장에서 제창을 거부하는 사태가 빈발했다.

이에 따라 국기 및 국가에 대한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고, 1999년 6월 11일에 내각에서 「국기및국가에관한법률안」을 제출하면서 심의가 시작되었다. 7월 21일에 중의원 내각위원회에서 가와무라 다카시(河村たかし) 외 4명으로부터 국가에 대한 부분을 제외하고, 제목을 국기법으로 하는 수정안이 제출되었으나 기립표결에서 부결되었고, 이어 간 나오토(菅直人) 외 2명으로부터 수정안이 본회의에 제출되었다.

다음날(7월 22일)에 열린 중의원 본회의에서 간 나오토 등이 제출한 수정안이 기립표결에서 부결되었고, 원안을 기명투표를 통해 표결한 결과 총 489인 가운데 찬성 403표, 반대 86표로 가결되었다.

8월 9일에는 에다 사쓰키(江田五月)가 제출한 수정안이 참의원 국기및국가에관한특별위원회에 제출되었으나 거수표결에서 부결되었고, 원안이 가결되었다. 이어 본회의에서 미네자키 나오키(峰崎直樹) 외 1명으로부터 수정안이 제출되었으나, 버튼식 투표에서 총 239인 가운데 찬성 54표, 반대 185표로 부결되었다. 원안은 총 237인 가운데 찬성 166표, 반대 71표로 가결되면서 이후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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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헤이세이 5년) 3월 23일
건조물침입·기물손괴·위력업무방해피고사건 (오키나와 국체 히노마루 소각 사건 제1심)[각주:1]



주문

 피고인을 징역 1년에 처한다.
 이 재판 확정의 날로부터 3년간 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소송비용 가운데 증인 네하라 마사아키(根原正明)에게 지급한 부분 가운데 제3회 및 제6회 공판분의 각 5분과 함께 그 나머지 증인에게 지급한 부분은 피고인의 부담으로 한다.



이유


 범행에 이른 경위

 제42회 국민체육대회 하·추계 대회(이하 「오키나와 국체」라고 한다.)는 쇼와 59년(1984년) 7월 4일, 재단법인 일본체육협회(이하 「일체협」이라고 한다.), 문부성 및 오키나와 현이 주최하여 쇼와 62년(1987년)에 오키나와 현에서 개최하도록 하여 그 가운데 소프트볼 경기는 요미탄촌(讀谷村), 온나촌(恩納村), 가데나정(嘉手納町) 및 차탄정(北谷町)의 4개 정촌(町村)에서 앞의 주최자 외에 각 경기의 회장지의 정촌도 함께 주최하여 재단법인 일본소프트볼협회(이하 「일소협」이라고 한다.)가 주관하여 실시하게 되었다. 요미탄손에서는 소년남자소프트볼경기회(이하 「본건 경기회」라고 한다.)를 개최하게 되었고, 이를 운영하기 위하여 쇼와 59년 7월 20일에 요미탄촌이 중심이 되어 제42회 국민체육대회 요미탄촌 실행위원회(이하 「요미탄촌 실행위원회」라고 한다.)를 설립하여 요미탄촌장 야마우치 도쿠신(山内徳信, 이하 「야마우치 촌장」이라고 한다.)이 그 회장이 되었다.

 오키나와 국체의 각 경기회의 개회식에서는 오키나와 국체의 주최자가 정한 실시요항(実施要項)과 이에 따라 준거하는 것으로 보는 국민체육대회 개최기준요항 등에 바탕하여, 오키나와현 실행위원회가 쇼와 61년 1월에 각 경기회의 개회식 등의 실시요항을 정하고, 그 가운데 개회식 등은 회장지 시정촌 실행위원회가 당해 경기단체와 협의 하에 실시하며, 개회식에서는 히노마루 기를 국기로서 게양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요미탄촌 실행위원회에서는 일소협 등과 협의하여 개회식 등의 실시요령을 정하고, 그 운영을 맡게 되었다.

 한편으로 일소협회장인 히로세 마사루(弘瀬勝, 이하 「히로세 회장」이라고 한다.)는 그 때까지 국체에서는 그 개회식 외에 각 경기회의 개시식에서도 히노마루 기를 국기로서 게양하는 것이 관행이 되었으므로, 오키나와 국체의 소프트볼 경기의 개회식에서도 히노마루 기를 국기로서 게양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으나, 쇼와 61년 7월경에 오키나와 국체의 리허설으로 열린 소프트볼 대회 후의 파티에서 히노마루 기 게양 등에 대하여 오키나와현민 사이에 반대가 있고, 특히 요미탄촌에서 반대가 강해 문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설명을 들었으므로, 야마우치 촌장에 대하여 본건 경기회의 개회식에서 히노마루 기의 게양 등이 관행대로 행할 수 있는지 타진하였다. 이에 대해 야마우치 촌장이 「여러가지로 어려운 문제도 있으나, 국체를 여는 이상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괜찮다고 생각합니다.」고 말하였으므로, 히로세 회장은 본건 경기회의 개회식에서도 히노마루 기의 게양 등을 관행대로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으나, 혹시 야마우치 회장에 대하여 그에 대하여 문제가 생긴 경우에는 연락을 바란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한편 야마우치 회장은 위 시점에서는 본건 경기회를 요미탄촌에서 개최하기 위하여 그 개시식에서 히노마루 기의 게양 등을 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였으나, 동년 12월에 요미탄촌의회에서 「히노마루 게양, 기미가요(君が代) 제창의 강요에 반대하는 요청결의」(日の丸掲揚、君が代斉唱の押しつけに反対する要請決議)가 채택되었고, 그 즈음 요미탄촌내에서 히노마루 기 게양이나 기미가요 제창의 강제에 반대하는 뜻의 서명이 촌민의 삼할에 가까운 8,000여 명으로부터 모이기도 하였고, 또한 쇼와 62년 3월에는 야마우치 촌장 자신이 학교의 졸업식, 입학식 등에서의 히노마루 기 게양이나 기미가요 제창의 강제는 유감이라는 뜻의 촌장으로서의 시정방침연설을 행하는 등이 진행되던 가운데, 이번 기회에 히노마루 기의 게양 등이 없이 본건 경기회의 개회식을 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앞의 의향을 일소협에 전하여 협의하여도 붇아들여지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직접 히로시 회장에게 전하는 등의 조치를 강구하지 않았다. 이처럼 판단을 망설인 채로 본건 경기회의 개최일이 다가오고, 야마우치 촌장은 드디어 일소협의 하부단체인 오키나와현 소프트볼협회의 이사장에게 히노마루 기의 게양 등이 없이 본건 경기회의 개회식을 행할 방침을 전달했다.

 본건 경기회는 쇼와 62년 10월 26일부터 29일까지의 일정으로 개최하게 되었으나, 급히 날아온 위 방침을 알게 된 히로세 회장은 새삼스레 상부 단체인 일체협의 의향에 반하여 히노마루 기의 게양 등이 없이 개시식을 행할 수는 없고, 급히 결론을 낼 필요가 있으므로 강경하게 시정의 번의를 촉구하고자 생각하고, 동월 22일에 야마우치 회장에 대하여 전화로 히노마루 기를 게양하지 않는다면 회장 변경도 있을 수 있다는 뜻을 전했다. 이에 요미탄촌 실행위원회에서 협의를 거듭하여, 익23일에는 기미가요의 제창은 없이, 히노마루 기는 게양한다고 결론을 내고, 히로세 회장도 이에 승낙하였다. 그리고 익24일에 요미탄촌사무소의 촌장실에서 매스컴이나 관계자에 대하여 히노마루 기를 게양하는 것으로 화합하였다는 것이 공표되었다.

 피고인은 전후 요미탄촌에서 나고 자라, 고향에서 슈퍼마켓을 경영하는 등으로 처자와 함께 거주하고 있는 자이나,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오키나와전에서 동촌에 있는 치비치리가마(チビチリガマ, 동굴)에서 일어난 주민의 집단자결에 대하여 조사를 진행하고 있던 가운데, 히노마루 기는 국민을 전쟁에 동원하는 것에 이용된 기로, 국기로 어울리지 않으며, 국기는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생각하여 오키나와 국체에 히노마루 기를 게양하는 것에 반대하였던 것이 히로세 회장으로부터의 강경한 요청의 결과 본건 경기회의 개시식에서 히노마루 기를 게양하게 된 것을 알자 히로세 회장에 의하여 히노마루 기의 게양이 강압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요미탄촌민이 이레가 되어 본건 경기회를 성공시키기 위하여 노력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동 촌민의 의사를 짓밟아 뭉개는 것이므로 히노마루 기의 게양을 방치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동월 25일에는 익일의 개시식에서 동료와 함께 히노마루 기 반대를 표현하는 플래카드를 거는 것과 함께 히노마루 기가 게양되면 단독으로 이를 끌어내리리라 생각하는데 이르렀다.


 범죄 사실(罪となるべき事実)[각주:2]

 피고인은 쇼와 62년 10월 26일, 오키나와현(번지 생략) 소재의 요미탄 평화의 숲 구장에서 본건 경기회의 개시식의 모습을 보고 있었던 바, 동 구장 외야 스탠드에 지어진 철근콘크리트조의 제기게양대 겸 스코어보드(이하 「본건 스코어보드」라고 한다.)의 제기게양대에 설치된 센터폴에 국기로서 히노마루 기가 게양된 것을 보고, 앞의 히노마루 기를 끌어내리는 것과 함께 그 재게양을 방해하기 위하여 태워버리자고 결의하고, 또한 위 행위에 의하여 본건 경기회의 업무를 방해하게 되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여, 동일 오전 9시 17분경 요미탄촌 촌장 겸 요미탄촌 실행위원회 회장 야마우치 도쿠신이 계원에게 스코어보드 조작실 등으로의 출입구 문을 잠그게 하는 등 지키게 한 본건 스코어보드의 남서측 벽면의 꽃블록을 타고 올라 그 옥상에 이유 없이 침입하여 센터폴에 달게 한 요미탄촌 소유의 로프를 미리 준비한 커터칼로 절단한 뒤에 동 폴에 국기로서 게양되어 있는 요미탄촌 실행위원회 소유의 히노마루 기 1매(가로 약1.3미터)를 끌어내려 이를 소지하고 있던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이를 위 구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인 뒤에 그 자리에 던져 버리고, 그 반 가량을 소실시켜 일체협, 문부성, 오키나와현 및 요미탄촌이 주최하고, 일소협이 주관하며, 요미탄촌 실행위원회가 운영하는 본건 경기회의 운영을 혼란케 하고, 그 경기의 개시를 약 15분간 지연시키는 등을 하며, 또한 타인 소유의 기물(器物)을 손괴(損壞)한 동시에 위력(威力)을 써서 본건 경기회의 업무를 방해한 것이다.


 증거목록(証拠の標目)
  <생략>


 변호인의 주장에 대한 판단(弁護人の主張に対する判断)

 제1 공소기각의 신청에 대하여

  1 공소권 남용의 주장에 대하여

 변호인은 「기물손괴죄에 대하여는 불과 3500엔의 히노마루 기를 소각한 것에 지나지 않고, 가령 범죄의 혐의가 인정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경미사건으로서 기소유예처분이 상당함에도, 굳이 소추한 본건 기소는 평등원칙에 위반하는 것이다. 또한 기물손괴의 방법·수단인 행위를 건조물침입죄로서, 그 영향·결과인 현상을 위력업무방해죄로서 각각 소추하고 있으나, 이들에 대하여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건조물침입죄는 외벽을, 더욱이 공연하게 오른 것 뿐이며, 그 법익침해의 정도는 적고, 위력업무방해도 방해된 업무의 내용, 정도가 막연하여 명확하할 수 없는 정도의 법익침해에 지나지 않는 점, 이들은 히노마루 소각을 기물손괴죄로 다루기 위하여 부수하여 기소한 것이 명확하므로 건조물침입죄 및 위력업무방해죄에 대한 기소도 평등원칙에 위반하는 것이다.」라고 하여 본건 공소 제기는 헌법 14조에 위반하여 공소권의 남용이므로 무효이며, 공소기각하여야 한다는 뜻을 주장한다.

 검토하자면 분명 검찰관의 재량권의 일탈이 공소제기를 무효라고 할 수 있는 경우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나, 현행 법제 하에서는 공소제기를 할지 말지 검찰관에게 광범한 재량권이 주어져 있는 것에 비추어 생각하면 공소제기가 무효가 되는 것은 공소제기 자체가 직무범죄를 구성하는 것과 같은 극한적인 경우에 한하여야 하는 점, 전기(前記) 인정의 사실 관계에 비추어 본건 공소제기가 무효가 될 정도로 극한적인 경우에 해당한다고는 할 수 없으므로 위 주장은 이유가 없다.

  2 소인(訴因) 불특정의 주장에 대하여

 변호인은 「기소장에 기재된 공소사실에서는 기물손괴죄의 대상인 기물에 관하여 「국기」라고 기재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 국기가 존재하는지 않는지, 또한 어떠한 기가 국기인가 법제화되지 않았고 확정하지 않는 이상 「국기」라고 하는 기재는 의미불명이다. 또한 위력업무방해죄의 대상인 업무에 대하여 경기회의 어떠한 업무를 방해한 것인지 명확히 되어있지 않다.」고 하여 본건 공소제기는 소인(訴因)이 불특정이므로 무효이며, 공소기각하여야 한다는 뜻을 주장한다.

 먼저 기물손괴죄의 소인(訴因)에 대하여 보면, 제1회 공판에서 검찰관은 「국기(國旗)란 히노마루 기이다.」라고 석명(釋明)하고 있던 점, 히노마루 기를 「국기」라고 기재하고 있는 것이 소인의 특정, 명시에 흠결을 가지는 지에 대하여 검토한다.

 국기라고 하는 용어는 법률 등에 의하여 국가를 상징하는 기(旗)로서 쓰여야 하는 것으로 정해진 기를 말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 경우에 한하지 않고 사실상 국민의 다수에 의하여 국가를 상징하는 기로서 인식되어 쓰이고 있는 기를 말하는 경우도 있다.

 현행 법제상 히노마루 기를 가지고 우리나라의 국기로 하는 뜻의 일반적인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변호인이 지적하는 대로다. 그러나 선박법 등에서는 일정한 선박에 국기를 게양하도록 하는 것 등이 정하여져 있고, 그 경우에 국기로서 쓰여야 하는 기에 대하여는 선박규칙(메이지 3년 1월 27일 태정관 포고 제57호)에 근거하여, 또는 당연한 전제로서 히노마루 기를 가리킨다고 해석된다. 이렇듯 히노마루 기는 국제관계에 있어서는 타국과 식별하기 위하여 법률 등에 의하여 국가로서 쓰여야 한다는 것이 정하여져 있다고 할 수 있으나, 다른 한편 국내관계에 있어서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쓰이는 경우의 국기에 대하여는 어떠한 법률도 존재하지 않으며, 국민 일반에 어떠한 행위도 의무지우지 아니한다. 그러나 현재 국민으로부터 히노마루 기 이외에 국기로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없고, 또한 다수의 국민이 히노마루 기를 국기로서 인식하고 쓰고 있으므로 검찰관이 공소사실에 있어서 기물손괴죄의 대상물로서 기재한 「국기」란 「히노마루 기」를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고, 소인의 특정, 명시가 흠결인 바는 없다.  (이하 위력업무방해죄의 소인 흠결에 대한 검토 생략)

 제2 구성요건에 관한 주장에 대하여

  1 위력업무방회죄의 성부(成否)에 대하여 (번역 중 생략)

  2 건조물침입죄의 성부(成否)에 대하여 (번역 중 생략)

 제3 위법성 조각(阻却)에 관한 주장에 대하여

  1 가벌적 위법성의 부존재에 대하여

 변호인은 「피고인이 손괴한 히노마루 기 및 로프는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무가치와 같은 물건으로, 또한 위력업무방해나 건조물침입에 대하여는 법익침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가 극히 경미하여 모두 가벌적 위법성이 없다.」는 뜻을 주장한다.

 먼저 기물손괴의 점에 대하여 검토하자면 동죄에 있어서 「물」(物)이란 재물(財物), 즉 보호가치 있는 물건을 말하나 본건의 객체인 히노마루 기 및 로프는 전기(前記) 인정대로 모두 그 본래의 효용에 좇아 현실적으로 사용되고 있던 것이므로 보호가치를 가지는 물건이며, 이들을 손괴한 행위는 기물손괴죄에 해당하여 실질적으로도 위법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위력업무방해 및 건조물침입의 점에 대하여도 각각의 범행 태양(態樣)이나 그 결과는 전기(前記) 인정대로이며, 법익침해의 정도가 극히 경미하다고는 할 수 없고, 그 주장은 전제를 잃어 부당하다. 위 각 주장은 모두 이유 없다.

  2 정당방위 등에 대하여

 변호인은 「히로세 회장에 의한 히노마루 기의 강제에 의하여 요미탄촌, 촌민, 경기회 개시식 참가자 및 피고인의 사상·양심의 자유, 동촌 및 촌민의 의사결정의 자유(지방자치)와 동촌, 촌민 및 피고인의 「히노마루가 없는 국체」를 행하자고 하는 표현의 자유가 부정하게 침해된 것이므로 이에 대하여 행해진 피고인의 기물파손행위는 정당방위 또는 자구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 위력업무방해행위 및 건조물침입행위는 긴급피난 또는 자구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뜻을 주장한다.

 그러나 전기(前記)와 같이 국내관계에 있어서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쓰이는 경우의 국기에 대하여는 어떠한 법률이 존재하지 아니하고, 국민 일반에 아무런 행위도 의무지우지 아니하는 히노마루 기를 이 의미에서의 국기로서 쓸 것인가 않을 것인가, 어떠한 곳에 게양할 것인가는 국민 각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맡겨져 있는 것이므로, 본건 경기회의 개시식에 있어서 히노마루 기를 국기로서 게양할 것인가 않을 것인가 또한 그 주최자들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여야 할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의사결정과정을 보면 전기(前記) 인정과 같이 오키나와 국체의 주최자들에 의하여 본건 경기회의 개시식에 대하여는 요미탄촌 실행위원회가 주관자인 일소협과 협의한 뒤 실시하는 것이라고 정하여져 있었던 바, 본건 경기회의 개시식이 가까워져 요미탄촌 실행위원회로서는 히노마루 기를 국기로서 게양하지 않는 방침인 것을 안 일소협의 히로세 회장이 상부단체인 일체협의 의향을 따라 히노마루 기를 국기로서 게양하지 않는다면 회장의 변경도 있을 수 있다고 하며 강경한 자세로 이를 행하도록 요청하고, 요미탄촌 실행위원회에서 협의를 거듭하여 본건 경기회의 개시식에 있어서 히노마루 기를 게양하는 것으로 되어 요미탄촌 실행위원회와 일소협의 협의가 정리된 것이다. 분명 위 협의가 정리되는 과정에서 히로세 회장의 발언에는 온당하지 않은 점도 있으나, 이는 요미탄촌 실행위원회가 적절한 시기에 방침을 확정하고, 필요에 응하여 일소협과의 협의에 미치지 못한 것이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으며, 전기(前記) 인정의 경위에서 본다면 이러한 발언이 있었으므로 요미탄촌 실행위원회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부당하게 빼앗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결국 주최자들의 의사결정에 근거하여 본건 경기회의 개시식에 있어서 히노마루 기가 국기로서 게양된 것이다. 따라서 위와 같은 경위를 거쳐 행하여진 히노마루 기의 게양이 부정한 침해라거나 현재의 위난에 해당한다고는 인정할 수 없고, 위 주장은 이유 없다.

  3 정당행위에 대하여

 변호인은 「기물손괴행위는 방위행위, 표현행위 및 저항행위이며 수단의 상당성, 법익의 균형성, 필요성 및 긴급성도 있으며, 또한 위력업무방해행위 및 건조물침입행위는 법익침해의 경미성,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상당성, 필요성 및 긴급성이 있어 모두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뜻을 주장한다.

 피고인이 히노마루 기는 국기로서 어울리지 않고, 국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소이(所以) 및 위 사상에 바탕하여 본건 범행에 이른 것은 전기(前記) 인정대로이나, 전게(前揭) 관계 각 증거에 따르면 요미탄촌민 가운데에는 피고인과 같은 사상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 인정되는 바이나, 민주주의사회에 있어서는 자기 주장의 실현은 언론에 의한 토론이나 설득 등의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행하여져야 하는 것이며, 가령 본건 경기회에 있어서 히노마루 기의 게양에 반대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주장의 실현을 위하여 전기(前記) 인정과 같은 피고인의 실력행사는 수단에 있어서 상당한 것이라고는 하기 어렵고, 이들이 정당행위라고는 할 수 없으므로 위 주장에는 이유 없다.


 법령의 적용 (번역 중 생략)


 양형의 이유

 본건은 오키나와 국체에서 소년남자 소프트볼 경기회의 개시식에서 히노마루 기를 게양한 것이 강제되었다고 생각한 피고인이 스코어보드의 옥상에 침입하여 센터폴에 달게 한 로프를 절단한 뒤 히노마루 기를 끌어내려 태워 버리는 등을 하여 본건 경기회의 업무를 방해한 것이라고 하는 사안이지만, 주최자인 일체협의 의향을 따fms 히로세 회장으로부터 경기회의 개시식에서의 히노마루 기를 게양하도록 강한 요청이 있었던 것, 최종적으로는 경기회의 운영을 맡은 요미탄촌 실행위원회 내에서도 상의하여 히노마루 기의 게양이 결정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자기의 신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는 것으로 실력을 가지고 히노마루 기를 태워버리기 위하여 본건 범행에 이른 것이며,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서는 결코 용인하기 어려운 일탈한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피고인의 위 행위에 의하여 요미탄촌민들이 손수 국체로서 협력하여 성공시키자고 준비해 온 경기회의 업무를 방해한 결과가 발생하고 있는 것, 피고인에게는 반성의 태도도 볼 수 없는 것 등도 고려하면 피고인의 형책(刑責:형사책임)은 경시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다른 한편으로 경기회의 운영을 맡은 요미탄촌 실행위원회의 회장인 야마우치 촌장이 주최자인 일체협이나 오키나와현의 의향을 따라 개시식에서 히노마루 기를 게양할 지 아닌지 판단을 헤매고, 그 개최에 임박하게 되어서야 드디어 요미탄촌 실행위원회로서는 시작식에서 히노마루 기를 게양하지 않는다는 의향이었던 것이 그 운영에 관하여 협의하여야 하는 것으로 보는 일소협에 전해져 그 대응에 고려한 일소협의 히로세 회장이 요미탄촌 실행위원회에 대하여 히노마루 기를 게양시켰다고 하는 경위에 대하여, 본래 하여야 할 협의가 충분히 되지 아니한 것이 피고인의 본건 범행을 유발시킨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점, 요미탄촌에서 나고 자란 피고인이 동촌에 있어서 오키나와전의 역사, 특히 치비치리가마의 집단자결의 조사 등을 통하여 히노마루 기에 대하여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는 것에 이른 것 자체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닌 점, 손괴한 물건은 비교적 저렴하고, 업무방해의 결과도 비교적 적은 점, 피고인은 오랜 기간 견실한 직업에 종사하면서 요미탄촌 상공회의 임원을 맡기도 하는 등 동촌의 발전에 협력하여 온 자인 점 등 피고인을 위하여 참작할 사정도 인정되는 것으로서, 이들 사정을 또한 함께 고려한 뒤에 주문에 적힌 바와 같이 형의 양정을 하였다.



 따라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재판장 재판관 미야기 교이치  宮城京一
재판관 아키바 야스히로 秋葉康弘
재판관 다나카 겐지   田中健治



 이 사건은 피고인이 1987년(쇼와 62년) 10월에 오키나와현(沖縄県) 나카가미군(中頭郡) 요미탄촌(讀谷村)에서 열린 제42회 국민체육대회 소프트볼 경기 개시식에서 깃대에 게양된 히노마루(日の丸)를 끌어 내려 소각하였다고 하여 공소가 제기된 건조물침입, 기물손괴, 위력업무방해피고사건의 제1심 판결이다. 소인(訴因)의 특정과 관련하여 히노마루가 국기(國旗)인가 아닌가가 다투어졌으므로 매스컴 등에서 널리 보도되었다. 사건의 배경에는 태평양전쟁에서 비참한 지상전을 체험하고, 주민이 집단자결에 몰리는 등의 오키나와의 히노마루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있다.

 변호인의 주장은 공소권 남용, 가벌적 위법성의 부존재, 정당방위, 정당행위 등 여러 면에 걸치나, ① 소인이 불특정이란 주장에 관하여 기소장에 기재된 공소사실에서는 기물손괴죄의 대상인 기물에 관하여 「국기」(國旗)라고 기재하고 있으나, 일본에 국기가 존재하는가 아닌가, 또한 어떠한 깃발이 국기인가는 법제화되어 있지 않아 확정되어 있지 않는 이상, 「국기」라는 기재는 의미불명으로 본건 공소제기는 소인이 불특정된 까닭에 무효로 공소기각하여야 하며, ② 위력업무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관하여 피고인의 행위는 사람의 의사를 제압할만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으므로 위력에 해당하지 않으며, 피고인의 행위에 따라 업무방해가 현실적으로 야기된 바가 없으며, 그 구체적 위험 또한 발생하지 않은 것이므로 피고인의 행위는 업무방해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등을 주장하였다.

 본 판결은 ①의 주장에 대하여 검찰관이 제1회 공판기일에 「국기란 히노마루 기이다」라는 뜻을 석명하고 있는 것을 지적한 뒤, 국기라고 하는 용어는 법률 등에 따라 국가를 상징하는 기로서 쓰이도록 정하여진 기를 말하는 경우도 있으나, 그 경우에 한하지 아니하고 사실상 국민의 다수에 의하여 국가를 상징하는 기로서 인식되고, 쓰이고 있는 기를 말하는 경우도 있으며, 현행 법제상 히노마루 기를 가지고 일본의 국기라고 하는 뜻의 일반적인 규정은 존재하지 않으나, 국제관계에 있어서는 선박법 등에 따라 히노마루 기를 타국과 식별하기 위한 국기로서 쓰도록 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고, 한편으로는 국내관계에 있어서도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쓰이는 경우의 국기에 대하여는 아무런 법률도 존재하지 아니하며, 국민 일반으로 하여금 어떠한 행위도 의무지우지 아니하나, 현재 국민으로부터 히노마루 기 이외의 국기로서 취급되고 있는 것이 없고, 또한 다수의 국민이 히노마루 기를 국기로서 인식하고 쓰고 있으므로, 검찰관이 공소사실에 있어서 기물손괴죄의 대상물로서 기재한 「국기」란 「히노마루 기」를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고, 소인의 특정에 흠결이 있는 것이 없다는 뜻의 판시를 하였다. 본 판결은 공소사실에 기재된 「국기」가 「히노마루 기」를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는 사안에 응하여 판단하였으므로 일반적으로 말하면 소인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특정을 요한다고 생각할 것인지는 판례상에서 분명 명확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실무상은 소인의 기재는 다른 범죄사실에서의 식별 특정으로 족하다는 견해가 유력하다.[각주:3]
  1. 나하<SPAN style="COLOR: #8e8e8e">(那覇)</SPAN> 지방재판소 판결 쇼와 62년 (わ) 제346호 [본문으로]
  2. 원문을 직역하면 죄가 될 만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으나, 한국의 일반적인 판결문에 준하여 범죄 사실로 표현한다. [본문으로]
  3. 『판례타임스』<SPAN style="COLOR: #8e8e8e">(判例タイムス)</SPAN> 제815호, 1993년 7월, 114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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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천어 트랙백 0 : 댓글 0